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가을입니다.

  이제 나에게는 가을이란 감옥 생활하기에 좀 수월하고 곧 닥칠 혹한의 감옥 생활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로 여겨 집니다. 감옥 속의 계절이란 여름과 겨울 두 계절 뿐이라는 말씀이 계속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감옥에 계셨더라면(이런 말도 안 되는 가정에 용서를 빌며) 감옥 생활을 아주 조금 수월하게 견뎌내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선생님께서는 지금 그곳에 계시지 않으니 예전 선생님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이 가을을 맞고 있겠군요. 무슨 죄를 지었든 그분들이 그곳에서 이 가을처럼 편안한 휴식을 맞을 수 있길 바랍니다.

  선생님의 편지 말미에는 가족들에게 그분들의 자리마다 훌륭한 수확이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는데 이 가을에 저는 거두어들일 아무런 수확도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뿌리지 않았기에 수확이 없는 건 당연한 것이겠죠. 아무런 수확도 없는 가을을 몇 번이나 맞고 보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확이 없어도 가을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오니까요.

  우연히도 제가 태어난 해에 선생님은 감옥에 갇히셨더군요. 그리고 제가 대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감옥에서 풀려나셨고요. 제가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누군가는 바람도 국수가락처럼 갈라져 들어오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계셨던 겁니다. 견뎌낸다는 표현은 그다지 옳은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편지에서 제가 느낀 건 한결같은 여유로움이었습니다. 피서 (避暑)를 위해(避書)를 하는 여유로움, 관념적인 지식에 경도되지 않으려는 자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모습 등에서 삶을 바라보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끔 편지 속에 양념처럼 들어가 있는 감옥 이야기가 아니라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니면서 띄우는 편지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머리 속에, 온 몸에 가득 차는 온갖 잡념과 생각들을 걸러고 걸러 옮긴 글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정제된 글에서 뵌 적은 없지만 참 깔끔한 분이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을입니다. 곧 다가올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가을입니다.

  선생님께서 출옥하기 전에 접견했던 뻐꾸기가 생각납니다. 전 그게 꼭 무슨 계시처럼 여겨졌습니다. 선생님께선 더 이상 그 한가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뻐꾸기소리를 듣진 못하겠지만 그 대신 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시겠지요.  실천 없는 인식의 계속됨이 아니라 독서를 통한 인식과 생활 속에서의 실천이 함께 하는 삶을 사시겠지요. 저는 인식도 실천도 부족하므로 많은 나이지만 이 가을을 수확하는 계절이 아니라 씨를 뿌리는 계절로 삼으려 합니다.

  가을입니다. 다시 씨를 뿌려야하는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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