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이론과 실천
마이클 프리먼 지음, 김철효 옮김 / 아르케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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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인권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려면 인권의 개념을 분석하여야 한다. 철학의 한 분야인 개념분석(conceptual analysis)은 이렇게 개념을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개념을 개념분석 방법만으로 다루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며 개념분석도 추상적인 학문분야여서 인간이 실제 경험하는 것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권의 개념을 분석할 때는, 인권이라는 개념이 다루고자 하는 인간이 실제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동정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16, 17면)




2. 만약 현실의 논리가 인권을 침해한다면, 우리는 왜 현실의 편에 서지 않고 인권의 편에 서야 하는가? 우리는 인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는가? 이와 관련하여 아우슈비츠 나치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철학자 장 아메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치가 더 강했으면, 그렇기 때문에 그저 정당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에게 권리라는 것이 있는가? 모든 도덕개념은 어차피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었는가? 이것이 역사의 현실이 아닌가? 그리스 문명도 결국 노예제와 학살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었던가? 나치독일이라고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17면)




3. 일상생활에서는 인권보다 평범한 친절이 더 중요한 것이다.(Glover) 하지만 때로는 보통사람들에게도 일상생활이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보통사람들도 테러나 대량학살, 집단강간 또는 ‘인종청소’에 처할 수 있다.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권의 개념은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잃어버리거나 빼앗겨버렸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기기 시작한다. 인권이 일반적으로 잘 존중될 때에 우리는 인권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한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인권은 가장 심하게 침해되었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다. (18면)




4. 인권은, 완전히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정도로 법률적인 개념이다. 인권법의 시작은 국제연합(UN) 총회가 1948년 12월 10일 채택한 세계인권선언이다. 역사학자 요하네스 모르싱크가 말한 것처럼 세계인권선언은 “인권에 관한 온갖 의정서, 협약, 조약 혹은 선언 등의 형태로 확산되면서 국제적 지평을 심대하게 변화시켰다.” 오늘날 “어떠한 국가나 문화 또는 개인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인권레짐에 걸려 들지 않는 경우가 없다.” 이 선언은 파시즘에 대항한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이상주의의 정신 아래에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맺은 일련의 원대한 약속들이다. (18면)




5. 세계인권선언의 약속과 현실세계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의 사실 사이에는 분명히 큰 격차가 존재한다. 피해자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인권선언의 약속을 어기고 있는 UN과 회원국들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이상과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는 측은한 마음이나 법률분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여러 사회과학 분야를 동원하여 사회갈등과 정치탄압의 원인, 국내정치와 국제정치 간의 상호작용 등을 연구해야 이해가 가능하다. 한편 국제정치의 장은 인권보다는 다른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는 국가나 여타의 힘센 행위자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의 국가들이 인권을 선언하는 데는 참여하지만 그 이행에 관한 기록은 누더기와 같다. 이러한 사실들이 인권에 관하여 나타나는 주된 특징들이다. 우리는 왜 이러한가를 이해하여야 한다. (18, 19면)




6. 이 공존가능성의 문제는 이른바 ‘권리 인플레이션’(rights inflation) 현상, 즉 인권의 개념이 확장되어 무분별하게 다양한 요구의 근거로 이용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세계인권선언조차 ‘유급정기휴가’의 권리와 같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인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유용하려면, 인권과 기타의 사회적 요구를 구분하여야 한다. 개인의 법적 권리는 사법부가 더 정확하게 규정할 수 있겠지만, 인권은 다소 모호한 언어로 표현되며 그 의미 또한 사법부가 항상 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을 명쾌하게 이해하려면 개념분석, 도덕적 판단 그리고 사회과학 지식이 필요하다. 인권 개념이 유용하려면 인권(human rights)은 특정 사회의 법적 권리(legal rights)나 기타 바람직한 목표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20면)




