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렐의 발명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5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8년 1월
평점 :
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순서는 이렇지 않을까 싶다. 먼저 보르헤스를 알고 보르헤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의 이름을 듣고 그의 대표작인 이 책을 읽게 되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작품 전에 그의 단편집 러시아 인형을 읽었다는 것만 추가하면. 작품 말미에 나오는 해설을 보면 중남미 문학에서 사실주의를 거부하고 새롭게 시도하는 환상문학의 선두에 이 작품이 서 있다고 한다. 그래 그런지 기발하다기보다는 모범적이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어쩐지 결말을 미리 알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70년 전의 작품이란 생각을 하면 그 당시에는 상당히 획기적인 작품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가가 그동안 보르헤스에 가려져있다가 보르헤스 사후에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글을 읽고는 보르헤스와 그의 작품을 비교해보게 된다. 이 작가에 비해 보르헤스의 작품이 훨씬 밀도 있고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 두 권의 책만 가지고 대작가의 반열에 드는 두 작가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순전히 주관적인 입장으로 보면 비오이 카사레스의 작품이 조금더 순수하다는 느낌이랄까. 좀 단순한 구성같기도 하고. 그리고 좀더 서정적이고.
주인공인 나는 사형 선고를 받고 도망쳐 영국령의 엘리스 군도에 있는 한 무인도로 도망친다. 그 섬은 소문에 의하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의 근거지로 손톱, 발톱이 빠지고 각막도 피부도 벗겨진 채 죽어가는 사람들이 발견된 곳이라고 한다. 나는 그런 소문에도 불구하고 사형을 피하기 위해 홀로 이 섬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 섬은 1920년대에 세워진 박물관과 수영장, 예배당 건물만이 남아 있고 쓸모를 알 수 없는 수차와 무성한 나무와 꽃들이 있는 그런 곳이다.
섬에서 홀로 생활하던 어느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박물관 주변의 언덕에 나타나게 되고 나는 그들을 피해 밀물이 밀려드는 저지대에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게 되고 한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그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이 유령이거나 혹은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일까 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왜 이 소설의 제목이 모렐의 발명인지는 알 수 없고 모두 아리송한 것 투성이다. 그러다 나는 한눈에 사랑하게 된 그 여자의 이름이 포스틴이라는 것과 그녀 주위에 머무는 키큰 한 남자의 이름이 모렐이라는 것 등을 알게 되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인물도 조금씩 알게 된다.
그들 주위를 맴돌던 어느날 박물관의 지하방에 모인 그들의 대화에서 나는 이 섬과 그들의 정체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고 모렐의 발명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모렐은 포스틴을 사랑하고 있었고 그녀와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 어떤 기계를 발명하게 되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비오이 카사레스가 단순히 환상이 아닌 과학과 환상을 적절히 잘 조화시키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그 당시에 홀로그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젠가는 작가가 작품 속에서 그린 대로 시각 뿐만 아니라 오감과 영혼 까지 담을 수 있는 영상이 만들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단편집 러시아 인형에 나오는 '물 아래에서'라는 작품도 과학과 환상의 결합이 절묘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고 오히려 이 작품보다 더 기발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탐정 소설 같은 재미도 있으므로 끝까지 줄거리를 이야기 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 모렐의 발명이 무엇이었나. 나는 그 후 어떻게 되고, 거기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환영과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나 하는 것들은 직접 읽으면서 확인하는 게 좋을 것이다.
난 요즘 들어 남미 풍의 환상문학에 재미가 붙기 시작했다. 아예 대놓고 판타지 장르라고 말하는 수많은 대중 소설보다는 현실과 환상이 절묘하게 직조되어 있는 남미작가들의 작품이 이국적이면서도 새롭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다. 독서 부족 탓에 너무 늦게 발견한 아쉬움이 크다, 좀더 어렸을 때 이런 책들을 접했더라면 좀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예전에는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었다. 특히 90년대에는... 그러나 세월과 함께 우리 소설이 너무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고, 자기 소설의 반복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것들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데 그때 들어온 것이 SF소설이고 남미 문학이었다. 진득하지 못한 성격의 나로서는 이런 작품들도 결국에는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하는 실망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내 감성을 끌어내는 작품들은 후자의 것들이다.
씨실과 날실이 빈틈없이 교차하는 답답하고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절묘하게 드러내는 환상의 영역은 어떤 카타르시스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닫힌 일상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저쪽 세계로의 도약이 소설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그런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서 아직은 환상문학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 현실을 뛰어넘고 싶어서 그런 작품을 읽고 싶어하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