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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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슨 의미일까. Beloved를 한글로 표현한 제목. "가장 사랑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흑인노예제에 대한 소설이고, 본 책의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여성 작가라는 소개와함께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나 읽었다.

쉽게 읽힐 책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읽으면서 꽤나 힘들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용자체의 참혹함때문에. 상상했던것보다 더 했던 당시의 노예제의 참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주인공 세서는 딸 덴버와 함께 마을 외곽의 124번지에서 살아간다. 꼬마 유령과 함께. 그런 그 집에 세서와 그리고 그녀의 남편 핼리를 알고 있는 폴디가 찾아온다. 그들은 "스위트홈"이라는 농장에서 함께 노예생활을 했었고, 세서는 그 중 핼리를 만나 결혼했었다. 그 당시 세서를 좋아했던 폴디는 세서와 그녀의 딸 덴버가 사는 124번지를 찾아와 같이 살기 시작한다.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던 두 모녀는 폴디의 출현으로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리는 등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무렵 이 집에 빌러비드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빌러비드. 아무도 그녀가 어디서 왜 왔는지조차 모르지만, 어느덧 이집에 함께 살게된 그녀. 덴버는 언니로 그녀를 따르기시작하고, 묘하게 집착한다. 그러나 빌러비드는 오로지 세서만 쳐다보고, 세서만 따라다니는데.

폴디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가 세서를 망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기에.

점차 빌러비드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세서. 반대로 세서의 집착이 심해질수록 덴버는 그녀로인해 망가져가는 엄마를 구해내려 노력하는데, 

이 무렵 폴디는 세서의 과거를 알고서 그녀를 떠난다.

그리고 점차 미쳐가는 세서.


세서의 과거는 실제 있었던 '마거릿 가너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마거릿 가너 사건은 당시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가 임신한 몸으로 자식 넷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잡힐 위기가 쳐해지나 당시 두살된 딸을 죽이고,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다가 미수에 그친채 잡힌다. 그리고 재판에 넘겨지는데, 딸을 죽인 살인죄로 사형을 쳐야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재판이 길어졌다고한다. 결국은 그녀는 살인죄를 저지른 '인간'이 아니라 재산의 일부로 취급당했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너는 세서와 같은데, 단순히 외부에서 노예냐 재산이냐를 판단했던 것이 주 사건이라면 책은 세서의 내면과 그녀가 왜 미쳐갈수 밖에 없었는지를 한 인간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마거릿 가너 사건을 책의 말미에서 알았을 때, 이 책의 내용이 더 끔찍했다. 외부에서 그것도 현재에서 바라보는 역사로 보는 시점이기에 어느정도 예상은 했으나, 철저하게 사람이였던 한 인간을 이토록 철저하게 사물로 다룰수 있었던 그 현실이, 그것도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였기에 너무나도 끔찍했다. 뭐랄까 덩어리로 보는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사건이였기에 그랬달까.


 비교적 인간다운 대우를 했던 이들조차, 말그대로 인간"다운"대우였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칠수밖에 없었고, 잡혀야 했을 때,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하고 싶지 않았던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였으니까. 책을 읽으며 이 마음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가 더 소름끼쳤다. 그저 텍스트로만 읽으면서도, 저 처참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


하지만 다시 대면한 딸을 보며, 과거에 매여버린 세서. 그 과거를 그녀는 딛고 일어설 힘이 없었다. 

그렇게 망가져가는 세서이지만, 세서의 현재인 덴버, 그녀에게 미래를 주고 싶었던 폴디가 나타났다. 그녀는 빌러비드에 매여버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세서가 과거에 매여버려야했던 그 과거의 사회를 어떻게 개인이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임에도 충분히 사랑해줄수 없었고, 그렇기에 내가 낳고도 내가 그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 죽음 뿐이였던 그런 사회였는데... 세서의 등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라는 것이 가죽채찍으로 맞은 상흔이였다는 점, 나와 나의 자식이 그저 수십달러에 값어치를 가진 그저 물건이였을 뿐인데..

