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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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의 모든 사람들처럼 나는 젋은 시절 여행을 했다. 나는 한 권의 책, 아니 아마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방황을 했다. (호르메 루이스 보르헤스, 20면)




2. 한 권의 책, 아니 책 목록에 대한 목록을 찾아 여행하는 여행자들은 A라는 책을 찾기 위해 A가 있는 장소를 지시하고 있는 B라는 책을 참조하는 사람들이고 B라는 책을 찾기 위해 먼저 C라는 책을 찾아 영원히 떠나며, 스스로 상상의 도서관을 짓는 사람들이고 스스로 불완전한 사서가 되는 사람들이고 스스로 기억의 궁전을 짓는 사람들이고 세계의 무한을 믿는 사람들이고 세계가 무한히 확장됨을 믿는 사람들이다. (21면)




3. ‘도서관’은 영원히 지속되리라. 불을 밝히고,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고, 고귀한 책들로 무장하고, 쓸모없고, 부식하지 않고, 비밀스러운 모습으로 말이다. (21면)




4. 도서관의 모든 책들은 동일한 원소들로 이뤄져 있다. 띄어쓰기에 따른 공백과 마침표와 쉼표, 그리고 철자들. 그러나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도서관 열람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도서관이 거대하다 할지라도 똑같은 두 권의 책은 없다’는 것이다. 상상의 도서관이 있는 한 말이다. 그런고로 상상의 도서관이 있는 한 세계는 무한하다. 그런고로 상상의 도서관 안에 있는 한 나는 무한히 확장된다. 그러므로 한 권의 책을 만난다는 것은 무한을 향해 고독 속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22면)




5. 진중권은 그와 마찬가지로 ‘미학 오디세이’에서 자기만의 영원한 황금 노끈을 엮는 작업을 시작했다. (23면)




6. 벤야민의 ‘베를린의 어린 시절’을 읽었을 때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벤야민은 ‘결코 쓰여지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했어요. ‘모든 것에는 언어가 들어 있다. 입이 없어 말하지 못하는 사물들에게 사물들의 메시지를 인간의 육성으로 전하겠다’, 그런 의지가 있었던 거죠. 나 역시 결코 쓰여지지 않은 것들을 읽는 것에 매료돼요. (진중권, 25면)




7. 나는 자신의 책에 대해서 가장 겸허하게 생각했다.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나의 애독자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건 잘못이다. ... 그들은 나의 독자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독자일 테니까. 나의 책은 콩브레의 안경점 주인이 손님 앞에 내놓은 확대 유리알과도 같이 일종의 확대경에 지나지 않아, 그 덕분에 그들 자신을 읽는 방편을 내가 제공해주는 구실을 한다. (발터 벤야민, 26면)




8. 개가식 도서관 안에 들어가서 헤매는 게 좋았어요. 한 권이 다른 책을 알려주고 그곳이야말로 미로였죠. 그때 보르헤스의 상상력은 도서관의 상상력이란 걸 알았죠. 도서관에 가서 놀아본 사람은 다 알 거예요. 아무 데나 가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보면 다른 책의 인용으로 이뤄진 게 책이란 걸 말이죠. 그래서 독창성이란 건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배치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들뢰즈 책을 보세요. 들뢰즈는 99퍼센트 남의 말을 다시 한 것입니다. 그의 독창성은 바로 배치입니다. (진중권, 29, 30면)




9. 내가 미학을 한다고 해서 미학책만 보면 정보량이 늘지 않았을 겁니다. ‘인간의 미감은 어떻게 발견되었는가?’ 이런 이야기의 해답은 미학책에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해답을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에서 찾았습니다. 문명화가 되면 모여 살게 되고 그럼 시력, 청력 같은 자연 지각능력은 떨어지고 대신 근거리 지각이 발달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냄새 같은 것에 민감해지는 거죠. 그러면서 에티켓이 생기고, 근거리 지각에 대한 쾌와 불쾌 감정이 미학으로서 민감하게 발달하는 거죠. 상상의 도서관 놀이는 링크하는 것입니다. (진중권, 30면)




10. 진중권이 독서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추천 도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이 목록을 만드는 것이다. 진중권이 책을 읽는 이유는 감동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맥락 속에서 자기만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이런 상상의 도서관 놀이를 통해서 그는 그런 책 한 권 쓰고 나면 ‘죽어도 좋아’라고 말할 만한 책을 몇 권 찾아냈는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아리에스의 ‘죽음 앞에 선 인간’ 같은 책이다. (30면)




11. 그가 전공으로 택한 것은 진정 천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괴짜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이었는데 이를테면 ‘인간은 언어를 혼자 만들 수 있을 수 있을까? 아니면 두 사람 이상이 필요할까?’라는 문제에서 진중권은 후자를 택했고, ‘인간은 사회관계 속에서만 인간이다’라는 입장은 정치적으로 공동체주의를 옹호하게 되고 경제에서도 최소한의 복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미학에서 출발한 그가 결국은 정치 시사에 대한 코멘트를 하게 만드는 단서가 되었다. (31, 32면)




12. 데리다 강의를 들을 때였어요. 강의제목은 ‘세계의 법 비판’이었는데 교재는 ‘법의 힘’이란 데리다의 텍스트였어요. 그런데 강의 시간에 보니까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실천을 놓고 학생들이 토론을 하는데 신문 기사를 갖고 하는 거예요. 추상적인 텍스트와 오늘의 기사가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진중권, 32면)




