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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 재미마주 / 1997년 2월
평점 :
짧은 이야기 속에 우리네 삶을 잘 표현하고 있는 동화다. 아이들도 읽으면 어떤 주제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대개는 파악할 줄 안다. 그만큼 단순하면서 깊이가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덮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무엇이었냐고 물으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동네에서 가장 술을 잘 마시는 수탉이 되었다는 부분이었다. 아이들 눈에 어른들의 모습이 특히 아빠의 모습이 그렇게 각인되고 있는 건 아닌지 씁쓸한 기분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읽었을 때 옛날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지금의 젊은 아빠들도 옛날 우리네 아버지 같은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현실을 읽어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한국적인 정서와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 외에 같은 화가가 그린 '솔이의 추석 이야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도 7,80년대 우리의 정서를 볼 수 있다. 따뜻하고 조금은 촌스럽기도하고(그게 한국적인 것인지도 모르겠다.)그런 그림들이 내가 살았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이억배 작가의 그림이 실린 책들은 이상하게 내용보다는 그림이 더 기억에 남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 싶으면 역시나 그의 그림이다. 그만큼 그림이 살아 있다는 뜻일 게다.
세련되거나 화려한 건 아니지만 보면 빙그레 웃음짓게 하는 그림이다. 특히 그림 동화책은 그림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의 그림은 이야기에 잘 어우러지면서도 이야기보다 더 뛰어난 뭔가를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그림만 뛰어난 것은 아니다. 단순한 내용 속에 인생의 굴곡이 깊이 녹아 있는 글이다. 수탉 한 마리가 젊은 시절 세상에서 가장 힘센 수탉이 된다. 그러나 인생이 늘 그렇듯이 그가 언제까지나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될 수는 없다. 더 힘센 수탉이 나타나자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그 동네에서 가장 술을 잘 마시는 수탉이 된다. 이 때 현명한 아내가 수탉에게 말한다. 당신은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에요. 보세요. 우리가 낳은 아들들이 얼마나 힘이 센지. 그리고 우리 딸들은 우리 마을에서 가장 알들을 많이 났는답니다. 수탉은 아름다운 두 날개를 펼치며 자신이 여전히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임을 깨닫는다.
수탉의 환갑 잔칫날, 수탉 내외가 잔칫상을 마주하며 앉아 있고 아들딸들, 손자손녀 병아리들이 다소곳이 절을 올리는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잊혀져가는 우리네 모습이 바로 그곳에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