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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 양장본
법정스님 지음 / 범우사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1.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한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게 하고, 안이해지려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19면)
2.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요,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요.” (간디) (23면)
3.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24면)
4. 나는 이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념한 것이다. 이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25면)
5. 소유욕과 이해는 정비례한다. 그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26면)
6.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27면)
7.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뜬다. (27면)
8.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27면)
9. 사람은 저마다 자기 중심적인 고정관념을 지니고 살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도 따지고 보면 그 관념의 신축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걸 봐도 저마다 자기 나름의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32면)
10.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32면)
11. 자기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별난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불쑥 망우리를 찾아간 일이 있다. 짓궂은 성미에서가 아니라 성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그의 생을 죽음 쪽으로 조명해 주고 싶어서였다. 여지가 없는 무덤들이 거기 그렇게 있었다. (40면)
12. 바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에서 장엄한 낙조 같은 걸 느낄 것이다. 단조로운 듯한 반복 속에서 깊어짐이 있기 때문이다. (40면)
13.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을 조명해 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것은 오로지 반복의 깊어짐을 위해서. (41면)
14. 그러던 어느 날, 그 흙탕길을 걸으면서 문득 생각이 피어올랐다.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보행의 반경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 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 작용도 따른다. (43면)
15.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45면)
16.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47면)
17.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법당에서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본래무일물!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이 말이 떠오른 순간 가슴에 맺혔던 멍울이 삽시간에 술술 풀리었다. 그렇지! 본래 한 물건도 없는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을 하직할 때 가져 가는 것도 아니다. 인연 따라 있었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마는 거다. 언젠가 이 몸뚱이도 버리고 갈 것인데 ... (54면)
18. 무엇보다도 조조의 매력은 듬성듬성 앉아 있는 그 여유있는 공간에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영화나 연극을 보는 것도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색다른 세계에 자신을 투입하여 즐기려는 것인데, 밀집한 일상이 영화관에까지 연장된다면 어떻게 색다른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60면)
19. 사람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취미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그러기에 아무개의 취미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밑받침한다고도 볼 수 있다. (62면)
20. 그 길로 부엌에 나가 태어버렸다(주홍글씨). 최초의 분서였다. 그때는 죄스럽고 좀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며칠 뒤에야 책의 한계 같은 걸 터득할 수 있었다. 사실 책이란 한낱 지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것, 거기에서 얻는 것은 복잡한 분별이다. 그 분별이 무분별의 지혜로 심화하려면 자기 응시의 여과 과정이 있어야 한다. (65면)
21.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 (69면)
22. 집착은 우리를 부자유하게 만든다. 해탈이란 온갖 얽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자재의 경지를 말한다. 그런데 그 얽힘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고 집착에 있는 것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보다도 인정에 대한 집착은 몇 곱절 더 질기다. 출가는 그러한 집착의 집에서 떠남을 뜻한다. (75면)
23. 구도의 길에서 안다는 것은 행과 비할 때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가. 사람이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지식이나 말에 의해서가 아님을 그는 깨우쳐 주었다. 맑은 시선과 조용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과 그리고 말이 없는 행동에 의해서 혼과 혼이 마주치는 것임을 그는 몸소 보여 주었다.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 주었다. (78면)
24. 평상심이 도임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78면)
25.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 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85면)
26. 산다는 것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이다. 따라서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느냐에 의해 삶의 양상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것이다. (88면)
27.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느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 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간의 탈을 쓴 인형은 많아도 인간다운 인간이 적은 현실 앞에서 지식인이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무기력하고 나약하기만 한 그 인형의 집에서 나오지 않고서는 어떠한 사명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91면)
28. 성급한 현대인들은 자기 언어를 쓸 줄 모른다. 정치권력자들이, 탤런트들이, 가수가, 코미디언이 토해낸 말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주워서 흉내내고 있다. 그래서 골이 비어 간다. 자기 사유마저 빼앗기고 있다. 수도자들에게 과묵이나 침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묵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안에 고여 있는 말씀을 비로소 듣는다. (101면)
29. 수도자들이 이와 같이 침묵하는 것은 침묵 그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 만을 하기 위해서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서 당당한 말을 하기 위해서다. 벙어리와 묵언자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03면)
30. 생 텍쥐페리의 표현을 빌린다면, 내가 내 장미꽃을 위해 보낸 시간 때문에 내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이다. 그건 내가 물을 주어 기른 꽃이니까,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이 그 장미꽃이니까. (106면)
31. 너의 아저씨(생 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더라.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동무 이야기를 하면,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 (110면)
32. 그때에 여우가 나타나 ‘길들인다’는 말을 가르쳐 주었어. 그건 너무 잊혀진 말이라고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라고. (112면)
33.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날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하려면, ‘나’, ‘너’ 사이에 ‘와’가 게재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113면)
34. 누가 나더러 지묵으로 된 한 두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화엄경’과 함께 선뜻 너(어린 왕자)를 고르겠다. (116면)
35. 무엇보다 만나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소중하다. 만나지 않고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 또한 이야기를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만나게 된다. 만남은 일종의 개안일 수 있다. 왜냐하면 만나 이야기함으로써 오해의 장막이 걷히고 인식의 지평이 열리기 때문이다. (143면)
36. ‘리그 베다’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현자들은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다.” (143면)
37. 마하트마 간디의 표현을 빌리면, 종교는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똑같은 히말라야를 가지고 동쪽에서 보면 이렇게, 서쪽에서 보편 저렇고 할 따름이다. (144면)
38. 문제는 우리가 얼마만큼 서로 사랑하느냐에 의해서 이해의 농도는 달라질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사랑에서 비롯된다. (14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