13. 새로운 시선을, 새로운 뷰포인트(viewpoint)를, 새로운 전망을 얻는 순간은 언제인가? (33, 34면)




14. ‘미학 오디세이’를 통해 예술적 소통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그의 ‘미학 오디세이’ 2권은 “나 혼자 꿈을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현실의 출발이다”라는 화가 훈데르트바서의 말로 문을 연다. (35면)




15. 그녀(정이현)는 컬럼비아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우리 몸이 별에서 합성된 원소들로 이뤄져 있다’는 어느 교수의 설명을 듣고는 잠이 확 깨버리는 경험을 한다. (40면)




16. 어린 시절의 나는 활자 중독증에 걸린 소녀였어요. (정이현, 46면)




17. 그러다가 5학년 때인가 처음으로 교보문고에 갔어요. 그런데 가서 혼자 울기 시작한 것예요. ‘이 세상에 이렇게 책이 많구나!’라는 놀라움이 ‘나는 참 미미한 존재구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거죠. ‘언젠가 내 책을 여기에 못 꽂아놓고 죽는다면 나는 아무 존재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죠. 최근에 아무 생각 없이 광화문 교보에 갔는데 그때 감정이 생각나서 약간 소름 끼쳤어요. 행복한 느낌이 아니라 복잡했어요. (정이현, 47, 48면)




18. “우리의 아름다움은 우리 게 아니오”라는 문장의 통찰력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자신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슬픔 뒤의 겸허함이란 걸 인정하게 된다. (63면)




19. 정말로 책 속에 길이 있고 구원이 있었어요. 나는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어요. 결국 그것들이 나를 이끌어냈어요. (공지영, 70면)




20.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이 있어요. 안셀름 그륀 신부가 지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책이예요.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이 문장이 나를 통째로 바꿔놓았죠. 이 문장을 읽고 나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제 피고석을 떠나겠어라고 선언했지요. (공지영, 70면)




21. “너 자신을 아프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 자신뿐이다” (안셀름 그륀, 71면)




22. 엄마는 충분히 불행했음에도 변화하기가 두려웠단다. 왜냐하면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미지이기 때문이지. 설사 여기에 괴로움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라면 그게 더 나았던 거야. (공지영, 72면)




23. 그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손 이외의 것으로는 파멸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 (74면)




24. 식사를 끝날 때마다 나는 접시 위에 남아 있는 조그만 빵 부스러기나, 식탁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식탁보 대신 사용하고 있는 거친 수건 위에 떨어진 빵 조각 같은 것도 다 정성껏 주워 먹곤 한다. 그러는 것은 결코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것을 어느 것 하나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다. (오스카 와일드, 76면)




25. 그래서 그런 묘사의 결과로 고리오 영감이 살았던 발자크의 파리, 그 도시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이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주인공이 아니라 끝없는 갈등의 세상이란 것, 누군가 주인공으로 애초에 따로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니라 누구나 소설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77면)




26. 세상에는 어떤 사건도 순수하고 단순하지 않다. 내 것, 또는 당신의 것이나 그의 것, 그녀의 것으로만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헤럴드 블룸, 79면)




27. “내 십자가엔 그리스도가 없다” (장정일, 101면)




28. ‘기억하기 위해서는 다시 찾아가야 한다’ (106면)




29. 이상하게 나(김탁환)는 ‘리심’의 한 문장이 자꾸 생각난다. “곁에 선 이가 나와 꼭 같은 영혼임을 깨닫는 순간이 있다.” (108면)




30. 마이크 피기스 감독의 영화 ‘라스베이거스르 떠나며’ ... ‘사람은 언제 자기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라고 묻는 영화. ‘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에라도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하나쯤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인간적인 것 아닌가“’라고 묻는 영화. (111면)




31. 책을 통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게 좋았죠. 내가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너무 한정되었고 복잡한 속내도 알지 못했는데 책을 통해서 사람들 속에 그런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임순례, 117면)




32. 내 기억에 가장 슬프다고 이야기한 내용들은 인간이 인간을 막 대하는 것, 인간이 인간에게 거칠게 예의없이 대하는 것,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었어요. (임순례, 118면)




33. ‘내 책상 위의 천사’의 여주인공 자넷 역시 뚱뚱하고 세상과 소통할 방법을 모르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덕에 길을 발견한다. (121, 122면)




34. 책을 볼 때 내가 중요시하는 것은 어떤 장면이나 줄거리보다는 작가의 시선이나 주제의식인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어떤 세계에 관심을 갖나? 어떤 문제에 관심을 갖다가 이렇게 흘러가나? (임순례, 125면)




35. 하지만 한 마리의 개가 주는 힌트는 한 마리의 개라도 제대로 사랑하면 전 우주를 다시 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는 거다. (126면)




36. 나는 다른 사람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만일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이 자기를 알리려고 하는 범위 내에서이다. (폴 오스터, 129면)




37. ... 이러한 문이 가지는 의미는 분명히 사람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인도한다는 데 있다. (니콜 라피에르, 138면)




38. 나의 경우에 ‘천고마비의 계절이다’라는 말을 ‘하늘을 높고 나는 (네가 너무 좋아서) 마비된다’라는 사랑의 고백으로 써먹었던 적이 있다. (144면)




