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피부 - The skin I live in
영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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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통의 인식으로부터 파생되는 미추()를 복수의 형식으로 해체하여 기어이 이상한 세계에 가닿으려는 속내를 감추지 않는. 그 시도는 피부라는 외피 한 꺼풀 벗겨내면 훤히 보일 거라 생각했으나 너무 복잡해서 끝내 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관련이 깊다. 이는 막장드라마 뺨치는 내용에서도 익히 짐작하다시피 성의 속성을 보려는 은밀한 욕구와도 연결된다. 영화 속에서 남성들 대개 여성들에게 해를 입히는 존재로 등장며, 자연스레 복수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복수의 주체인 주인공 로버트 역시 남성이라는 게 이색적이지만 세 명의 여자를 보호하는 피부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 인물이 의학적인 호기심이 넘치는 남성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속박된 몸의 감옥에서 탈출할 요량으로 로버트가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주조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따라서 복수를 빌미로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인물의 내평을 보면서 그와 닮은 감독의 의중을 떠올리는 건 나처럼 페드로 알모도바르에 낯선 이들에게도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영화가 문을 닫을 때 마지막 프레임에 걸린 세 여자는 로버트의 세 여자(엄마-아내-딸)와 구조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대비된다. 그래서 각각의 여자들을 엮고 있는 로버트와 비센테가 사투를 벌이는 과정이 흥미롭다. 그러나 피부라는 소재를 이용한 이 실험이 성공적이었다고 하기엔 그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지나치게 생략된 아쉬움이 있다. 충격적인 진실이 폭로되는 사이사이에 널린 갖은 기호와 상징의 짜임새가 그리 견고하지는 못한 것 같다. 이를테면 하녀로 등장하는 엄마의 존재가 아내와 딸의 그것에 비해 아들의 복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소 불명확한 느낌으로 남는데, 다수의 인물이 이야기를 펼치느라 적잖이 축소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베라의 가면을 쓰고 있는 비센테(혹은 로버트)가 마릴리아를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이 영화의 핵심적 주제를 꿰지 못하고 살짝 겉도는 것처럼 보인다.

 

 

피부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건, 그게 한 생이 함유하고 있는 인간의 개성을 전면적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성의 외피를 여성의 그것으로 바꾼다 한들 그 내면은 쉬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에서의) 여성적인 존재로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화상을 당한 로버트의 아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진 것처럼 인간에게 외양이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불을 끈 이 영화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베라는 과연 남은 인생을 태초의 개성대로 영위할 수 있을까? 옷으로도 어쩌지 못하새로운 겉모습이 인생의 행로를 바꾸지 않는다고 확신하긴 어렵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베라의 새 삶이 본성(姓)으로 회귀하는 과정을 거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가 흠모했던 여자와의 새로운 가능성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상태라 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감독은 어지러운 실험 끝에 여성의 세계에서 어떤 답을 구하려는 태도를 취한다. 어느 평자의 표현대로 어쩌면 그것은 신(新)여성공동체다.

 

영화는 피부를 볼 것이 아니라 피부가 덮고 있는 밑바탕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남성의 외피를 입고 있다고 해서 남성적 성질에 부합한다 여기는 미추에 대한 어떤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러한 내용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고 충분히 익숙한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복수의 가치를 떠나서 로버트에게 본받을 점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른 남성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그만의 사고와 행동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로버트는 남성의 껍질로 살아가면서도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일종의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게 곧 복수의 원류가 아니던가. 고로, 내가 사는 피부는 탄생의 흔적이나 개성의 기틀이 아니라 감각의 근원이자 사유의 기반이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가치를 발휘하며 진정 사는(live)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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