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1.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19면)




2.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 (간디) (23면)




3.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24면)




4.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25면)




5. 소유욕과 이해는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26면)




6.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27면)




7.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27면)




8.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27면)




9.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신축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봐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32면)




10.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32면)




11. 자기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불쑥 망우리를 찾아간 일이 있다. 짓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생을 죽음 쪽으로 조명해 주고 싶어서였다. 여지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40면)




12.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낙조 같은 걸 느낄 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서 깊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40면)




13.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해서. (41면)




14. 그러던 어느 날, 그 흙탕길을 걸으면서 문득 생각이 피어올랐다.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보행의 반경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 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 작용도 따른다. (43면)




15.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45면)




16.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47면)




17.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에 맺혔던 멍울이 삽시간에 술술 풀리었다. 그렇지!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 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거다. 언젠가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 (54면)




18. 무엇보다도 조조의 매력은 듬성듬성 앉아 있는 그 여유있는 공간에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도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색다른 세계에 자신을 투입하여 즐기려는 것인데, 밀집한 일상이 영화관에까지 연장된다면 어떻게 색다른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60면)




19. 사람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취미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그러기에 아무개의 취미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밑받침한다고도 볼 수 있다. (62면)




20.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어버렸다(주홍글씨). 최초의 분서였다.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 거기에서 얻는 것은 복잡한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하려면 자기 응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65면)




21.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69면)




22.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 해탈이란 온갖 얽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그 얽힘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 더 질기다. 출가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 뜻한다. (75면)




23.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과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 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여 주었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 주었다. (78면)




24. 평상심이 도임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78면)




25.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 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85면)




26.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해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88면)




27.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91면)




28. 성급한 현대인들은 자기 언어를 쓸 줄 모른다. 정치권력자들이, 탤런트들이, 가수가, 코미디언이 토해낸 말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주워서 흉내내고 있다. 그래서 골이 비어 간다. 자기 사유마저 빼앗기고 있다. 수도자들에게 과묵이나 침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고여 있는 말씀을 비로소 듣는다. (101면)




29. 수도자들이 이와 같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 만을 하기 위해서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당당한 말을 하기 위해서다. 벙어리와 묵언자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3면)




30. 생 텍쥐페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다. 그건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106면)




31. 너의 아저씨(생 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 (110면)




32. 그때에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어. 그건 너무 잊혀진 말이라고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112면)




33.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날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하려면, ‘나’, ‘너’ 사이에 ‘와’가 게재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113면)




34. 누가 나더러 지묵으로 된 한 두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어린 왕자)를 고르겠다. (116면)




35. 무엇보다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만나지 않고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또한 이야기를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만나게 된다. 만남은 일종의 개안일 수 있다. 왜냐하면 만나 이야기함으로써 오해의 장막이 걷히고 인식의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143면)




36. ‘리그 베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143면)




37. 마하트마 간디의 표현을 빌리면, 종교는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똑같은 히말라야를 가지고 동쪽에서 보면 이렇게, 서쪽에서 보편 저렇고 할 따름이다. (144면)




38.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서로 사랑하느냐에 의해서 이해의 농도는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1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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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레미 말랭그레 그림,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 정리 / 시대의창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촘스키는 여기에서 “집단은 힘이 강력해질수록 그들의 이익에 동조하는 정치세력을 앞세운다”라는 간단명료한 생각들을 펼쳐 놓았다. 당시 나는 다국적 기업들이 정당들에 아낌없이 쏟아붓는 정치자금의 성격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내가 오래 전부터 파헤치며 노심초사하던 것을 촘스키는 단 한 줄로 정리해 주었던 것이다. (10면)




2. 촘스키가 우리에게 전해 준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기존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믿지 말고, 말을 앞세우는 사람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것도 확실하고 당연한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것이다. 확인하고 심사숙고하라는 것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기지의 사실에서 해방되라는 것이다. (11, 12면)




3.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 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볼테르) (16면)




4. 실제로 수천 년 전부터 그랬지만, 지식인의 역할은 민중을 소극적이고 순종적이며 무지한 존재, 결국 프로그램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22면)




5. ‘동의의 조작’ (Walter Lippmann) (23면)




6. ‘인위적 욕구’를 만들어내서, 대중이 그 욕구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로 대중은 서로 소외되어 갈 뿐입니다. 이런 기업의 경영자들은 아주 실리적으로 접근합니다. “대중을 삶의 표피적인 것, 즉 소비에 몰두하게 만들어야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29면)




7.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진실된 말은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꾸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현실을 사실대로 설명할 때 우리 모두가 진실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습니다. (37면)




8. 권력의 중심에는 부자 나라들이 있습니다. G3, 때로는 G8로 일컫는 최강대국들,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 금융기관과 국제기관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맺고 있습니다. (54면)




9. 다국적 기업은 이제 엄청난 힘을 과시하면서, 경제, 사회, 정치 등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국가 정책은 민주주의 원칙을 파괴하면서까지 다국적 기업의 권한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시민의 권한을 개인 기업에 양도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다국적 기업은 국민 위에 군림하지만, 국민 앞에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59면)




10. 엘리트 집단은 그들의 특권과 권한을 강화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이 넋을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투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발전이 있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지난 수백 년 동안 인권이 향상된 것은 사실입니다. 무척이나 느릿한 발전이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물론 권력층은 이런 변화를 막으려 안간힘을 다합니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다툼은 계속될 것입니다. (62면)




11. 다만 동일한 현상에서 끌어내는 결론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그 결론들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석하는 방법의 차이, 결국 가치관이 차이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74면)




12. 베를린 장벽의 붕괴, 테크놀로지의 발달, 금융거래의 가속화 등이 자본주의의 성격을 확연히 바꿔놓았습니다. (84면)




13. 브레턴 우즈 체제는 자본의 흐름을 규제하고 악의적인 투기와 자본 유출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교환율을 조절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을 지켜낼 방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체제가 1970년 초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민간 기업, 특히 금융자본이 대대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자본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금융자본의 이동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우려했던 현상이 전세계에서 일어났습니다. 공공 서비스의 질이 현격하게 떨어졌습니다. 사회보장제도가 왜곡되고, 실질임금이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노동시간은 늘어나고 노동조건도 악화되었습니다. (85면)




