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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숲이 있다 -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은 여자 인위쩐 이야기
이미애 지음 / 서해문집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내몽고 마오쑤우 사막 한가운데 징베이탕이라는 버려진 사막 마을이 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어 떠난 그 곳, 한 남자 21살의 바이완샹만이 마을에서 떠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아온 습관대로 사막에 머물러 있다. 가진 것이라고는 토굴 하나, 그저 사막 건너편에 있는 먼 마을로 나가 품을 팔아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사막, 사막 뿐이다.
어느 날, 한 늙수그레한 남자가 수레를 끌고 사막을 건너 온다. 남자는 그 수레에 타고 있던 20살의 어린 여자를 내려놓고는 사막을 도로 건너가 버린다. 아버지에 의해 사막에 버려진 여자는 사막을 건너가는 아버지를 향해 데려가 달라고 사정하지만 아버지의 수레는 사막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 자리에서 목놓아 우는 여자. 그 여자를 멀리서 바라보며 함께 따라우는 남자. 여자는 남자의 순한 얼굴을 보자 남자가 아버지가 정해준 자신의 배필이라는 걸 직감한다. 남자가 말한다.
"제발 울지 말아요, 나도 사막이 두렵다고요."
여자는 일주일을 그렇게 울었다. 사막에 온 지 40일 째 되는 날 처음으로 낯선 사람이 사막을 지나간다. 사람이 너무 그리워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여 보지만 낯선 사람은 유령이라도 보았다고 생각했는지 도망가 버린다. 여자는 자신이 본 낯선 사람이 혹시 환영은 아니었나 싶어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발자국 위에 대야를 씌워 놓았다. 사막 바람에 의해 그 발자국이 사라질 때까지. 사람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 여자 인위쩐이 사막에 혼자 사는 바이완샹에게 시집오게 된 사연은 이랬다. 인위쩐의 아버지가 양떼를 몰고 자주 들르는 마을에 바이완샹의 친부모가 살고 있었다. 바이완샹은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의 양자로 이 사막에 들어왔다가 큰아버지가 죽자 혼자 남겨졌다. 바이완샹의 친부모는 혼자 사는 아들이 늘 걱정이었다. 먹을 양식조차 없이 사막에 혼자 사는 아들에게 시집갈 여자는 없을 테니. 그러자 인위쩐의 아버지가 측은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렇게 색시감이 없으면 자신의 딸을 주겠다고 했다. 측은한 마음에 그런 약속을 해버리고만 인위쩐의 아버지는 딸을 사막에 보내는 것을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에는 딸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징베이탕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모래사막이다. 모래폭풍이 집안으로 귓속으로 심지어는 감은 눈속으로까지 파고드는 곳이다. 모래폭풍이 불면 바람과 반대방향으로 가능한 낮은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게 가장 좋은 대처방법이다. 바이완샹은 사막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사막에 대항하는 대신 모래폭풍이 불 때 몸을 낮게 웅크리듯이 항복하며 사막에 적응해 왔다. 인위쩐은 사막에 순응하는 법밖에 모르는 순하디 순한 남편을 설득해서 사막에 나무를 심으려 한다. 어차피 떠날 수 없는 곳이라면 이 사막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다.나무를 살 돈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위쩐과 바이완샹은 사막을 건넌다. 나무 묘목을 파는 가게에서 일을 해주고 나무를 받기로 한다. 마침내 얻은 백양나무 묘목 30그루를 등에 짊어지고 사막을 다시 건너온다. 그때 심은 대부분은 묘목은 죽고 말았다.
그렇게 사막에 버려지다시피한 지 석달 보름만에 인위쩐은 사막을 혼자 건너 친정집을 찾아간다. 어쩌면 그때 사막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인위쩐은 제 발로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다. 바이완상이 아내가 도망가지는 않았나,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지는 않았나 노심초사하고 있을 걸 알기 때문에. 인위쩐이 친정에 갔다온 지 두 달 뒤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는다. 인위쩐은 아버지를 용서한다고 말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한스럽다.
그 해 가을, 인위쩐은 사막을 정부로부터 빌려 남편과 함께 사막언덕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친척들이 마련해준 양 한 마리를 팔아서. 고된 일에 첫아이는 조산을 했고 둘째아이는 9개월째 사막 언덕에서 굴러 유산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인위쩐의 나무 심기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사막에는 숲이 생겨났다. 사막의 밭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단 과일과 곡식들이 영근다. 양떼며 가축이 가득하다. 바람만 불면 사라져버리던 예전의 사막길 대신 차가 지나는 길도 생겼다. 그 길로 전기도 들어오고 세상 사람들도 들어온다. 20년 전 사막에 버려졌던 그 시절 제일 그리웠던 게 사람이었다. 이제 다른 세상 사람들까지 직접 찾아오고 여기저기에서 편지를 보낸다. 인위쩐과 바이완샹이 만들어낸 기적에 감탄하며. 동화 속 이야기를 그들은 사막 위에서 이루어 낸 것이다.
생각해보니 인위쩐 그 여자는 나보다 겨우 몇 살 많은 여자다. 20살의 여자가 20여년간 이룩해 놓은 일을 생각하면 난 도대체 그동안 무얼 하며 살아왔나 싶다. 이런 자책감 대신 뭐든 할 수 있겠다는 희망 같은 게 생겨야 되는데 사실은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된다. 20여 년의 시간은 사막을 숲으로 변하게 했는데 지금의 난 20년 전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아마 인위쩐 그녀라면 이런 자책 대신 이 시간에도 풀씨 자루를 들고 사막 언덕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만 개의 풀씨 중 단 하나라도 싹을 틔워 모래 속에 자리를 잡을 거라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해서 자라난 풀들이 모래를 단단히 잡아주면 그곳에 나무를 심는다. 언젠가는 지평선 저 끝까지 숲이 이어질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사막만은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몽고에 전해지는 민요 속 가사처럼 아름다운 초원과 그 초원을 가로지르는 강을 상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