39. ‘밤은 때가 되면 껍질이 벌어진다. 나도 저절로 밤이 벌어지듯 벌어졌다’ (145면)




40. 어느 날, 그녀(은희경)의 하숙집에 놀려 온 남자가 두고 간 존 레넌의 ‘모반의 카리스마’를 읽으면서 ‘이 남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세계를 알려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게 결혼의 한 계기가 되었다. (147면)




41. 지금 이 순간에도 태고적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던 우포늪에서 있었던 ‘백년보다 긴 하루’의 명장면들이 와락 떠오른다. 우리는 언제 영웅이 되는가? 사랑할 때 영웅이 된다고 말해주는 책. (150면)




42. 느림의 정도는 기억의 강도에 정비례하고 빠름의 정도는 망각의 정도에 정비례한다. (151면)




43.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 (쿤데라, 151면)




44. 데카르트는 독서를 대화라고 말했지만 프루스트는 독서가 대화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읽는다는 것은 “혼자 남은 상태에서 고독 속에서만 발휘되고 대화가 시작되면 이내 사라져버리는 그 지적 능력을 계속해서 누리는 상태에서 다른 사유와 소통하는 것”이라고 했다. (152면)




45. 심판(소송), 성, 이런 소설이 주는 느낌은 이유를 찾지 못해 계속 빙빙 헛도는 세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세계로부터 추방된 느낌을 갖는 것, 소외된 느낌을 갖는 것, 설명을 할 수 없는 것, 답답한 것, 그런 느낌으로 꽉 찬 글들이었죠. 그때는 그 소설들을 이해할 능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렇게 보는 시각이 놀라웠어요. (이진경, 162, 164면)




46. 뒷골목의 서점 뒤지기를 좋아했으며 ‘한 권의 책은 내면의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말했다. (163면)




47. 제게 있어서 진지함은 뭐냐면, 옳다고 믿으면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거죠. (167면)




48. 관심사 따로 일 따로가 아니라 관심사가 곧 일이죠. (171면)




49. 나의 최대의 적은 자아란 말이죠. 자아를 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진경, 173면)




50. 나를 기준으로 남들은 잘못했다, 그 생각을 버린 거죠. 내 생각이 옳다는 걸 내려놔야 남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섞일 수도 있다는 걸 갑자기 깨달은 거죠. 그래서 불교에서 자아를 적으로 삼는 걸 알게 되었고요. (이진경, 174면)




51. 유목민은 떠나는 자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새로운 것을 창안하고 창조하는 자입니다. (이진경, 177면)




52. ‘진리란 무엇인가?’라고 묻지 않고 ‘어떤 진리냐?’라고 묻는 것, 새로운 영토를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머물고 있는 곳이 어디든 항상 떠날 수 있는 태도를 갖는 것에 달려 있다. (177면)




53. 모든 모순 중에서 무거운 것-가벼운 것의 모순이 가장 신비롭고 가장 미묘한 모순이다. (밀란 쿤데라, 182면)




54. 신경숙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단절’이었다. “인생이 단절될 때마다 책이 있었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책의 의미는 그 순간에는 지구상에서 오로지 한 단어로만 대체될 수 있다. 자존심! (203면)




55.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고.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08면)




56. 사람들이 정열이라 부르는 것은 영혼의 힘이 아니라 영혼과 외부 세계와의 마찰이다. (타르코프스키, 217면)




57. 이 책을 읽다보면 어떤 사람이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이란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도, 그래도 그 약점 때문에 오히려 한 사람이 드라마틱하게 매력있는 지점을 알아낼 수 있다. (246면)




58. 그래서 그날 밤 우주로 날아오른 한 척의 우주선이 내(박노자)에게 던진 메시지는 오로지 자신의 밖으로 멀어져 나가는 사람만이 다른 세계를 맛본다는 것, 오로지 자신의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만이 놀라운 사랑을 맛본다는 것, 세계의 다른 끝에 접촉하려는 자들만이 출구를 찾는다는 것. (252면)




59. 언제나 이타카를 마음에 두라. 네 목표는 그곳에 이르는 거이니. 그러나 서두르지는 마라. 비록 네 갈 길이 오래더라도 늙어져서 그 섬에 이르는 것이 더 나으니. 길 위에서 너는 이미 풍요로워졌으니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지 마라. (258면)




60. 쓸모없는 것은 좋은 것이다.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지면 행복하다. (장자, 268면)




61, 작가는 덫을 놓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나의 독자들이 내가 쳐놓은 복잡하고 신비로운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도록 나는 덫을 놓은 사람입니다. (오르한 파묵, 276, 2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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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타자 - 실천 철학 논문집 나남신서 1367
악셀 호네트 지음, 문성훈 외 옮김 / 나남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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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각은 인정을 위한 노력이 대부분 반복적인 모욕이나 무시와 같이 부정적 형태의 경험을 통해 등장한다는 점이다. 즉, 일상적으로 모호하게 남아 있던 규범적인 틀이 보다 정확하게 분석되고, 또한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비로소 이러한 부정적 경험의 근저에 유보된 형태의 인정에 대한 요구가 함축적으로 놓여 있음이 입증된다는 것이다. (5, 6면)




2. 이런 점에서 나의 입장에 따르면 “무시” 현상은 제도화된 사회적 인정 유형으로부터 왜 주체들의 상호주관적 행위에 대한 요구가 등장하는가를 설명하게 될 포괄적 인정이론 체계의 핵심 열쇠이다. (6면)




