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결투 -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에센스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덮으면서 내내 드는 생각, 쓰가루가 어디에 있지? 아모모리? 많이 익숙한 데 정확히 어디였지? 지도책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변방이라는 느낌이 든다. 일본의 역사에 중심으로 떠오른 적이 없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 자신도 고향 쓰가루처럼 자신의 인생도 한 변방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다. 그래서 그토록 치열하게 자살을 시도한 것인지도. 자살만이 그의 삶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도.

  작품'쓰가루'에 나오는 강이 바다로 흘러들어가기 전에 머뭇거리는 그 지점에서 그는 바다로 흘러가는 대신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 느릿느릿 주저주저하며 흘러가는 그 강물을 따라 한번 흘러가보았더라면 그의 인생이 그의 소설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의 글을 통해 나를 생각하게 된다. 아직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이미 강하구를 흘러 바다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끊임없는 자살 시도가 젊은 시절의 충동이 혹은 무모한 허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작품 말미에 소설가 한수산이 쓴 글을 보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애정과 경멸이라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는데 사실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나로서도 소설자체로서의 매력은 그다지 없다는 느낌이다. 실험적인 형식을 시도했다고 하는 '여자의 결투'나 '광대의 절규' 같은 작품들이 오히려 매끄럽게 읽히지 않았다. 작가가 그것을 노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 불쑥불쑥 나타나서 작품을 설명하려고 하고 혼잣말도 하고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는데 그게 내게는 걸리적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소설은 상상의 산물아닌가. 독자는 완벽한 거짓말을 원하는 거지 작가의 머릿속을 보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쓰가루'는 괜찮았다. 소설로서가 아니라 40년대의 일본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동감있게 느껴져서. 작가와 함께 그의 안내를 받으며 여행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마지막 장면을 자신을 키워주었던 하녀 다케와의 만남으로 마무리 함으로서 소설다운 마무리가 가능해진 것 같았다. 감동적인 장면이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시골 마을에 내린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다케의 집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날은 운동회가 있는 날이라서 다케의 집은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작가는 운동회가 열리고 있는 학교를 찾아간다.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이고 아이들은 색색의 옷을 입을 차려입고 이미 술에 취한 어른들도 보이고 집에서 마련해온 음식을 먹는 사람들. 작가는 이 풍경 앞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움을 느낀다. 운동장 주위에는 100여 채의 천막이 쳐져 있다. 작가는 그 천막 속 어느 하나에 있을 다케를 찾아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다. 학교를 나와서 버스를 기다린다. 혹시 싶어  다케의 집으로 다시 찾아간다. 그런데 아까는 잠겨 있던 문이 열려 있다. 집안으로 들어가자 열서너 살의 여자아이가 있다. 다케의 딸이다. 운동회하는 도중에 배가 아파 약을 먹으러 온 것이다. 작가는 다케의 딸의 안내를 받아 드디어 다케가 있는 천막 앞에 도착한다. 천막 속에서 다케의 모습이 보이고 두 사람은 그저 서로의 모습만 확인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천막 속에 말없이 앉아 운동회만 구경할 뿐이다. 작가는 그 순간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어머니란 이렇게 편안함을 주는 존재구나, 생각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화를 체험했다고.

  분명 '쓰가루'의 마지막 장면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감동과 함께 씁쓸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작가는 국운을 걸고 聖戰을 벌이고 있는 이 때에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회(운동회)를 즐기줄 아는 일본은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감동하고 있다. 국운을 걸고 벌이는 대전쟁...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그리고 그 한편에서는 눈물날 만큼 아름다운 운동회를 열고 있다. 그냥 씁쓸하다. 그의 작품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일본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종종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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