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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식 - 일본 현대문학 대표작가 에센스 소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노재명 옮김 / 하늘연못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아쿠타카와상 수상작이라는 문구가 실린 도서 광고에서 흔히 접하던 이름의 작가였지만 제대로 읽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즘 읽고 있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일본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한다면 개인적으로는 훨씬 뛰어난 작품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소설다운 맛이 느껴지는 구성을 취하고 있어서 좋았다. 아마도 내 개인적인 취향이 그의 작품과 잘 맞아떨어진 것이겠지만.
여러 작품들에서 천재적인 작가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감성이 뛰어난 작가다. 그게 지나쳐서 불안정한 정신 세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불안한 정신세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작품도 많았다.
영화로 인해 널리 알려진 '라쇼몽'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비교적 짧지만 단편소설이 전형적인 구성을 그대로 보여준달까. 도입부분의 묘사도 인상적이었고 특히 결말이 눈에 뛴다. 먹고 살기 위해서 시신의 머리카락을 뽑아가는 정도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노파의 말에 굶주린 남자는 노파가 입고 있는 옷가지들을 남김없이 벗겨가버린다. 노파의 논리에 따르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덤불속'은 헷갈리는 이야기다. 한 남자가 도둑들에 의해 살해된 사건만 존재할 뿐 그 사건의 진실이 뭔지는 도저히 알아낼 수가 없다. '고구마죽'에서는 멸시와 조롱을 받는 못생긴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고구마죽만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조롱도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구마죽에 대한 욕망이 너무 빨리 쉽게 채워지려하자 오히려 이렇게 욕망이 빨리 달성되어서는 안되는 거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고구마 죽에 대한 욕망 때문에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견뎌낼 수 있었으니까. '지옥변'은 전형적인 예술가소설이다. 광기에 사로잡힌 화가가 온갖 고통 속에 불타 죽는 딸의 모습을 보고 최고의 걸작을 완성하고 미쳐버린다는. 꽤 익숙한 이야기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단편이었다.
모든 단편들이 자살로 마감해버린 작가의 일생만큼이나 강렬한 것이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발광하진 않을까 늘 불안했던 작가. '점귀부'를 보면 작가의 불안이 고스란히 보인다. 지나친 자의식이 작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진 않았을까. 소설이 작가에게는 구원이었을까 혹은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을까. 좀 가벼워도 좋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