어떤 인간이 그런 사회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한편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인간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평등이라는 것이 이제는 존재하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인간을 "물건"취급하는 세상은 아니라지만, 정말 그럴까? 그냥 형태만 바뀐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라는 말로 변질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지급한 돈만큼의 값어치로 따지는 세상이 과연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예제에 대한 역사는 생각했던것보다 끔찍했다. 현실은 더 했겠지.

​​​​​​​슬프다. 하지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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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번의 생사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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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번의 생사>라는 제목에 끌렸다. 계속 죽다가 살아나는 소설인가.. SF야? 하면서 읽은책.

책의 저자가 유명하다는 것은 책을 다 읽고나서 알았다. 

 책은 표제작인 <오천 번의 생사>를 비롯하여 다수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은 각기 다른 내용이지만 그 내용의 전반엔 죽음이 깔려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타인의 죽음. 어머니이면서, 고작 열흘이였지만 일터에서 만났던 이, 어쩌면 하루저녁 신세를 졌던 이의 입에서 나오는 죽음. 친구의 죽음. 나의 죽음은 두렵지만, 타인의 죽음은 두려움과 슬픔이 공존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 죽음에 대한 감정의 결론을 내리는것이 아니라 짙은 여운을 남겨 책을 읽는 이로하여금 그 생각과 감정을 계속해서 생각케하는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표제작 보다는 첫 작품인 <토마토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대체 왜 그 남자는 나에게 먹지도 않을 토마토를 사다달라고 했을까. 그리고 그 남자가 내게 요청했던 편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을까. 누군가의 간곡한 요청을 지나칠수 없었던 '나'가 남자의 부탁으로 사다준 토마토. 하지만 그 남자가 정착 중요히 요청했던 편지를 잃어버린 '나'는 남자의 죽음과 함께 남겨진 토마토를 보고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 밤새 찾았지만 잃어버린 편지를 찾을 수 없었고, '나'는 이후로 토마토를 먹지 않았다. '나'에게 토마토는 남자에 대한 잃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면서, 그 남자에 대한 죄책감이다. 이 편이 인상적이였던 이유는 누군가의 마지막을 그저 가십거리로 넘기지 않은 주인공의 마음씀이 타인의 죽음을 앞에두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음으로써 가십으로 소비되는 요즘의 모습과 많이 달라서 였는지도.


그리고 언제나 통쾌한 단어 <복수>. 나를 위해 타인에게 행하는 고통은 결국 내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교사에게 당한 폭행으로 세 친구는 각기 다른 길을 갔지만, 복수를 위해 다시 만나고, 성공한다! 아. 이 짜릿함. 역시 복수는 통쾌하다. (이 작품만 다른 편과 결이 다르지만, 중간에 껴든 통쾌함은 각 이야기에 깔려있는 죽음에 대한 묵직함을 덜어준다.)


그리고 <쿤밍. 원통사 거리> 목전에 둔 친구의 죽음 앞에서 친구를 계속해서 떠올리지만,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동시에 반대로 그 마지막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친구에 대한 기억을 끝내 내려놓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그 마음에 백분 공감했다. 마지막 시간과 그 시간을 맞딱드리고 싶은 않은 감정의 모순. 그래서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은 늘 남겨진 이에게 가슴아프고 두려운 시간이니까.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이였지만, 작가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나를 펑펑울게 하진 않았지만, 한편 한편 읽으며 자꾸 나의 감정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현재 진행형이 아닌 기억. 누군가를 과거로만 기억해야하는 그 기억은 나의 현재를 함께 하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부제로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그래도 그 시간속에서 그로인해 내가 행복했음을 알게하기도 한다. 


재밌다. 먹먹하지만. 따뜻한 책.


"나는 하루에 오천 번쯤 죽고 싶어지고 또 살고 싶어져. 형도 의사도 그게 내 병이라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아. 다들 그렇지 않나? 넌 어때?"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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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50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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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오래된 고전중의 고전이다. 고전이고, 철학적이다보니, 읽는데까지 고민이 많았지만, 그래도 도전!이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역시나 나에겐 어려웠다.(쉽지 않아..또르륵ㅠ)

 

책을 처음 읽으면서는 사실 좀 의아했다. 왜이렇게 순수하지?라는 마음이였달까. 정의와 불의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불의하게 사는것이 정의롭게 사는것보다 더 편안하다는 논증을 어떻게 정의로움이 나의 삶에 더 이로운지를 풀어가는 대화가 그 시작인데, 마치 너무 이론적이고 이상적인 방식이였달까. 그래서 나는 이 대화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다. 