3. 이 논문들은 실천철학의 세 가지 분야인 사회철학, 도덕철학, 그리고 정치철학 영역의 주도적이고 규범적인 범주들을 “인정” 개념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느 정도나 가능할지를 더듬어 보려고 한다. (6면)




4. 나, 우리, 남자, 자국민, 이성애자가 중심인 한, 타자는 이 중심부 사람들과 위계적 관계를 갖는다. 타자는 진리에 대해 허위, 선에 대해 악, 합리성에 대해 비합리성, 정상에 대해 비정상, 우등에 대해 열등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는 중심으로부터 배제되고 허위, 악, 비합리성, 비정상, 열등이란 이름하에 억압된다. (옮긴이의 글, 9면)




5. 이렇게 호네트가 정의의 타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바로 정의의 원칙이 갖는 한계 때문이다. 정의의 원칙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모든 개인은 인간이라는 동질성을 공유하는 보편적 존재로 간주할 뿐 각 개인이 서로에 대해 가질 수 있는 차이나 특수한 처지는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한계를 전제한다면 이제 개인적 특수성을 보호하려는 윤리적 입장은 정의의 타자로 등장한다. (옮긴이의 글, 11면)




6. 즉 특정한 정체성이 보편적 인간성으로 고양된다면, 이와 다른 정체성의 소유자는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지위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 11면)




7. 호네트가 정의의 타자로 제시하는 것은 “배려”를 강조하는 윤리적 입장이다. 왜냐하면 이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특수한 사람들에 대한 비대칭적 의무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무차별적으로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정의의 원칙의 경계를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옮긴이의 글, 11면)




8. 호네트가 이 책에서 보여주는 또 다른 문제의식이란 호네트 자신의 고유한 이론인 인정이론을 윤리학과 사회․정치철학 영역에 적용함으로써 “인정”(Anerkennung)을 일종의 새로운 행위 및 사회운영 원칙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으며, 바로 우리는 이 인정원칙을 정의의 원칙과 배려의 원칙을 넘어 이 양자를 포섭할 수 있는 제3의 원칙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 12면)




9. 이렇게 인정의 형태를 개인의 정체성 차원에 따라 차별화시킨다면, 인정의 원칙은 정의의 원칙과 배려의 원칙과 서로 구별되면서도 연결점을 갖는다. 왜냐하면 권리의 인정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정의의 원칙에, 그리고 사랑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알며 이들을 보살피라는 배려의 원칙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정의 원칙은 정의의 원칙의 타자를 포용하면서 그 한계를 넘어설 수 있고, 역으로 배려의 원칙의 타자를 포용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갖는다. (옮긴이의 글, 13면)




10. 즉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소유질서, 형사처벌, 의료보장 등 시민사회의 재생산과 관련하여 국가의 개입이 제기하는 규범적 문제들이다. 이러한 개념규정은 사회철학의 과제를 상대적으로 분명하게 규정한다는 장점을 갖지만, 불가피하게 동반되는 단점은 사회철학의 정체성 상실이다. 즉 사회철학은 더 이상 독자적 대상영역이나 차별적 문제를 갖지 못한 채, 일종의 정치철학의 곁가지로 되고 만다. (24면)




11. 이러한 두 가지 발전 경향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오늘날 사회철학이 불안정한 처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독일어권에서 사회철학은 그 과제영역이 과도하게 확장됨에 따라 곤경에 빠진 학문이 되고 말 위험성이 있다면, 영미권에서는 그 반대로 과제영역이 제한됨에 따라 이미 정치철학의 하위분야가 됨으로써 더 이상 독자적 특징을 갖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내가 제시하고자 하는 테제는, 사회철학이 무엇보다도 잘못된 발전과정 또는 장애, 즉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규정될 수 있는 잘못된 사회적 발전과정을 규정하고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24면)




12. 루소는 당시의 사회적 삶을 무언가 인간의 근원적 존재형태에서 벗어난 것으로 파악하려 함으로써 비록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내용적인 것이지만 ‘소외’라는 철학적 이념을 창조했다. 이를 통해 이제 사회적 삶의 형식을 더 이상 정치적-도덕적 정당성 측면에서만 탐구하지 않고, 사회적 삶의 형식이 인간의 자기실현이라는 목표에 부과한 구조적 제약에 대해서도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형성되었다. (34면)




13. 마르크스는 ... 그가 경제적 삶에 주목하게 만들었던 역사적 경험에 따라 인간 주체를 오직 자기규정적 노동과정을 통해 자기실현에 도달하는 것으로 보았다. (39면)




14. 마르크스는 이러한 사회적 발전과정이 개인에게 야기하는 결과들을 네 가지 형태의 소외로 집약한다. 즉 주체는 자신의 인간적 속성을 실현하는 데 방해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개성과 자신의 노동의 산물, 그리고 자신과 관계맺는 다른 모든 인간들로부터 소외된다는 것이다. (40면)




15. 마르크스가 ‘물화’를 통해 이해하고 있는 사회적 발전과정이란 자본의 가치법칙 압력이 주체들로 하여금 현실에 대한 일종의 범주착오를 지속적으로 강제하는 현상이다. (41면)