14. 1971년에는 국가 간에 거래된 자본의 90퍼센트가 실물 경제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약 10퍼센트 정도만 투기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국가 간에 거래되는 자본의 95퍼센트 이상이 투기적 성격을 띤 것으로 추정됩니다. 뒤집어 말하면 실물 경제에 관련된 자본 거래는 미미하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이런 투기 자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폭발력을 갖고 있습니다. (86면)




15.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순수한 시장경제의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용과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거대한 공공 분야와,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거대한 민간 분야가 양분하고 있는 경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87면)




16. 자유무역론은 “노동은 이동 가능하지만 자본은 이동 가능하지 않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따라서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자본은 이동하지 않는다”라는 원칙 하에 경제를 설명합니다. ... 적어도 이론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노동은 이동하지 않습니다. 수세기 전부터 노동이 이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은 마음대로 국경을 넘나듭니다. (87, 88면)




17. 존 메이너드 케인즈의 이론에 따르면, 금융시장은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시장입니다. 금융시장은 집단 행동, 즉 부화뇌동적 특징을 띱니다. 그래서 케인즈는 금융시장을 미인경연대회에 비유했습니다. (91면)




18. 모두가 다른 사람들의 투자 방향을 짐작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방향으로 달려갑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지수가 미친 듯이 널뛰기를 합니다. (93면)

19. 로빈 하넬은 ‘패닉 패스트!’에서 투자에는 두 가지 법칙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는 “패닉은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패닉에서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93면)




20. 시장에서는 누구나 소유한 몫만큼의 권리를 행사하려 합니다. 가령 당신에게 25달러가 있다면 그 25달러만큼 시장에서 당신의 위치를 갖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시장에 없는 사람, 즉 미래 세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는 결정을 결과를 짊어져야 할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94면)




21. 다국적 기업은 수익금을 본국에 송금할 수 있는 나라에 본사를 둘 수 있습니다. 이른바 회계의 최적화라는 명목으로 말입니다. 세금이 적은 나라를 찾아다니며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행정적 조치입니다. 합법적 탈세인 셈입니다. (102면)




22. 부패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대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컨대 1998년의 선거에서 당선자의 95퍼센트가 상대보다 더 많은 선거자금을 썼습니다. 이 선거자금은 거의 모두 기업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민간 기업이 의원의 95퍼센트를 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부패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105면)




23. 미국이 한국에게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력을 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한국의 금융시장은 완전히 미국의 지배 하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은행들이 연이어 파산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제 미국계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은행들을 떡 주무르듯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108, 109면)




24. 공공기업의 민영화는 공공기업을 민간 기업이나 외국계 다국적 기업에 넘겨주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이런 민영화는 대체로 부패한 정부에서 주로 시행됩니다. (109면)




25. 법은 모두가 존중해 줄 때에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국제법을 존중하지 않습니다. 나토 군이 코소보를 폭격했을 때 유엔 현장을 조금이라도 염두에 두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112면)




26. 큰길가에서 일어나는 범죄보다 오히려 기업이 더 많은 희생자를 만들어내지만 기업이 기소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113면)




27. 권력자에게는 국가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지배하고 비용과 위험을 국민에게 분산시킬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목적을 위해 고안해낸 뛰어난 간계 중 하나가 ‘안보’입니다. (130면)




28. 유럽의 강대국들은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만을 주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국과 영국을 흉내내려 하면서 사회민주주의에 근간한 사회제도를 끊임없이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131면)







29. 그들(리오넬 조스팽, 토니 블레어, 게르하르트 슈뢰더)은 이미 우익에 속한 정치인들입니다. (131면)




30. 시장이 인위적으로 조작된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요컨대 세계화는 미국식 모델을 전 지구에 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화의 목표이고 결론입니다. (135면)




31.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풍요로운 나라입니다. 비교할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유럽에 비해 낮고, 노동시간은 모든 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깁니다. 일본의 노동시간마저 추월했습니다. 게다가 유급 휴가가 없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139면)




32. ‘제3의 길’을 주장하는 지배 계급은 체제순응적인 지식인들을 동원해서 이 이념을 멋지게 색칠하고 있습니다. (144면)




33. 민주주의는 ‘국민이 당사자가 아니라 방관자에 머무는 체제’입니다.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국민은 투표권을 행사하며 그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줄 지도자를 선택합니다. 이런 권리를 행사한 후에는 집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어야 합니다. 주어진 일에 열중하고 벌어들인 돈을 소비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요리나 하면서 지내야 합니다. 국가를 성가시게 굴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149면)




34. 이론적으로 가능한 해석입니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 프랑스는 불평등이 만연된 나라 중 하나입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평등을 강조하는 구호는 거짓말일 뿐입니다. (153면)




35. 자본주의 윤리에 따라 사람들에게 평등주의라는 환상을 내던지고 자신부터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세뇌시키는 데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엘리트 계급의 정책이 바로 그것입니다. (154면)




36. 사회가 자유로워질수록 지배계급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선전에 열을 올리기 때문입니다. (155면)




37. 요컨대 녹색당이 앞으로 취할 방향은 궁극적으로는 시민의 감시에 달려 있습니다. (162면)




38.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습니다. 노동조합은 가난한 사람들이 단결할 수 있고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기업과 언론이 앞장서서 노동조합을 매도하는 것입니다. (162면)




39. 우리 사회는 줄곳 변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회에 관련된 개념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회구조와 계급구조는 변했지만 특정집단의 이해 관계, 지배 관계, 사회의 계층 구조, 의사 결정의 단계 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런 모순이 계급간의 갈등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163면)




40. 한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것은 무조건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마르크스주의나 프로이드주의처럼 사람의 이름이 붙여진 학설은 일종의 종교로 미화되는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학설이 그 인물을 신격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이 문제의 학설에 접근하는 순간부터 대단한 내용이 있을 것이란 선입견에 사로잡히게 마련입니다. (163면)




