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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고전도 아닌데 유난히 손이 안가는 책들이 있습니다. 고전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지만 손이 가질 않는 책들. 제겐 에쿠니 가오리의 책이 그렇습니다. 영화로도 제작이 되면서 많은 화제를 낳은 [냉정과 열정사이], [도쿄 타워] [낙하하는 저녁]들. 영화도 꽤 좋아하지만 이상하게 이 영화들은 만나보질 못했습니다. 이 영화들 역시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 지금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최근 출간된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를 통해 에쿠니 가오리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낮시간의 80프로는 책을 읽거나 쓰고 있다는 에쿠니 가오리.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쓰고 싶다던 작가의 말대로, 읽기 시작하면 한동안 자리에 머물게 만듭니다. 오랜 시간 머물며 붙잡아 두는 책들도 좋지만, 바쁜 일상으로 책을 읽기 힘든 요즘, 휴대하기 편한 무게, 부담없는 페이지의 53개의 글, 작가의 말까지 하면 54개의 짧은 에세이들은 출, 퇴근 시간을 비롯해 잠깐의 짬을 내서 책속으로 떠날 수 있도록 해주며 에쿠니 가오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을 주며,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며 더할나위 없이 만족을 시켜준 책입니다.
현실을 사는 시간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 안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는, 읽고, 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에쿠니 가오리가 들려주는 읽고, 쓰는 일을 둘러싼 이야기들 중 조금은 놀란 에세이는 하루에 몇번이나 죽는다는 '산책이 따른다'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산책을 하면 보통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작가는 일상이 죽는 일이라고 합니다. 뭐지 왜 일상이 죽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는 글. 산책만이 아니라 여행과 목욕도 비슷하다고, 낮에도, 밤에도, 해질녘에도 산책을 하면서 하루메 몇번이나 죽는다는 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이지만 비밀로 할 필요는 없다는 사소하지만 진짜 비밀이라는 '비밀'에선 작가의 상상력?을 만나볼 수 있는 글에서는 작가처럼 저 역시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꽤 있는데 1년에 몇번 꺼내보지 않던 남들에게는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을 꺼내보며 잠시 잊고 있던 시간으로 여행을 하게 해준 글 등을 비롯해 일기까지 부담없이 만나볼 수 있는 [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입니다.
에쿠니 가오리의 시공간에 머물게 해준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손이 잘 가지 않았던 작가의 다른 책들을
만나볼 수 있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