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학문의 위기와 선험적 현상학 한길그레이트북스 26
에드문트 후설 지음, 이종훈 옮김 / 한길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그런데 왜 학문은 이 주도적 지위를 상실하였는가? 왜 사정은 본질적으로 제한되었고, 학문의 이념은 실증주의적으로 제한되었는가? (67면)




2. 이것은 궁극적으로 세게 자체 속에서 세계에 내재하는 이성(Vernunft)과 목적론(Teleologie) 그리고 그 최상원리인 신(Gott)을 인식하는 작업이다. (67면)




3. 이 경우 이성은 ‘절대적’, ‘영원한’, ‘초시간적’, ‘무제약적’으로 타당한 이념이나 이상에 대한 명칭이다. (69면)




4. 모든 존재의 불가분적 통일성 속에 일치되었던 고대의 철학이념에는 이미 존재가, 따라서 존재문제의 의미심장한 질서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최고의 그리고 궁극적 문제의 학문인 형이상학(Metaphysik)에 ‘모든 학문의 여왕’이라는 지위가 주어졌고, 이 형이상학의 정신은 그밖의 모든 학문들이 제공하는 인식에 비로소 최종적 의미를 부여하였다. 또한 이것을 (르네상스시대에) 새로 부흥된 철학이 이어받았고, 더구나 이 철학은 참된 보편적 방법을 발견해야만 하고 이 방법을 통해 형이상학에서 절정을 이루는 체계적 철학으로,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영원의 철학(philosophia perennis)으로 진지하게 구축되어야만 한다고까지 믿었다. (69, 70면)




5. 그런데 그 높은 정신으로 고무되고 축복받은 새로운 인간성이 계속 지탱되지 못하였다면, 그것은 인간성이 자신의 이상인 보편적 철학에 대한 신뢰와 새로운 방법의 효과에 대한 생동감에 넘치는 신뢰를 상실하였다는 사실에 이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사실이 발생하였다. 그 방법은 확실한 성과를 얻었던 실증과학들에서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음이 입증되었다. ... 이 동기는 그 때까지 지배적이었던 (철학의) 이상에 확고히 뿌리박힌 자명한 사실에 대항하여 더욱더 소리높여 이의를 제기하였다. (71, 72면)




6. 사고 전체의 기묘한 전회는 필연적 귀결이었다. (72면)




7. 보편적 철학과 이에 필요한 방법의 확고한 이상은, 말하자면 철학적 근대와 이것이 발전하는 모든 계열을 근원적으로 건립함으로써 착수된다. 그러나 이 이상은 사실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었고, 내적인 해체를 겪는다. (72, 73면)




8. 새로운 철학을 근원적으로 건립한 것은 근대유럽의 인간성을 근원적으로 건립하는 것이며, 게다가 중세의 인간성이나 고대의 인간성인 그때까지의 인간성에 대항하여 자기를 혁신하려는 인간성인 근대유럽의 인간성을 근원적으로 건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의 위기는 철학적 보편성의 분과들인 근대학문 모두의 위기를 뜻하며, 이것은 유럽 인간성의 문화적 삶이 지닌 의미심장함 전체, 즉 그의 실존 전제에서 맨 처음에는 잠재적이지만 점차 더욱더 두드러지게 드러난 유럽 인간성 자체의 위기이다. (73면)




9. 후설이 파악한 현대의 위기는 이론적 측면의 ‘학문’뿐만 아니라, 실천적 측면의 ‘인간성’의 위기를 포함하는 이중구조를 갖는다. (역자주, 73면)




10. 내적으로 볼 때 철학사는 더욱더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성격, 즉 자신의 과제를 충실히 해결하고자 전력을 다하는 철학 - 이성을 소박하게 신뢰하는 철학 -과 이성을 부정하거나 경험주의적으로 무가치하다고 거부하는 회의론과의 투쟁이라는 성격을 띤다. (75면)




11. 오히려 근대철학은 새로운 보편적 과제를 지닌 철학과 고대철학의 부흥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 철학을 새롭게 건립하는 것으로서 반복과 보편적 의미변화가 하나로 있는 것이다. (75면)




