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4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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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란 한 천재적인 인물과 이렇게 생생히 대면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그저 줄리어스 시저란 이름으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인물의 생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저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이렇게 표현했다. 폼페이우스는 야망보다 허영이 더 우세한 인물이었다면 카이사르는 야망과 허영 모두 컸던 인물이라고. 카이사르가 주변의 호위병들을 모두 물리친 것도 일종의 허영이 아니었을까?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카이사르가 그렇게 어이없는 암살을 당한 것은 지나친 자만과 허영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을 읽는 내내 왜 카이사르가 공화정 대신 제정으로의 변화를 시도해야 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기에 제정보다는 공화정이 훨씬 더 민주적인 방식이 아닌가? 저자는 당시의 로마는 도시 국가에서  제국이란 형태로 너무 커져버려서 공화정으로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카이사르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가는 게 역사의 필연인 것처럼 말하는 부분도 왠지 독재자를 옹호하는 듯한 느낌도 들고... 민주주의란 게 완벽한 통치방식은 아니지만 인류가 만들어온 통치방식 가운데 아직까지는 민주주의를 대체할 만한 방식은 없지 않은가? 공화정이 그래도 민주주의에 가까운 통치방식이 아닐까?

  이후의 로마의 역사를 보면 차라리 그들이 멸시하는 왕조체제가 더 안정적이고 질서 있는 통치체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로마의 황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반란과 죽음이 있었고 황제의 자리가 자식, 손자대에 까지 세습된 경우도 많았고 황제를 죽인 군인들에 의해 또 다른 황제가 옹립되고 그럴 때마다 원로원들은 허수아비처럼 거수기 역할만 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곤 했다. 카이사르가 자신과 대립한 인물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가 독재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또한 로마인에 대해 베풀었던 관용에 비해 로마에 대항하는 다른 민족에 대해서는 철저한 파괴를 자행하기도 했다. 갈리아 전쟁 때 카이사르와 싸워서 패배한 성안의 주민들을 철저히 몰살시킨 경우도 있었고...

  1권부터 이 책을 읽는 내내 든 생각은 저자는 철저히 로마인의 입장에서 이 책을 썼구나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역사서라 하기 힘들 정도의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어서 독서에 방해가 되기도 했다. 물론 역사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쓴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하나의 장소에서 벌어진 단 하나의 사건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수많은 사건들로 갈라질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저자의 개입이 심해지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저자의 시각에 따라가게 마련이다. 독자는 로마에 대해, 로마인에 대해 알고 싶은 거지 저자가 로마에 대해, 로마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알고 싶은 건 아니다.

  사실 역사를 안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역사는 2000년 전 일어났던 사건(이 사건이라는 것도 어느 편에서 말하느냐에 따라 사건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시각으로 기록된 것이고(갈리아 전쟁기는 순전히 카이사르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인 반면 갈리아인의 입장에서 쓴 갈리아 전쟁기는 읽을 수가 없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또다른 누군가가 해석을 덧붙인 것이며 이책도 수많은 기록들을 바탕으로 저자의 해석이 덧붙여진 기록일 따름이다. 어쩌면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에 관한 패러디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좀 거리를 두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읽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른 건 다 몰라도 부르투스 나마저... 이 말은 한 번쯤 들어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이 대사가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카이사르가 술라의 대대적인 숙청에서 운좋게 살아남고, 갈리아를 평정하고 이후 루비콘강을 건너 내전을 일으키고 그 내전을 평정하기까지를 생각해보면 원로원 회의가 시작되는 오전 10시에 일어난 그 사건은 너무 쉽게 너무도 허망하게 이루어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변화된 것이 없었다. 카이사르의 계획대로 제정으로의 진행은 막을 수 없었다. 키케로의 말대로 차라리 카이사르가 있을 때가 더 나았다고 할 정도로... 최소한 카이사르는 관용을 베푸는 좋은 황제가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물론 역사에서 가정이란 것이 무의미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지만 카이사르 같은 황제는 역사에 자주 등장할 수가 없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독점되는 방식은 그 권력을 가진 사람이 올바른 성품을 가진 사람일 때만 좋은 방식인 것이다.  암살자들은 키케로의 말대로 공화정을 다시 선포하던가 뭔가를 했어야 했지만 그저 세계사에 빛나는 인물 하나를 무의미하게 죽였을 따름이다. 폼페이우스를 비롯한 공화정파를 완전히 제압한 이후에 어떤 정치를 펼칠지 흥미진진한 시점에서 갑자가 주인공이 퇴장해버린 기분이랄까? 카이사르가 죽은 순간 무언가 맥빠진 연극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 이후 로마의 세계는 카이사르가 계획한 대로 제정을 바탕으로 더욱 강대한 제국을 만들어 가게 된다. 카이사르가 선택한 제정이 올바른 길이었는지는 의문스럽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이미 2000년 전에 루비콘 강을 건넜고 로마제국이 서양에 미친 엄청난 힘을 우린 알고 있다. 역사를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인물 뒤에 얼마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무의미한 죽음이 있었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 또한 정말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것일까하는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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