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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보이 SF 걸작선 2
필립 K. 딕 외 지음, 앨리스 터너 엮음, 한기찬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여기 실린 단편들은 그동안 읽어왔던 SF단편들에 비해 뛰어난 작품은 아닌 것 같다. 단편집을 읽다보면 훌륭한 작품이라고 인정 받은 작품들을 싣기 때문에 중복되는 단편이 더러 있는데 그나마 이 작품집(2권)은 내가 읽은 단편들과 중복되는 작품은 없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편만이 지니고 있는 긴장감이랄까 압축미랄까 이런 것들이 조금 떨어지지 않나 싶다. SF장르지만 어슐러 르귄처럼 문학적인 향취가 나는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데 그런 면에서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다.
나름대로 괜찮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첫번째로 실린 여신 마이라, 센 옌 바보와 천국의 군대, 고스트의 기준 등이다.
'여신 마이라'는 벨신이라는 행성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이 행성은 그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로 이 행성에서만 나는 엘돌린이라는 진통제를 채취하기 위해 지구로부터 보내어진 몇몇 사람들만 살아가는 행성이다. 주인공 마이라는 엔돌린 없이는 단 몇 시간도 살아갈 수 없는, 부유한 집안의 상속녀이다. 그녀의 남편 에드워드는 엔돌린을 채취해서 지구로 보내는 일의 책임자이며 엔돌린으로 인해 점점 건강해져가는 아내를 죽이려는 인물이다. 어느 날 마이라와 에드워드는 절벽에 있는 난초를 보기 위해 드라이브를 떠난다. 에드워드는 계획했던 대로 마이라를 절벽에서 밀어뜨리려는데 마이라는 이미 남편의 계획을 눈치채고 있다. 하지만 마이라는 결국 절벽으로 떨어지고 에드워드는 사고사로 위장하여 혐의를 벗어나게 된다. 그는 이제 부유한 독신남이 된 것이다. 그런데 행성의 일부인 풀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죽은 아내 마이라의 목소리였다. 마이라는 죽지 않았다. 비록 육신은 절벽에서 찢겨나갔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 행성과 하나가 된 것이다. 그녀는 행성을 둘러싼 고리로 에드워드를 볼 수도 있었고 작은 힘만으로도 지진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다. 이제 더 이상 엔돌린(엔돌린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행성 스스로가 만든 것이었다.)은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며 엔돌린을 채취할 수 없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너만 이 행성에 남아 있으면 돼. 그러면 난 너를 위해 담배를 재배할 것이고 식량을 만들어낼 거야. 넌 나를 위해 책을 읽어주고 음악을 틀어줘.
'센 옌 바보와 천국의 군대'는 기독교의 텔레비전을 통한 전도와 프로 레슬링 중계를 결합하여 풍자한 작품이다. 수많은 광신자들의 함성 속에 전도 레슬링이 시작한다. 멋진 얼굴과 몸매한 천사역에 어울리는 선수와 누가 봐도 악마역에 어울리는 외모를 한 선수가 링에 오른다. 악마역의 선수가 천사 역의 선수의 팔(진짜 팔처럼 보이는 인공 팔이다.)을 부러뜨리면 관중들은 흥분해서 고함을 지른다. 그때 천사 역의 선수가 피가 흐르는 자신의 팔로 악마를 물리친다. 하느님의 승리로 관중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악마는 지옥으로 떨어진다. 실은 악마의 역할을 충실히 한 후 계약한 돈을 받아갈 뿐이지만. 물론 이 경기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센 옌 바보 때문에 벌어지는 마지막 반전도 볼만 하다.
'고스트의 기준'은 짧은 콩트이다. 우주선이 난파되고 겨우 갈아탄 구조선에 인간인 키드, 인간과 똑같은 능력을 지닌 갑각류인 투에추침 (이들은 서로 언어가 통하며 똑같이 프로그래머이다.), 컴퓨터 말콤 투비스 이렇게 세 존재가 있다. 문제는 구조선에는 식량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살던 행성에서는 하등존재인 갑각류를 먹을 수 있었고, 갑각류인 투에추침이 살던 행성에서는 영장류를 먹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하므로 그들은 게임을 한다. 컴퓨터를 심판관으로 해서. 물론 게임에서 이긴 쪽이 진 쪽을 먹을 수 있다. 고스트라는 게임인데 낱말 맞히기 같은 거다. 컴퓨터의 교묘한 편가르기로 결국 갑각류인 투에추침이 인간의 먹이가 된다. 그들의 구조선이 구조된 후 그들은 재판을 받게 된다. 광범위한 우주 여행이 가능해진 시대인 만큼 다른 종이라고 하더라도 지능이 있는 개체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법이 마련된다. 인간인 키드에게는 약간의 벌금 형이 부과 되었고, 인간의 식인 행위를 도운 컴퓨터에게는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일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이 외에 영화배우 빌리 크리스털이 쓴 지구 방송국 찰리는 새로산 텔레비전을 통해 이웃집을 몰래 들여다보게 된다는 내용인데 어디선가 본 듯한 내용 같기도 했다. 다른 작품들도 지루하지 않게 읽힌다는 면에서는 괜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