41. 예컨대 여론조사에 응한 미국인 대다수가 정부는 국민이 아니라 소수집단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 언론은 민간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일 뿐입니다. (168면)




42. 혁명까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령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신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고 칩시다. 당신의 동료들은 그 혜택을 누릴 수 있겠지만, 당신은 절대 그 열매를 즐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신은 끊임없이 회유와 협박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컨대 행동하기 위해서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특권을 누리는 지식인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169면)




43. 행동하고 싶다면 주변의 소리에 귀를 막아야 합니다. 주변의 소리를 무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유롭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나는 어떠냐고요? 나야 괜챦습니다. 특권층이니까요. 하지만 아무런 특권을 누리지 못하는 노동자는 그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합니다. (171면)




44. 워터게이트는 언론과 지식인의 원칙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권력층은 비난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들의 원칙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난한 흑인은 암살해도 상관없지만 권력을 움겨쥔 사람을 비난해서는 안됩니다. (191면)




45. 정보Information은 적절한 말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 정보라 표현하는 것은 ‘왜곡된 정보’이기 때문입니다. (198면)




46. 비판정신이 실종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속도 경쟁 때문이 아닙니다. 깊이가 없는 커뮤니케이션 탓입니다. (199면)




47. 내 생각에, 현재의 인식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가 아닙니다. 깊이의 상실입니다. 피상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기억을 지워 없애려고 고안된 것입니다. (2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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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꽃이 피네 (소책자)
법정스님 지음 / 동쪽나라(=한민사)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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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한편으로 여기에 묶은 말씀들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일과 매순간 자기를 점검하는 구도자적 자세에 그 주제가 집중되어 있다. 또한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단순하되 충만한 삶을 살 것인가의 화두가 곳곳에서 우리를 일깨워 준다. (13면)




2. 동양의 전통적인 생각 속에서는 커다란 산이라도 하나의 생명체로 여겼다. 그래서 등산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꼭 입산, 산에 들어간다고 했지 산에 오른다는 말을 감히 하지 않았다. (25면)




3.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눌러앉아서 세상 흐름대로 따르다 보면 자기 색깔도 없어지고 자기 삶도 없어진다. (27면)




4. 내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내 전공과는 상관없는 책이나 사상을 접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늘 새롭게 살고 싶다. (29면)




5. 세속적인 계산법으로는 나눠 가질수록 내 잔고가 줄어들 것 같지만, 출세간적인 입장에서는 나눌수록 더 풍요로워진다. (33면)




6.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34면)




7. 가난하지 않고서는 보리심이나 어떤 진리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어진 가난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맑은 가난, 즉 청빈은 절제된 아름다움이며 삶의 미덕이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타락하기 쉽다. 그러나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한다. (41면)




8. 믿음은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슴에서 온다. 머리에서 오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머리는 늘 따지고 의심한다. 그러나 가슴은 받아들인다. 열린 가슴으로 믿을 때 그 믿음은 진실한 것이고 또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의 신뢰와 성실성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온다. (43면)




9. 청빈의 덕을 쌓으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 (44면)




10. 옛말에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행복을 찾는 오묘한 방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우쳐 주고 있다. (45면)




11.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공통된 병이다. (46면)




12.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움에 있다. (47면)




13.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화를 통해서도 나는 행복해진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데 있는 것이지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일상적인 경험을 토해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47면)




14.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47면)




15. 스스로 선택한 청빈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삶의 어떤 운치이다. (57면)




16. 가난한 자와 버림받은 자들 곁에 계셨던 그분 자신(예수)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임을 우리는 상기해야 합니다. (64면)




17. 삶에 곤란이 없으면 자만심이 넘치게 된다. 잘난 체하고 남의 어려운 사정을 모르게 된다. 마음이 사치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보왕삼매론은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일깨우고 있다. 또한 ‘근심과 곤란으로써 세상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70면)




18. 인간의 삶은 경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 그런 일에만 치우치고 있다. (72면)




19. 인간의 행복은 큰 데 있지 않다. 지극히 사소하고, 일상적인, 조그만 데 있다. (74면)




20.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 (77면)




21.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죄악 중에서도 탐욕보다 더 큰 죄악은 없고 재앙 중에서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없으며, 허물 중에서도 욕망을 다 채우려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다.’ (77면)




22. 아마도 스님이 늘상 강조하고 스스로 실천해 온 것은 무소유한 삶의 지혜로움일 것이다. 물건이든 일이든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어지라는 것, 그 대신 자기 자신의 존재와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지라는 것,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가지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는 것 ... (83면)




23. 그 도중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참된 스승은 우리에게 지식이든 에고든 무엇을 더 보태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고 있는 것마저도 최대한으로 버리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85면)




24. 미국의 철학자 마르쿠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풍요로운 감옥에 비유하고 있다. 감옥 속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갖춰져 있고 텔레비전 수상기와 오디오가 놓여 있다.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이 그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89면)




25.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해 버린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 그 물건에 의해 내가 가짐을 당하는 것이다. (95면)




26.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과 검소함 속에서 삶의 기쁨과 순수성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을 거듭 새겨 두기 바란다. (96면)




27.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97면)




28. ‘물 속의 물고기가 목말라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웃는다.’ (103면)




29. 정보와 지식은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선별하지 않으면 정보와 지식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러다 보면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살지 못하고 다른 의지에 의해 삶이 끌려다닌다는 데 문제가 있다. (111면)




30. 말은 가능한 한 적게 해야 한다. 한 마디로 충분할 때는 두 마디는 피해야 한다. (113면)




31. 말이 적은 사람, 침묵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신뢰가 간다. (113면)




32.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다. (119면)




33.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124면)




34. ‘많이 듣는 것으로써 도를 사랑한다면 도는 끝내 얻기 어렵다. 뜻을 굳게 지켜 진리를 받들어 행함으로써 그 도는 크게 이루어진다.’ (사십이장경) (137면)




