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과 세계의 미래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원기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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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시대의 좌익은 신좌익에 자리를 내 줬다. 역사 의식과 변증법, 물질주의, 제국주의에 관한 추상적 주장이 ‘집단 치료 의식’에 의해 밀려났다. 정치가 정치 치료의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의 젊은이들은 카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마오쩌둥의 ‘어록’을 인용하는 대신 자기 내부의 느낌을 서로 나누며 대인 관계의 역학을 논했다. 정치 혁명의 주장이 개인의 정신적 변혁 추구로 바뀌었다. 1970년대 초가 되면서 이념은 거의 퇴색했다. 그러나 그 주변에서 새로운 운동이 움텄다. 여성 운동, 환경 운동, 인권 운동 및 동물 권리 보호 운동, 동성애자 권리 옹호 운동 등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0면)




2. 아메리카 드림은 개인의 물질적 출세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리스크, 다양성,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는 세계에 걸맞은 더 넓은 사회복지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 유러피언 드림은 개인의 자유보다 공동체 내의 관계를, 동화보다는 문화적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무제한한 발전보다는 환경 보존을 염두에 둔 지속 가능한 개발을, 무자비한 노력보다 온전함을 느낄 수 있는 “심오한 놀이deep play"(완전한 몰입을 통해 삶의 의미를 깨닫고 희열을 느낄 수 있는 활동)를, 재산권보다는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권리를, 일방적 무력 행사보다 다원적 협력을 강조한다. (12면)




3.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 자체가 세상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모더니즘 사상 이면에 경직된 가설이 깔려 있다고 보고, 그것이 바로 세계 병폐 대부분의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 인식 가능한 객관적 현실, 돌이킬 수 없는 직선적 진보, 인간의 완벽할 수 있는 능력 등의 개념이 지나치게 융통성이 없고 역사적으로 편향되었으며, 인간의 조건과 역사의 목적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3면)




4. 1960년대의 세대가 반발한 것은 우리의 행동과 행위에 대한 너무도 거창한 비전과 다른 시각을 용납하지 않는 이상주의의 숨막히는 답답함이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이 세계에는 단 한 가지의 관점만 있는 게 아니라 개인에 따라 수많은 다른 시각들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런 반란을 정당화했다. 포스트모던 사회학은 완전한 인간 경험을 이루는 다양한 시각들에 대한 포용과 다원주의를 강조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단일한 이상적 체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 가치를 지닌 다양한 문화 경험이 혼재한다고 생각했다. (14면)




5.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모든 인간의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자연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적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의도치 않게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다. 이렇게 자가당착에 빠진 포스트모더니즘을 대신해 등장한 것이 바로 유러피언 드림이다. 유러피언 드림의 기본은 구식 서양 이념의 멍에에서 개인을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보편적 인권과 자연의 내재적 권리”라는 개념으로 포장된 세계화 의식을 인류가 포용하도록 하는 새로운 역사 기준을 세우려는 노력이다. (16면)




6.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유는 삶의 질, 환경과 조화를 이룬 개발, 평화와 조화에 초점을 맞춘 새 역사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무제한적인 부 축적보다는 삶의 질에 기초한 문명에서는 현대의 발전을 가져온 물질적 바탕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17면)




7. 오랫동안 미국인들은 자유를 ‘자율autonomy'과 연관지어 생각해 왔다. 자율적인 사람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기 영역 밖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자율적이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한다.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더욱 독립적이 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자주적이고 스스로 하나의 고립된 섬이 됨으로써 자유로워진다고 믿는다. 부에서 배타성이 생겨나고, 배타성으로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자유와 안전을 구성하는 요소에 관해 그와는 다른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 유럽인들은 자유가 자율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음embeddedness'으로 인해 보장받는다고 생각한다. 자유롭다는 것을 타인과의 수많은 상호 의존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다. 더 많은 공동체에 소속될수록 충만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 선택권이 넓어진다. 상호관계에서 포괄성이 생겨나고, 포괄성으로 안전이 보장된다. (24면)




8.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러피언 드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문화 세계를 수용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25면)




9. 중요한 것은 유럽의 미래의 새 비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비전은 가장 기본적인 면에서 아메리칸 드림과 다르다. 21세기의 양대 초강대 세력 사이에서 펼쳐지는 역학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바로 미래에 대한 유럽인과 미국인의 기본적인 시각 차이다. (26면)




10. 아메리칸 드림의 쇠퇴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의 부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옛 비전의 미흡한 점이 바로 새 비전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27면)




11.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그것이 처음부터 미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전 세계가 공유하거나 다른 나라로 이식될 수 있는 꿈이 아니었다. 그 힘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배타주의에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 땅에서만 추구될 수 있는 꿈이다. (29면)




12. 그러나 세계화 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아메리카 드림은 그런 배타성 때문에 시대에 뒤지게 되고 외면받게 된 것이다. (30면)




13. 많은 유럽인들이 더 이상 신을 믿지 않는다. 미국인의 82퍼센트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는 반면,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인들의 약 절반은 신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신안에 관한 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개도국 사람들의 견해에 훨씬 가까우며 다른 선진국 사람들의 견해와는 크게 다르다. (34면)




14. 하나는 “선과 악에 대한 절대적인 구분이 있으며,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을 구분하는 절대적인 잣대는 있을 수 없으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는 전적으로 시대 상황에 달려 있다”는 견해였다. 대다수 유럽인들과 심지어 캐나다, 일본인들은 두 번째 견해를 택한 반면 미국인들은 첫 번째 견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5면)




15. 애국심, 국수주의, 문화적 우월성 등에 관한 이런 여론 조사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미국을 제외한 유럽 및 다른 지역의 경우 세대가 거듭될수록 국가적 긍지가 쇠퇴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은 예외다. 미국의 청소년 가운데 무려 98퍼센트가 자신의 국적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 지금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는 개인 및 집단적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국가 개념이 점점 중요성을 잃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기존의 국가관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전통적 지정학 개념에 빠져 있는 것을 웅변하고 새로운 세계화 의식 운동에서 결코 선봉에 설 수 없다는 의미다. (37면)




16.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화 시대에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범국가적 꿈이다. 유럽에서 국가적 긍지가 쇠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그것은 조국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기보다 더 넓고 깊이 있는 상호의존성을 포용하기 위해 국가 경계선을 초월한 정체성과 소속 의식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37, 38면)




17. ‘배타성’이 점차 ‘포용성’으로 교체되어 가는 세계에서 미국인들의 선민 의식이 과연 지속될 것인가? (38면)




18. 아메리칸 드림이 그토록 오랫 동안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 욕구 두 가지, 즉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현세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인내, 자기 개선, 자립이 필요했고 내세의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신앙심을 가져야 했다. (40면)




19. “자기 이익의 추구가 과거에는 합리적인 이익과 부의 축적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쾌락과 심리적 생존을 의미하고 있다. ... 이제는 순간의 삶을 즐기는 것이 대다수 사람들의 주된 목표다. 선조나 후손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다.” (42면)




20. 미국 문화를 날카로운 시각으로 해부한 두 석학은 한결같이 미국의 젊은이들이 “욕구의 즉시만족”을 설파하는 미디어 문화에 젖어들고 있다고 우려했다. (43면)




21. “즉시 성공”의 욕구는 미국 문화 전체에 스며들고 있다. (45면)




22. 사회 비평가들은 대다수 미국인들이 실제로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라 “아메리카 백일몽American daydream"이라고 주장한다. 진정한 아메리카 드림은 기독교 신앙과 미래를 위한 근면과 희생에 대한 믿음이 합해진 것이다. (46면)




23. 그들에겐 기대할 것도 바랄 것도 거의 없다. 그들이 꿈꿀 기회를 갖기도 전에 꿈이 이뤄진 것이다. 미국의 이런 젊은이들에게 삶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동기 유발” 그 자체다. 그러니 술, 마약, 도박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미래가 노력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경험한 것이라면 순간적 쾌락만이 권태를 물리치고 계쏙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47면)




24. 물론 옳은 이야기이지만 문제는 미국의 비영리 부문 자원봉사가 빈민 구제에 있어서 유럽보다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 이룰 수 있는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는 점이다. (52면)




25. 퍼트넘의 지적이 옳다면 그것은 미국인들이 심적으로 냉담해지고 있고 시간 및 돈의 압박, 개인의 쾌락 추구 때문에 이웃의 사회복지에 무관심해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54면)




26. 그러나 지금은 신분 상승이 둔화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생각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56면)




