악기상점 안에는 여러종류의 악기가 진열되어 있었고 그중엔 바이올린과 호른도 있었다. 권은이 옆이 있었다면, 그녀는 분명 알마 마이어와 장 베른이 각자의 악기를 들어 연주를 하는 상상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아마도 눈을 한번 꾸욱 감았다 뜬 뒤, 빛의 호위를 받으며.... 이상할 건 없었다. 태엽이 멈추고 눈이 그친 뒤에도 어떤 멜로디는 계속해서 그 세계에 남아 울려퍼지기도 한다는 것, 그리고 간혹 다른 세계로 넘어와 사라진 기억에 숨을 불어넣기도 한다는 것 역시, 나는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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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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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를 읽고 작가님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읽은 조해진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조해진 작가님의 책을 고작 2권밖에 읽진 않았지만, 작가님의 시선 속에는 시대의 가장 약자가 있었다. 그래서 가슴 한켠이 뜨끔하면서도, 따뜻했고, 아프다.

책의 표제작인 <빛의 호위>. 가장 처음 등장하는 소설.
기자인 나는 오래전 동창이였던 ,현재는 분쟁지역 사진 작가로 활동하는 권은을 만난다. 처음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을 차차 떠올리는 과정 속에서 둘은 꽤나 가까웠던 사이임을 되새긴다.
그녀가 사진작가가 되었던 계기는 내가 그녀에게 건넨 카메라였다.
나는 그 카메라를 '돈'으로 환산하여 준 것 이였지만, 권은은 그것을 '희망'으로 받았다. 내가 전한 카메라가 그녀에겐 희망이였고, 빛이였다. 그 카메라 속의 빛이 그녀를 하루 더 살아가게 했으니까.
그리고 다시 현재, 그리고 그녀가 남긴 글을 통해 되돌이키는 그녀에 대한 기억. 가장 바닥에서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던 이에게 전한 카메라는 그녀에게 내일이 되었다. 카메라 속의 빛이 그녀의 삶을 이어오게 했으니까.

그리고 기억에 깊이 남은 <문주>
문주라는 이름과 나나라는 이름. 두 이름을 갖고 있는 나. 서영의 제안으로 한국에 와 머무르는 곳에서 복희식당의 할머니를 만난다. 의식불명의 할머니를 발견하게 되어 어쩌다 간호를 시작한 나는 할머니가 찾는 존재에 나를 몰입하면서, 자신이 발견되었던 철길의 기관사를 만나기로 한다. 자신의 시작을 찾고 싶어서. 문주라는 이름을 누가 주었을까.
결국 자신을 데려왔던 기관사를 통해 문주라는 이름을 얻었고, 그가 그녀를 꽤나 숙고해서 찾은 고아원에 데려다 주었다는 사실이였다. 결국 그녀가 찾고 싶었던 것은 하나도 찾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재확인, 그리고 복희식당 할머니의 죽음을 뒤로하고 나아가는 문주 아니 나나의 걸음. 그녀는 결코 만날 수 없는 문주와 나나 중 어떤 이의 모습으로 살아갈까.

그리고 <작은 사람들의 노래>
하청업체 직원 송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지켜본 균의 이야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며 왜 작가가 '노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것은 아우성인데 싶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이 이야기는 두가지로 나뉜다. 균과 엘리. 균과 송. 엘리는 균이 후원하는 아이고, 송과 균은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꽤나 가까운 사이다. 크레인 위에서 작업하던 송이 추락사로 사망하고, 이것이 산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찾아온 변호사가 균에게 법정의 증인으로 요청하지만 균은 거절한다. 알고 있는 사실이 없어서. 
하지만 균은 알고 있었다. 송의 추락 위험을. 그리고 송의 추락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았다. 하지만 균은 그 사실이 곧 송의 추락이 자신의 죄인것 같아서 말 할 수 없다. 왜. 추락에 균은 죄책감을 가지는가.
그것은 소위 원청업체의 문제임에도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후원하는 아이 앨리에게 후원자가 아닌 후원자'들'이 있다는 말에 균은 앨리의 모든 것을 태운다. 그리고 생각한다. 추락하는 앨리, 외면 당하는 앨리, 증오심을 알아갈 앨리, 그 모든 앨리들을.
균이 앨리과 관련된 것들을 태우며, 생각하는 앨리의 현실은 균이 살아온 현실이였고, 앞으로 균이 살아간 현실이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힘든 이들의 아우성이고, 외침이다. 다만  조해진 작가님은 이런 이들의 말을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하기보단, 그들의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한다. 

