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의 시간 - 2009년 제54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하성란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 의미가 알아지고 상처가 옅어지기 시작하는 게 나에겐 어떤 것일까. 하성란의 수상작 "알파의 시간"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은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는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지 않을까. 작가가 말하는 '알파의 시간'이 흘러야만 제대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성란의 "알파의 시간"은 전형적인 여성 작가의 작품답게 밀도있는 묘사와 전개가 돋보인다. 한편의 잘 짜여진 단편답다. 그래서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여성 작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작가의 자선작 "그 여름의 수사" 도 잘 짜여진 단편이라는 느낌과 함께 어디 하나 빈틈없이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잘 쓰여지긴 했지만 더 이상 새롭지는 않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상작  "알파의 시간"보다 이 작품이 더 맘에 든다. 뭔가 살아 있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대답없는 남편을 향해 끊임없이 열 자의 수사(열 글자로 된 전보)를 보내는 젊은 엄마의 모습이 살아 있었다. 

  김 숨의 "모일, 저녁"은 흡인력 있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었다. 남루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어딘지 느슨하게 전개되면서 아직 습작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작품으로 느껴졌다. 박민규의 "근처"는 그 답지 않은 평범한 제목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혼자 죽음을 맞는 독신 남자의 모습을 그저 편안한 일상처럼 담담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말대로 우리의 삶은 바로 그곳이 아닌 어느 곳 '근처'만 헤매다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민규의 "근처"는 죽음 근처를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어쩐지 자꾸 남자의 모습에 나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언젠가 죽음을 앞 둔 나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작가도 그런 기분으로 이 작품을 쓰지 않았을까 싶다. 

  이기호의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환청을 듣은 여성과 정신과 의사인 김 박사와의 질문과 대답 구조로 되어 있다. 새로운 시도기는 하지만 내용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완결된 하나의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들에게는 지나치게 열린 구조로 끝맺고 있는 감이 있다. 이장욱의 "고백의 제왕"은 뭔가 음침하고 비밀스러운 느낌을 갖게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인간의 추악한 면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인물들 자신의 어두운 면을 한 남자를 통해 대신 드러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김수철의 "갓길에서의 짧은 잠"은 어떤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한 남자에게 일어난 일을 반복되는 남자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해가는 이야기다. 끝까지 남자에게 일어난 폭력의 진실은 애매모호한 느낌이다. 졸면서 읽은 탓인가? 황정은의 "야행"은 느슨하고 산만한 작품이었다. 박이니 고니 하는 성과 밈, 곰 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도 그렇고 별 의미없어 보이는 대화들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 의문스러웠다. 

  뒤쪽에 실린 역대 수상작가 최근작을 포함해서 독자의 눈을 확 끌어당기는 작품은 없었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고 보면 이제 새로운 것보다는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는 작품을 볼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뭔가 좀 아쉬움이 남는다. 어쩐지 작품들이 동어반복 같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 같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