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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토익 만점 수기 - 제3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심재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젊은 독자들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헐. 쩐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너~무 재미있다. 무조건적인 재미가 이 책의 7할이라면 나머지 3할은 우리의 현실에 대한 짠한 풍자가 아닐까. 나도 진짜로 제목만 보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책인 줄 알았다는... 이제와서 토익만점 받는 비법을 알아서 뭐하겠냐는 자괴감이 느껴지기도 했었다는...
진짜 수기가 아니어서 다행인 우리의 책 속 주인공(이름이 기억 안 난다. 이름이 없었을 리는 없을텐데. 그냥 나였나? 수기나까 '나'일 수도 있겠다.)은 호주로 어학 연수를 떠난다. 토익 590점이라는 비참한 현실과 함께. 호스텔에서 만난 제임스는 '스릴을 즐기며 영어를 배우라'는 충고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봉투를 하나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버스에서 아슬아슬한 위기를 넘기며 봉투는 농장주인인 스티브에게 전달된다. 스티브는 바나나농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업무 비밀이 따로 있다. 바로 바나나 농장에 숨겨서 키우고 있는 마리화나이다. 우리의 주인공이 배달한 그 봉투 속에는 마리화나 씨앗이 들어있었다. '스릴을 즐기며 영어를 배우라'는 충고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부탁을 한 것이다.
스티브가 구사하는 영어에 반한 우리의 주인공은 스스로 인질이 되겠다고 한다. 경찰들이 마리화나를 찾기 위해 불시에 나타났을 때 자신을 인질로 삼아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것이다. 스티브도 그 제안에 동의하고 우리의 주인공은 바나나 농장(정확하게는 마리화나 농장)의 인질로서 본격적인 호주어학 연수를 시작하게 된다. 바나나가 나무가 아니라 거대한 풀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배우면서.
참, 농장에는 스티브 외에 그의 아내 요코라는 여자도 함께 살고 있다. 정확하게는 땅 속 벙커에서 살고 있다. 스티브와 대화를 하지 않은 지는 오래 되었다. 그녀는 아폴로 13호를 믿는 좀 특별한 여자였고 조지 워싱턴, 조지 부시, 엘리자베스 여왕 등은 지구를 정복하려는 파충류라고 믿는 여자다.
이쯤에서 나의 아버지도 소개해야 겠다. 나의 집 거실에는 이주일을 닮은 재림주의 초상사진이 걸려 있다. 아버지는 이주일을 닮은 재림주 덕분에 그들 부자가 생명을 구했고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다. 안타깝게도 재림주를 믿지 않은 엄마는 연탄가스 사고로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성장을 한 교회 아줌마 아저씨들에 의해 정기적으로 습격(그들은 구둣발인 채로 거실로 쳐들어와서는 재림주의 초상사진을 비롯해 거실을 짓밟고 간다.)을 받는 수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편 나는 스티브의 농장에서 토익문제를 풀어보고는 점수가 많이 올랐음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 그러다 이웃 바나나 농장 부부를 우연히 알게 되고 나는 그들 부부의 목소리가 어딘지 익숙하다고 느낀다. 그들이 구사하는 완벽한 영어에 감탄한다. 스티브와 요코가 쓰는 영어와는 격이 다른 영어였다. 그렇다. 그들은 바로 은퇴한 토익성우였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완벽하고 품위있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그 집의 하인으로 들어간다.
그들의 은근한 멸시 속에서도 나는 꿋꿋이 토익만점을 위한 도전은 계속된다. 드디어 나는 토익문제 유형을 분석할 만큼 토익문제에 최적화된 영어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 사이 스티브의 농장에는 마리화나를 찾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찾아오고 경찰이 농장을 덮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나는 정말로 스티브의 인질이 되어 경찰과 대치하는 중에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치른 토익시험. 결과는? 제목이 '나의 토익만점수기'가 아니던가. 만점이 아니면 이런 제목이 나올 리가 없다. 스티브로부터 다시 인질로 오지 않겠냐는 엽서를 받는다. 나는 아버지를 그곳으로 보내기로 한다. 아폴로 13호를 믿는 여자도 살아가는 나라니까 이주일을 닮은 재림주를 믿는 남자 하나쯤이야 별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것이므로.
스티브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너희 나라는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으로 인정받느냐'는 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영어를 잘 해야 국민으로 인정받는 나라. 이게 풍자의 핵심인 것 같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영어를 잘해야 국민으로 인정받는다니. 그럼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국민임에 틀림없다.
온국민이 영어에 목숨거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고작 영어하나 배우겠다고 가족해체를 마다하지 않는 나라. 한번 돌아볼 일이다. 영어가 남보다 좀더 좋은 자리, 나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동앗줄이라도 된다는 듯이 온국민이 그 줄 하나에 매달리고 있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