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지음, 조경숙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골에서 자라난 나는 근본적으로 땅을 하늘을 산을 푸르른 것들을 좋아한다. 내 아버지, 할아버지의 삶도 작은 나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가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마도 도시에서는 절대로 사시지 못했을 당신의 모습이. 비록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 할아버지가 때를 맞춰 옥수수를 가꾸고 꼭 필요한 것만큼의 야생칠면조를 사냥하는 것과, 때맞춰 모를 내고 비오는 날 고구마 모종을 내는 일은 결국엔 같은 것이다. 

  다섯 살, 엄마마저 잃은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산속 오두막집에서 살게 된다. 작은 나무는 강제 이주를 피해 산속에 숨어 살던 체로키 인디언의 후손이다. 할아버지는 체로키 인디언의 피가 섞인 혼혈이고 할머니는 순수체로키인다. 산속 오두막 집에 온 첫날, 할머니의 노래와 함께 산들이 작은 나무를 받아들인다. 이제 작은 나무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자연의 하나가 되었다. 

  작은 나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배운다. 사냥을 할 때는 약한 동물을 사냥해야 더 강하고 튼튼한 동물들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필요한 만큼만 사냥해야 한다는 것, 아무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는 이가 죽었을 때는 문상비둘기가 대신 울어준다는 것, 말없이 마음을 나누는 법, 정치가들은 하나 같이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것, 그래서 작은 나무는 뭔가 사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으레 정치가일지도 모른다고 짐작을 한다. 

  할아버지는 정치가를 제일 싫어한다. 물론 작은 나무도 마찬가지다. 정치가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대접을 못 받는 모양이다. 정치가는 할아버지의 직업인 위스키 제조업을 불법으로 규정짓고, 엉뚱한 법을 만들어 남의 땅을 빼앗고, 결국에는 체로키 족을 강제로 고향에서 떠나게 했고 수천명의 체로키인들을 죽게 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곤 깊은 산속에서 숨어 살면서 인디언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바로 그들의 후손이다. 비록 세월이 흘러 지금(1930년대)은 숨어사는 처지는 아니지만 인디언이라는 멸시와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전혀 이해받지 못하면서도 인디언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다. 

  키가 2미터에 가까운 할아버지와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나무는 정말 어울리는 한 쌍이다. 할아버지와 작은 나무는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위스키 제조업(당시에는 금주법이 있어서 몰래 위스키를 만들어야 했고, 할아버지가 위스키를 만들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가 있었다.)의 동업자가 되어 함께 위스키를 만들고, 함께 옥수수 밭을 경작하고, 산꼭대기에서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함께 보고, 탐욕스런 위스키 제조업자 둘을 골탕 먹이기도 하고, 둘이서 속 시원히 욕도 하고 (물론 할머니가 옆에 없을 때만)... 작은 나무에게 할아버지는 산이며,나무이며, 세상 그 자체이다. 

  작은 나무가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 속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이 함께 느껴졌다. 어린 조카들이 시골에 내려오면 어디든 데리다니기 좋아하시던 당신 모습이. 대나무로 연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어린 조카들과 함께 낚시를 가던 그 행복한 모습이... 고집스럽고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우시던 모습이.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고향은 더 이상 옛날처럼 다정하지도 마냥 달려가고 싶은 곳도 아니었다. 가끔 들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어 줄 때도 반복되는 무의미한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에 온식구가 나와서 들일을 할 때 느꼈던 그 충만한 감정을 이제는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뭔가가 부족한 듯이 느껴지고 허전하기만 했다. 

  작은 나무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 산속 오두막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었기에 산을, 숲을, 땅을, 나무들을, 숲 속에 사는 모든 동물들을, 작은 거미까지도 사랑하지 않았을까? 작은 나무는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란 걸 배웠다.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작은 나무는 바로 할아버지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영원히 작은 나무 곁에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던 할아버지는 점점 약해지고 어느날 산길에서 굴러떨어지신 이후 할아버지는 영영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작은 나무야, 다음번에는 더 좋아질 거야. 또 만나자," 

  나의 마지막 날에 과연 나는 이번 삶도 나쁘지는 않았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 고된 삶을 다하는 날 인디언들이 하는 말처럼. 지금은 자신 없다. 내 아버지의 나이가 됐을 때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