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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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러비드" 무슨 의미일까. Beloved를 한글로 표현한 제목. "가장 사랑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진.

흑인노예제에 대한 소설이고, 본 책의 저자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흑인여성 작가라는 소개와함께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나 읽었다.

쉽게 읽힐 책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으나, 읽으면서 꽤나 힘들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용자체의 참혹함때문에. 상상했던것보다 더 했던 당시의 노예제의 참상이 너무나 끔찍해서.


주인공 세서는 딸 덴버와 함께 마을 외곽의 124번지에서 살아간다. 꼬마 유령과 함께. 그런 그 집에 세서와 그리고 그녀의 남편 핼리를 알고 있는 폴디가 찾아온다. 그들은 "스위트홈"이라는 농장에서 함께 노예생활을 했었고, 세서는 그 중 핼리를 만나 결혼했었다. 그 당시 세서를 좋아했던 폴디는 세서와 그녀의 딸 덴버가 사는 124번지를 찾아와 같이 살기 시작한다. 그 집을 떠나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던 두 모녀는 폴디의 출현으로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리는 등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이 무렵 이 집에 빌러비드라는 여자가 찾아온다. 빌러비드. 아무도 그녀가 어디서 왜 왔는지조차 모르지만, 어느덧 이집에 함께 살게된 그녀. 덴버는 언니로 그녀를 따르기시작하고, 묘하게 집착한다. 그러나 빌러비드는 오로지 세서만 쳐다보고, 세서만 따라다니는데.

폴디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녀가 세서를 망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었기에.

점차 빌러비드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세서. 반대로 세서의 집착이 심해질수록 덴버는 그녀로인해 망가져가는 엄마를 구해내려 노력하는데, 

이 무렵 폴디는 세서의 과거를 알고서 그녀를 떠난다.

그리고 점차 미쳐가는 세서.


세서의 과거는 실제 있었던 '마거릿 가너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마거릿 가너 사건은 당시 노예였던 마거릿 가너가 임신한 몸으로 자식 넷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잡힐 위기가 쳐해지나 당시 두살된 딸을 죽이고, 다른 자식들도 죽이려다가 미수에 그친채 잡힌다. 그리고 재판에 넘겨지는데, 딸을 죽인 살인죄로 사형을 쳐야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잃어버린 재산으로 취급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재판이 길어졌다고한다. 결국은 그녀는 살인죄를 저지른 '인간'이 아니라 재산의 일부로 취급당했고, 노예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이 책에서 가너는 세서와 같은데, 단순히 외부에서 노예냐 재산이냐를 판단했던 것이 주 사건이라면 책은 세서의 내면과 그녀가 왜 미쳐갈수 밖에 없었는지를 한 인간의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마거릿 가너 사건을 책의 말미에서 알았을 때, 이 책의 내용이 더 끔찍했다. 외부에서 그것도 현재에서 바라보는 역사로 보는 시점이기에 어느정도 예상은 했으나, 철저하게 사람이였던 한 인간을 이토록 철저하게 사물로 다룰수 있었던 그 현실이, 그것도 소설이 아니라 현실이였기에 너무나도 끔찍했다. 뭐랄까 덩어리로 보는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사건이였기에 그랬달까.


 비교적 인간다운 대우를 했던 이들조차, 말그대로 인간"다운"대우였지,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도망칠수밖에 없었고, 잡혀야 했을 때, 자신과 같은 삶을 살게하고 싶지 않았던 부모는 자식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였으니까. 책을 읽으며 이 마음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내가 더 소름끼쳤다. 그저 텍스트로만 읽으면서도, 저 처참함을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라.


하지만 다시 대면한 딸을 보며, 과거에 매여버린 세서. 그 과거를 그녀는 딛고 일어설 힘이 없었다. 

그렇게 망가져가는 세서이지만, 세서의 현재인 덴버, 그녀에게 미래를 주고 싶었던 폴디가 나타났다. 그녀는 빌러비드에 매여버린 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세서가 과거에 매여버려야했던 그 과거의 사회를 어떻게 개인이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식임에도 충분히 사랑해줄수 없었고, 그렇기에 내가 낳고도 내가 그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 죽음 뿐이였던 그런 사회였는데... 세서의 등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라는 것이 가죽채찍으로 맞은 상흔이였다는 점, 나와 나의 자식이 그저 수십달러에 값어치를 가진 그저 물건이였을 뿐인데..

어떤 인간이 그런 사회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한편 이 책을 읽으며, 모든 인간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평등이라는 것이 이제는 존재하는걸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이상 인간을 "물건"취급하는 세상은 아니라지만, 정말 그럴까? 그냥 형태만 바뀐채,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라는 말로 변질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를 지급한 돈만큼의 값어치로 따지는 세상이 과연 평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노예제에 대한 역사는 생각했던것보다 끔찍했다. 현실은 더 했겠지.

​​​​​​​슬프다. 하지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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