35. ‘진리는 하나인데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기독교적인 사랑과 불교적인 자비는 사실 똑같은 것이다. 사랑은 가볍고 자비는 무거운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문화적인 배경과 지역적인 특수성에서 다른 표현이 생겨난 것일 뿐이다. (143면)




36. 내가 그동안 법정 스님에게서 배운 중요한 한 가지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무엇이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유하지 말고, 남 앞에 나타나지 말고,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 대신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의 존재를 소중히 느끼라는 것이다. (147면)




37. 중심이 잡히지 않을 때는 늘 흔들린다.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154면)




38. 가끔은 옆구리에서 시장기 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자신의 존재에 더 많이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0면)




39. 지식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지혜는 명상으로부터 온다. 지식은 밖에서 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움튼다. (175면)




40. 스님은 자주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들 생의 저녁에 이르면 우리는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두고 심판받을 것이다.’ 카뮈는 또 이렇게 말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증언해 줄 것인가. 우리의 작품인가. 철학인가. 아니다. 오직 사랑만이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 줄 뿐이다.’ (191면)




41. 떠난다는 것은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보다 높은 이상을 위한 적극적인 추구이다. (217면)




42. 적게 버리면 적게 얻는다. 어중간하게 버리면 어중간하게 얻는다. 이것이 소유의 법칙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온 세상을 다 차지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 가진 것만큼 속박을 당한다. (222면)




43.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자.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 (232면)




44.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기상이 없다. 생각 자체가 삶의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이 다음에 써먹기 위한 수단으로, 과정으로, 출세길을 위한 방편으로 학문을 하기 때문에 기상이나 기백이 돋아날 리 없다. (239면)




45. 그건 그렇고, 이 자리의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 내 말을 듣고 있는 그대는 어디 있는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2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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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사레 벡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한인섭 지음 / 박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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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무엇보다 벤담의 공리주의 사상은 벡카리아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의 유명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용어도 본서에서 따온 것이다. 벤담은 벡카리아를 ‘나의 스승, 이성의 첫 번째 사도, 공리성의 원칙에 너무도 유용한 길을 제시하여 우리가 할 일을 없애버린 분’으로 썼다. (역자 서문, 9면)




2. 벡카리아의 저작은 이처럼 시대적 산물이지만, 그것을 낳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 공감을 얻고 있다. 그것은 저자의 합리적이고 인도적인 형벌에 대한 호소력에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 고문과 사형제도의 폐지론은 단연 압권이다. 그는 이러한 비인도적 형벌제도의 폐지를 사회계약론과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도출해내고 있다. (역자 서문, 20면)




3. 본서는 근대적인 죄형법정주의를 위한 선언서이기도 하다. 오늘날 격언의 수준으로 인정된 수많은 명제들이 이 책에서 유래하고 있다. (21면)




4. 인간을 규율하는 도덕과 정치의 원리들은 세 가지 원천에서 도출된다. 신의 계시, 자연법, 그리고 인위적인 사회계약이 그것이다. (3면)




5. 가장 현명한 법은 사회의 이익을 자연스럽게 분배하는 종류의 법이다. 이러한 법은 특권적인 소수의 손에 권력과 행복을 집중시키고, 그 밖의 대다수 인간들을 무력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일에 저항한다. (7면)




6. 최대다수에 의해 공유된 최대의 행복 - 법은 바로 이 목적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8면)




7. 주권자의 형벌권의 기본원리는 인간의 심성으로부터 추구되어야 한다. 인간의 불변의 감정에 근거하지 않고는 어떤 우세한 정치도덕도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감정과 배치된 어떤 법도 조만간 그것을 능가하는 저항에 부딪치게 마련이다. (14면)




8. 오직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개인적 자유의 한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는 자는 없다. 그러한 환상은 공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타인을 속박하는 계약에 우리 자신은 속박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누구나 스스로를 세상사의 중심에 놓고 생각한다. (14면)




9. 첫째, 범죄에 대한 형벌은 오직 법률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권한은 사회계약으로 결합된 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입법자에게만 속한다. (16면)




10. 셋째, 잔혹한 형벌이 공공복리나 범죄예방의 목적에 직접적으로 저촉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이 별 쓸모없음을 증명할 수 있기만 하다면, 그 경우에 잔혹한 형벌을 과해서는 안 된다. (17, 18면)




11. 네 번째 결론은, 형사사건에서 법관은 형법을 해석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법관은 입법자가 아니다. (19면)




12. 자신이 심리하는 모든 범죄에 대해 법관은 완벽한 삼단논법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전제는 법, 소전제는 행위, 그리고 결론은 유죄 혹은 무죄이다. 적용될 일반법이 대전제라면, 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했는가가 소전제이며, 결론적으로 그의 행위가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가리게 된다. 만일 법관이 법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이와 다른 삼단논법을 구사해야 하거나 임의대로 그렇게 한다면, 이 때 법은 불확실성을 향한 문을 열어버리는 셈이다. (20면)




13. 형법 자구의 엄격한 준수로부터 생겨날 무질서는 법의 해석으로부터 생겨나는 무질서와 비교해볼 때 사소한 것이다. (22면)




14. 법의 해석이 하나의 해악이라면, 법의 해석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법의 불명확성 역시 명백히 또 다른 해악이다. (24면)




15. 쾌락과 고통은 감각을 부여받은 존재에 있어 행동의 유일한 동인이다. 심지어 가장 숭고한 종교적 행위를 고취하는 동인으로 신은 보상과 형벌을 예정하고 있다. (30면)




16. 인간의 정신상태는 얼마나 한심한가! 천체의 운행과 같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고 별 중요치도 않은 관념이 우리와 가장 가까이 있고 중요도가 높은 도덕적 관념보다 훨씬 잘 파악될 수 있다니, 도덕적 진실은 늘 흔들리고 헷갈린다. (39면)