16. 루소는 아무런 장애도 없는 자기관계를, 헤겔은 공동체에 살아있는 인륜성을, 그리고 마르크스는 노동을 통한 대상화를 각각 인간의 만족스런 자기실현의 전제로 보았다면, 니체에게 그것은 삶을 긍정하는 가치지평이 실행력있게 존재하는 것이다. (45면)




17. 즉 근대세계의 병리적 현상을 이론적으로 다루는 것은 더 이상 철학이나 혹은 철학의 비학문적 주변영역이 아니라,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사회학이었다. (47면)




18. 사회학의 과제는 퇴니스나 짐멜, 그리고 베버나 뒤르켐조차 의심하지 않았듯이 윤리적 위기를 실제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그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47면)




19. 사회학이 본질적으로 이와 구별될 수 있는 것은 임박한 위험의 성격을 밝히는 내용적 규정에 있다. 즉 현재의 윤리적 위기를 출현케 한 사회적 과정은 더 이상 원자화나 분열의 증대가 아니라, 도덕적 방향상실로 특징지어진다는 것이다. (48면)




20. 앞서 지적한 사회학자들은 베르그송의 영향을 받았던 뒤르켐을 제외한다면 모두 니체의 허무주의 진단으로부터 지속적 영향을 받았다. 즉 이들은 니체의 허무주의 진단으로부터 끌어낸 생각은 객관적 가치질서가 붕괴됨에 따라 주체들이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설정할 수 있는 목적 역시 붕괴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48면)




21. 짐멜이 인간관계의 물화를 이야기하고, 퇴니스가 사회적 공동체 유대의 해체에 주목하고, 베버가 세계의 탈주술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끝으로 뒤르켐이 유기적 연대 형태의 형성을 탐구할 때 여기서 문제가 된 사회화 과정은 새로운 경제질서의 정착이 사회적 생활세계의 도덕적 공동화를 초래하는 과정이었다. (49면)




22. 이제 역으로 사회학은 자신의 고유한 가치평가 척도에 대해 객관적 타당성을 요구할 수 있는 어떠한 정당한 가능성도 더 이상 가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51면)




23. 막스 베버를 통한 루카치의 마르크스 해석이 보여주듯이 자본주의적 상품교환의 이익산출 압력은 모든 현상을 점차 경제적 사용대상으로 탈바꿈시키는 합리화과정을 진행시킨다. (58면)




24. 그녀(아렌트)의 테제에 따르면, 발전하는 산업화 조건 아래서 생산과 노동의 기술적 활동형태가 너무나 강하게 사회적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공적 협의나 의사소통과 같이 자유를 신장하는 실천들이 완전히 배제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67면)




25. ... 따라서 1950년대와 1960년대 사회철학에 가장 큰 자극제가 되었던 것이 ‘계몽의 변증법’이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이론이었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며, 당시에 철학적 시대해석에서 탁월성을 보였던 저자들 중 어느 누구도 아렌트의 저작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하버마스의 지배없는 토론 개념이든,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혁명적 실천 이념이든, 아니면 찰스 테일러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공성 표상이든 이 모든 것들은 항상 도구적 활동의 지배가 의사소통적 행위영역을 해체할 염려가 있다는 한나 아렌트의 시대진단을 비판적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69면)




26. 즉 문화적으로 한 사회의 정상성 개념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왜곡되지 않은 자기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제반 요건들로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74면)




27. 즉 이러한 비판적 개념들은 간접적이나마 예외 없이 개인들에게 완전한 혹은 보다 나은, 간단히 말해서 성공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는 특징을 지닌 사회적 조건들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실현의 가능조건에 적합한 사회적 정상성에 대한 윤리적 표상이 사회적 병리현상을 측정하는 척도가 된다. (75면)




28. 따라서 종합해서 말한다면 사회철학에서 사회적 병리현상에 대한 규정은 항상 개인의 자기실현에 도움이 되는 사회적 조건들과 관련해서 이루어진다. (77면)




29. 이미 한나 아렌트에 대한 고찰에서 밝혔듯이 그녀가 산업세계에 대한 자신의 비판의 토대로 삼았던 전제는 인간이 본래적으로 의사소통적 자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79면)




30. 즉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는 사회이론 자체가 비판적 경계를 설정하는 능력을 갖게 되며, 이 경계를 넘어서 체제의 명령이 사회적 생활세계로 침투할 때 이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간주된다. (84면)




31. 하지만 맥락초월적 관점에서 사회적 삶의 발전과정을 병리적 현상으로 평가하려는 사회철학의 고전적 요구는 더 이상 가망이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사회철학의 존속은 역사적 현재시기에 대한 개방적 형태를 취하면서, 약하고 형식적 의미의 인간학적 요구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정당화되느냐에 달려 있다. (86면)




32. 내가 보기에는 어떤 사회상태에 대한 그런 판단을 통해 비판되고 있는 잘못된 발전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병리(학)’이라는 용어가 적절한 것 같다. (99면)




33. 그러나 그들이 해방의 세계내적 가능성을 더 이상 믿으려 하지 않으려했다는 사정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아도르노와 관련해서는 ‘부정의 변증법’이, 그리고 호르크하이머와 관련해서는 그가 이후에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염세주의로 기울었던 사실이 바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114, 115면)