7. ... 하지만 매킨타이어가 인권을 마치 팔다리처럼 ‘가질 수 있는 사물’로 여기는 것은 어휘 때문에 생긴 착각이다. 우리가 마치 휴대폰을 가지는 것처럼 권리를 ‘가진다’(have)라고 표현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인 것이다. 권리는 복잡한 성질을 가지면서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비한 사물이 아니라, 도덕적, 법적 규칙에 근거한 정당한 요구 또는 정당한 자격이다. 권리의 개념이 이러할진대 인권을 믿는 것을 미신으로 치부하는 매킨타이어의 주장은 옳지 않다. (20, 21면)




8. 국제법은 전통적으로 국제평화의 유지를 목표로 국가간의 관계를 규제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왔다. 이 기획에서 가장 주요한 사고는 국가주권, 즉 국가는 다른 국가의 내정을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UN은 국제법에 인권 개념을 도입하면서도 이러한 주권 개념에는 수정을 가하지 않았다. 국제무대에서 국가와 여타 행위자들은 항상 자신의 이익과 원칙을 실현하려고 한다. 따라서 국제법 체계는 이들 행위자들에 의해 강한 정치적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UN의 인권에 대한 이행방식은 고도로 정치화되었으며, 그 결과 특정 인권문제에만 선별적으로 관심을 갖거나 인권문제를 놓고 정치적 흥정을 하거나 혹은 문제 해결에 늑장을 부리는 등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24면)




9. 냉전정치는 UN의 인권원칙 이행을 수십 년간 심각하게 지연, 왜곡했다. UN은 인권을 선포하였지만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실제 한 일은 거의 없었다. ... 이러한 상황에서 UN은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한편으로 국제인권 기준을 작성하고 그것을 수호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때때로 인권침해를 저지르는 정부들이 모인 연합체였기 때문이다. (24, 25면)




10. 법률가들이 인권 연구를 주도하고 있지만, 이들은 공공연하게 혹은 은연중에 법률실증주의 철학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인권법에서 인권이라고 정한 것만이 인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은 정치적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지고 해석된 것이다. ... 인권에 대한 법실증주의적 접근법은 인권의 성격을 잘못 이해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인권의 주안점은 인권을 침해하는 법률기관이나 법률을 비판하는 것이던 데 반해, 법실증주의자들은 흔히 법률로 집행가능한 권리만이 권리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인권이 법률로 집행가능해야 한다면 바람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그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에는 법적으로는 집행이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권이 법률로 집행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자신의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되며, 대부분은 그렇게 할 것이다. 굳이 자신의 인권을 호소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권에 호소하게 된 경우는 법적 장치가 인권을 인정하거나 집행하지 못하는 바로 그때다. 법실증주의가 옳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법제도가 부당한 행위를 할 때 그것을 비판하는 중요한 근거를 없애는 꼴이 될 것이다. (25면)




11. 존 로크가 처음으로 인권 이론을 제시할 당시에는 그리스트교의 신에서 인권의 근원을 찾았었다. ... 문제는 UN이 세계인권선언을 선포하면서였다. 인권이 보편적인 것이라 주장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더 이상 특정 종교의 신념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인권의 정당성이 여러 종교와 이념으로부터 추상된 것이어야 하게 된 것이다. (26면)




12. 인권운동이 법률가 덕분에 크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인권법에만 지나친 관심을 갖는다면 인권을 곡해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 책에서는 학제적 접근방식을 채택하여 법학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려고 애썼다. 인권이라는 개념은 수많은 철학적 논쟁들로 점철된 역사를 갖고 있다. ... 법률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권의 정치를 이해하여야 한다. 하지만 법학과 정치학만으로 인권분야를 완전히 다룰 수도 없다. 인권문제와 그것이 어떻게 해결가능한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연구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인권이야말로 대표적인 학제적 개념인 것이다. (28면)




13. 18세기를 지나면서 자연권 개념이 점차 탈종교화되자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도덕과 정치에 필요한 원칙들을 이성에 근거하여 자연에서 도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18세기 말 탈종교화된 자연권을 주장한 사상가들은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그 근거가 대체로 매우 약했다. 당시 자유주의적 도덕철학을 구성하려는 여러 시도가 있던 중 단연 돋보이는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였다. 그는 윤리와 정치의 원칙체계는 타인을 이성적이고 자주적인 도덕적 행위자로 인정하고 타인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43면)