조해진 작가님의 이야기는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가장 외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외치는 말을 전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내면을, 그들의 생각을 가만히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로기완도 그러했고, 이 책의 이야기들이 그러했다. 
시대로 인한 피해자들과 그들을 둘러싼 이들의 아픔과 내면을, 그리고 사회 속에서 외면당한 이들의 내면과 아픔을 가만히 읽어내려가게 한다. 그들이 사회 속에서 타자가 아닌 어쩌면 우리라는 테두리안에 있는 사람들임을 조심스럼게 알게 끔 말이다. 

재밌을까해서 읽은 소설에 무거움이 남는다.

"어떤 이야기도 한 사람을 대신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생애에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표현되는 순간보다 훨씬 더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 작가의 말 중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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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 개정판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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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최종 후보작까지 올랐던 작품.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평을 보고서 잠깐 망설였지만,  워낙 궁금했던 터라 좀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읽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완전 호. 완전 극 호! 임을 밝힌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저주토끼"가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데, 누군가에게 저주를 행하는 일은 결국 다시 돌아오는 살을 내가 받아내야 하는 것.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고, 나를 친구로 받아들여준 나의 가장 소중한 이를 죽게한 사람에게 보낸 저주 용품은 결국 나의 소망을 이루어주었지만, 그 역풍은 결국 나의 몫. 뭐랄까. 권선징악은 아니지만,, 뭐랄까. 작가님의 말처럼 작용반작용의 원리라고 하지만 그래도 시원.. 찝지름한 무언가?!
인간사가 원래 외로운 것이라지만, 그래도 내겐 시원함이 더 크달까...그 역풍을 내가 받을 지언정 말이다.

개인적으로 헉! 싶었던 작품. "안녕, 내 사랑" 나에게 첫번째였던 인공 반려자. 시간이 지나 이미 너무 오래된 모델이였기에 이후 다른 반려자들을 들이고, 1호는 전원이 켜져있는 시간이 꺼져있는 시간보다 훨씬 적었지만, 그래도 나는 1호를 폐기할 수 없었다. 다른 모델들에게 1호와 동기화를 시키고 싶었으나 매번 실패했던 나의 1호.  세스는 웬지 1호와 닮았다. 그리고 실패했던 동기화를 세스는 성공했고, 나는 아쉽지만 1호를 보내주려한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단어 인공 반려자. 
 "언캐니 밸리" 불쾌한 골짜기. 우리는 로봇을 과연 반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인간과 가장 가깝게 만드는것이 로봇 기술의 목표이지만, 그 가까움의 적당함은 어디까지 일까. 어느 순간 인간과 똑같아진 로봇을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게 될까? 그리고 아이작 아시모프작가가 말한 로봇의 3대원칙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인간을 해하지 않는다" 뭔가 이 원칙을 적용하기에 뭔가 애매하달까.. "반려"라는 명칭이 붙어서일까..?

그리고 "덫"과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는 전혀 다른 내용이지만 인간의 탐욕을 말하는 작품이였다. 끝내 놓을 수 없었던 탐욕의 <덫>,  눈먼 인간의 욕심의 끝을 말하는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생각해 보면 한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보이는 것이 왜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황금 만능주의를 천박한 자본주의라고들 하지만 '돈' 앞에서 나는 과연 눈을 제대로 뜰 수 있을까..?싶어 기괴하지만 슬펐다.

소설 한편한편 모두 재미있으면서도, 무언가를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냥 재미로만 다가오진 않았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무엇, 또는 집착하는 무엇, 그것이 돈일 수도, 자식 일 수도, 무엇도 될 수 있는 것 등에 관한 이야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누가 정하는 것이지.. 싶었던 이야기 등등. 우리의 삶을 소재로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게 그려낸 각각의 작품들. 

멋져!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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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읽겠습니다 (에세이 에디션) - 책과 가까워지는 53편의 에세이 매일 읽겠습니다
황보름 지음 / 어떤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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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황보름 작가님이 쓴 책에 관한 에세이. 이 책이 먼저쓰였지만, 나는 휴남동 서점을 읽고서 이 책을 찾았다. 휴남동 서점에서 읽은 작가님의 따스한 글이 좋아서. 이 책은 다른 책을 소개하는 에세이라기보다 ”책“ 그자체를 말하고 있었다. 신선하면서도, 첫문장과 함께 깊게 빠져든 책.