인간이 행하는 불의한 일들은 결국 자신의 이로움만을 택한 결과일때, 자신의 죄책감으로 그것이 옳지 못한 것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말. 지금의 현실에서는 사실 그런 이들이 ”죄책감“이라는 단어 그 자체를 생각이나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50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은 꾸준이 인간이 가져야할 가장 기본의 자질에 대해, 좋은 혼을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각 나이 때에 받아야할 교육(수학, 기하학, 천문학, 체육 등), 나이에 맞게 필요한 교육과정(변증법은 충분히 앞의 교육과정을 통해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을 때 시작해야하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부모, 국가의 시스템등을 계속해서 논의해간다. 결국 이런 정의로운 사람이, 좋은 국가를 만드는 시스템이기도 하니까. 

이에 사람의 타락은 국가의 타락과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쯤 고전에서 읽히는 미래, 즉 지금의 현재가 수천년전에 예견되었다는 것에 뒷목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과두정에서 민주정, 그리고 참주정으로 넘어가는 단계. 불의한것에서 정의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선택한 민주정이, 어떻게 참주라는 독재의 형태로 넘어가는지를 읽으면서 우리는 오래전에 예견된 순서를 너무나도 그대로 밟아온 역사를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나 민주정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참주는 가까웠던 과거에 본 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었고, 오래지속되는 독재가 어떻게 한 국가와 시민을 타락시키는 지는 지금의 현재에서도 어렵잖에 찾아볼 수 있기에 더 그러했다. 

 

 책은 소크라테스의 말, 플라톤의 정리를 통해 그들은 현실의 정치에 대해 대증처방을 하든 국가를 논의한것이 아니라 국가의 이상향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나는 책을 다 읽어갈 때쯤 알 수 있었다.

 이상은 대체로 현실과 떨어져있지만, 봐야하는 목표임에는 분명하니까. 국가의 이데아란 이런 모습이여야한다는 것을 책의 화자들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국가의 이데아라는 것에 언론의 역할까지 들어가있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 특히 시에 대해, 시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를 읽다보면, 지금의 언론이 가져야할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모방적인 시인은 더 큰것과 더 작은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한 것을 어떤 때는 크다하고 어떤 때는 작다고 여기는 혼의 분별력이 없는 부분에 동조하고, 참된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영상을 만들어 개개인의 혼안에 나븐 정치체제를 생성한다고 말할 수 있네“ p.500

 

오래된 책인데, 그래서 너무 이론적인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지만, 그들의 말하는 국가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도 추구해야 하는 이상향임에는 분명하다는것이다. 물론 현재의 국가는 책 속 시대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각 개인의 욕망은 정의를 이기고도 죄책감을 지우지 않는 현재이지만 책 속 화자들의 말과, 우리가 밟아온 과거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시 국가란 어떤 모습이여야하는지를 잊지 말라고 말한다.

 그래서 고전은 우리에게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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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3 -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의 2023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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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매년 10월쯤 다음해의 트렌드 코리아가 출간되고,  출간된 직후 이 책을 매년 읽어왔는데, 올해는 좀 늦었다. 이제는 트렌드를 책으로 배울나이가 되어서 인지, 매년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느낌은 매번 격세지감이다. 요즘은 다들 이렇게 사는걸까...하는 느낌? (나와는 많이 다른.....)


올해는 진짜로 본격적인 엔데믹의 시작인 2023년이다. 그런 올해의 트렌드는 어떨까. 사실 트렌드코리아 책을 매년 읽다보면, 작년과 올해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나에겐 늘 새롭지만.ㅎㅎ) 어떻게 1년 사이에 확~바뀐 것이 있을까?(코로나가 시작되던 해를 제외하고..) 