27. 소득 분배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룩셈부르크 소득 연구소(LIS)'에 따르면 소득 불균형 면에서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24위다. 미국 아래에는 러시아와 멕시코만이 있을 뿐이다. 유럽 선진국 18개국은 전부 빈자와 부자 사이의 소득 격차가 미국보다 적다. 미국의 경우 전형적인 고소득자가 전형적인 저소득장의 5.6배를 벌어들인다. (세금 및 가족 수에 맞춰 계산된 것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북유럽의 경우 고소득자가 저소득자의 3배, 중유럽의 경우 3.18-3.54배다. (57면)




28. 결국 미국은 소수의 고소득자들에게는 기회의 땅이고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불행의 땅인 듯하다. (58면)




29. 조금 더 깊이 파 들어가면 빈곤을 흑인 사회와 연관시키는 미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1면)




30. 부의 재분배는 아메리칸 드림의 기본 정신을 해치며, 미국적인 성공담의 핵심에 있는 개척정신을 조롱하는 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사회가 생산하는 부를 분배하는 가장 공평한 수단이 시장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62면)




31. 영국에서는 덜한 편이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시장이 미국에서만큼 대단한 권위를 갖지 못한다. 유럽인들은 시장을 자율적으로 내버려두면 불공정함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믿는다. 정부가 빈민들에게 보조금을 제공하는 등 부를 재분배하는 것은 시장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한 적절한 교정 수단으로 간주된다. 시장과 정부의 세력 균형을 잡는 복합 시스템인 사회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아이디어가 2차 대전 이래 유럽에서 번성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63면)




32. OECD에 따르면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11퍼센트만을 사회보조금 등에 의한 소득 재분배에 사용하는 반면, 유럽 국가들은 GDP의 26퍼센트 이상을 사회복지에 할애한다. ... 1990년대 미국의 합법적 최저 임금은 평균 임금의 39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 EU의 경우 같은 기간의 최저 임금은 평균 임금의 53퍼센트였다. ... 여성 또는 남성의 출산 또는 육아 휴가를 의무로 규정하지 않는 선진국 세 나라 가운데 하나가 미국이다. 더구나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출상이나 질병 등 가정 상황에 따른 ‘무급’ 휴가조차 받지 못한다. (63면)




33. 프랑스 기업들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곧 주 35시간 근무제를 수용했다. 그들은 생기 있고 의욕 있는 근로자가 하루 7시간 동안 생산하는 양이 지치고 의욕 없는 근로자가 하루 8시간 동안 생산하는 양과 맞먹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수적인 혜택도 있다. 주 35시간 근무법으로 고용주들은 근무 시간 배정에서 더 많은 융통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71면)




34.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이 잘한 것이 무엇이고 유럽이 못한 것이 무엇인지를 따지기를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적으로 접근하려고 한 자신들의 노력에 긍지를 갖고, 유럽의 기존 모델을 바탕으로 어떻게 개선점을 찾아야 하는지 연구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79면)




35. 희안하게도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미국인들은 유럽인들의 지적을 무시한다. 유럽은 이제 개인과 사회의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쪽으로 개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사회의 집단적 복지에 대한 신경을 좀더 쓰려한다는 증거는 없다. 아메리칸 드림은 서부 개척 시대 신화에서 그토록 칭송했던 거친 개인주의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점점 가난해지고 있지만 일부는 더욱 부자가 되어 가고 있다. (80면)




36.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유럽은 느긋하게 쉬고, 감각을 일깨우고, 원기를 회복하고,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곳이다. ... 그러나 소득과 지출, 투자와 수익, 생계 수단 등의 ‘현실 세계’와 관련된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인들은 유럽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일본과 동남아시아 신흥 국가들에 주목한다. 최근 들어 미국인 기업가들은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83면)




37. 무역과 정치를 유럽의 개별 국가와 연관짓는 이런 옛 사고방식은 대륙 전체로서 하나의 슈퍼 파워가 된 유럽의 새로운 현실과 모순된다. (90면)




38.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럽의 성장률이 저조한 것은 정부의 경직된 노동 정책, 반기업가 정서, 지나친 과세, 부담 큰 복지 프로그램 등 소위 “유럽 경화증”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최근 경제 성장에 기록적인 소비자 및 정부 부채라는 가혹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이다. 경기 부양의 대가가 너무 큰 것이다. ... 어떤 면에서 보면 미국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미래에 갚아야 하는 빚을 내어 단기적인 경제 실적 향상을 도모했다고 말할 수 있다. (98면)




39. GDP가 계속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나자 그것을 대체할 적절한 도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지난 수년간 계속되어 왔다. ...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GDP의 대안으로 나온 것이 ISEW:Index for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지속가능한 경제복지지수)였다. (101면)




40. ... 게다가 국민들이 받는 의료 수준의 공평성에 있어서 미국은 54위로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서글프게도 선진국 가운데서 모든 국민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뿐이다. (109면)




41. 다원적인 시각 및 다문화주의에 대한 포스트모던적인 감수성에다 인류 전체의 새로운 비전을 통합한 것이다. 새 유러피언 드림은 인류를 세계화 시대로 이끄는 꿈이다. (114면)




42. 르네상스 초기의 미술에 원근법이 도입되면서 인간의 공간 개념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처음으로 ‘사람’의 시선이 위쪽의 하늘에서부터 멀리의 ‘풍경’으로 옮아갔다. 원근법으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사람들은 그림을 화가의 시각으로 보았고, 하나님의 은총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았다. (130면)




43. 중세인들은 성당을 원근법에 의해 전체적 시각에 어울리도록 지으면 성당의 권위가 떨어져 성당이 인간의 판단 대상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대성당들은 신도들이 안에 들어오는 순간 시선이 위로 고정되도록 설계되었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유럽의 대성당에 들어서면 위만 쳐다본다. (130, 131면)




44. 그 한 세기 전만 해도 고딕 성당의 위엄이 도시의 지위를 상징했지만 이제 마을 시계탑이 도시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다. (143면)




45. 미국인들은 효율성을 정말 좋아한다. 효율성은 미국인들의 특질이 되었고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에 각인되어 있다. (148면)




46. 사실 칼뱅은 신자들로부터 더 그 이상을 요구했다. 마르틴 루터는 이 세상에서 하는 일을 최선의 방법으로 열심히 계속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칼뱅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칼뱅은 하나님의 영광을 섬기려면 생산성을 올려 자신의 신분을 높임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148면)




47. 효율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개혁신학과 계몽주의 과학을 동시에 강조한 미국적 특이성과 이상적으로 맞아떨어졌다. 효율성은 생산성을 계속 올릴 수 있는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고 있다는 확신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아울러 효율성 추구는 자신이 하나님의 구원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길이었다. (149면)




48. 그러나 미국에서는 효율성이 행동의 주된 특징인 반면 유럽에서는 효율성이 하나의 중요한 보조적 특질로만 간주된다. 유럽인들이 개인 생활에 효율성 도입을 혐오하는 이유는 효율성이 본질적으로 보조적인 가치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성으로 따지면 기계든 인간이든 모든 활동은 생산을 최대화하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그럴 경우 인간은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생산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154면)




49. 미국인들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155면)




50. 합리적인 ‘개인’이라는 급진적인 신개념은 철학, 과학, 경제, 정치 분야에서 일어난 변화에 발맞추어 수백 년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었다. ... 18세기 초부터 문학에서 'I'(나)라는 1인칭이 더욱 자주 나타났고 'self'(자기 또는 자아)라는 접두어도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157, 165면)




51. 사람들이 땅에 예속된 지 약 1,000년이 지난 뒤 “인클로저Enclosure"(공유지의 사유지화 법령)라는 새로운 법령이 공간과 시간의 개념을 역전시켰다. 그 이후 땅은 사람에게 예속되었고, 시장에서 사유 재산의 형태로 교환될 수 있었다. 또 부동산은 자본으로도 변환되어 경제 활동에 투자되는 신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었다. (177, 178면)




52. 종교 개혁은 하나의 유산 계급을 다른 유산 계급으로 교체했다. (179면)




53. 원래 칼뱅은 상업의 개념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의도치 않게도 신흥 자본주의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셈이 되고 말았다. (180면)




54. 존 로크의 재산권 이론은 1690년 두 편의 논문으로 발표되었다. ‘시민정부론Of Civil Government'은 출간되자마자 영국에서 정치무대에 오르기 시작한 중간 계급의 ‘바이블’이 되었다. 로크의 논문들은 영국 의회 개혁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나중에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의 철학적 기초를 제공했다. (183면)




