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포 더 무비 - 고단한 어른아이를 위한 영화 같은 위로
신지혜 지음 / 시드페이퍼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어떤 영화는 말을 내뱉고 어떤 영화는 말을 삼킨다. 어떤 영화는 말을 늘어놓고 어떤 영화는 말을 삼간다.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이 내는 말소리의 많고 적음과는 무관하다. 입술의 움직임이 없어도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이러쿵저러쿵 말이 넘쳐도 도통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품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영화가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좋은 작품을 만나려고 애쓴다. 그런데 말을 건네는 영화란 전적으로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나 기술적 완성도에 달린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특정 영화가 허락하는 감상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것이다. 훌륭한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말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저마다 다른 무늬로 서로 다른 빛깔로 빚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보고 꼭 버릇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점만 줄줄 벌이기 일쑤인 사람과 극장에 함께 가는 일은 몹시 짜증스럽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대목이 많아도 배울 점을 하나둘 발견하고 일견 나쁜 면이 있어도 남다른 요소는 기꺼이 끌어안는 사람과 영화를 보고 싶다. 특히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러한 태도와 자세는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영화가 건네는 말을 함께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친구 하나쯤 곁에 둔다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훨씬 더 즐겁고 흥미로울 것이다.

 

 

 

 

신지혜 아나운서는 회사 책상 앞머리에 오래도록 "방송은 목표, 영화는 꿈"이라고 써 놓았단다. 무려 15년 동안 CBS 라디오 '신지혜의 영화 음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영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일 터. 방송 일정이 빡빡해 좀체 시간이 나지 않던 때 부산국제영화제를 가고픈 마음에 고작 하루 영화를 보고자 비행기로 내려갔다가 밤차를 타고 올라온 적도 있었다고. 새벽에 곧바로 출근해야만 하는 상황이 그 시간을 더 소중한 추억으로 만든 듯하다. 그런 열정은 특별히 영화계에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오랜 시간 영화를 손에서 놓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일 것이다. 현재 그는 앞서 언급한 라디오 진행은 물론이고 매달 정기적으로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다. 저자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늘 관객들에게 감상을 먼저 묻고 그 감상에서 가지를 뻗어 영화가 건네는 말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서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대목을 찾고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마음을 어루만지는 목소리로 다시 듣고 새기는 일은 더없이 소중하다. 좋은 영화를 보고도 극장을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더 이상 사유하지 않는 세태에 영화가 인간과 삶에 얼마나 밀접한지 살피는 일은 재미와 감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 책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가 건네는 말을 전하고 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다시피 영화에 감사하는 마음이 여기저기서 묻어나는데, 그것은 남다른 감상이나 특별한 사연에서 길어 올린 게 아니라 그저 우리가 영화를 보고 흔히 나누는 이야기에서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언제고 유명한 평론집이라든가 영화 관련 수필을 집어 들었을 때 자신이 본 영화가 많지 않아 감상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던 사람이라면 책장을 펼칠 때 반가운 마음부터 들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누구에게나 비교적 친근한 덕분이다. 대중적인 영화와 개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아나운서답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어 술술 읽힌다. 내용도 표현도 가까운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부드럽고 편안해서 영화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저자는 영화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말이 누군가의 삶에 응원 한 조각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데, 그 소중한 말들을 주워 담고 그러모으려면 일단 영화가 허락한 감상을 마음껏 펼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사소하지만 중요한 지혜를 넌지시 일러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