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색 - 빛의 파편을 줍다
게리 반 하스 지음, 김유미 옮김 / 시드페이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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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피카소의 전기에 살을 보탠 소설이다. 저자 게리 반 하스는 그의 어린 시절과 '피카소'로 성공하는 과정이 지금껏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 한 예술가의 젊은날을 회고한다. 특히 여기서는 입체파의 신호탄이 되었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을 내놓기까지 그가 예술가로서 남긴 발자취를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피카소의 생(生)이 피카소의 색(色)이 되는 순간들. 소설의 목차에 따라 세 시기로 나누어 그 찬란한 순간들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 Pablo Ruiz Picasso, Les Demoiselles d'Avignon, 1907

 

1881년 스페인의 작은 해안 마을 말라가에서 태어난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 그는 어머니에게서 '피카소'라는 이름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스페인 귀족 혈통의 이름 있는 화가여서 집안이 학계와 예술계에 폭넓은 인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 살 어린 동생 콘치타를 병으로 잃는 바람에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훗날 그의 내면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웠다. 일찍이 그림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열여섯 나이에 가족의 무거운 기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마드리드 산페르난도 왕립예술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도저히 호기심을 채울 수 없어 프라도 미술관에 가서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을 연구하며 홀로 시간을 보냈다. 화가에게 필요한 훈련을 어느 정도 마친 그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파리의 기존 미술계를 비판하는 카탈루냐 화가들과 어울렸다. ('검은 고양이'를 모방한) '네 마리의 고양이'라는 카페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이때 오랜 동창 카를로스 카사게마스와 친분을 쌓고, 화가로서 자신만의 고유한 양식을 만들고자 함께 파리로 떠난다. (1)

 

나폴레옹 3세의 통치 속에서 새롭게 재건된 파리는 피카소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특히 순수색을 작고 짧게 칠하는 기법과 빛의 그림자와 하이라이트를 강조하는 기법으로 즉흥적인 느낌을 더하는 '인상주의'가 그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유대인계 신문기자 막스 자코브를 만난 피카소는 그의 도움으로 반 고흐, 세잔, 마티스 등을 발굴해서 개인 전시회를 열어준 미술중개인 겸 출판인 앙브루아즈 볼라르와 연을 맺는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거트루드 스타인과도 대면하게 된다. 재능 있는 화가라면 누구나 반드시 거쳐갔던 거트루드의 살롱에서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까지 받는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 나오는 바로 그 살롱을 상상하면 딱이다. 그런데 행복한 나날만 펼쳐질 줄 알았던 그에게 혹독한 시련이 닥친다. 그와 카를로스 사이에 있던 한 여자 때문에 카를로스가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는 이른바 청색 시대의 표현주의 작품들을 창조하는 데 근원적인 에너지가 되었다. 그는 '조객들', '초혼'이라는 제목의 장례식 장면과 카를로스의 시신 초상화를 남기기도 했다. (2)

 

파리에 정착한 피카소는 '세탁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바토 라부아르'에서 생활했다. 몽마르트 산꼭대기에 있는 그 스튜디오는 화가, 조각가, 작가, 배우, 재봉사, 상인 등이 한데 뒤섞여 지내며 그림을 그리는 곳이었다. 당시 몽마르트 거리에는 마차들이 활기차게 오가고 밤마다 연인과 매춘부 들이 배회했다. 지금도 그렇듯이 가난한 거리 화가들은 이젤 위에 그림을 세워놓고 작품을 팔았다. 피카소도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사랑을 했다. 우리는 '여인과 빵', '여인의 두상조각', '여인과 배'에서 그의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904년 후반기에 피카소는 청색 시대의 팔레트와 소재를 버리고 적색 시대를 연다. 야수파 화가들이 새로운 운동을 일으키던 때 그는 유화, 수채화, 과슈, 드로잉, 판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서커스단과 쌀땡방크 가족을 그렸다. 1906년 봄부터 스페인으로 거처를 옮긴 피카소는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데 몰두한다. 그리하여 이듬해 가로 96인치, 세로 92인치에 달하는 대작 '아비뇽의 처녀들'을 내놓는다. 역사는 입체파의 탄생을 알렸다. (3)

 

▷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거트루드의 살롱에서 만난 피카소

 

+)

피카소의 삶이 전개되는 곳곳에서 그의 작품이 탄생한 찰나들을 붙잡는 글이니만큼 소설과 그림을 같이 감상하면 더없이 좋다.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그림이 소개될 때마다 하단에 바코드가 붙어 있어 휴대폰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 하나, 책 디자인이 참 예쁘다. 겉표지에 난 마름모꼴 구멍으로 '아비뇽의 처녀들'이 그려진 내지 속 한 여인의 얼굴이 절묘하게 비치는데, 그 자체로 세련되거니와 도려낸 모양이 깨진 유리 파편을 연상케 해서 그림의 비밀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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