34. 그 중 첫 번째 흐름은 아도르노가 그의 후기 저작들에서 시도했던 부정주의적 사회비판을 다시 한 번 더 급진화하려는 데서 성립한다고 할 수 있는데, 거기서는 사회 전체에서 사회적 핵심이 스스로 해체되고 있다는 것을 진단해 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115면)




35. 물론 사정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은 오늘날 비판이론의 전통을 지속시키고 있는 두 번째 이론 흐름을 보면 분명하게 드러난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이론은 행위의 해방적 영역에 대한 접근을 다시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부정주의적 사회이론에 대한 대안적 흐름이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6면)




36. 그 첫 단계는 마르크스의 생산 패러다임을 의사소통적 행위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시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사회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 사회적 진보의 조건들이 놓여 있음이 분명하게 된다. 이 출발점에서 의사소통적 행위의 합리성이 지닌 잠재력을 구성하고 있는 구체적인 규범적 전제들이 무엇인지를 해명하려는 화용론의 전개라는 두 번째 단계가 이어진다. 그 위에 마침내 세 번째 단계로서 의사소통적 행위의 합리화 과정을 사회적 조정매체들이 형성되는 역사적 지점까지 추적하는 사회이론의 기획이 세워진다. 잘 알려진 대로 하버마스는 자신의 사회이론을 오늘날 자기조절하는 체계의 권력이 의사소통에 기초한 생활세계의 유지를 위협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는 시대진단적 테제로 귀결시킨다. (116, 117면)




37. 두 이론 흐름은 체계권력의 자립화가 오늘날 사회의 사회적 핵심을 해체하기에 이른다는 시대진단적 판단에서 만나고 있다. (117면)




38. 하버마스의 이론구상에서는 위협당하고 있는 인간의 잠재력이 바로 의사소통적으로 상호이해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을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는 언어이론이 자리잡고 있다. (117면)




39. 여기서는 일단 잠정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규범적 잠재력을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상호이해의 언어적 조건과 동일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만을 확인해 두자. 이러한 방향은 이미 도덕적 경험이 언어능력에 대한 제한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에서 획득한 정체성 주장이 훼손될 때 형성된다는 주장 속에 함축되어 있었다. (122면)




40. 어떤 도덕적 기대가 사회적 의사소통의 일상적 과정에 함축되어 있는지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사회의 하층민들의 저항행위를 연구한 역사적이고 사회학적인 작업들을 천착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122면)




41. 그와 같은 연구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면 사회의 하층민들에게 저항행위의 동기로 작동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정식화된 도덕원칙들에 대한 지향이 아니라 그들이 직관적으로 획득하는 정의감의 훼손에 대한 경험이라는 데 대한 상당한 일치된 확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정의감의 규범적 핵심은 모든 연구에서 자신들이 지닌 존엄성, 영예 또는 불가침성에 대한 존중의 요구와 연관된 기대다. (123면)




42. 우리는 모든 의사소통적 행위의 규범적 전제가 사회적 인정의 획득에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곧 주체들은 자신들을 도덕적 인격체로 인정하고 또 자신들의 사회적 기여의 몫을 인정하는 상호적 기대의 지평 속에서 서로를 만난다는 것이다. (123면)




43. 곧 사람들은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들이 정당하게 받을만하다고 여기는 인정을 거부당할 때는 언제나 그와 같은 도덕적 불의의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상황 속에서 인간주체들이 전형적으로 겪는 도덕적 경험을 사회적 무시의 감정이라고 규정하려 했다. (123면)




44. 이러한 반성을 통해 우리는 이미 의사소통 패러다임의 언어이론적 버전과는 달리 다른 대안적 버전의 윤곽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지점에 이르게 되었다. 그 출발점은 우리가 사회적 상호작용의 규범적 전제들을 단지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상호이해의 언어적 조건들에서만 찾으려 할 경우 그 전 범위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라는 반성이다. 그와는 달리 주체들이 의사소통적 관계를 받아들이면서 갖게 되는 규범적 기대와 연관시키는 것은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가정이라는 점이 무엇보다도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의사소통 패러다임이 이러한 방식으로 언어이론적 틀을 넘어서서 확장되면 이제 상호작용의 도덕적 전제들에 대한 모든 훼손이 얼마나 직접적으로 참여자들의 도덕적 감정 속에 쌓이게 되는가도 확인할 수 있다. 사회적 인정의 경험은 인간이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에, 그러한 인정의 거부, 곧 무시는 필연적으로 인격의 상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협의 느낌을 수반하게 마련이다. (124, 125면)




45.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언어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인정이론적으로 이해된 의사소통 패러다임은 또한 하버마스가 호르크하이머의 구상을 발전시키려 하면서 남겨둔 이론적 틈도 매울 수 있다. (124면)




46. 나는 인간의 성공적인 정체성 형성에 필요한 의사소통적 전제들과 관련된 내 반성의 일부에 대해서는, 청년 헤겔의 인정모델을 조지 미드의 이론에 기대어서 재구성했던 책에서 정당화하려 했다. (124면)




47. 그 관점의 중심에는 더 이상 체계와 생활세계 사이의 긴장이 아니라 인정의 조건들을 체계적으로 훼손하는 데 책임이 있는 사회적 원인이 서있어야 한다. 우리는 시대진단적 분석에서 그 주안점을 체계의 자립화로부터 사회적 인정관계의 왜곡과 훼손으로 옮겨야 한다. (125면)