55. 로크는 개인이 자연의 천연자원에 자신의 노동을 추가해 가치있는 것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개인 자산을 만든다고 주장했다. (184면)




56. 영국인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영국에서 봉건주의적 특권의 잔재를 없애는 데 앞장선 독립적인 농민, 상인, 가게 주인, 소규모 자본가들 사이에서 재산에 관한 로크의 자연권 이론은 큰 인기를 끌었다. 그의 논문은 단순히 재산의 자연권을 설명하는 것 이상을 제공했다. 로크는 노동의 가치를 고양하고 재산 취득을 인간 존재의 최고 업적으로 칭송했다. 노동을 필수 의무로 간주한 중세 성직자들과 달리 로크는 노동에서 모든 인간이 추구해야 할 성공의 기회를 보았다. (184면)




57. 헤겔은 이렇게 적었다. “인격이란 자기 실현화를 위해 투쟁한다. 다시 말해 외부 세계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외부 세계를 자신의 인격으로 만들려면 재산 제도가 필요하다.” (186면)




58. 헤겔의 재산이론이 로크의 이론보다 더 현대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생산에서 소비 지향으로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로크의 노동론이 초점이 근면, 저축, 자본 축적에 맞춰진 시대에 적합한 철학적 배경을 제공했다. 상인을 중심으로 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재산의 노동 이론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로크의 사상이 사유 재산의 본질을 설명하는 이론만이 아니라 지켜나가야 할 가치로 자리잡은 것이다. 오늘날에는 소비와 개인 경험의 상품화가 훨씬 중시된다. 따라서 재산이 인격의 연장이며 표현이라는 개념이 당시보다 사회적으로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 것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인격과 재산의 긴밀한 관계를 일찌감치 간파한 마케팅 전문가들은 재산이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수세대에 걸쳐 소비자들에게 주입시켜 왔다. (187, 188면)




59. 사유 재산권의 신성함에 기초한 사회라는 개념은 유럽 특유의 산물이다. 사유 재산권 주창자들은 재산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유 재산이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는커녕 자유를 얻는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주장했다. (189면)




60. 자유는 당시의 의미로는 자율성 및 이동성과 동격이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신세를 지지 않고 주변 상황에 예속되지 않는 것을 뜻했다. 재산이 많을수록 자율성과 이동성이 증가했고, 그것은 결국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189면)




61. 재산과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이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자신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든든한 재산만 갖고 있으면 프라이버시뿐만 아니라 남의 압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 등 다른 모든 권리가 저절로 따라왔다. (190면)




62. 그러나 18-9세기에는 사유 재산 제도가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두고 격렬한 공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 토머스 페인과 토크빌은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이 재산권의 시발점이 아니라 재산권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190면)




63. 장 자크 루소는 1755년 발간한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이렇게 적었다. “빈 땅에 울타리를 치고 ”이건 내것“이라고 순진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선언할 생각을 처음 해낸 사람이야말로 시민사회의 창립자다. 그때 누군가 나서서 경계선의 말뚝을 뽑고 도랑을 메워 버린 뒤, 다른 이들에게 ”사기꾼의 말에 속지 마라. 대지의 열매는 우리 모두의 소유이고 대지는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잊으면 안 된다.“고 외쳤다면, 인간은 얼마나 많은 죄악과 전쟁과 살인, 그리고 고통과 공포를 덜 수 있었겠는가!” 그의 100년 뒤 카를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사유 재산을 문명에 대한 재앙이라고 부르며 그 철학적, 역사적 뿌리를 비난했고 동시에 유럽인들에게 사유 재산의 폐지를 촉구했다. (193면)




64. 유럽이 사유 재산 제도의 발원지였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반대가 심했다. 존 로크의 추종자만큼이나 루소를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유 재산 제도가 이상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고 다른 사람들은 사유 재산이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93면)




65. 그러나 노동 계급은 계몽주의 사상가들과 그 후계자들이 약속한 물질적 이득을 별로 얻지 못했다. 도시 산업 지대 공장의 삶은 비참했다. 위험하고 열악한 작업 조건, 작업대와 나중의 조립라인 앞에서 긴 근무 시간, 박봉, 지저분하고 초만원인 주거 환경 등은 콩코르세가 제시한 세계와는 달랐다. (194면)




66. 복지국가 개념이 유럽에서 수용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복지국가 개념은 한쪽에는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급과 귀족들이, 다른 한쪽에는 노동자 계급과 빈민들이 대립하는 가운데 양쪽을 모두 달랠 수 있는 타협의 길이었다. 시장 자본주의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부 가운데 일부를 재분배하는 대신 사유 재산 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복지국가는 부의 균형을 잡고 계급 간의 갈등이 거리혁명과 노골적인 투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유럽인들의 그런 대타협은 대부분의 경우 성공했다. (194면)




67. 미국은 유럽의 대타협을 따르지 않았다. 사회주의는 미국 땅에서 제대로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미국 노동자들이 먹는 쇠고기 양이 독일 노동자의 세 배나 된다는 사실이 그 이유라고 지적했다. “로스트 비프와 애플파이 더미 위에서는 사회주의 이상향이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195면)




68. 지금도 미국은 유럽에 비해 사람은 더 적고 사용되지 않는 땅은 더 많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갑갑함을 덜 느끼면서 더 자율적이 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독립을 선호하며, 공산주의보다 개인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197면)




69. 개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부를 축적하는 것이 성공의 주요 척도인 한, 그 대가가 무엇이든 그 결과 문명이 어떻게 되든 물질적인 풍요가 구호인 한, 개척자들에게 소중했던 보통 사람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바탕을 둔 미국의 민주주의는 위험에 처한다. 그런 사회가 세우는 최상의 목표는 가장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너) (206면)




70. 미국인들은 재산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개인적 안전을 추구하며, 재산이 있어야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을 적게 벌어도 여가를 많이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유럽인들에게 재산 축적에 대한 미국인들의 집착은 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의 소유욕이 결국 자신마저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206면)




71. 사회복지 주창자들은 재산권보다는 공동 사회의 일반적인 권리가 우선이며 공공복지에 필요한 수준으로 재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올바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루tm벨트) (207면)




72. 우리는 ‘이탈리아’를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이탈리아인’을 만들 차례입니다. (다젤리오) (217면)




73. 범국가적 공용어를 만들려는 노력은 민족국가 형성보다는 초기 인쇄 산업과 관련이 있었다. 15-16세기의 인쇄업자들은 책의 대량 생산을 위해 시장이 확산되기를 갈망했다. 교회의 공식 언어가 라틴어였고 유럽 학자들과 정부 관리들이 공중에서 라틴어를 사용했지만 그 시장은 인쇄 혁명을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작았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 전역에서 수많은 언어와 방언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하나하나로서는 너무 시장이 작아 경제성이 전혀 없었다. 그에 대한 해결책은 주로 한 지역에서 가장 지배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를 채택해 성서와 문학 및 과학 작품을 그 언어로 대량 출판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표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영어로 발달한 언어들도 부분적으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통 그 언어들은 각 지역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관용 표현들을 통합한 다음 문법을 획일화시킨 결과였다. 그러나 일단 공용어가 받아들여지고 나면 그 언어들은 신비롭게도 스스로 영속성을 갖게 되었다. (219면)




74. 루소는 사람에 대한 지배에서 영토에 대한 통치로 바뀐 데 있어서 더 깊은 정치적 의미를 전했다. 그는 ‘사회계약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개인의 땅이 합쳐져 공유지가 되고, 통치권의 대상이 백성에서 영토로 확장되면서 땅과 사람을 모두 포함하게 된 과정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 고대의 왕들은 그 이점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을 페르시아인들의 왕, 스키타이인들의 왕, 마케도니아인들의 왕으로 부름으로써 국가의 주인이라기보다 그곳 사람들만의 지도자로 간주했던 것 같다. 요즘의 왕들은 현명하게도 자신들을 프랑스의 왕, 스페인의 왕, 영국의 왕 등으로 부른다. 그런 식으로 영토를 점유함으로써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도 확실히 통치하게 된 것이다.” (223면)




75. 국제법에서 영토에 대한 주권을 인정한 첫 번째 사례는 루터파, 칼뱅파, 카톨릭 사이의 30년 전쟁을 끝낸 1648년의 베스트팔렌 강화조약이다. 이 조약은 기독교 각 종파 사이의 융화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 지도자에게 종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관할권 내의 주권을 부여해 다른 국가의 간섭을 제한했다. (223, 224면)




