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코와 리타 - Chico & Rita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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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어느 멋진 밤 하바나의 한 클럽에서는 '베사메 무쵸'가 흐르고 있었다. 그날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치코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리타가 서로 눈빛을 나눈 것은 4, 50년대 쿠바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성행했던 것과 맞물려 그야말로 운명적이었다. 그 노래의 열정적인 가삿말처럼 치코와 리타는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지만 이내 안타까운 이별을 맞이한다. 리타가 가수로서의 성공을 꿈꾸며 네온사인이 넘실대는 뉴욕에 첫 발을 내딛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조금씩 멀어진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때로 휘청거린다. 밀려오는 파도보다 밀려나가는 파도가 더 세듯, 만남의 시간은 짧고 헤어짐의 시간은 길다. 그걸 알면서도 세월이 지나면 부질없게 느낄 것이 뻔한 이별의 얄팍한 기운에 우리가 그토록 자주 속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건 젊음의 시기적 증거이자 예술의 시간적 토대다.

 

예술은 주체가 성취한 감각을 미래의 청자에게 전하기 마련이다. 특히 음악은 그 어떤 예술보다 본래의 감각이 지닌 울림을 이탈하지 않는다. 오선지는 유한하지만 오선지에 올라탄 음표는 영원한 법이다. 치코와 리타는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을 스스로 위무할 수 있는 자신만의 마취체피아노와 목소리 덕분에 생의 고독을 꿋꿋이 밀어냈다. 긴 세월 각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재회의 순간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응당 음악의 힘일 것이다. 이별과 작별을 일삼는 사내의 성정은 매혹적인 선율을 빚었고, 그 선율이 실어나르는 사랑의 감각은 시간이 지난 뒤에도 라디오를 타고 흐른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여러 번 쓰이는 '릴리'라는 곡은 그 선율의 아름다움을 떠나 전형적인 이야기가 갖는 지루함을 면하는 데 귀중하다. 붙었다 떨어지길 반복하던 그들의 사랑을 종국에 다시 잇는 것도 바로 그 음악이 아닌가.

 

 

영화는 다채로운 삽화와 훌륭한 음악의 조화를 통해 이야기의 통속성을 누른다. 다른 건 몰라도, 쿠바 출신의 전설적인 라틴 재즈 피아니스트인 베보 발데스의 음악이 귀에 착착 감긴다. 일흔이 넘어서도 새 앨범을 발표하고 그래미상까지 거머쥔 그는 치코의 모델일 뿐더러 영화 음악을 직접 담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언급 없이 이 영화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그에게 바친다는 친절한 문구가 없었더라면 게으른 내가 그것을 자세히 살펴봤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이야기의 속도와 감정의 분위기를 이끄는 감미로운 곡들은 영화를 보면서 음악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내게도 유난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지금 영화 속 그 사내가 만든 멋진 음악을 떠올리고 있다. 그 음악의 울림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저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한 목숨이 소요했던 시간의 풍경을 체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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