48.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전통에서는 근대사회의 결정적 “장애”로서 도구적 이성이 다른 형태의 행위와 지식들을 지배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꼽는 경향이 형성되어 왔다. (126면)




49. 의사소통 패러다임이 더 이상 합리적 상호이해에 초점을 둔 기획으로서가 아니라 인정의 조건들에 초점을 둔 기획으로 이해되면, 비판적 시대진단도 더 이상 합리성 이론의 좁은 틀 안에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제 사회적 삶의 “장애” 또는 잘못된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을 재는 기준은 더 이상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상호이해의 합리적 조건들이 아니라 인간의 정체성을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상호주관적 전제들 전체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제들은 한 개인이 성장하면서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하고 결국에는 한 사회의 평등하면서도 고유한 구성원으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적 의사소통의 형식들 안에 있다. (127면)




50. 따라서 의사소통 패러다임이 더 이상 언어이론적으로가 아니라 인정이론적으로 이해되면, 시대진단의 중심에는 인정의 병리학이 자리하게 된다. (127면)




51. 이미 언급한 대로 나는 청년 헤겔에 의존해서 한 개인의 성공적 정체성을 형성시키는 데 필요한 의사소통적 전제들이라 할 수 있는 세 가지 형식의 사회적 인정을 구분한 바 있다. 곧 사랑이나 우정과 같은 사회적 친밀 관계에서의 정서적 관심, 한 사회의 도덕적으로 책임있는 구성원으로서의 법적 인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별적 기여와 능력에 대한 사회적 가치평가가 바로 그 세 형식들이다. (128면)




52. 내가 지금까지 소개했던 모든 고찰은 비판이론은 인정투쟁의 다양한 노력들 속에서 자신의 규범적 주장들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테제로 정리할 수 있다. 주체들이 그들의 정체성과 관련된 요구들이 무시될 때 갖는 도덕적 경험들이야말로 사회적 의사소통 관계에 대한 비판이 사회적 현실 속에서 얼마간 그 근거를 갖고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는 학문 이전의 층위다. (133면)




53. ... 이런 의미에서 비판이론은 더 이상 호르크하이머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단지 이미 진행 중인 해방의 과정을 지적으로 표현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사회이론은 호르크하이머가 거대한 환상에 매혹되어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 문제는 바로 당사자들, 곧 무시당한 사람들과 배제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폭력적 저항문화 속에서 발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민주적 공론장 안에서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주는 그와 같은 도덕문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34, 135면)




54. 마르크스주의의 이와 같은 혁명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는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에 동기를 부여했던 결정적 경험이었다. (139면)




55. 아도르노는 이론이 혁명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는 사정을 철학적 미학을 통해 상쇄하려 했는데, 그는 그러한 미학이 예술작품들에서 도덕적 통찰에 대해 역사적 준거를 제공할 장소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140면)




56. 국가개입주의 때문에 노동자층의 규범적 잠재력이 말라버렸다. (141면)




57. 나는 배링턴 무어에 따라 그와 같은 하층민들의 인지적 밑바탕을 나타내기 위해 ‘불의의식’(Unrechtsbewusstsein)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자 한다. 나는 이 ‘불의의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피억압집단들의 사회도덕은 결코 상황을 추상화한 도덕적 전체 질서에 대한 표상이나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체계적 구상을 포함하지 않고 그들이 정당한 것으로 믿는 도덕적 요구들이 침해되는 데 대한 매우 민감한 촉수를 드러낸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싶다. (146면)




58. 아무도 그들이 사회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어떤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코드를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아 사회 하층민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행위규범들을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정합적으로 짜여진 체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력을 거의 받지 못한다. 이런 식의 반성을 통해 마이클 만은 많은 영향력을 끼친 논문에서 “단지 실질적으로 사회권력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이 정합적인 사회적 가치체계를 발전시킬 필요를 느낀다”고 결론을 내렸다. (147, 148면)




59. 그러나 그들은 정당화가 필요한 한 사회의 현상들을 원칙들을 이루어진 하나의 가치체계로 정초를 해야 할 내적이거나 외적인 강제를 받지는 않는다. 따라서 사회 하층민들에게는 자신들이 타당하다고 믿는 행위규범들을 모든 사회계층에 대해 타당한 가치전제들의 체계 안에 짜 맞추어야 한다는 압력이 매우 적다. (148면)




60. .. 한 사회질서의 가능한 가치원리들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상투적인 규범적 기준들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험적 연구들도 이와 같은 추측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149면)




61. 부정의는 진짜 정의의 매체다. (아도르노) (169면)




62. 따라서 오늘날 탈근대론의 윤리는 특수한 것, 이질적인 것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이념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한 윤리는,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아도르노의 도덕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비동일자(Nicht-Identischen)를 적절하게 다룰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정의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170, 171면)




63. 리요타르는 이미 자신의 ‘탈근대적 지식’이라는 연구의 끝부분에서 도덕적 보편주의의 전통에서와는 달리 이질적인 것을 보호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정의개념을 암시한 적이 있다. (173면)




64. 하버마스는, 그가 칸트의 뒤를 잇는 도덕이론의 전통 전체와 공유하고 있는 하나의 전제로부터 담론윤리의 기본입장을 발전시킨다. 현대의 조건에서는 다양한 개인적 삶의 이상이 너무 서로 다른 만큼 윤리학은 도덕적-실천적 갈등과 관련하여 더 이상 특정한 가치관을 추천해서는 안 되고 단지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한 절차만을 규범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8면)