76.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이 주권을 가졌다고 선언하면서 느꼈던 도취감에서 깨어나자 ‘시민’을 더 제한적으로 정의하는 데 합의했다. “재산을 갖고 있고 교육을 받은 남자에게만 정치적인 권리를 준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해 18-19세기에 새로운 민족국가로 태어난 대다수의 나라들이 그런 식으로 시민을 정의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시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간주되었기 때문에 재산을 가진 ‘남자’들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것은 당시로서는 합당해 보였다. (227면)




77.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한 사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을 보호구역에 수용한 일은 계속 미국인들의 양심을 괴롭혔다. 미국이 세계에 대해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해도 잘 먹혀들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노예 제도도 마찬가지다.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미국 남부로 강제로 데려와 노예로 만든 것은 미국인들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230면)




78. 미국인들이 아메리카 드림에 대한 희망을 잃는다면 미국의 다른 모든 계획도 하루아침에 아니라고 해도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이 없다면 미국인들의 국민 정서에서 그들의 결속을 유지해 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사라질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아메리칸 드림의 와해가 불가피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낳은 18세기 이념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세계에서 미국인들은 이제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글로벌시대가 도래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자신들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31면)




79. 시장 경제는 소프트웨어, 통신 혁명이 가져온 속도와 생산력을 완전히 수용하기에는 너무 느리다. 이것은 시장 경제의 비즈니스 방식을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포맷을 찾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장의 매커니즘 자체가 시대에 뒤지고 있는 것이다. (237면)




80. 순수한 네트워크 안에서도 자산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자산은 생산자에게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사용자에게 시간 단위로 사용권을 제공한다. 회원 가입, 임대, 공동 임대, 보유, 라이선스 계약이 거래의 새로운 수단이 되었다. (238면)




81. 사이버 공간을 통해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정보가 광속으로 교환되는 세계에서는 물질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귀한 자산이다. (239면)




82. 현재 사용자들은 정액 이용료를 내고 일정 기간 그 정보를 열람하고 있다. (240면)




83. 경제 모델이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바뀌게 되면 재산 관계에 대한 사고 방식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240, 241면)




84. 네트워크 모델은 대부분의 시장 경제 이론을 뒤집으며 정치 체제도 다시 생각해 보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241면)




85. 네트워크 관계의 핵심은 신뢰다. (243면)




86. 네트워크 시스템에서는 구성원들 사이의 공식적인 협력만큼이나 비공식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을 하는 가운데서 전문 지식과 기술, 사업상 중요한 데이터를 공유할 여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244면)




87. 네트워크 모델의 핵심에는 상호간의 의무감이 있다. 바로 “우리는 모두 공동 운명”이라는 느낌이다. (246면)




88. 네트워크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한 궁극적인 이유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보스턴 대학교의 조직이론가 갠대시 존스는 고객, 제조업체, 유통업체가 신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순차적 시장 교환에 의지하는 구식 경제 모델은 현 시대의 흐름에 너무 느려 제대로 적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조업체로부터 유통업체를 거쳐 최종 소비자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 지식과 기술을 융합해 조화롭게 조정할 수 있는 네트워크 경제는 ‘리드 타임’(lead time: 기획에서 제품화를 거쳐 최종 사용자에 배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훨씬 유리한 입장에 있다. (247면)




89. 네트워크 시스템은 공유하는 다양한 전문 지식과 기술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아이디어를 골라낼 수 있기 때문에 창의력과 혁신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247면)




90.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성이 높아 가는 세계화된 경제에서는 단순한 시장 교환을 통해 개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율적인 행위자 개념은 애처로울 정도로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다. 그 같은 속도, 복잡성,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 모델은 네트워크뿐이다. (248면)




91. 시장에서 네트워크로의 전환과 관련해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점은 기존의 경계선이 더욱 유동적이고 개방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장 경제에서는 경계선이 필수적이다. (249면)




92. 시장 경제에서는 재산이 공유되는 일이 거의 없으며 단지 소유되거나 교환될 뿐이다. 재산은 “내 것 아니면 네 것”으로 확실히 구분된다. (249면)




93. 네트워크 시스템에서는 유형 재산이든 지적 재산이든 전부 생산자의 소유로 남아 있으면서 사용권만 공유된다. 지식, 정보, 노하우도 재산의 형태로서 그에 대한 사용권이 공유된다. “내 것이 네 것”도 된다는 의미다. (249면)




94. 명확한 승자와 패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시장 경제에서와 달리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협동 작업의 결과 요즘 말하는 ‘윈-윈’ 상황이 나타나는 것이 정상이다. (249면)




95. 부족한 자원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 경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홉스/다윈식 논리는 협력이 생존과 발전에 더 중요하다는 혁명적인 발상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250면)




96. 그러나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그 자유가 그 반대로 정의된다. 자유는 재산 소유보다는 네트워크에 소속됨으로써 확보된다. 소속되기 위해서는 접근권이 있어야 한다. 접근권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격리된 관계보다는 공유된 관계에서 자유가 확보되는 것이다. (250면)




97. 시장은 속성상 불신을 기초로 하지만 네트워크는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시장을 사리를 추구하지만 네트워크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 시장은 서로간의 거리를 두는 거래를 하지만 네트워크의 거래는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한다. 시장은 경쟁의 장이지만 네트워크는 협력의 장이다. (251면)




98. (나는 1998년에 출간한 ‘소유의 종말’에서 맥퍼슨의 사상을 처음 소개했다.) 맥퍼슨은 지금 우리의 재산 개념이 주로 17-18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킴으로써 분석을 시작한다. 우리가 재산을 다른 사람의 접근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로 생각하는 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재산이 특정 자원의 사용과 즐김에서 배제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로도 규정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되었다고 그는 지적한다. 맥퍼슨은 바로 그 과거의 재산 개념을 부활시킨다. 수로와 도로, 광장 등 공동 소유 자산에 대한 이용 및 접근권이 그것이다. (252면)




99. 따라서 재산권에 “비물질적 수입, 다시 말해 삶의 질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 그는 “그런 권리는 사회적 관계를 충족시키는 데 참여하는 권리로서만 인정될 수 있다”고 말한다. (253면)




100. 시간과 공간이 점점 더 좁혀지고 상호 의존성이 더욱 높아진 글로벌 경제에서는 한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시스템 전체를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취약한 글로벌 경제를 감당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은 네트워크 시스템뿐이다.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자원과 리스크를 공유할 목적으로 관심있는 기업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한다. (255면)




101. EU는 영토 범위를 벗어난 통치 체제다. 바로 이 점이 EU의 특성이다. (258면)




102. EU를 정확히 정의하기가 어려운 것은 EU가 급변하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 새로운 형태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EU는 진정한 포스트모던 통치체제로서는 처음이다. EU의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 속에서 진로를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대의 도래로 시간은 거의 동시성으로 짧아지고 있으며 역사는 계속 달라지는 ‘현재’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 (260면)




103. 모네는 이렇게 말했다. “문제는 하나로서의 유럽이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럽’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유럽인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261면)




104. 테일러는 경영진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에 대해 전적인 통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직공이 작업 방식에 관해 일정한 재량을 갖는다면 그는 할당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가능한 한 적게 일하려고 한다는 논리였다. 테일러의 조직 모델은 직원들에게 독자적 판단 권한을 주지 않고, 세부적인 작업 방식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데 기초했다. (282면)




105. 이런 새로운 기술 혁명의 철학적 기초는 20세기 초 ‘과정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저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있음(being: 존재)’와 ‘되어감(becoming:생성)’이라는 개념으로 공간과 시간을 구분하던 벽을 가장 먼제 제거했으며 모든 현상을 순수한 활동으로 간주했다. 그 이전의 대다수 철학자들은 현상이 ‘존재했던 것’과 ‘그것이 행한 일’이라는 두 가지 현실로 나뉘어 있다고 믿었다. 존재라는 구조와 생성이라는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등불에서 전기로 전환되는 시점에 살았던 최초의 현대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인 화이트헤드는 행동을 순수한 과정으로 보았다.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순수 활동의 장으로 통합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하는 일은 구별될 수 없다고 논했다. 모든 현상은 주변의 활동 패턴 변화에 반응하는 지속적인 활동 패턴이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영원히 유동 상태에 있기 때문에 매 순간이 새로울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영원히 유동 상태에 있기 때문에 매 순간이 새로울 수 밖에 없다. 화이트헤드는 모든 생명체가 주변 환경에서 계속 새로운 것을 기대하며 자신의 존속을 위해 그 변화에 적응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피트백’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기대-반응 메커니즘을 “주체적 지향subjective aim"이라고 부르며 그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말했다. (283, 284면)