14. 하지만 자연권을 비판하는 이들은 자연권 옹호자들이 선언이나 좋아했지 주장에는 논거가 부족하다고 비웃기 시작했다. 또한 자연권이 여러 문화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관념에서 나왔음을 밝히려는 시도는 오히려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밝히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결국 18세기 말 자연권 개념은 현실에서는 미국혁명이라는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론적으로는 기초가 여전히 불안정한 채로 남게 된 것이다. (44면)




15. 그(페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게 되면 필연적으로 타인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동기부여가 된다. 이는 권리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 즉 권리의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의무의 시스템이라는 뜻이 된다. (46면)




16. 하지만 자연권 이론은 권리를 제한할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벤담은 효율성(utility)의 원칙이 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고 믿었다. (49면)




17. 하지만 사회개혁을 위한 운동의 근거는 대체로 자연권이 아닌 공리주의에서 찾았다. (Waldron) 다만 노동계급운동과 사회주의운동이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 사실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52면)




18. 19세기에 자연권 개념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공리주의나 과학적 실증주의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보인 나치주의라는 끔찍한 현상을 적절히 설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인권의 언어가 훨씬 더 적절하게 여겨졌다. (54면)




19. ‘자연권’(natural rights)을 ‘인권’(human rights)이라는 용어로 대체한 것은 이전에 권리의 기반을 자연에 두어서 발생하였던 철학적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전통을 가졌지만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자연권이라는 기반을 배제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기반은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이것은 근본적인 가치나 신념에 대한 합의를 구하는 과정을 생략함으로써 규범(규칙)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게 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 (57면)




20. 그러나 비호를 구하고 받을 권리는 최근 가장 중요하고도 논란이 많은 인권관련 주제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 종류의 심각한 인권 침해로 인해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으나, 인권 보호를 내세우는 여러 국가들조차 외국인에게 제14조 인권을 보장하는 일은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60면)




21. 한편 제24조에 포함된 ‘정기적인 유급휴가’에 대한 권리는 종종 비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일부 한정된 사회조건에서만 적용될 수 있는 권리를 보편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권과 여타의 권리를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63면)




22. 인간의 권리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중 하나는 이 개념이 인간의 의무에 대한 강조를 간과하여 이기심과 사회갈등을 조장한다는 것이다. (64면)




23. 사실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되어 있는 UN의 인권 개념은 그 철학적 정당성에 관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인권 개념에 철학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하면, 권리에 관한 모든 철학 이론이 그러했듯이 분명히 논란 거리가 될 것이고, 철학적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으면, 그 도덕적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세계인권선언은 이러한 딜레마를 회피하면서, 인권 개념이란 철학적인 논란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라고 넌지시 비치기만 하였다. 한편 일부 법률가들은 법실증주의를 통하여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한다. (65면)




24. 1966년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ICCPR)과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ESCR)에 대한 서명과 비준이 시작되었다. 1976년에는 발효에 필요한 35개국이 비준함으로써 이 두 규약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세계인권선언과 이 두 조약을 묶어서 흔히 국제권리장전이라 부르며, 오늘날 국제인권법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70면)




25. 제3세대 권리론(발전, 평화, 건강한 환경, 자기결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1) ‘세대’라는 단어가 적절치 않다. 한 세대는 그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인데, 소위 각 세대의 인권들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새대’라는 개념은 특정한 인권의 역사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인데, 이 또한 문제가 있다. 제1세대 인권과 제2세대 인권은 동시에 세계인권선언에 의해서 인정된 것이다. 3) 제3세대 인권은 그 권리를 보유한 자가 개인인지, 인민인지, 국가인지 혹은 이들이 결합된 형태인지가 명확하지 않다. 4) 또한 그 권리를 가진 이들이 무엇에 대한 권리를 가졌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5) 그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는 누가 지는지, 혹은 그 의무가 무엇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6) 이러한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권위주의 정권으로 하여금 이미 확립된 기존의 인권들을 침해할 빌미를 제공하게 된다. 7) 제3세대 권리에 해당하는 것들은 사실 이미 확립된 기존의 인권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발전권은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서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다. (Donnelly, Freeman) (74, 75면)