17. 형벌의 목적은 오직 범죄자가 시민들에게 새로운 해악을 입힐 가능성을 방지하고, 타인들이 유사한 행위를 할 가능성을 억제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형벌 및 그 집행의 수단은, 범죄와 형벌 간의 비례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인상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수형자의 신체에는 가장 적은 고통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49면)




18. 어떤 재판정에서는 유죄의 형을 선고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자백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는 불가사의한 참회의 법정에서 종교적 죄악의 고백이 가톨릭의 성사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 것과 유사한 기원을 갖고 있다고 짐작된다. 이것은 사람들이 종교적 계시의 가장 빛나는 진리를 어떻게 남용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66면)




19. 범죄가 발생한 후 곧바로 신속한 처벌이 이루어질수록, 그 처벌은 더욱 정당하고 유용하다. 왜 더 정당하다고 하는가? 범죄자로부터 불확실성이라는 무용하고 잔혹한 고통을 덜어 주기 때문이다. (80면)




20. 범죄를 예방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형벌의 잔혹성이 아니라 형벌의 확실성에 있다. 따라서 치안관은 방심하지 않고 경계해야 하며, 재판관은 냉정한 엄격성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가 유익하고 가치있는 덕성으로 인정되려면 관대한 입법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106면)




21. 인간의 정신에 무엇보다 큰 효과를 끼치는 것은 형벌의 강도가 아니라 그 지속도이다. 우리의 감수성은 강력하지만 일시적인 충동보다는 비록 미약하더라도 반복된 인상에 의해 훨씬 쉽게, 영속적으로 자극받기 때문이다. (113면)




22. 형벌이 정당화되려면, 그 형벌은 타인들의 범죄를 억제시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강도만을 가져야 한다. (115면)




23. 법이란 사적 이익의 목소리가 공적 이익 앞에 양보하거나 공적 이익과 합치하는 범위 내에서 모두가 제안하고 준수하고 싶은 약속이다. (119면)




24. 이 증거는 법률로 규정되어 있어야지 재판관이 결정하도록 하면 안 된다. (125면)




25. 실효성이 없는 법률, 사정변경으로 효력이 없게 된 법률은 공포되어서는 안 된다. (140면)




26. 인간사에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던 언어의 남용형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의 증언을 법적으로 무효로 간주하는 것이다. (164면)




27. 법률에서 오류와 부정의가 생겨나는 한 원인은 공리성에 관한 잘못된 관념이다. (170면)




28. 범죄를 처벌하는 것보다 범죄를 예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이것은 모든 훌륭한 입법의 근본 목적이다. (174면)




29. 범죄를 예방하는 또 다른 방법은 법집행을 책임진 자들이 법을 부패시키는 것이 아니라 법을 준수하는 데서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183면)




30. 형벌은

- 어떤 경우에도 일개 시민에 대하여 일인 혹은 다수가 저지르는 폭력행위로 되어서는 안된다.

- 공개적이고, 신속하며, 필요한 것이어야 한다.

- 주어진 사정 하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것이어야 한다.

- 범죄에 비례해야 한다.

- 성문의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 (19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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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이론과 실천
마이클 프리먼 지음, 김철효 옮김 / 아르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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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인권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려면 인권의 개념을 분석하여야 한다. 철학의 한 분야인 개념분석(conceptual analysis)은 이렇게 개념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개념을 개념분석 방법만으로 다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며 개념분석도 추상적인 학문분야여서 인간이 실제 경험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의 개념을 분석할 때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다루고자 하는 인간이 실제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동정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16, 17면)




2. 만약 현실의 논리가 인권을 침해한다면, 우리는 왜 현실의 편에 서지 않고 인권의 편에 서야 하는가? 우리는 인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이와 관련하여 아우슈비츠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철학자 장 아메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치가 더 강했으면, 그렇기 때문에 그저 정당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권리라는 것이 있는가? 모든 도덕개념은 어차피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었는가? 이것이 역사의 현실이 아닌가? 그리스 문명도 결국 노예제와 학살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었던가? 나치독일이라고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17면)




3. 일상생활에서는 인권보다 평범한 친절이 더 중요한 것이다.(Glover) 하지만 때로는 보통사람들에게도 일상생활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통사람들도 테러나 대량학살, 집단강간 또는 ‘인종청소’에 처할 수 있다.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권의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겨버렸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인권이 일반적으로 잘 존중될 때에 우리는 인권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인권은 가장 심하게 침해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다. (18면)




4. 인권은, 완전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정도로 법률적인 개념이다. 인권법의 시작은 국제연합(UN) 총회가 1948년 12월 10일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이다. 역사학자 요하네스 모르싱크가 말한 것처럼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에 관한 온갖 의정서, 협약, 조약 혹은 선언 등의 형태로 확산되면서 국제적 지평을 심대하게 변화시켰다.” 오늘날 “어떠한 국가나 문화 또는 개인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인권레짐에 걸려 들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 선언은 파시즘에 대항한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이상주의의 정신 아래에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맺은 일련의 원대한 약속들이다. (18면)




5. 세계인권선언의 약속과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사실 사이에는 분명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 피해자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권선언의 약속을 어기고 있는 UN과 회원국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이상과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는 측은한 마음이나 법률분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여러 사회과학 분야를 동원하여 사회갈등과 정치탄압의 원인,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간의 상호작용 등을 연구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한편 국제정치의 장은 인권보다는 다른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국가나 여타의 힘센 행위자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의 국가들이 인권을 선언하는 데는 참여하지만 그 이행에 관한 기록은 누더기와 같다. 이러한 사실들이 인권에 관하여 나타나는 주된 특징들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가를 이해하여야 한다. (18, 19면)




6. 이 공존가능성의 문제는 이른바 ‘권리 인플레이션’(rights inflation) 현상, 즉 인권의 개념이 확장되어 무분별하게 다양한 요구의 근거로 이용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세계인권선언조차 ‘유급정기휴가’의 권리와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려면, 인권과 기타의 사회적 요구를 구분하여야 한다. 개인의 법적 권리는 사법부가 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겠지만, 인권은 다소 모호한 언어로 표현되며 그 의미 또한 사법부가 항상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을 명쾌하게 이해하려면 개념분석, 도덕적 판단 그리고 사회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인권 개념이 유용하려면 인권(human rights)은 특정 사회의 법적 권리(legal rights)나 기타 바람직한 목표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20면)




