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 볼지도 몰라요 - 960번의 이별, 마지막 순간을 통해 깨달은 오늘의 삶
김여환 지음, 박지운 그림 / 쌤앤파커스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으면서 질질 우는 건 싫어하는데 그래서 이 책을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각오하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하지만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의 장면은 거의 없다. 죽음과 죽어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죽음을 어느 정도는 수용하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 중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또 한가지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을 대하는 작가의 시선이 담담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이런 시선이 드러나는 장면이 있다. 작가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친구가 너 표정관리 좀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잃은 사람의 표정이 너무 편안헤 보였던 것이다. 작가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임종 전에 어머니와 함께 호스피스 병동에 있으면서 충분히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형제들과도 충분히 서로 슬픔을 나누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런 얼굴일 수 있냐고 질책 아닌 질책을 한 것이었다.

 

 

'죽음'은 한순간이다. 경험상,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순간은 평화로워 보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과정, 즉 '죽어감'을 매우 힘들어 한다. '죽어감'은 녹이는 과정이다. 환자는 그 힘든 일을 혼자서 할 수 없다. 남겨진 사람들이 환자와 같이 잘 녹여야 한다.  -179-

 

작가의 가족들은 어머니의 '죽어감'을 함께 잘 녹여냈기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그토록 편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실제로 작가의 어머니도 딸이 호스피스 병동의 의사로 있지만 처음에는 호스피스 병동에 오는 걸 꺼렸다. 결국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몸이 악화되자 당신 스스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하는 걸 결정했다고 한다. 임종실에 어머니를 모셔두고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막상 호스피스의사가 아닌 입원환자의 보호자의 입장이 되었을 때 괴로움은 또다른 것이었다.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몇 해 전부터는 간혹 나보다 어린 사람이 먼저 죽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도 나와 비슷한 나이의 누군가의 죽음을 맞았다. 소식을 듣기 전 한 달 전까지 시골에도 갔다 오고 얼굴색도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다. 그러다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에도 말기암 환자들이 죽음을 앞두고 그렇게 급속도로 나빠진다고 한다. 죽음 직전의 그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제나 내게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편이긴 하지만 그건 정말로 생각일 뿐일 것이다. 그 일이 내게 일어났을 때 나는 어떤 죽음을 맞게 될지... 자신이 살아온 모습대로 죽음을 잘 받아들이게 될지 혹은 끝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발버둥치다 가게 될지. 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웰다잉은 삶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결과물이다. 누구나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선물은 더군다나 아니다. 저마다 주어진 힘든 삶을 잘 이겨내야만 누릴 수 있는 삶의 마지막 축복인 것이다. -2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