2020년부터였을까. 확실히 트렌드가 개인화 되는 점이 강해졌다. 완연한 Individual로 소비 트렌드가 초개인화 되었달까. 그래서 인지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파트는 “평균실종” 이였다. 소비, 취향, 목표등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가는 트렌드가 등장했다는 사실은 곧 “평균 실종”이라는 트렌드가 당연한 결과일지도. 다만 이것이 소비적 측면에서 들어난것 외에 경제,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중간 완충 지대없이 완전한 양극화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어두운 민낯이 드디어 수면위로 올라온 것일까? 소비 트렌드와 별개로 이부분은 굉장히 씁쓸했다.


정말 격세지감으로 다가온 “알파세대가 온다”는 파트는 디지털 ONLY세대, 디지털 원주민인 2000년대 후반 태어난 세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Z라는 단어가 알파벳의 끝이기에 등장했다는 단어 ‘알파’ 이 아이들은 X세대의 자식들이다. 한국에서 개성이라는 면면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등장한 세대의 자식답게, 알파세대는 자기 중심성이 강하고, 틱톡과 같은 SNS를 통해 개인이 인플루언서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자연스러운 세대이다. 또한 자본주의 세대 답게 돈에 대한 가치, 소비와 투자를 아는 세대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꿈 역시 기성세대가 원했던 것과 다르다. 모두가 원하는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것을 꿈꾸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 역시 우리가 아는 평균, 남들만큼만 살면 된다라는 인식 자체가 사라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초개인화 되어가는 시대이면서, 재밌게도 초연결화 되어가는 시대이다. 사회 속에서 나를 낮추고 타인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는 시대가 지나가고, 내가 원하는 관계를 형성하고, 그 관계 역시 무거운듯 가벼움을 유지하는 시대다. 관계를 맺고 끊음이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이 그 중심이다. 

 이 현상은 직장에서도 드러난다.  오피스, 직장의 선택 기준이 급여보다는 복지이다. 회사보다는 내가 중요한 시대의 등장이다. 

 이런 개인화 된 사회는 하나의 개인에서 머물지 않고, 그 개인의 생활 깊숙히 들어와, 행동, 행위의 목적까지 분석해 선제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의 등장까지도 보고 있는 요즘이다. 말그대로 ‘선제적 대응기술’ 사실 이 부분은 놀랍다기보단 개인적으로는 두려웠다. 내 행위 모든 것이 ‘기술의 감시’아래 놓이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 부분을 내가 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술이 이런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속에 어떻게 녹아들지,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모든 것이 ‘초개인화’ 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많은 이들을 만나는 ‘공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간이라는 의미가 아날로그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메타버스라는 사이버 상의 새로운 공간이 등장역시 포함한다. 우리가 관계를 맺기위해 찾는 공간이라는 곳이 어떻게 트렌디하게 변해가고 있는지를 읽고 있다보면, 재밌는 생각이지만 요즘 건축가들이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싶기도 했달까. ㅋ 소위 힙한 느낌을 주면서도 많은 이들이 이질감없이 모여들게 할 공간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2023 트렌드가 2022년과 완연히 다른것은 아니다. 트렌드란 연속성을 가지며 발전하는 것이니까.

본격적인 엔데믹의 시작인 올해, 경제도 정치도 별로 상황이 좋진 않진 않지만 책의 부제처럼 ‘더 높은 도약을 준비하는’ 한해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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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세계미래보고서 - 새로운 부의 기회는 어떻게 오는가
박영숙.김민석 지음 / 더블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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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 세상에나. 작년 11월쯤 아는 지인으로부터 대단한 것이 등장한것 같다는 말을 듣고서도 흘렸는데, 지금은 남녀노소 아는 단어가 되었다. 불과 5개월만에 말이다. IT 기술분야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들리는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대체 챗GPT는 어디까지 왔고 어디까지 갈것인지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읽은 책.