7. ... 하지만 매킨타이어가 인권을 마치 팔다리처럼 ‘가질 수 있는 사물’로 여기는 것은 어휘 때문에 생긴 착각이다. 우리가 마치 휴대폰을 가지는 것처럼 권리를 ‘가진다’(have)라고 표현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인 것이다. 권리는 복잡한 성질을 가지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비한 사물이 아니라, 도덕적, 법적 규칙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 또는 정당한 자격이다. 권리의 개념이 이러할진대 인권을 믿는 것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매킨타이어의 주장은 옳지 않다. (20, 21면)




8.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국제평화의 유지를 목표로 국가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 기획에서 가장 주요한 사고는 국가주권, 즉 국가는 다른 국가의 내정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UN은 국제법에 인권 개념을 도입하면서도 이러한 주권 개념에는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 국가와 여타 행위자들은 항상 자신의 이익과 원칙을 실현하려고 한다. 따라서 국제법 체계는 이들 행위자들에 의해 강한 정치적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UN의 인권에 대한 이행방식은 고도로 정치화되었으며, 그 결과 특정 인권문제에만 선별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인권문제를 놓고 정치적 흥정을 하거나 혹은 문제 해결에 늑장을 부리는 등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24면)




9. 냉전정치는 UN의 인권원칙 이행을 수십 년간 심각하게 지연, 왜곡했다. UN은 인권을 선포하였지만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실제 한 일은 거의 없었다. ... 이러한 상황에서 UN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한편으로 국제인권 기준을 작성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때때로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정부들이 모인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24, 25면)




10. 법률가들이 인권 연구를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은 공공연하게 혹은 은연중에 법률실증주의 철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인권법에서 인권이라고 정한 것만이 인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은 정치적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해석된 것이다. ... 인권에 대한 법실증주의적 접근법은 인권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권의 주안점은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기관이나 법률을 비판하는 것이던 데 반해, 법실증주의자들은 흔히 법률로 집행가능한 권리만이 권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권이 법률로 집행가능해야 한다면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에는 법적으로는 집행이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권이 법률로 집행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며, 대부분은 그렇게 할 것이다. 굳이 자신의 인권을 호소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권에 호소하게 된 경우는 법적 장치가 인권을 인정하거나 집행하지 못하는 바로 그때다. 법실증주의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법제도가 부당한 행위를 할 때 그것을 비판하는 중요한 근거를 없애는 꼴이 될 것이다. (25면)




11. 존 로크가 처음으로 인권 이론을 제시할 당시에는 그리스트교의 신에서 인권의 근원을 찾았었다. ... 문제는 UN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면서였다. 인권이 보편적인 것이라 주장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이상 특정 종교의 신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인권의 정당성이 여러 종교와 이념으로부터 추상된 것이어야 하게 된 것이다. (26면)




12. 인권운동이 법률가 덕분에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인권법에만 지나친 관심을 갖는다면 인권을 곡해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 책에서는 학제적 접근방식을 채택하여 법학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려고 애썼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철학적 논쟁들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 ... 법률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권의 정치를 이해하여야 한다. 하지만 법학과 정치학만으로 인권분야를 완전히 다룰 수도 없다. 인권문제와 그것이 어떻게 해결가능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연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인권이야말로 대표적인 학제적 개념인 것이다. (28면)




13. 18세기를 지나면서 자연권 개념이 점차 탈종교화되자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도덕과 정치에 필요한 원칙들을 이성에 근거하여 자연에서 도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18세기 말 탈종교화된 자연권을 주장한 사상가들은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그 근거가 대체로 매우 약했다. 당시 자유주의적 도덕철학을 구성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던 중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였다. 그는 윤리와 정치의 원칙체계는 타인을 이성적이고 자주적인 도덕적 행위자로 인정하고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43면)




14. 하지만 자연권을 비판하는 이들은 자연권 옹호자들이 선언이나 좋아했지 주장에는 논거가 부족하다고 비웃기 시작했다. 또한 자연권이 여러 문화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관념에서 나왔음을 밝히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밝히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결국 18세기 말 자연권 개념은 현실에서는 미국혁명이라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론적으로는 기초가 여전히 불안정한 채로 남게 된 것이다. (44면)




15. 그(페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게 되면 필연적으로 타인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동기부여가 된다. 이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 즉 권리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의무의 시스템이라는 뜻이 된다. (46면)




16. 하지만 자연권 이론은 권리를 제한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벤담은 효율성(utility)의 원칙이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 (49면)




17. 하지만 사회개혁을 위한 운동의 근거는 대체로 자연권이 아닌 공리주의에서 찾았다. (Waldron) 다만 노동계급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 사실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52면)




18. 19세기에 자연권 개념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공리주의나 과학적 실증주의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보인 나치주의라는 끔찍한 현상을 적절히 설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인권의 언어가 훨씬 더 적절하게 여겨졌다. (54면)




19. ‘자연권’(natural rights)을 ‘인권’(human rights)이라는 용어로 대체한 것은 이전에 권리의 기반을 자연에 두어서 발생하였던 철학적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전통을 가졌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자연권이라는 기반을 배제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기반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근본적인 가치나 신념에 대한 합의를 구하는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규범(규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게 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57면)




20. 그러나 비호를 구하고 받을 권리는 최근 가장 중요하고도 논란이 많은 인권관련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 종류의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인해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으나, 인권 보호를 내세우는 여러 국가들조차 외국인에게 제14조 인권을 보장하는 일은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60면)




21. 한편 제24조에 포함된 ‘정기적인 유급휴가’에 대한 권리는 종종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일부 한정된 사회조건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권리를 보편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권과 여타의 권리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63면)




22. 인간의 권리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중 하나는 이 개념이 인간의 의무에 대한 강조를 간과하여 이기심과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64면)




