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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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곧 12살이 되는 6학년 지로에게는 키 185센티미터에 빨강 머리에다 찻집을 하며 겨우 생활비를 마련하는 어머니에게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고 자칭 프리라이터라며 집에서 빈둥거리기나 하고 심심하면 아들에게 레슬링이나 하자고 덥벼드는 아버지란 참으로 이해불가능한 생물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을 내라며 찾아오는 공무원들과 농담 따먹기나 하면서 세금은 절대 못내,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 국민이기를 포기하겠다며 우기는 아버지란 그저 귀찮고 창피한 존재일 뿐이다.

  반면 지로는 키 160을 목표로 한 끼에 밥 네 그릇을 비우는 식성을 보이지만 아버지와는 다르게 보다 이성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조금은 유약한 면도 있지만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용기가 솟구쳐오르기도 하는 평범한 아이다. 공무원에게 꽥꽥 소리를 질러대고 틈만 나면 레슬링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아버지를 그러려니 하고 넘길 줄도 아는 아이다. 12년 살면서 185센티미터의 거구와 빨간 머리와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이 우렁찬 목소리에 나름대로 익숙해진 까닭이다. 

  이 책은 열 두 살의 지로가 아버지의 참모습을, 아버지가 부정하는 사회의 이면을 조금씩 깨달아 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학교는 가끔씩 쉬어도 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아버지를 처음에는 자신의 방해물 쯤으로 여기던 지로가 나중에는 아버지의 행동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목표인 키만 160을 훌쩍 넘어선 게 아니라 정신적 성장까지 이루게 되는 것이다.

  1부는 도쿄가 배경이다. 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아버지를 두는 게 소원인 지로는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이다. 친구끼리 목욕탕을 몰래 엿보기도 하고, 처음 경험한 몽정을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여학생에게 조금 관심을 보일락 말락하는 정도의. 그러다 지로에게도 일생 일대의 위기가 찾아온다. 가쓰라는 불량 중학생의 협박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낡은 카드를 팔아서 돈을 마련해오라는 것이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여동생 모모꼬까지 가만두지 않겠단다. 지로는 누구에게도 구원을 요청할 수 없다. 어른들은 어린이의 세계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 무렵 지로의 집에 아키라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식객이 들어와서 살게 된다. 그는 언제나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지로에게 뭔가 미심쩍은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 지로는 아키라 아저씨를 통해 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과격파 운동권에 쿠바의 카스트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진까지 찍었다는 전설 같이 미심쩍은 이야기에다 확실한 건 경찰청 홈페이지에 오를 만큼 요주의 인물이란 사실이다. 아키라 아저씨 또한 사회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반대파를 습격했다가 사람을 죽이게 된다. 이 일에 지로도 얽히게 되고 아버지는 권력다툼이나 하는 좌파들을 집 앞에서 메다꽂는 등 소동을 벌이게 되고 결국은 자신이 늘 말하던 남쪽으로 야반도주 하다시피 떠나게 된다.

  2부는 이리오모테 섬에서의 좌충우돌 생존기다. 아버지가 늘 가겠다던 남쪽 섬에 정말로 덜컥 와버린 것이다. 지로의 예상과는 다르게 남쪽 섬에는 지로를 반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쿄와는 다른 너무나도 친절한 사람들의 행동에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좌익운동을 했던 전설적인 아버지의 존재만큼이나 전설적인 할아버지의 후광이 있었고, 500년 동안이나 이어져 내려온 우에하라 이치로 가문의 진짜 전설이 여전히 섬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들 모두 권력에 당당히 맞선 사람들인 것이다. 지로의 아버지는 전설 따윈 자기와 상관없으며 과장된 거라고 하지만 결국에 지로는 전설과 똑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지로는 이 섬에서 진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학교 같은 건 다닐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아버지지만 도쿄에서는 빈둥거리며 방바닥을 기는 게 전부였던 아버지가 땅을 일구고 고기를 잡는 일을 척척 해는 것이다. 이제 비로소 185센티미터의 거구가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지로는 아버지가 추구하는 삶이 어떤 것이었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기도 한다. 물론 이 섬에서의 생활도 순탄하지 않다. 지로네 가족이 살고 있는 곳에 호텔을 짓겠다는 개발업자가 나타나고 아버지는 또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이 즈음 지로는 아버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독자들도 그를 이해하게 된다. 진심이 담긴 그의 말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싸워야 변하는 것들이 있다. 평등은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그냥 갖다 준 게 아니다. 아버지 뱃속에는 벌레 한 마리가 들어 있어서 이것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말라. 네 생각대로 살아라. 단 너무 눈 앞의 이익만 쫓지는 말고.

  이 즈음에서 독자는 그가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사회주의 낙원을 꿈꾸는 운동가가 아니라 세상의 질서에 맞춰 살기보다는 자신의 질서에 맞춰 살아가는 용기 있는 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된다. 똑똑한 나나에가 말했던가 백만 명 중의 한 명이라고 할까. 이런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한 명쯤은 있어야 세상이 좀 덜 지루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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