106. 그로부터 반세기 뒤 노버트 위너는 사이버네틱스 개념으로 과정철학의 기계적 형태를 창안했다. ...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키잡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키베르네티에스kyberneties'에서 나온 용어다. 사이버네틱스에 따르면 의도적인 행동은 두 개의 요소, 즉 정보와 피드백으로 나뉘며, 모든 과정이 그 둘의 증폭과 복잡화로 이해될 수 있다. 위너는 정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정보란 우리가 외부 세계에 적응하면서 그 외부 세계와 교환하는 콘텐즈를 말한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과정은 우리가 외부환경의 변화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며, 우리가 그 환경 안에서 효과적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과정이다.” 사이버네틱스는 그런 메시지나 정보가 상호 작용함으로써 예측 가능한 결과를 생산해 내는 과정에 관한 이론이다. (284, 285면)




107. 사이버네틱스 이론에 따르면 모든 행동을 조절하는 ‘제어 메커니즘’이 피드백이다. 자동 온도 조절 장치를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피드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것이다. 자동 온도 조절 장치는 실내 온도 장치를 감지함으로써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한다. 실내 온도가 계기판에 설정된 한계를 넘어서면 보일러를 가동시키고, 온도가 설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보일러 가동을 중단시키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것이 ‘음(negative) 피드백’의 전형적인 예이다 억제 피드백을 통해 모든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 반대인 ‘양(positive) 피드백’은 그와는 아주 다른 결과를 낳는다. 양 피드백에서는 활동의 변화가 과정을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고 촉진한다. 예를 들자면 인후염이 기침을 유발하고 기침으로 인후염이 악화되는 식이다. (285면)




108. 그런 정치에서는 정부가 여러 다른 행위자들 가운데서 하나일 뿐이다. 국가도 국민들을 다스리는 독점적 실체로서의 권한을 잃는다. 권한의 행사가 훨씬 더 분산적으로 이루어진다. 딘은 이런 새로운 형태의 통치를 “중심이 없는 정부, 더 이상 중앙에서 지시되지 않는 행정부의 형태”라고 불렀다. 국가 주권의 해체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새로운 통신 기술이다. ... 통치는 의사 소통의 흐름을 관리하는 것으로 새롭게 규정되고 있으며, 행위자들은 상호 교류하는 다수의 네트워크에 깊숙이 박혀 있는 각 전략 지점에 위치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모든 의사 결정과 행위가 해당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까지 전달된다. (289면)




109. 따라서 EU가 계속 변하는 조건과 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외적 성격이 주변의 변하는 활동 패턴에 적응해 계속 새롭게 재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멜레온처럼 스스로 계속 변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EU의 장점이다. (293면)




110. 그렇다면 EU는 민족국가와 같은 운명의 관리자가 아니라 순간적인 분쟁과 경합하는 명분의 조정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런 새 시대에는 민족국가 시대에 국민들의 충성심을 유발하던 ‘거대 담록’(meta-narrative: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거창한 목적론적인 이야기)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계층의 시각과 목표를 반영하는 수많은 작은 담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그에 따라 서로 다른 행위자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고,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공동체로 움직일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EU의 권한이자 의무가 되었다. EU 헌법의 비공식 별명이 “다양성 속의 조화unity in diversity'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93면)




111. 그렇다면 EU는 도대체 무엇인가?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EU는 무대를 설치하고 대화를 유도하고 쇼를 감독하는 교섭 정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EU는 하나의 ‘장소’라기보다는 하나의 ‘과정’이다. EU가 통일된 여권, 국기, 본부(수도) 등 국가의 외형적 상징들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가장 뛰어난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전통적인 민족국가는 국경 내부의 다양한 이해 관계를 통합하고 동화하며 통일시키는 목적을 갖고 있지만 EU는 그런 임무를 갖고 있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EU의 역할은 일반적인 민족국가들의 역할과 정반대다. EU의 정치적 특징은 다양한 활동과 이해 관계의 흐름을 촉진하고 거기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하는 데 있다. (297면)




112. 요점은 문화란 과거나 현재나 시장과 정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과 정부는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장과 정부는 부차적인 존재다. 시장과 정부는 문화가 만들며 문화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EU의 설계자 가운데 한 명인 장 모네는 그 점을 깨달았다. 그는 1960년대 후반 “유럽 연합이 다시 구축되어야 한다면 문화로 시작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306면)




113. 시장 자본주의는 개인의 사리 추구로 공동선이 증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개념을 바탕으로 하지만 시민사회는 정반대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즉,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더 큰 공동 사회의 선을 극대화하여 자신의 복지를 증진한다는 개념을 기초로 한다. 비인간적인 시장의 힘이 지배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시민사회는 중요한 사회적 피난처가 되었다. 사람들이 친밀감과 신뢰감을 형성하고 공동 목표와 공동 정체성을 확립하는 곳이 바로 시민사회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 부문은 점점 더 상업적으로 규정되어 가는 세계에 대한 교정 수단이다. (308면)




114. CSO(시민사회기구, Civil Society Organization)는 정부보다 더 유연하며 기업보다 지역사회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시민사회의 모토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것이다. (308, 309면)




115. EU는 CSO를 공공정책 네트워크에서 온전한 자격을 갖춘 파트너로 가장 먼저 인정한 통치 체제다. EU는 시민사회를 통치 체제의 ‘제3의 요소’로 인정했다. “국가와 시장, 그리고 시민들 사이의 중재자”로 간주한 것이다. (309면)




116. 유러피언 드림이 흥미진진하면서도 문제가 많은 이유는 하나의 지붕 아래 보편적 인권과 편협한 문화의 권리 둘 다를 수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족국가의 목표와는 크게 다르다. (314면)




117. 유러피언 드림의 성공은 문화의 정체성, 보편적 인권, 통치 체제라는 이 3자 사이의 관계를 대립되지 않고 상호 보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315면)




118. 다국적 기업들의 지배력이 점증하는 세계에서 지방, 지역, 국가, 국제적 차원의 정부들가 시민사회 단체들이 업계에 대한 충분한 견제력을 확보하려면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 정책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밖에 없다. (318면)




119. 신세대 포스트모던 학자들은 거대한 총체론적 담론, 민족국가의 패턴, 획일적 이념을 강조하는 계몽주의 운동이 변화의 진정한 장애물이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펼쳤다. (319면)




120. 민족국가 시대의 투쟁이 계급을 바탕으로 벌여졌고, 재산과 자본의 분배, 사유 재산권 보호에 관한 문제를 축으로 삼았다면, 글로벌 시대의 투쟁은 다양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조밀하게 연결되고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서 문화 정체성을 보존하고 접근권을 누리는 문제를 축으로 삼고 있다. (320면)




121. 접근권은 인류를 공동 시장과 글로벌 광장으로 가차없이 몰아 가고 있는 더 큰 활동의 흐름에 합류할 수 있는 방법이다. (320면)




122. 유러피언 드림에서는 신앙보다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 목표는 주도권 차지가 아니라 한데 어우러지는 조화다. 그것은 사람들이 서로 평화롭게 살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고, 개인의 변화라는 겸허한 꿈을 이룰 기회를 갖는 미래 세계를 추구하는 꿈이다. 한마디로 말해 유러피언 드림이 이끄는 것은 젊음의 활기가 아니라 노련하고 성숙한 지혜다. (331면)




123. 아메리칸 드림의 시간적 개념이 오직 미래 지향적이었던 반면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의 시간적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가지의 시간 영역 전체를 단일 형태로 통합한다. (344면)




124. 비록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영토를 기초로 한 의무와 재산권에서 탈피해 세계 전체의 집단 참여에 기초한 의무와 보편적인 인권에 애착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345면)




125. 인류 역사의 어떤 시기보다도 지금이 그런 비전의 실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 위력을 떨치고 있는 세계화의 힘 때문이다. (345, 346면)




126. 민주주의에 대한 저명한 이론가인 영국의 데이비드 비덤도 “보편적인 인간애뿐만 아니라 공동 위협에 대한 노출도 인권이 보편적이라는 주장을 정당화해 준다.”고 말했다. (347면)




127.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정치학자 브라이언 터너는 ‘인간의 연약함’과 ‘취약성’,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연민이 인류를 단결시키고 보편적 인권이 수용될 수 있는 기초를 닦을 수 있는 유일한 보편적 감정이라고 주장했다. (348면)