23. 사실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UN의 인권 개념은 그 철학적 정당성에 관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인권 개념에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면, 권리에 관한 모든 철학 이론이 그러했듯이 분명히 논란 거리가 될 것이고, 철학적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으면, 그 도덕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세계인권선언은 이러한 딜레마를 회피하면서, 인권 개념이란 철학적인 논란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라고 넌지시 비치기만 하였다. 한편 일부 법률가들은 법실증주의를 통하여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한다. (65면)




24. 1966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ICCPR)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에 대한 서명과 비준이 시작되었다. 1976년에는 발효에 필요한 35개국이 비준함으로써 이 두 규약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세계인권선언과 이 두 조약을 묶어서 흔히 국제권리장전이라 부르며, 오늘날 국제인권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70면)




25. 제3세대 권리론(발전, 평화, 건강한 환경, 자기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세대’라는 단어가 적절치 않다. 한 세대는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인데, 소위 각 세대의 인권들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새대’라는 개념은 특정한 인권의 역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데, 이 또한 문제가 있다. 제1세대 인권과 제2세대 인권은 동시에 세계인권선언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다. 3) 제3세대 인권은 그 권리를 보유한 자가 개인인지, 인민인지, 국가인지 혹은 이들이 결합된 형태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4) 또한 그 권리를 가진 이들이 무엇에 대한 권리를 가졌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5) 그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는 누가 지는지, 혹은 그 의무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6) 이러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권위주의 정권으로 하여금 이미 확립된 기존의 인권들을 침해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7) 제3세대 권리에 해당하는 것들은 사실 이미 확립된 기존의 인권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발전권은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서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Donnelly, Freeman) (74, 75면)




26.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구화’(globalization)가 인권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인권 의제는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 보다 호의적으로 옮겨졌다. 또한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operations:MNCs)과 같은 비국가행위자가 인권보호에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난 후에,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반대운동이 다시 한번 국제정치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80면)




27. 1945년 이래 UN은 ‘기준설정’(standard-setting)과 제도설립(institution-building) 그리고 인권보호를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해왔다. 인권은 우리시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개념이 되었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수많은 이들은 인권을 호소하며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UN은 스스로 정한 기준을 이행할 수 있는 역량이 아직 충분치 않다. 그리고 그 인권기준은 힘이 지배하는 현실 국제정치와 국가주권의 개념으로 인해 편파적으로만 이행되거나 거의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 하지만 실제의 행동을 대신해서 하는 입발림소리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 (80, 81면)




28. UN은 세계정치에서 인권혁명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간 계속되어야 할 혁명이다. UN은 아직 그 시작단계에 있고 그 성공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인권의 국제정치는 국제정치의 일부분이다. 다시 말해 인권의 국제정치 역시 원칙의 체계적 이행보다는 이기주의, 실용주의, 단기적 위기관리에 의해 상당히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Forsythe) (81면)




29.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1966년 UN에서 채택되고 1976년 발효되었다. 그러나 UN은 규약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관리 위원회(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를 1986년이 되어서야 설립하였다. 알스턴(Alston)은 이 위원회가 여타의 UN인권기구보다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 관련된 많은 규범들은 개념적으로 불명확하고, 여러 정부들은 이 권리에 대한 의욕이 부족하며, 이 권리에 대한 이념적인 논란도 많다. 또한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인정하는 국내 제도가 부재하다는 문제, 규약의 준수 여부를 효과적으로 감독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와 그 정보가 매우 복잡하다는 문제, 공식적인 법률문서와 실제 판결 간의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문제 등이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권에 관련하여 전문성을 갖추었거나 관심을 보이는 NGO도 실제로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는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었다. (Alston) (82면)




30. 결국 인권레짐은 선언에는 강하지만 집행력과 강제력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 즉 국가들의 이익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Donnelly) (83면)




31. 정치과학자 데이비드 포사이드(David Forsythe)는 인권 이론에 대해 다른 종류의 이의를 제기하였다. 철학 이론에는 원래부터 논란이 많기 때문에 이론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는 인권을 실천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87면)




32. 권리보유자에게는 자신의 권리 향유가 위협받거나 부정될 때 그 권리를 강력하게 청구할 특별한 자격이 부여되는데, 이것이 바로 권리 개념이 지닌 뛰어난 가치다.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이익을 누린다거나 타인의 의무로 인해 이익을 얻는다는 것과 구분되는 점이다. (Donnelly) (93면)




33. 권리담론이 정당한 이유는 사회질서가 부당할 때 거기에 저항하는 것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권리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권리 개념이 사회조화를 깬다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근거다. (94면)




34. 존스(Jones)는 이러한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규칙공리주의(rule-utilitarianism)가 인권 이론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규칙공리주의에서는 우리가 공동선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는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규칙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타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정당한 규칙을 위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103면)




35. 한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만이 진정한 인권이라는 관점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 시믽거 및 정치적 권리는 정부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요구만 하기 때문에(예를 들어 고문 중단의 요구) 보편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반면,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는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 제도(복지국가와 같은)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정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해야 할 의무는 있을 수 없으므로, 어떤 경제적 및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누릴 권리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5면)




36. 이러한 주장에는 슈(Shue)와 도널리(Donnelly)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 도널리는 두 종류의 권리 사이의 구분이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재산권은 시민적 권리로 간주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건데 경제적 권리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슈는 생존권과 같은 어떤 기본적 경제적 권리를 존중하지 못하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가 쓸모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역시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으며(예를 들어 공정한 재판을 제공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 정부가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거나 행동을 취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두 종류의 권리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만이 진정한 인권이라고 여기는 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105면)




37. 인권이라는 규범적 원칙은 사람들이 인권을 법률에 포함시키기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12면)




38. 인권을 이렇게 간과한 데는 정치과학에 영향을 많이 준 두 가지 관점, 즉 현실주의(realism)와 실증주의(positivism)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 ...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특히 미국의 카터 대통령 집권 때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다. 인권이 국제정치 현실의 일부분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114면)