12. 합리적이고 무한한 존재 전체와 이것을 체계적으로 지배하는 합리적 학문의 이념이라는 이러한 구상은 전대미문의 새로운 것이다. 무한한 세계 즉 여기서는 이념성의 세계는 그 객체들이 우리의 인식에 개별적으로 불완전하게 그리고 우연히 접근될 수 있는 그러한 세계가 아니고, 합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일관된 방법이 도달하는 세계, 말하자면 (이러한 방법을) 무한히 진행해가서 모든 객체가 결국 그것의 완전한 그 자체로 존재함(An-sich-sein)에 따라 인식되는 세계로서 구성된다. (86, 87면)




13. 플라톤주의에서 실재적인 것(Reales)은 그 완전함에서 이념적인 것(Ideales)에 다소간에 관여(Methexis)한다. 이것은 고대기하학이 실재성에 원초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었다. (87, 88면)




14. 인식론이 등장하고 선험철학을 진지하게 시도한 이래 철학의 역사 전체는 객관주의적 철학과 선험적 철학 사이의 엄청난 긴장의 역사이다. ... 내가 여기에서 제시하고자 시도하려는 것은 선험철학의 최종형식(Endform) - 현상학으로서 - 으로 향한 목표이다. (149면)




15. 다음과 같은 점도 다시 기억해야만 한다. 즉 프로타고라스와 고르기우스로부터 시작된 고대의 회의주의는 객관적 인식(episteme) 즉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An-sich-seiend)의 학문적 인식을 문제로 삼아 그것을 부정하였다는 점, 그러나 이 회의주의는 그들의 추정적 진리를 그 자체와 더불어 합리적인 그 자체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을 합리적으로 구축하는 작업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불가지론을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에 있어) 이 세계는 합리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의 인식은 주관적-상대적 현상들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이었다. (158면)




16. 판단중지 즉 미리 주어진 모든 것 - 세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그 모든 전제된 타당성(Vorgeltung) -을 철저하게 억제하는 것을 단순히 결심하는 일로써 작업이 다 수행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판단중지는 진지하게 수행되어야만 하며, 사실상 그렇게 수행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자아는 세계의 어떤 잔여(Residumm)가 아니라 절대적이고 필증적으로 정립된 것인데, 이것은 판단중지를 통해서만 즉 세계의 타당성 전체를 ‘괄호침’으로써만 가능하며, 또한 유일한 정립(Setzung)으로서 가능하게 된다. (163면)




17. 그래서 왜 데카르트가 객관주의와 정밀한 과학을 형이상학적-절대적 인식을 보장하는 학문으로 정초하려고 서두른 나머지, 그 작용들이나 능력들에서 자신에 고유한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순수자아가 이러한 작용들과 능력들을 통해 지향적 작업수행(intentionale Leistung)으로서 성취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순수자아 - 판단중지 속에서 일관되게 남아 있는 것 -를 체계적으로 물어보는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과하지 않았는지 이해된다. 데카르트가 이것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강력한 문제제기 - 자아 속의 ‘현상’인 세계로부터 시작해서 체계적으로 되돌아가 묻는 문제 즉 실제로 증명될 수 있는 자아의 어떠한 내재적 작업수행에서 세계는 그 존재의미를 유지해왔는가 하는 문제제기 -가 천명될 수 없었다. (166, 167면)




18. 즉 동일한 자기는 결코 감각자료가 아니라, 감각자료가 끊임없이 변이하는 다발이다. (그러므로) 동일성(Identitaet)이란 하나의 심리학적 허구이다. (174면)




19. 그러므로 사실상 이것은 객관적 인식의 파산을 의미한다. 흄은 근본에 있어서 결국 하나의 독아론(Solipsismus)에 귀착한다. ... 흄의 천재성은 경탄할 만한 것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위대한 철학적 품성(Ethos)이 그 천재성과 결합하지 못한 것은 더 유감스러운 일이다. (175면)




20. 선험철학은 학문 이전의 객관주의와 학문적 객관주의에 대립해서 모든 객관적 의미형성과 존재타당성의 근원적 터전인 이식하는 주관성(erkennende Subjektivitaet)으로 되돌아가는 철학이며, 존재하는 세계를 의미형성물과 타당성형성물로 이해하고 이러한 방식으로 본질적으로 새로운 종류의 학문적 성격과 철학에의 길을 개척하고자 시도하는 철학이다. (191면)