26.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지구화’(globalization)가 인권에 위협이 된다는 우려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인권 의제는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 보다 호의적으로 옮겨졌다. 또한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operations:MNCs)과 같은 비국가행위자가 인권보호에 책임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난 후에,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 반대운동이 다시 한번 국제정치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80면)




27. 1945년 이래 UN은 ‘기준설정’(standard-setting)과 제도설립(institution-building) 그리고 인권보호를 위해 수많은 활동을 해왔다. 인권은 우리시대에 가장 영향력있는 개념이 되었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수많은 이들은 인권을 호소하며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UN은 스스로 정한 기준을 이행할 수 있는 역량이 아직 충분치 않다. 그리고 그 인권기준은 힘이 지배하는 현실 국제정치와 국가주권의 개념으로 인해 편파적으로만 이행되거나 거의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 하지만 실제의 행동을 대신해서 하는 입발림소리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NGO의 역할이 중요하다. (80, 81면)




28. UN은 세계정치에서 인권혁명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간 계속되어야 할 혁명이다. UN은 아직 그 시작단계에 있고 그 성공조차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인권의 국제정치는 국제정치의 일부분이다. 다시 말해 인권의 국제정치 역시 원칙의 체계적 이행보다는 이기주의, 실용주의, 단기적 위기관리에 의해 상당히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Forsythe) (81면)




29.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1966년 UN에서 채택되고 1976년 발효되었다. 그러나 UN은 규약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관리 위원회(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를 1986년이 되어서야 설립하였다. 알스턴(Alston)은 이 위원회가 여타의 UN인권기구보다 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에 관련된 많은 규범들은 개념적으로 불명확하고, 여러 정부들은 이 권리에 대한 의욕이 부족하며, 이 권리에 대한 이념적인 논란도 많다. 또한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인정하는 국내 제도가 부재하다는 문제, 규약의 준수 여부를 효과적으로 감독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범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와 그 정보가 매우 복잡하다는 문제, 공식적인 법률문서와 실제 판결 간의 관련성이 부족하다는 문제 등이 존재한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권에 관련하여 전문성을 갖추었거나 관심을 보이는 NGO도 실제로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위원회는 영향력이 작을 수밖에 없었다. (Alston) (82면)




30. 결국 인권레짐은 선언에는 강하지만 집행력과 강제력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국제정치의 주요 행위자, 즉 국가들의 이익이 반영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Donnelly) (83면)




31. 정치과학자 데이비드 포사이드(David Forsythe)는 인권 이론에 대해 다른 종류의 이의를 제기하였다. 철학 이론에는 원래부터 논란이 많기 때문에 이론에 너무 신경을 쓰다가는 인권을 실천하는데 방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87면)




32. 권리보유자에게는 자신의 권리 향유가 위협받거나 부정될 때 그 권리를 강력하게 청구할 특별한 자격이 부여되는데, 이것이 바로 권리 개념이 지닌 뛰어난 가치다.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단순히 어떤 이익을 누린다거나 타인의 의무로 인해 이익을 얻는다는 것과 구분되는 점이다. (Donnelly) (93면)




33. 권리담론이 정당한 이유는 사회질서가 부당할 때 거기에 저항하는 것을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정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권리에 호소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권리 개념이 사회조화를 깬다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근거다. (94면)




34. 존스(Jones)는 이러한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규칙공리주의(rule-utilitarianism)가 인권 이론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규칙공리주의에서는 우리가 공동선을 가장 잘 증진시킬 수 있는 규칙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규칙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타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한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정당한 규칙을 위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103면)