128. 마찬가지로 소유적 의무가 중세의 신앙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세계관을 구성했고, 재산권이 물질적 진보의 시대에 실용주의를 구축했으며, 다가오는 새 시대에는 인권이 세계화 의식을 고무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기준이 되고 있다. (349면)




129. 다른 사람의 곤경과 고통에 공감해야만이 보편적 인권을 존중할 수 있다. (349면)




130. 이성의 시대에서 공감의 시대로 ... 지금 도래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는 공통된 취약성을 보호하고 세계화 의식을 갖기 위한 수단이 바로 공감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 경험을 깊이 나누는 것을 말한다. (350면)




131. 이타심은 공감만큼 깊지 않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이타주의를 기초로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지만, 그것은 공감과 달리 결코 우리 존재의 핵심에 이르지 못한다. 따라서 이타심으로는 인간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이다. (351면)




132. 실리적인 이성이 재산권을 기초로 한 ‘내 것 vs. sp 것’의 세계를 이끌었다면 이제는 공감이 보편적 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라는 새로운 세계로 이끌고 있다. 공감은 새로운 사회적 접착제이며, 보편적 인권은 세계화 의식을 증진하는 새로운 행동 규범이다. (351면)




133. 국적(시민권)의 개념은 세계화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크게 변하고 있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T. H. 마셜은 1950년에 발표한 논문 ‘시민권과 사회 계급’에서 시민권, 그리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가 발달해 온 과정을 세 단계로 분류했다. 시민권이 18세기에는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19세기에는 정치적 권리를, 20세기에는 사회적 권리를 제공했다고 적었다.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사유 재산권과 그와 관련된 각종 권리들, 즉 프라이버시 권리, 무기 소지 권리(미국의 경우), 표현, 종교, 언론의 자유 등을 보장했다. 정치적 권리는 참정권(선거권)을 재산이 있는 백인 남자에게서 여성, 소수민족, 빈민에게로 확대했다. 20세기 들어 추가된 사회적 권리에는 의료, 교육, 연금에 대한 권리가 포함되었다. 이처럼 시민의 권리가 발달한 것은 국민 모두에게 온전하고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353면)




134. ‘시민citizen'이라는 용어 자체도 세계화된 사회에 등장하고 있는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기에 적절치 않다. ‘citizen'의 어원은 라틴어 civis로 ‘한 도시의 구성원’을 의미한다. 따라서 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그의 권리와 의무가 한 장소에 국한된다. 그러나 보편적 인권은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으며 국가의 바탕이 되는 영토와는 별도로 존재한다. 권리운동가들이 ‘시민권’이 아니라 ‘인권’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권리를 영토와 결부시키는 옛 사고방식과 영토를 탈피한 보편적 권리라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다. (354, 355면)




135. 인권의 시대는 1945년 UN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355면)




136. UN은 아직 보편적 인권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을 누리지 못하지만 EU는 다르다. EU는 회원국과 그 관할 내에 살고 있는 4억 5500만 인구를 대상으로 보편적 인권 조항을 집행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역사상 최초의 비 영토 기반 정치 체제다. (357면)




137. 유러피언 드림과 보편적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다. 꿈은 염원을 담고 있으며, 보편적 인권은 유럽인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한 행동 규범을 제시한다. (359면)




138. 재산권이 자율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보편적 인권은 상호 관계에 포함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인권은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포함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여성, 소수민족, 문화 집단, 장애자, 어린이, 동물의 권리 등 어떤 관계에 동등하게 포함될 수 있는 모든 권리가 중시된다. (361면)




139. 그러나 만약 모든 개인과 그룹이 독특한 정체성과 상호 충돌하는 이해 관계를 갖고 있다면, 인정받고 포함해 줄 것을 요구하는 다른 사람이나 그룹의 의사를 존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공감’이다. 다시 말해 연약성과 취약성,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투쟁 속에서 자신의 투쟁을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세계관이 다르며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투쟁을 벌인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네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따름으로써 가능하다. 어쩌면 “남이 네게 하기를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마라.”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361면)




140. 네트워크는 구성원 모두가 중요하며 한 사람이 독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개념에 기초한다. 네트워크에 속하려면 자신의 이익을 어느 정도 희생하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며,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보답하며, 타협해야 한다. 또 전체의 복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네트워크는 서로 경쟁하고 적대적인 자본주의 시장과 달리 상호 의존적이고 협력적이다. 또 네트워크에서는 개인이 단체에 권한의 일부를 넘겨 준다. 그것은 반드시 자애에서라기보다 연약성과 취약성에 대한 공동 인식에서 비롯된다. 복잡다단하고 다단계로 구성되어 늘 상호 작용하는 세계에서는 누구도 독자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모든 구성원이 취약하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요즘의 위협은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에서 진정코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세계에서는 서로 협력하는 것이 더 이상 생색내기나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필수 요소로 작용한다. (362면)




141. 따라서 네트워크 통치 체제는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리스크를 공동을 감수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단계 통치 체제에서 다른 구성원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각자는 존중받고 인정받으려는 다른 구성원의 투쟁을 인식하게 된다. 다단계 통치 네트워크는 공감을 탐구하는 거대한 실험실인 셈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통치 체제는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꿈과 곤경을 이해하고 공감해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이해 관계를 타협하려면 무엇보다 누구나 인정받기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법제화한 것이 보편적 인권이다. 보편적 인권이란 여성이든, 소수민족이든, 다른 문화이든, 어린이든, 동물이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지구든, 모든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선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362, 363면)




142. 세계화하는 사회에서 수억의 유럽 인구가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가운데 인권을 둘러싼 투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364면)




143. EU국가들은 국가 주권보다는 국제법을 최고의 권위로 간주하며, 그 아래서 상호 협력하는 쪽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해 왔다. 유러피언 드림은 자율이 아니라 포괄성을 추구한다. (379면)




144. 최고의 권위가 주권 국가에 있는 세계에서는 보편적 인권이란 위선에 불과하다. (381면)




145. “1945년 이후 유럽의 핵심 개념은 1648년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으로 등장한 세력 균형의 원칙과 개별 국가의 패권 야욕을 전면 거부하는 것이었으며 그 기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피셔를 비롯한 유럽의 지도자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비전에 젖은 해묵은 이념을 영구 평화의 새로운 비전으로 대체하기로 다짐했다. 새로운 유러피엄 드림은 수세기 전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95년 ‘영구 평화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 논문은 당시에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지만 2차 세계대전 후 재조명되면서 유럽의 새로운 지도자들에게 거의 ‘성전’으로 간주되어 왔다. 칸트는 ‘세계 공화국’을 통해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평화’가 이루어지는 세계를 그렸다. 칸트는 모든 국가는 대표 통치 체제를 수용하면 그런 세계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민주 원칙을 확산시킴으로써 분쟁보다는 협력을 도모하여 세계적인 질서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385면)




146. 유럽인들이 ‘세계 단일 정부’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적 사고방식이 강화되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믿는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상호 존중하며, 공감하는 방식을 말한다. 유럽의 지도자들이 최후 통첩보다는 협상을, 비난보다는 화해를, 경쟁보다는 협력을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385면)




147. 미국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인 로버트 케이건은 국제 무대에서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해 유럽과 미국의 견해가 점점 벌어지는 상황을 이렇게 요약했다. “무력 행사의 가장 중요한 무넺, 즉 영향력, 도덕성, 바람직함 등에 있어서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의 시각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유럽은 무력에서 멀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무력을 초월해 법과 규율, 초국가적 협상과 협력의 세계로 이동하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적 평화’가 실현되는 새로운 낙원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과거에 얽매여 있다. 국제법과 규정이 신빙성이 없으며 진정한 안전과 방위, 질서가 군사력 보유와 사용에 의존하는 홉스의 세계에서 실질적인 무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387면)




148. 하버드 케네디스쿨의 조지프 나이 교수는, 유럽의 새로운 공동 외교 및 안보 정책을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발휘로 본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자기 편으로 흡수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389면)




149. 미국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오만한 ‘골목 대장’으로 본다. 약한 나라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타임유럽’의 조사에 따르면 유럽인의 87퍼센트가 “미국이 2003년 세계평화에 최대 위험을 안겼다.”고 생각했다. (390면)




150. 200여 년 전에는 민주주의의 대망과 행복을 추구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로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곳이 미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세계의 눈길이 포용성, 문화적 다양성, 보편적 인권, 삶의 질, 지속 가능한 개발, 평화 공존에 중점을 두는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 쪽으로 더 많이 옳아가고 있다. (391면)




