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Unbowe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영화는 상식도 논리도 없는 부조리한 세상에 홀로 맞서는 한 남자가 갖은 고난과 역경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을 비춘다. 그게 우리현실적인 이해 범주 안에서 설득력을 잃지 않는 것은 그의 직업(적 세계관)과 관련이 깊다. (실화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터라 캐릭터의 개성에 특별히 새로운 숨을 불어넣은 것도 아닐진대) 주인공이 수학 교수라는 사실은 그 유난스러운 언행을 이해하는 데 자못 중요하다. 평생 원리와 원칙을 중요시할 수밖에 없는 수학 교수로서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뒤틀린 정의를 바로잡으려는 각고한 의지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보통의 영웅적 인물보다 현실적인 데가 있다. 이는 부당한 일들에 짓밟히다 급기야 석궁을 들고 판사의 집으로 찾아간 주인공의 은밀한 범죄 행각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영화가 짧은 플래시백으로 대체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김 교수분노가 누적된 바 없는데도 다수의 관객은 그간의 억울한 사정을 받아들이고 약자라 판단되는 그의 편에서 사태의 진정을 살피게 된다. 그만큼 실존 인물의 특질과 환경이 내뿜는 에너지 자체가 강렬하다.

 

안성기가 연기해서 더 단단해진 주인공의 내적 기운은 피고인이 변호사보다 날카로운 입심을 자랑하는 것 외에 별달리 쾌감을 자아낼 만한 요소가 없는 이야기 속에서 빛이 난다. 수학적인 원칙에 어긋나는 수능 문제의 오류를 눈감을 수 없었던 의기가 사회적인 법칙에 위배되는 재판 과정의 허위를 감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거듭나는 것을 보라. 영화는 'P→Q(P이면 Q이다)'라는 기본적 명제가 성립하려면 저 화살이 제대로 작동해야만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영화 속에서 화살의 존재가 재판의 경로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김 교수의 말처럼, 법(P)은 아름답다. 그런데 화살(→)이 부러졌다. 그럴지니 결과(Q)가 공명정대하기를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그 부러진 화살의 실체는 김 교수의 범행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과정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감독은 인물이 처한 상황을 분노의 발화점으로 삼지 않는다. 다시 말해, 비슷한 소재를 다루면서 공분을 겨냥했던 영화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의 화살은 그 촉이 다소 뭉툭하다고 할 수 있지만, 외려 그것이 암흑의 실체를 향해 더 꼿꼿하게 날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누구나 '부러진 화살'에 대해 나름대로 사고의 날개를 펼칠 것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프닝 장면으로부터 그 의미를 논하고 싶다. 수능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김 교수의 설명을 흘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수학적 증명에 관한 내용이 고스란히 주인공의 인생 철학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명명백백한 사실이 하나둘 고개를 드는 것과는 관계없이 애초의 뜻대로 판정을 내리고 마는 법원을 카메라가 얼마간 비출 때의 허탈감이, 두 방향벡터가 수직으로 만나기 때문에 절대로 평행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며 그가 분필을 탁 내려놓는 순간의 정적과 기기묘묘하게 맞물린다. 왜냐하면 자신의 뜻에 확고부동한 주인공과 법원의 서로 다른 집념이 특정한 방향성을 거스르지 않는 벡터의 성향과 닮았기 때문이다. 변호사의 조언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원리와 원칙을 내세우는 데 여념 없는 주인공과 재판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말의 행위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벌하려는 사법부가 그렇게 수직으로 엇갈린다. 내용이 옳든 옳지 않든 자신의 논리를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화살은 부러지기 쉽지만, 주인공의 결기로 짐작하건대 그 의지는 두 세계가 평행을 이룰 때까지 부서지지 않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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