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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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대체로 베스트 셀러는 그때 읽지 않고 한김이 지난 후에 보는 경향이 있다. 같이 휩쓸리기 싫기도 하고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꼭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괜한 고집일수도 있고. 그런 탓에 그 순간에 몰입해서 읽기보다는 어쨌기에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분석 아닌 분석을 하며 읽게 된다. 물론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밤을 새워가며, 책장이 한 장 한 장 넘어가고 남아 있는 페이지가 더 얇아지면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깝던 그런 날들도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신경숙 작가가 가장 인기 있었던 90년대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의 감성에 놀라워하며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에 공감하며 가슴 저리게 읽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의 가장 큰 아쉬움은 얼굴에 생기는 주름이 아니라 젊은날의 푸르렀던 감성이 점점 무뎌간다는 것이다. 주름이 깊어지는 것만큼 감성은 점점 옅어진다. 그런 탓에 웬만한 것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된다. 슬픈 일이다. 슬프고 슬픈 일이다.

  신경숙은 신경숙 이전의 작가와는 확실한 차별성을 지닌 작가였다. 참여 문학 운동권 문학이 아닌 감성이 가득한 그런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작가였다. 신경숙을 전후로 해서 그런 문학들이 대세를 이루었지 않았나 싶다. 요즘 같이 쌀쌀한 겨울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따뜻한 아랫목에 엎드려 신경숙의 소설을, 그 당시 인기 있던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그냥 편안하고 행복 비슷한 감정까지도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 읽었던 신경숙 작가의 작품 중에 시골 헛간인가 다락방에 엎드려 책을 읽던 어릴 적 주인공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이번 작품 속에서 작가의 예전 작품에서 나왔던 장면들과 겹쳐지는 영상들이 참 많았다. 작가는 아직 젊은날의 감성으로 글을 쓰고 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그런 푸른 감성이 남아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예전의 글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고. 작가에게서 새로운 것을 원하는 독자라면 조금 실망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감성을 충분히 사랑하고 공감하는 독자라면 더 깊어진 감성과 문장들에 더욱 찬사를 보낼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작품 판매가 100만 부를 돌파하고 해외 여러 나라에 판권이 팔린 것(우리 나라에서 번역지원 없이 10여 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먼저 판권을 사겠다고 한 경우는 드문 경우란다.)을 보면 후자에 더 많은 표를 던진 독자들이 많은 모양이다. 내 입장은 딱 중간이다.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작가의 분위기와 감성이 더 깊어진 것은 만족할 만하지만 뭔가 좀더 새로워졌으면 하는 기대에는 많이 못 미쳤던 것 같다. 이미 새로운 것을 좋아할 나이는 지났음에도 소설은 항상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된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아직도 여기인가 하는 실망을 느끼게 되는데 이 작품도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엄마라는 주제가 더 이상 새로울 것도 획기적일 것도 없으니까. 감성이 메마르고 정이 메마른 시대에 살다보니 그 절절한 정에 끌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중간 중간 눈물짓게 하는 장면들이 참 많았다. 실컷 울어보라고 쓴 작품은 아닐까 싶을 만큼. 난 펑펑 울고 싶지도 않았고 펑펑 울 수도 없었다. 너무 울라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해서. 엄마가 사라진다면 어떡할 거냐? 당신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협박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그런 일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작가는 강요한다. 상상해보라고. 머릿속이 하얘지겠지, 꿈은 아닐까도 싶고, 그러다 사실로 다가오고, 자책, 또 자책,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그것밖에는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나는 내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엄마 없이. 가끔 엄마의 부재를 떠올리면서...

  엄마의 죽음이든 실종이든, 결국에는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작품 속의 자식들처럼. 할 수 있는 건 어머니를 추억하는 것 뿐이다. 어떤 자식에게는 늘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로, 어떤 자식에게는 하던 일마저 포기하고 세 아이들을 키우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던 엄마로, 어떤 자식에게는 정신을 잃을 듯한 고통마저 드러내지 않던 엄마로. 그리고 엄마가 실종 된 이후에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보지만 엄마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절절한 후회와 어머니의 부재만 여실히 느낄 뿐이다. 

  결국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는 그렇게 작품을 끝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남은 자식들에게도, 어쩌면 이미 삶의 저편으로 넘어 가버렸을지도 모를 어머니에게도 위안이 필요했다. 첫째 딸이자 작가인 화자는 어머니가 가보고 싶다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나라인 바티칸에서 피에타상 앞에 서게 된다. 그 피에타상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실종된 화자의 어머니가 모든 이의 어머니가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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