35. 한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만이 진정한 인권이라는 관점은 이미 널리 퍼져있다. 시믽거 및 정치적 권리는 정부로 하여금 어떠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요구만 하기 때문에(예를 들어 고문 중단의 요구) 보편적으로 성취될 수 있는 반면,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는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 제도(복지국가와 같은)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정부들이 감당할 수 없는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해야 할 의무는 있을 수 없으므로, 어떤 경제적 및 사회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을 누릴 권리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105면)




36. 이러한 주장에는 슈(Shue)와 도널리(Donnelly)가 효과적으로 대응하였다. 도널리는 두 종류의 권리 사이의 구분이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즉 재산권은 시민적 권리로 간주되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건데 경제적 권리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슈는 생존권과 같은 어떤 기본적 경제적 권리를 존중하지 못하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가 쓸모없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역시 비용이 많이 들 수 있으며(예를 들어 공정한 재판을 제공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든다), 정부가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거나 행동을 취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두 종류의 권리 모두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만이 진정한 인권이라고 여기는 데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105면)




37. 인권이라는 규범적 원칙은 사람들이 인권을 법률에 포함시키기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112면)




38. 인권을 이렇게 간과한 데는 정치과학에 영향을 많이 준 두 가지 관점, 즉 현실주의(realism)와 실증주의(positivism)의 영향과 관련이 있다. ... 이러한 상황은 1970년대, 특히 미국의 카터 대통령 집권 때부터 변하기 시작하였다. 인권이 국제정치 현실의 일부분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114면)




39. 1976년 리처드 클로드는 인권의 정치과학에 있어 중요하고 선구적인 저서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인권은 법절차의 분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사회과학자들이 인권을 발전하는 데 밑바탕에 깔고있는 사회적 동력을 연구해야 하며, 여기에는 역사적 접근과 비교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114면)




40. 1970년대까지 브라질의 경제는 빈곤층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하였으나,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부유층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졌고 그 권력을 기존의 불평등을 유지하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흥정 이론에서는 부유층과 권력층이 시간이 지나면 빈곤층과 취약계층의 권리를 보호해줄 것이라고 가정하였지만, 브라질의 사례는 그것이 옳지 않은 가설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116면)




41. 가장 확실한 권리 보장은 활발한 NGO(비정부단체)의 활동과 독립적이고 권한이 있으며 부패하지 않은 사법부 활동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가능하다. 권리 담론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 연대의식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문화적 맥락이 다른 곳에서도 새로운 문제에 대한 투쟁이 필요할 때면 쉽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도구적 가치가 있다. (119면)




42.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는 두드러지게 전통적인 사회라기보다는 근대적 정치, 경제 문제를 갖고 있는 근대적 사회다. 하워드는 아프리카가 물질적 자원과 정치적 권력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에 차이가 있었다는 점이 인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인권학계가 이 점을 간과해왔다고 지적하였다. 사회학적 현실주의가 결여된 법학적 이상주의에만 빠져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는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법률개혁만 하는 것은 충분치 않으며,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124면)




43. 이 이론(희생양이론)에 따르면 불만 유발자에게 공격을 향할 수 없으면, 그 공격이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분노 혹은 불만 유발자를 알 수 없거나, 알아도 접근할 수 없거나, 접근할 수 있더라도 너무 강력하거나, 도덕적으로 보호를 받는 집단이라면 공격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하여 옮겨진 공격의 대상은 누군지 알고 접근가능하고, 약하고, 경멸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되기 쉬운데 이것이 바로 희생양 이론이다. 소수민족들은 이러한 특징을 갖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불합리한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다. (129면)




44. 보편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의 논쟁은, 문화란 변화하는 것이고 인권도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이행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면 극복할 수 있다. (131면)




45. 그뿐만 아니라 당시 각국은 그것을 강한 레짐으로 발전시키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강한 인권레짐은 강대국의 외교정책이나 불안정한 지배세력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국제인권레짐이 약한 이유는 심각한 재원 부족 때문인데, 인권 증진을 주장하는 국가들이 자신들의 주장만큼 충분한 재원을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134면)




46. 니체는 윤리적 이상주의자들을 ‘현실로부터 떠나는 이민’이라고 표현했다. 인권의 사회과학이 해야 할 일은 인권지지자들을 현실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138면)