151. EU의 외교 및 안보 정책을 비판하는 미국인들은 유럽이 국제 무대에서 ‘선량한 이상주의자’(good guy idealist)로 자임하는 유일한 이유가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이 ‘가부장적 현실주의자’(big daddy realist)로서 유럽과 세계 다른 지역에서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악역’을 떠맡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유럽의 부담을 덜어 주고 있다는 것이 자주 들리는 불평 가운데 하나다. (398면)




152. 그러나 유럽인들의 견지에서는 미국인들이 ‘EU의 유치한 이상주의’라고 조롱하는 것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유럽인들은 대화와 협상, 공감대 형성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쌓고, 해묵은 적대 관계를 청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크게 보면 EU의 25개 회원국 자체가 그런 방식이 효과가 있다는 증거다. 그들은 파벌이 다르고 이해 관계가 다른 450만명의 유럽인들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서로간의 증오심을 극복하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평화와 경제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면 유럽을 넘어서 세계 전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399면)




153. 유럽인들은 GM 식품을 지속가능한 개발과 문화적 다양성 보호라는 유러피언 드림의 핵심 원칙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한다. (414면)




154. 산성비가 독일의 흑림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력,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 유럽의 많은 부분에 확산된 치명적인 방사능 구름, 지구 온난화에 의한 기상 이변으로 중유럽 및 동유럽에서 발생한 홍수, 화학 및 생물 무기의 확산 등으로 유럽인들이 새로운 시대에 수반되는 환경 및 건강 리스크에 민감해진 것이다. (418면)




155. EU는 지구 환경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정치적 비전의 핵심으로 강조한 사상 최초의 통치 체제다. (418면)




156. 유럽의 지성인들은 ‘리스크 감수’의 시대에서 ‘리스크 예방’의 시대로 가는 대전환을 두고 토의를 벌이고 있다. 미국의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그런 토의가 거의 없다. (419면)




157. 보험의 개념, 특히 공공 보험은 유럽에서 훨씬 많이 발달했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유럽인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지는 계몽주의의 자율적 개인 개념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때로는 불편함을 무릅쓰면서까지 개인의 자율과 집단의 리스크 공유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 왔다. (420면)




158.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래 지난 50년 동안 이루어진 질적 변화는 모든 종류의 리스크가 이제는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며, 끝없이 지속될 수 있고, 그 결과를 가늠하기 힘들 뿐 아니라, 보상 대책도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 오늘날의 리스크는 모두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모두가 취약하고 모두가 희생될 수 있다면, 리스크를 계산하고 공동 부담하는 전통적 개념이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바로 그것을 유럽의 학자들은 ‘리스크 사회’라고 부른다. (420면)




159. 2002년 11월 EU 집행위원회는 과학과 기술의 혁신, 그리고 시장, 사회, 환경에 신상품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하나의 규제 수단으로 ‘예방 원칙’을 사용한다는 법령을 채택했다. .. 이 법령에서 핵심 단어는 ‘불확실’이다. 잠재적인 유해 영향을 시사하는 정황 증거는 많지만 충분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예방 원칙이 적용된다. 규제 당국은 그 활동들을 전면 중단시키거나 수정된 계획을 채택하도록 함으로써 원인적 영향력을 검토하든지, 아니면 실험규정을 만들어 그 결과를 더 자세히 측정함으로써 안전책을 강구한다. (422면)




160. 독일 당국은 이렇게 선언했다. “예방 원칙은 건강이나 환경에 심각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위협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유해성 여부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나오기 전에 조치와 방치의 대가와 혜택을 고려한 결과 잠재적 위험을 줄일 필요가 있는 경우 적용되어야 한다.” 예방 원칙은 피해가 가해진 뒤뿐만 아니라, 과학적 확실성이 과거의 정상적인 기준보다 낮은 경우에도 사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과학적 확실성’은 ‘우려의 합당한 근거’라는 개념으로 완화되었다. 예방 원칙은 당국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424면)




161. 그러나 예방 원칙의 중요성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예방 원칙은 사회가 자연과의 관계를 보는 방식, 과학적 탐구와 기술 혁신을 보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유럽의 계몽주의 전통은(지금은 미국이 가장 열렬한 옹호자가 되었지만) 자연을 제어하는 힘을 중시한다. 대개 미국인들은 자연이란 생산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되기를 기다리는 유용한 자원의 보고로 본다. 물론 유럽인들도 그런 실용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미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또 다른 감각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의 내재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다. (427면)




162. 유럽인들은 자연에 대한 실용적인 태도와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자세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로 인해 유럽인들은 지속가능한 개발과 환경 문제에 대한 책임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예방원칙이 상업적 개발과 자연 환경의 보존 사이에서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한 가지 수단으로 간주된다. (428면)




163. 유럽인들의 심리는 언제나 ‘연결성’을 중시한다. 예방 원칙은 모든 과학 실험이나 기술 개발, 또는 상품 도입이 복잡하고 측정하기 어렵지만 환경에 수많은 면에서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리스크를 측정하는 기존의 방법으로서는 수량화하기 어렵고 예측 불가능한 자연의 미묘한 관계들을 설명할 수 없다. (429면)




164. 과학과 기술이 강력해질수록 그 영향과 결과는 더욱 복잡해지고 예측 불가능해진다. (431면)




165. 뉴턴의 이런 기계론적 법칙은 과학과 기술이 좀더 좁은 범위에서 적용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분리될 수 있고, 시간이 정해질 수 있으며, 측정될 수 있고, 정확히 수량화될 수 있는 현상들은 그런 방법으로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자 이런 환원주의적이고 기계론적 사고방식은 자연의 상호 연결성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제한된 개념이었다. (431면)




166. 그에 따라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는 옛 개념을 사라지고, 그 대신 각 요소를 알려면 먼저 그 요소와 전체와의 관계부터 알아야 한다는 개념이 자리잡게 도었다.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서로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새로운 과학은 ‘시스템이론’이라고 불렸다. 시스템 이론은 자연의 본질에 대한 기존의 개념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또 인간 사회에서 자율적인 개인이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자신의 사리를 최대한 추구한다는 아이디어에도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432면)




167. 생태학의 모델에 따르면 자연은 수많은 공생 관계로 이루어지며, 각 유기체의 운명은 경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상호 관계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다윈의 생물학이 개체와 종에 치중하면서 환경을 자원의 배경으로만 격하시킨 반면, 생태학은 환경을 각 개체들 사이의 관계가 형성되는 전체로 본다. (433면)




168.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로크와 미국의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는 1970년대에 ‘가이아Gaia' 가설을 발표함으로써 베르나드스키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은 지구가 자체적인 조절 기능을 가진 생명체처럼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동식물과 대기권의 지구화학적 화합물들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지구의 기후를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상태로 유지한다는 것이다. (434면)




169. EU가 25개 회원국들에게 지운 임무가 바로 그것이다. EU가 ‘예방 원칙’을 도입한 것은 상업적 개발을 포기한다거나 특정 경제 활동을 중지하는 한이 있더라도 생명체를 유지하는 생물권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제1의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는 증거다. (436면)




170. 예방 원칙은 우리가 무모하게 행동하지 않고 보수적으로 신중하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준다. 생물권에 해가 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행위는, 그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되거나 똑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나올 때까지 완전히 금지하거나 중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 아이디어다. (436면)




171. 유럽인들에게는 시스템적 사고방식이 그리 낯설지 않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상당한 무리인 것 같다. 시스템의 한 부분이 된다는 생각 자체가 제한을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한 부분일 뿐 아니라 개인으로서 전체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437면)




172. 생태학과 자체 조절되는 생물권의 개념은 전부 상호 관계와 네트워크를 전제로 한다. 생태학자 버너드 패튼은 “생태학이란 네트워크다. ... 생태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437면)




173. 제2의 과학 계몽주의는 거의 1세기 전부터 준비되어 왔다. 19세기 말의 열역학과 유기생물학, 20세기 초의 불확실성 원칙, 양자역학, 과정철학, 생태학, 2차 대전 후의 정보 이론과 함께 등장한 사이버네틱스와 시스템적 사고방식, 그리고 복잡성 이론 및 소산 구조와 자기 조직화 등은 전통적 계몽주의 과학의 기초를 무너뜨리며 21세기를 위한 새로운 과학의 길을 여는 데 기여했다. (438, 439면)




174.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다. 유럽은 ‘푸른’ 수소의 미래를 만들려고 하는 반면 미국 백악관의 계획은 수소를 얻는 주요 출처인 석탄과 원자력을 사용하는 ‘검은’ 수소로 미래를 장려하는 것이다. (441면)