39. 1976년 리처드 클로드는 인권의 정치과학에 있어 중요하고 선구적인 저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권은 법절차의 분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사회과학자들이 인권을 발전하는 데 밑바탕에 깔고있는 사회적 동력을 연구해야 하며, 여기에는 역사적 접근과 비교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114면)




40. 1970년대까지 브라질의 경제는 빈곤층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부유층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졌고 그 권력을 기존의 불평등을 유지하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흥정 이론에서는 부유층과 권력층이 시간이 지나면 빈곤층과 취약계층의 권리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가정하였지만, 브라질의 사례는 그것이 옳지 않은 가설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116면)




41. 가장 확실한 권리 보장은 활발한 NGO(비정부단체)의 활동과 독립적이고 권한이 있으며 부패하지 않은 사법부 활동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가능하다. 권리 담론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연대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맥락이 다른 곳에서도 새로운 문제에 대한 투쟁이 필요할 때면 쉽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구적 가치가 있다. (119면)




42.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는 두드러지게 전통적인 사회라기보다는 근대적 정치, 경제 문제를 갖고 있는 근대적 사회다. 하워드는 아프리카가 물질적 자원과 정치적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인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인권학계가 이 점을 간과해왔다고 지적하였다. 사회학적 현실주의가 결여된 법학적 이상주의에만 빠져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법률개혁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으며,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124면)




43. 이 이론(희생양이론)에 따르면 불만 유발자에게 공격을 향할 수 없으면, 그 공격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분노 혹은 불만 유발자를 알 수 없거나, 알아도 접근할 수 없거나, 접근할 수 있더라도 너무 강력하거나, 도덕적으로 보호를 받는 집단이라면 공격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옮겨진 공격의 대상은 누군지 알고 접근가능하고, 약하고, 경멸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되기 쉬운데 이것이 바로 희생양 이론이다.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특징을 갖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불합리한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129면)




44.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의 논쟁은, 문화란 변화하는 것이고 인권도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극복할 수 있다. (131면)




45. 그뿐만 아니라 당시 각국은 그것을 강한 레짐으로 발전시키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강한 인권레짐은 강대국의 외교정책이나 불안정한 지배세력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인권레짐이 약한 이유는 심각한 재원 부족 때문인데, 인권 증진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장만큼 충분한 재원을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134면)




46. 니체는 윤리적 이상주의자들을 ‘현실로부터 떠나는 이민’이라고 표현했다. 인권의 사회과학이 해야 할 일은 인권지지자들을 현실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138면)




47. 역설적이게도 실증주의는 스스로가 하나의 윤리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현실처럼 사회과학도 권력의 장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미 그렇듯 권력에만 더욱더 봉사하게 된다. 인권의 사회과학은 다른 목적을 가져야 하며, 윤리적 책무를 자각해야 한다. (139면)




48. 문화는 인권을 실현하는 데 다양한 방식으로 올바르게 관여할 수 있다. 인권의 원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지만, 항상 복잡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특수한 상황 중에는 항상 지역문화가 포함될 것이다. 인권의 정당성이 인간존엄성의 보호와 증진에 있는 것이라면, 인권을 이행할 때 반드시 지역문화와 그 지역문화가 인간존엄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문서만 가지고는 인권을 실현할 수 없다. 지역문화를 포함한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매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51면)




49. 그러나 비서구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서구의 문화적 오만감으로 보일 수 있다. 비서구인들은 인권 원칙의 힘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인권 원칙을 기존의 문화들에 관련시키는 것은 그 문화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 기준을 그 문화에 통합되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53면)




50. 국제관계학에서 인권 개념은 이상주의(idealism) 전통에 속하는데, 이는 정부에 요구하는 윤리 수준을 높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껏 국제관계학에서는 현실주의(realism)이 지배적이었다. (177면)




51. 국내 인권 NGO들이 초국적인 지원을 구하는 움직임은 국제적 압력으로 전환되는데, 조건이 좋을 때에는 이를 통해 국내 단체들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 부메랑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세계적 여론에 달려 있다. 오늘날 시간이 갈수록 ‘규범의 물결’(norm cascades)도 퍼져나가고 있다. 다시 말해 인권 규범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강화되어 이제는 인권운동을 피해 숨을 곳이 거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182면)




52.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 ... 지구화는 성차별적이다. (206면)




53. 1999년 1월 UN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다국적 기업들이 9개의 인권 및 환경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체결하는 협약인 ‘글로벌컴팩트’(Global Compact)를 제안하였다. ... 글로벌컴팩트는 지구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인권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구조주의’ 견해와 인권을 향상시키려는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는 ‘이상주의’ 혹은 ‘자발주의’ 견해 사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좋은 실험이 될 것이다. 여하간 이 협약은 다국적 기업이 국제 인권 기준을 따르겠다는 공약이므로, 다국적 기업을 지금보다 책임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13면)




54. 한때 ‘자본주의’로 향했던 적개심들이 오늘날에는 국제금융기구로 옮겨가고 있으며, 저항운동도 사회주의 사상보다는 인권, 개발, 환경문제 등 다양한 관심사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217면)




55.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음은 세계의 최빈층이 더더욱 빈곤해지는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UN의 정치 부문은 평화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국제금융기구들은 더 심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주장함으로써 그 노력을 훼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18면)




56. 지구화 시대에 들면서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싸움은 힘겨울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정치적, 경제적 세력이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 실패한다면 정의를 지키지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세계의 많은 지역에 고통을 주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폭력 분쟁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21면)




57. 한편 최근 인권활동가들은 역시 인권침해의 구조적 근원들(다국적 기업과 국제금융기구)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이상주의적 접근법과 구조주의적 접근법이 수렴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다. (228면)




58. 그러나 대규모 인권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여성, 아동, 선주민, 소수민, 이주노동자, 비호희망인 등과 같은 취약집단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법학의 한계와 사회과학의 필요성이 명백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문제는 여태껏 인권의 담론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권의 정치경제학이 필요한 때다. (2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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