47. 역설적이게도 실증주의는 스스로가 하나의 윤리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적 현실처럼 사회과학도 권력의 장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이미 그렇듯 권력에만 더욱더 봉사하게 된다. 인권의 사회과학은 다른 목적을 가져야 하며, 윤리적 책무를 자각해야 한다. (139면)




48. 문화는 인권을 실현하는 데 다양한 방식으로 올바르게 관여할 수 있다. 인권의 원칙은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이지만, 항상 복잡하고 특수한 상황에서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특수한 상황 중에는 항상 지역문화가 포함될 것이다. 인권의 정당성이 인간존엄성의 보호와 증진에 있는 것이라면, 인권을 이행할 때 반드시 지역문화와 그 지역문화가 인간존엄성에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국제적인 문서만 가지고는 인권을 실현할 수 없다. 지역문화를 포함한 지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이 매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151면)




49. 그러나 비서구인들의 관점에서 보면 서구의 문화적 오만감으로 보일 수 있다. 비서구인들은 인권 원칙의 힘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인권 원칙을 기존의 문화들에 관련시키는 것은 그 문화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 기준을 그 문화에 통합되게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153면)




50. 국제관계학에서 인권 개념은 이상주의(idealism) 전통에 속하는데, 이는 정부에 요구하는 윤리 수준을 높게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껏 국제관계학에서는 현실주의(realism)이 지배적이었다. (177면)




51. 국내 인권 NGO들이 초국적인 지원을 구하는 움직임은 국제적 압력으로 전환되는데, 조건이 좋을 때에는 이를 통해 국내 단체들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다. 부메랑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는 세계적 여론에 달려 있다. 오늘날 시간이 갈수록 ‘규범의 물결’(norm cascades)도 퍼져나가고 있다. 다시 말해 인권 규범의 영향력이 확산되고 강화되어 이제는 인권운동을 피해 숨을 곳이 거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182면)




52. 빈곤의 여성화(feminization of poverty) ... 지구화는 성차별적이다. (206면)




53. 1999년 1월 UN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다국적 기업들이 9개의 인권 및 환경 원칙을 준수하겠다고 자발적으로 체결하는 협약인 ‘글로벌컴팩트’(Global Compact)를 제안하였다. ... 글로벌컴팩트는 지구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인권에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는 ‘구조주의’ 견해와 인권을 향상시키려는 의지만 있으면 방법은 찾을 수 있다는 ‘이상주의’ 혹은 ‘자발주의’ 견해 사이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좋은 실험이 될 것이다. 여하간 이 협약은 다국적 기업이 국제 인권 기준을 따르겠다는 공약이므로, 다국적 기업을 지금보다 책임있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13면)




54. 한때 ‘자본주의’로 향했던 적개심들이 오늘날에는 국제금융기구로 옮겨가고 있으며, 저항운동도 사회주의 사상보다는 인권, 개발, 환경문제 등 다양한 관심사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다. (217면)




55.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옳지 않음은 세계의 최빈층이 더더욱 빈곤해지는 현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UN의 정치 부문은 평화를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반면, 국제금융기구들은 더 심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주장함으로써 그 노력을 훼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18면)




56. 지구화 시대에 들면서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위한 투쟁이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싸움은 힘겨울 것이다. 여기에 반대하는 정치적, 경제적 세력이 너무나도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싸움에 실패한다면 정의를 지키지 못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세계의 많은 지역에 고통을 주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폭력 분쟁을 부추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21면)




57. 한편 최근 인권활동가들은 역시 인권침해의 구조적 근원들(다국적 기업과 국제금융기구)을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이상주의적 접근법과 구조주의적 접근법이 수렴되고 있는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다. (228면)




58. 그러나 대규모 인권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여성, 아동, 선주민, 소수민, 이주노동자, 비호희망인 등과 같은 취약집단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여기서 법학의 한계와 사회과학의 필요성이 명백히 드러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문제는 여태껏 인권의 담론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권의 정치경제학이 필요한 때다. (2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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