21. 칸트는 자신의 철학이 그 당시를 지배하고 있는 합리주의를 붕괴시킬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칸트는 합리주의가 자신에게 근본적 물음임에 틀림없었을 물음을 다루지 않았다고 정당하게 비판한다. 즉 합리주의는 학문적 인식에 앞서 그리고 학문적 인식에서 우리의 세계의식의 주관적 구조를 결코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았으며, 그런 까닭에 ‘인간과 학자들로서의 우리들에게 즉시 나타나는 세계가 어떻게 아프링오리하게 인식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어쨌든 순수과학과 그밖의 순수한 아프리오리가 모든 객관적 인식 즉 모든 이성인(논리적으로 사유하는 모든 사람)에 대해 타당한 인식의 도구로 사용되는 정밀한 자연과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결코 묻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197면)




22. 반성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것을 갖는다. 왜냐하면 지금은 나타남들 자체의 경과가 문제이지, 나타남들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주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199면)




23. 우리는 주어지는 방식들의 흘러가는 변화 속에서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가 정신적 형태의 통일로서 즉 의미형성물로서 -궁극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보편적 주관성의 형성물로서- 생성되었고, 동시에 계속 생성하는 것으로서 보편적인 정신적 획득물이라는 사실을 배워서 이해하게 된다. 이 경우 주관성이 자기자신을 인간적인 것으로서 즉 세계의 존립요소로서 객관화한다는 사실은 세계를 구성하는 이러한 작업수행에 본질적으로 속한다. (210면)




24. 모든 객관적 세계관찰은 ‘외부’에서의 관찰이며, 단지 ‘외적인 것’ 즉 객체성들만 파악할 뿐이다. (하지만) 철저한 세계관찰은 자기자신을 외부에서 ‘외화하는’ 주관성의 체계적이며 순수한 내적 관찰이다. 그것은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의 통일에서와 같다. 물론 유기체란 외부로부터 관찰하거나 분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유기체의 은폐된 뿌리로 되돌아가서 그것들 속에서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위로 향해 노력하는 생명 즉 내부로부터 형성하는 생명을 그 모든 작업수행을 통해 체계적으로 추구할 때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210, 211면)




25. ... 완전히 무관심한 관찰자(uninterestierter Betrachter) ... 그리고 이것은 그 세계의 존재(Sein)와 그러하게 존재함(Sollen)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러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서 타당하였고, 또한 우리에게 계속 타당한 것을 ‘어떻게 그것이 주관적으로 타당한가’, ‘그것이 어떠한 모습으로 보여지는가’ 등의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을 항상 자신의 목표로 삼는다. (270면)




26. 이러한 것은 외적 융합으로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국면에서 ‘의미’를 그 자체 속에서 지니고 있는 것 즉 무엇인가를 사념하는 것으로서 일어난다. 그 지각작용의 양상들은 더욱더 의미가 풍부하게 되고(Sinnbereicherung), 의미가 지속적으로 형성되는 것(Sinnfortbildung) - 이 속에서는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도 여전히 유지되는 것으로서 계속 타당하며, 또한 이 속에서 지속적 흐름을 선취하는 예측적 사념이나 혹은 생성되는 것을 미리 기대하는 것이 동시에 충족되고 상세히 규정된다-에 결부되어 있다. (273면)




27. 지각은 단지 현재에만 관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각은 그 배후에 무한한 과거를 가지며, 그것의 전면에는 개방된 미래를 갖는다는 사실이 이미 사념되어 있다. (275면)




28. 세계의 고유한 존재는 (다른) 의미형성과 더불어 기능하면서 종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의미형성(Sinnbildung)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의미(Sinn)란 타당성양상들 속에 있는 의미에 불과한 것이며, 따라서 지향하고 있는 것 그리고 타당성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아주체들에 관련된 것이다. (또한) 지향성이란 유일하게 실제적으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것에 대한 명칭이다. (287면)




29. 우리가 주관성은 상호주관성 속에서만 그것의 본질 즉 구성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자아라는 사실을 깊이 고려하자마자 곧, 모든 것이 복잡하게 된다. (294면)




30. 이해할 수 없은 역설의 출현 - 새로운 철저한 성찰의 필요성 (298면)




31. 모든 객관성 즉 도대체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속으로 해소되는 보편적 상호주관성(universale Intersubjektivitaet)은 어쨌든 인간성(Menschheit)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며,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그 자체로 세계의 부분적 구성요소이다. (305면)