애서인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에세이를 읽으며 맞어맞어.싶기도 했고, 읽었던 책에 대한 언급이 나올때는 신기했다. 이 책이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어? 싶었어서.. ㅠㅠ 사실 기억이 안난 책도 다수.
나는 요즘 책을 읽으며, 내가 왜 책을 읽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읽었던 책의 대부분의 내용을 잊고, 내게 남는 것이 없는데 나는 왜 책을 읽을까..? 책은 내게 어떤 의미 일까..?
이 에세이는 그런 나의 생각에도 답해주는 듯했다.(책을 읽고 잊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구나하는 안도감 한 스푼.ㅎㅎ)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기억의 그림자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면, 도대체 왜 글을 읽는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을 안고 거듭 고민하던 쥐스킨트가 내놓은 답은 독서에서는 ‘기억’이 아니라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였다.“ p.43

도서관의 의미, 전자책과 종이책의 차이. 서평쓰기, 서평 읽기 , 어려운 책을 읽는 다는 것, 병렬독서는?(개인적으로 한번에 한권의 책만 읽는 사람으로, 병렬독서를 하는 분들 존경함..) , 병렬독서를 시도했다가 아무 책도 안읽은것 같았던 일인...
개인적으로 친구들과 나누는 책 수다 부분에서는 ㅎㅎ 알쓸신잡이 언급되어 오호라 빙고! 싶기도... 이 책의 목차를 보며 나도 떠올린 프로그램이라.
작가님이 쓴 책에관한 에세이이지만 작가님들만의 리그에서 쓰여진 에세이가 아니라, 그저 독자인 나조차도 읽으면서도 깊이 공감할 수 있어 더 좋았던 책.

“ ‘나는 한 시간의 독서로 누그러들지 않는 어떤 슬픔도 알지 못한다.’ 오늘의 내 슬픔을 잊게 해 준 책, 나는 기억하고 싶다” p.181
작가님이 좋아한다는 몽테스키외의 말. 아 멋지다.

내게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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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속 지느러미 TURN 1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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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은 작가님의 신작. 강렬한 표지와 제목은 나를 끌어당겼다. 무슨 내용일까. 입속에 지느러미라.

"네가 만든 노래는 뭐랄까.. 지느러미 같아. 고막을 간질이는 지느러미." p.22
삼촌이 선형의 노래를 듣고 한 말이다. 취업준비에 한창일 나이 선형은 노래에 빠졌다. 경주와 함께. 그리고 망했다. 경주의 배신으로인한 밴드해체이지만, 알아주지 않는 인디밴드 얼마나 더 갈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매달리 공무원 시험.
그러던 어느날 삼촌이 내게 낡은 건물 한채를 남기고 죽었다.
엄마와 어른들은 모두 삼촌의 건물을 팔라고 재촉하고, 선형은 낡은 건물을 청소하던 중, 파니를 발견하고, 선형은 삼촌이 내게 남긴게 건물이 아니라 파니였음을 깨닫는다.

어디선 온 존재일까.
선형은 자신이 놓아버렸던 노래에 대한 열망을 파니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파니의 독특한 음색. 그것의 허밍에서 선형은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 건물의 지하실에 갖힌채.
삼촌은 선형의 음악을 듣고, 자신과 닮은 선형만이 파니를 돌봐줄 것이라 믿었기에 파니를 그녀에게 남긴 것이였다.
삼촌의 일지를 보며 파니의 충실한 종이되어 오로지 그것의 음색에만 빠져있던 중 밴드 친구들의 모임 약속이 잡힌다.
그곳에서 만난 경주.
그녀는 그를 삼촌의 낡은 건물로 이끈다. 그리고 드러난 경주의 검은 속내.

읽는 내내 파니의 음색은 동화 속 인어공주를 떠올리게했다가도, 파니의 난폭함은  선원들을 음색으로 유혹해 죽게한 세이렌의 모습이 겹쳐,  잔잔한 도입부과 강렬한 후렴부가 마구 반복되는 음악을 연상케 했다. 아.. 음악을 듣는데 쉴 수가 없어....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 속에서 귀신 나오기 전에 깔리는 암시 음악으로 끝냈달까...역시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작가님이야....

파니에 대한 선형과 삼촌의 집착은 무엇이였을까. 단지 음색이였을까. 적어도 선형의 파니에 대한 집착은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열망같아보였다. 파니를 통해 나의 음악을 완성시키고싶은 마음. 그렇게 내가 놓아버려, 끝내 만들어내지 못한 세계를 완벽하게 끝맺음 하고 싶었던 그녀의 욕망. 그래서 그녀는 파니를 다른 이에게 보내지 못한 것은 아니였을까... 싶었다. 오롯한 나의 소유로 끝까지 남기고 싶었으니까.

"그거 알아?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계속 생각하다보면 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 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 나 아닌 모든 존재는 결국 미지의 영역이니까." p.143


다시 만났을까.
궁금하다.

재밌다아..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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