175. 모한다스(마하트마) 간디는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의 동물들이 어떻게 대우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간디의 견해는 르네 데카르트의 믿음과 큰 차이를 보인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단지 ‘영혼 없는 기계 장치’로 보았다. 동물은 복지를 따질 필요가 없고, 단지 인간이 시킨 일을 하거나 식품의 재료가 되는 자원이라는 것이다. (445면)




176. 가장 큰 전기가 된 것은 1997년 EU, 회원국들이 체결한 암스테르담 조약에 첨부된 동물 복지 규약의 두 단어였다. EU 회원국들은 “자각적 존재로서 동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데 합의했다. 여기서 의미심장한 것이 “자각적 존재sentient beings”라는 두 단어였다. (446면)




177. 2002년 3월 독일 하원은 동물의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한 세계 최초의 의회가 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독일 정부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도록 규정한 헌법 조항에 동물을 추가하기로 한 것이다. 그 안은 ‘543 대 15’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통과되었다. 수정된 조항은 이렇다. “국가는 미래 세대를 위해 생명체와 동물의 자연기반을 보호할 책임을 갖는다.” 그 조항에 따라 앞으로 독일 정부는 동물의 권리를 과학 탐구와 종교의 자유 등 다른 권리에 견주어 그 비중을 판단해야 한다. (446, 447면)




178. 오늘날 미국의 하버드와 나머지 스물다섯 개의 로스쿨들은 동물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과정을 개설했다. 또 동물의 권리에 관한 소송 건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450면)




179. 우리의 공동 생물권을 이루는 모든 공동체 네트워크들이 수많은 공생 관계로 연결되고 얽혀 있다면 한 종에 대한 위험은 인간을 포함해 다른 모든 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가축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가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예를 들어 광우병이 발생한 것은 농민들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축의 사채를 사료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를 소에게 먹인 것이 광우병 소동을 부른 원인이다. 결국 그 쇠고기를 먹은 인간들이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생명을 잃었다. (451면)




180. 동물에게 해로운 것이 인간에게도 해롭다는 격언의 가장 비근한 예가 항생제 남용이다. 소, 돼지, 닭 등의 가축들은 공장식 농장의 비좁은 공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인해 면역 체제가 약화되어 질병에 걸리기 쉽다. 또 비좁은 공간에서 질병은 신속히 전파된다. 그 결과 항생제가 점점 많이 필요해진다.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면 내성이 더욱 강한 변종 박테리아가 생겨나 기존의 항생제로서는 잘 퇴치되지 않는다. 보건 관리들은 항생제의 효과가 점점 떨어져 인류가 중대한 건강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451, 452면)




181. 동물 보호 문제와 관련해 가장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는 부분이 의학 연구를 위한 동물 실험이다. 그것은 과학자들과 일반 대중의 생각에 이 문제가 ‘동물의 권리 vs. 인간의 권리’로 비치기 때문이다. 의학 연구자들은 동물을 대상으로 신약 테스트나 실험 수술을 할 수 없다면 심각한 인간 질병에 대한 치료책이 적기에 개발될 수 없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인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가들은 의학 용도의 실험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고 있으며, 동물에 대한 실험 결과를 인간에 적용하는 방식이 거의 소용없는 경우가 많다고 반박한다. (452, 453면)




182. EU는 “동물 실험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법령을 발표한 세계최초의 통치체제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렇게 부연 설명했다. “동물 실험을 대체할 방법이 없는 경우, 연구자들은 최소한의 동물을 사용하고, 신경생리학적 감각이 가장 낮은 동물을 사용하며, 최소한의 고통과 스트레스, 부작용을 가하는 실험을 하거나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실험을 택해야 한다.” (453면)




183. EU는 화장품 개발을 위한 동물 실험을 금지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453면)




184. 세계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지역적으로 소속되기를 갈망하는 세대는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지속 가능성, 심오한 놀이,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평화에 중점을 두는 유러피언 드림에 점점 더 매력을 느끼고 있다. (461면)




185. 유럽은 세계적으로 상호 의존하는 세계의 현실을 가장 먼저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옳기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그 뒤를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61면)




186. EU모델을 따를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지역은 동아시아 공동체다. (463면)




187. 니스벳은 서양인들이 세계를 각각의 분리된 대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반면 동양인들은 세계를 전체 맥락 속의 관계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서양인들은 개인을 중시하고 동양인들은 전체를 중시한다. 동양의 개인 정체성은 자신이 속한 그룹과 분리될 수 없다. 철학자 헨리 로즈마운트는 유교 사상과 관련해 이렇게 적었다. “독립된 ‘나’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있을 수 없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의 총체다. ... 전체적으로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맞물려 있다. 내 역할이 일부 변하면 다른 사람의 역할도 반드시 변하게 된다. 그로써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467면)




188. 또 동양인들은 모순으로 가득 찬 세계를 수용한다. 반면 서양인들, 특히 미국인들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그들은 세계를 좀더 합리적으로 바라보며, 모순을 진보의 방해꾼이라고 믿고 그것을 없애거나 극복하려고 한다. 니스벳은 “동양인들의 경우 하나의 일을 이해하려면 그 반대의 일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면 전체는 서로 반대되는 힘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다. 서로 반대되는 힘, 즉 양과 음이 합쳐져 서로를 완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467면)




189. 계몽주의 과학이 “인간의 이미지에 맞도록 자연을 개조한다.‘는 사상에 기초한 반면 ”동양의 과학관은 인간이 환경을 조작할 수 없으며, 인간은 환경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상에 기초한다.“고 정치학자 무사코지 킨히데는 말했다. (468면)




190. 나 개인적으로는 유럽이 미국의 극단적 개인화와 아시아의 극단적 집단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그 새로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믿는다. 유럽인들은 개인적 자유와 집단적 책임 둘 다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감수성이 풍부하다. 유럽의 비전이 미국과 아시아의 세계관 가운데서 최상의 자질을 융합할 수 있다면 유러피언 드림은 서양과 동양 전부가 동경할 수 있는 이상적인 꿈이 될 것이다. (470면)




191. 선진국의 많은 부유한 소비자들은 육류 식단을 즐긴다. 그들은 자신의 식단이 제3세계의 빈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의 80퍼센트가 곡물 생산이 남아도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중 많은 부분이 사료로 사용되며 그 사료를 먹는 가축들이 도축되어 세계의 부유층 가정의 식탁에 올려진다. 특히 다음 사항을 생각하면 문제의 심각성은 잘 드러난다. 1에이커에서 생산되는 곡물에서 나오는 단백질은 1에이커의 땅에서 생산되는 육류보다 두 배에서 열 배나 많다. 콩과류의 경우는 열 배에서 스무 배, 채소류의 단백질은 열다섯 배나 많다. (473면)




192. 현재의 식품 생산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선진국의 부유한 소비자들이 곡류로 사육한 기름진 육류를 무절제하게 섭취함으로써 심장병, 뇌졸중, 당뇨병, 암 등 소위 ‘부자병’으로 죽어 가고 있는 반면, 제3세계의 빈민들은 가족을 먹여 살릴 식용 곡류를 재배할 땅을 확보하지 못해 ‘가난병’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473면)




193.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는 자신이 속한 관계의 틀에서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서양 역사의 지난 수백 년 동안 개인의 자아가 차지했던 중심부를 이제 네트워크 관계가 차지하게 되었다.” (거겐) 서양인과 동양인의 의식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길을 걸어 왔지만 이제는 서양인의 의식이 동양인의 의식을 닮아 가기 시작했다. (486면)




194. 그러나 유럽인들의 마음에는 비관주의가 깊이 뿌리 박고 있다. 유럽인들이 겪은 수많은 정치 및 사회 실험의 실패와 오랜 역사에 걸친 유혈 참상을 감안하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실패는 낙담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실패는 우리를 더욱 강하고, 유연하며, 현명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유럽인들이 냉소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순진한 낙관주의를 극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매혹적으로 보이는 꿈이라도 비관주의와 냉소주의가 팽배한 분위기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496면)




195. 유러피언 드림은 이 어둡고 험난한 세상에서 길을 인도하는 등대다. 그 등불은 포괄성, 다양성, 삶의 질, 심오한 놀이, 지속 가능성, 보편적 인권, 자연의 권리, 지구상의 평화로 정의되는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손짓하며 부른다. 미국인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목숨을 바칠 가치가 있는 꿈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삶을 추구할 가치가 있게 해 주는 꿈이다. (49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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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arazzi 2009-07-19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이우현 2013-05-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여기는 중국 천진입니다.

이우현 2013-05-1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여기는 중국 천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