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지영의 독자들은 확실히 구분된다. 그의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람들로. 나는 비판하는 편에 속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보는 신문에 실린 그의 작품에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을 보면.

  등장 인물들의 감정이 과잉 처리되어 있는 작품들에 난 쉽사리 공감할 수 없다. 아마도 무미건조한 성격 탓이겠지만. 세상의 아픔을 혼자 다 안고 있는 듯한 인물들을 보면 꾀병 부리는 어린 아이같다. 그들의 아픔이 그들에게는 지상 최대의 고통이겠지만 작가는 좀 담담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인물은 이 만한 아픔을 가진 인물이니 독자들이 그들의 어리광, 투정을 받아주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듯한 작품. 주인공 스스로 15살에서 머물고 있다고 실토하고 있긴 하지만. 어느 신문에서든가  우리 나라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자라다 만 15살의 범주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데 사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감정 과잉 뿐만 아니라 감정의 흐름 또한 느닷없달까. 윤수가 유정의 고모인 수녀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장면도 느닷없고 유정이 윤수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느닷없다는 느낌이었다. 인물 간의 대화와 감정의 분출만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을 읽어가다보니 행간에 숨겨진 의미랄까 이런 것들을 조용히 새겨볼 만한 여유가 없는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읽었다는데 도대체 어디에서 눈물을 흘려야 그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일 뿐이었다. 어쩌면 독자들은 이런 부분 때문에 작가의 작품에 끌리는지도 모르겠지만. 인물과 함께 감정에 휩쓸리면서 실컷 울고 공감하고 감동받고. 감동 없는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가끔 눈물을 흘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은 사형제 폐지가 전면에 있는 작품이 결코 아니다. 상류층이지만 정신적 상처를 안고 사는 유정과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며 살아온 윤수라는 인물과의 소통 또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다. 익숙하지만 낯선 사랑 이야기라고 할까. 좀더 진지하게 사형제 폐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윤수가 소녀를 강간살해하고 소녀의 어머니와 파출부를 살해한 완벽한 사형수여야 한다. 어설프게 남의 죄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사형수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남의 죄를 뒤집어쓴 사형수가 그렇게 초연할 수 있다는 말인가(비록 그가 실제로 저지른 죄도 크기는 하지만).  복수의 여신들의 저주 때문에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는 "바로 접니다"라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지만 윤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였다. 사형제가 억울한 죽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의도였겠지만 나로서는 독자들의 눈물에 호소하기 위한 장치로 여겨졌다. 감정 없는 나조차도 거기에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

  아쉽다. 감정에 호소하기 보다는 이성에 논리에 호소하는 작품을 접하고 싶다. 소설이라는 양식이 원래 감정에 호소하는 경향이 더 강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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