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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처음에는 좀 화가 났다. 꾀죄죄한 몰골의 부부가 흙먼지가 이는 시골길에서 옆으로 차를 비키는 법을 몰라서 두 손을 잡고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작가 이어령의 모습에서 식민지시절 조선인의 어리석음을 비웃던 일본인의 시선이 느껴지고, 식민사관에 젖어 있는 한국청년, 그것도 지식인 청년의 씁쓸한 시선이 느껴져서. 그 시선은 자기비하와 연민, 동정이 얽힌 그런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이런 글을 쓴 동기가 된 것도 같고.
하지만 이 수필의 배경이 60년대 초반이라 생각하자 그 당시 우리나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몰골이 얼마나 형편없었나 떠올리게 되고 , 청년 이어령도 그 답답함을 그대로 표현하자니 지금 우리가 보기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나 문장들이 꽤 있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만큼 우리가 많이 발전했구나(?) 이 표현이 정확하지 않다면 많이 달라졌구나 하고 느끼게 됐다. 생활방식도 달라졌고 사고방식도 달라졌고. 생각해보면 우리의 생활이나 사고방식이 60년대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들은 여전히 이어령 선생처럼 자비비하, 자기멸시, 혹은 자기연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어령선생이 글 속에 담은 모습들이 우리 조부모, 부모세대의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라도 일부는 담겨있다는 것을.
그래도 우리꽃 이름에 대한 생각만은 인정할 수 없다. 우리말 이름이 고상하지 않다니. 한자가 들어온 삼국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마을이름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들이 한자어로 바뀌는 동안에도 우리꽃 이름만은 우리말 그대로 살아남아서 그 아름다운 이름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며느리밑씻개, 개불알꽃 ,애기똥풀, 닭의장풀 얼마나 서민적인가. 심지어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지식인청년의 눈에는 이런 것들까지도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한 조선인의 모습으로 비쳐졌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이다. 그의 생각을 우리가 칼로 재단할 수는 없다. 조선의, 한국의 어떤 것들이 그의 눈에는 하찮아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한국인의 정신이라고 할 만큼 멋스러워 보이기도 했을 뿐이다. 예를 들어 '스타일'과 '멋'을 비교한 글에서는 참 정확한 판단이다 싶을 만큼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스타일'은 형식을 따라가는 것이라면 '멋'은 형식과 질서를 깨는 것이라는 인식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달맞이꽃'을 '도둑놈꽃'이라 불렀던 것에서 밤에 노랗게 홀로 피어 은은한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달맞이꽃을 감상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던 서민의 삶을 끌어낸 것도 충분히 공감 되었다. 홀로 밤에 피어 있는 꽃은 밤에만 몰래 다니는 도둑놈을 연상시키게 할 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고 고달팠다는 것.
지금의 시선으로 판단하기보다는 60년대를 살았던 청년의 모습, 우리들 과거의 모습을 보자고 말하고 싶다. 식민지시절과 전쟁의 상처를 아직도 온몸에 새기고 살았던 60년의 우리의 모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