32. 세계는 이미 주어져 있다는 자명성의 유일한 우주이다. 처음부터 현상학자는 자명한 것을 의심스러운 것 즉 수수께끼와 같은 것으로 간주해야만 하고, 그후부터는 이러한 것 -현상학자에게는 실로 모든 ‘수수께끼 가운데 최대의 수수께끼’인 세계존재의 보편적 타당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변경시키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학문적 주제로서 가질 수 없다는 역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305, 306면)




33. 새롭게 시작하는 현상학적-선험적 철저주의라는 철학의 본질적 특성은, 이미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객관적 철학과 달리 이 철학은 자명성의 토대를 미리 마련하는 것 대신 (비록 다르더라도) 이와 유사한 의미의 토대를 원리적으로 배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철학은 우선 토대없이(bodenlos) 시작해야만 한다. 그러나 곧바로 그 철학은 자기자신의 힘으로부터 -즉 그 철학이 원초적 자기성찰을 통해 하나의 현상 또는 현상들의 우주로 변경된 소박한 세계를 자기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하나의 토대를 창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획득한다. (307면)




34. 보편적 구성의 의미 작업수행과 타당성 작업수행을 실행하고 있는 주체들로서의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극체계로서의 세계, 따라서 공동체화된 삶의 지향적 형성물로서의 세계를 공동체 속에서 구성하고 있는 자들로서의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309면)




35. 근원적 자아(Ur-Ich)로서의 자아는 세계를 구성하는 선험적 상호주관성의 공동주체들로서의 선험적 타자(Andere)에 대한 나의 지평을 구성한다. (311면)




36. 연역하는 것(Deduzieren)은 해명하는 것(Erklaeren)이 아니다. (319면)




37. 이것의 기원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즉 소박한 객관주의적 학문의 정초방식으로부터 원리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마찬가지로 선험철학은 근원적 형태로는 필연적 자아로부터 철학을 절대적으로 주관주의적으로 정초하려는 시도로서 데카르트의 ‘성찰’에서 최초로 그 발단으로 등장한다. (330, 331면)




38. 선험적 자아로서의 나 자신은 세계를 구성하고, 동시에 인간적 자아의 영혼으로서 세계 속에 존재한다. (334면)




39. 이 수수께끼는 곧 모든 객관적 학문들에 불가결한 무한한 자명성에 대한 명칭으로서의 세계가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그리고 학문 이전적으로 존재한다는 자명성이다. (337면)




40. 나는 주어지는 방식들과 타당성양상들 그리고 자아가 집중하는(Ich-Zentrierung) 방식들의 내용(Was)와 방식(Wie)에 관해 모든 측면에서 일관되게 심문하면서, 이러한 의식삶이 철저하게 지향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337면)




41. 우리는 실로 데카르트가 한 바와 마찬가지로 생각함(cogito) 즉 지향성을 발견하는데... (371면)




42. 판단중지는 일반적인 철학적 의도에서 경험에 대한 보편적 비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진리 그 자체에 관한 인식가능성으로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회의적, 불가지론적 판단중지로 간주되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에는 태도를 취함(Stellungnahmen)이 포함되어 있다. (379면)




43. 관념론은 자신의 이론에 너무 성급하였으며, 대부분 은폐된 객관주의적 전제로부터 스스로 해방할 수 없었다. 혹은 관념론은, 사변적 관념론으로서, 현실적인 현상적 세계를 직관성 속에서 타당하게 갖는 현실적 주관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심문하는 과제를 빠트리고 말았다. (414면)




44. 이러한 철학은 그 이성을 통해 애매하게 됨 속에서, 드러내 밝힘 속에서 명백한 자기이해의 운동 속에서 무한한 과정인 것으로서 절대적 상호주관성의 발견이다. 즉 끊임없이 세계를 구성하는 선험적 삶 속에서 ‘절대적’(궁극적 의미에서 ‘선험적’) 주관성의 필연적인 구체적 존재방식의 발견이며, 이와 더불어 상관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새로운 발견인데, 선험적으로 구성된 것으로서 이 세계의 존재의미는 이전단계에서 세계와 세계진리, 세계인식으로 불렸던 것에 대해 새로운 의미를 밝혀 준다. (4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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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2016-01-23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분들에 비해 정말 제대로 공부하시네요....
올려주신 몇몇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아 도서 구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