기술분야쪽에서 종사했음에도 처음 챗GPT에 질문을 하고 받은 답변은 굉장히 놀라웠다. 원하는 정보를 단어나 문장으로 검색하고, 검색 결과를 토대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아야 했었는데, 챗GPT는  질문에 검색된 정보를 토대로 원하는 결과만을 정리하여 응답한다,

 구글 검색에서 한단계 넘어선 기술을 보고 있었기에 그랬다.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생성적 사전학습 인공지능 모델)인 GPT는 인간의 자연어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언어로 응답을 돌려준다. 원하는 결과를 찾고 조합하던 단계를 GPT모델이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찾고자하는 검색결과를 조회하는 것 외에 인간의 자연어를 학습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이나 논문의 요약본을 만들고, 기사를 작성하고,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가능한 단계까지 AI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다만 현재는 OPEN AI의 챗GPT는 적시성이 떨어지는 단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결과의 빠른 도출을 위해서는 사전학습이라는 단계가 필요하고, 그 작업에는 어마어마한 하드웨어가 필요하기에 그렇다고 한다. 현재의 챗GPT는 2021년까지 사전 학습된 결과를 토대로 질문에 대한 응답을 하기에 현재를 기준으로하는 질문에는 답변의 정확성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이 기술이 적시성까지 탑재한다면, 와.우.. 적어도 인간에게 더이상 검색이라는 단어는 없어질지도.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것은 OPEN AI의 챗GPT외에도 GPT 기술을 이용한 다른 AI 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진짜 많았다..) OPEN AI에서도 다음 세대의 GPT-4를 2023년 발표했고, (현재는 GPT-3.5) 빙챗, 리사, 재스퍼챗등 다양한 AI 챗봇이 이미 출시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였다. 구글의 PaLM-E 모델도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코파일럿이라는 MS문서관련 비즈니스챗도 있다. 실제로 문서의 초안을 작성하고, 수정, 검토하는 등의 실제 MS문서도구 관련 전반에서 AI비서 역할을 하는 챗봇이였다. (개인적으로 엑셀 코파일럿이 가장 궁금했다. 엑셀이라는 막강한 툴에 AI가 보태어져있다면,,와. 대단하겠는데 싶어서.)


 다양한 AI봇의 등장. 인간과 그들의 상호교감에 있어 더이상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발전해온 AI봇의 등장은 아직까지는 일장일단의 면면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정말 AI봇이 현재 산업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여전히 아직은 어색하지만 적어도 뜻의 전달정도까지는 가능해진 번역(물론 전문적이고 매끄러운 부분에 있어서는 전문 번역가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다),  디지털 AI 봇의 경우는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기에 고객 말의 맥락을 이해하고, 고객의 니즈를 분석, 분류하여 정확하 사람에게 연결해주는 등의 보조 업무는 가능한 지금이다. 

그리고 챗GPT의 등장으로 아이들의 교육 현장도 바뀌고 있다. 단순히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챗봇과의 문답을 통해 다양한 생각의 발전을 키워갈 수 있는 도구가 새로 생긴것이다. 현실적인 것부터 철학적인 문답까지 가능한 챗봇의 등장은 정말 놀라울 따름. 이밖에도 로봇, 우주, 농업, 보험, 법률 자문까지 뻗어갈 수 있는 분야가 정말 어디까지 일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아직까지는 결과에 대한 적시성 및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기에 인간의 개입과 확인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도 기반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이부분엔 나도 동감.


게임체인저의 등장이다.

인터넷이라는 어마어마한 데이터의 홍수 속에서 습득한 데이터를 인간의 언어로 돌려주는 AI.

이 AI의 등장이 개인적으로는 두렵기 보다는 아직까지는 신기한 눈으로 바로보고 있는 일인으로, 다만 걱정되는 부분으로 인간의 편향이 AI 속에는 없길 바랬는데, 그 부분 역시 AI를 개발하고 학습하는 부분에서 논의 되고 있다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의 교육 분야까지도 그 산업의 발전이 보여지는 지금 인간이 가진 편향된 추론이 그 속에 드러나있다면 그리고 그게 다수이기에 나타날 수 있다고 치면, 우린 그 편향을 편향으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인간이 학습될테니..말이다.(어떻게 하는지는 명확하게 책에 드러나있지 않지만,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갈지 그 과정이 궁금하긴 하다.)


재밌다. 피할 수 없다면 잘 사용하고, 잘 이용해,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사뭇 기대가 된다.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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