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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크코트 - Jesus Hospital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언제부턴가 십자가가 자주 눈에 띈다.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하늘에 걸린 그 십자 모양의 표상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교회가 날로 건물을 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누군가의 십계명을 따르지 않으면 생의 고통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지독한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들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을 의지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그건 종교의 문제와는 또 다른 성질의 신앙일 것이다. 부동산, 영어, 기독교라는 새로운 성삼위를 등에 업고 신자유주의 귀족이 성행하고 있는 이때, 끊임없이 악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시커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수많은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좌절하고 무너질 따름이다. 영화는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한 가족의 존엄사 문제에 얽어 놓았는데, 그 모양새가 거미망태나 다름없다. 크고 작은 현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만 특정 신념을 꼬집어 비판하거나 사회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는다. 대신 어지러운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들의 고통을 낱낱이 관찰하면서 조금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끌어낸다.
영화는 의식을 되찾을 확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아픈 노모를 병실에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그런데 그 대립은 의견의 차이라기보다 신념의 문제에 닿아 있다. 치료 중단에 반발하며 가족들에게 저주의 말을 퍼붓는 현순과 치료비를 내는 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다른 가족들이 서로의 믿음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끝끝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여차여차하여 그들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쪽으로 나아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화해가 아니고 갈데없는 선택이다. 윤리적 갈림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현순이 급기야 억색한 비탄을 내지를 때 우리도 갑갑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마도 관객은 현순의 딸의 입장에 서서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볼 것이다. 그녀가 밍크코트를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면서 사물의 속성과 이야기의 핵심이 맞물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다른 존재의 고통에 눈감아야 하는 현실의 비애를 통해 고통 없는 행복이란 없고 수난 없는 회개란 없음을 느낀다.
영화는 클로즈업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다른 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한 인물의 얼굴을 화면에 가득 메우기 일쑤다. 인물의 감정을 줄기차게 나열하고 있지만 거기에 이입하는 데는 오히려 방해가 될 정도로 부담스러운 데가 있다. 그러나 그렇게 시선의 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화면의 구성은 소통이 불가능한 인물들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과하다는 생각을 떨치게 만든다. 특히 배우들의 섬뜩한 표정은 그 자체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한몫한다. 다만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이 조금 급작스럽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작위적이다. 그러나 소재와 이야기의 강렬함은 그것을 덮고도 남을 것이다. 그 강렬함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는 피 끓는 영웅들의 활극이 아니라 피맺힌 세인들의 분투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영화는 우리 곁에 가까이 있으나 쳐다보기를 주저하고 마주하기를 꺼렸던 이야기를 힘차게 밀어붙인다. 그 이야기가 내뱉는 마지막 절규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윤리적 난제가 그저 상상의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내심 바라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