65. ... 왜냐하면 정언명령의 정식은, 마치 모든 주체가 도덕적 갈등에 직면하여 고립된 상태에 있으며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심연을 사이에 두고 다른 모든 당사자와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칼-오토 아펠(Karl-Otto Apel)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칸트의 절차주의에 대한 제안을 발전시켜 인간의 언어적 상호주관성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내었다. 그 버전에 따르면 저 개별적 주체가 자신의 행위가 요구되는 실천적 규범이 도덕적 타당성을 지니는 지를 검토할 때 도움을 주는 보편화가능성의 검토가, 모든 잠재적 당사자가 토론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그러한 절차로 파악된다. 따라서 한 주체가 문제되고 있는 규범이 얼마나 보편타당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단지 그 주체가 그때그때 제시되는 논변들 때문만이 아니라 또한 동시에 모든 해당 당사자 덕분이기도 하다. (179면)




66. 그러나 그와 같은 불의를 탐색하는 데는 타인의 가능한 고통을 창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예술가의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로티는 미학적 감수성이야말로 도덕적 진보를 가능하게 하는 본래의 추진력이라고 본다. (187면)




67. 도덕적 담론이 어떤 태도와 행동양식을 전제해야만 하는가를 이해하는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이상적 역할수용이라는 모델이 처음부터 기본적인 그림이 된다. 미드가 처음으로 제시한 이 발상은, 단지 주체들이 상호간에 다른 사람의 역할에 대해 역지사지할 수 있을 경우에만 그들은 의사소통을 통해 상호간의 이해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190, 191면)




68. 하버마스는 언제나 단호하게 인지주의적 견해를 견지했는데, 그는 정의주의적 해석은 불가피하게 정서에 기초한 특수주의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고 본다. 만약 주체들이 상호간에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타인의 처지를 정서적으로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라면, 그 경우 도덕적 담론은 당장 우연적인 정서적 결속에 의존하게 될 것이고 오직 타당한 근거들에만 바탕하는 협업적 진리추구라는 기능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따라서 하버마스는 이상적 역할수용이라는 모델로부터 단지 상호 이해도달이라는 인지적 차원에 관련되는 그러한 특징들만을 자신의 담론윤리에 수용한다. (191면)




69. ...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인격의 “얼굴”을 대할 때, 우리가 그에게 직접적 도움을 주고 실존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힘이 되어주어야겠다는 의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4면)




70. 그런 한에서 레비나스에게는 상호주관적 만남이 구조적으로, 다른 인격의 특수성의 요구를 지속적 배려를 통해 충족시켜야 한다는 무한한 과제를 포함하고 있는 도덕적 책임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해관계를 좇는 행위의 자아중심주의를 극복하게 하는 그와 같은 무제한적 의무를 수용함으로써 비로소, 개별적 인간은 도덕적 인격으로 성숙한다. (205면)




71. 다시 말해 페미니즘 도덕이론이 형성되면서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의 연구에 기댄 다음과 같은 비판이 등장했던 것이다. 즉 칸트를 따르는 담론윤리적 접근법은 우리가 어떠한 상호간의 의무를 고려함이 없이 구체적 타자에 관심을 가지고 그 타자를 자발적으로 돕고 지지해야 한다는 그러한 도덕적 태도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210면)




72. 그러나 그 실천적 담론의 대칭성이라는 전제는 모든 특별한 조건들을 무시하고 그에 따라 배려라는 관점을 배후로 밀려나게 하도록 우리를 강제한다. (210면)




73. 그러나 공통의 삶의 형식에 대한 그와 같은 사회적 소속감은 사람들이 또한 부담과 고통과 과제를 어떤 공통의 것으로 경험할 때에만 비로소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공통의 부담과 필요에 대한 경험은 다시금 단지 집단적 목표설정이라는 조건 위에서만 발전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와 같은 목표를 정의하는 일은 단지 사람들이 가치를 공유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사회적 소속감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가치공동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상호간에 대한 관심이라는 도덕원칙으로 이해되는 연대를, 하나의 사회공동체가 생겨날 때 어떤 식으로든 따라다니게 마련인 특수주의의 요소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데, 그것은 그 공동체의 성원들이 일정한, 윤리적으로 정의된 목표설정을 통해서 통합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또한 특수한 부담의 경험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13면)




74. 특히 칸트적 전통은 그동안 다양한 그리고 강력한 반대들에 부딪혀 왔는데, 여기서 공통적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일방적으로 보편주의적 정당화 방식만을 지향하는 칸트적 도덕이 인간행위의 복잡한 동기들의 구조를 잘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선 칸트적 전통은, 개별적 행위자들이 불편부당한 원리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적 의도, 느낌, 혹은 애정과 같은 것에 기반하여 행위하는 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그러한 보편주의적 도덕 개념들이 실천적으로 중요해야 하는지를 실질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행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굉장히 다양한 기대들, 의무들 그리고 욕망들과 대면해 있으며, 하나의 도덕원리를 일관적으로 적용하기보다 다양한 도덕적 관점들의 갈등적 통합을 더 자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17, 218면)




75. 나는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단계에서 분명히 되어야 할 것은 도덕이 좋은 삶(Gutes Leben)의 전제들에 대한 윤리적 모색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도덕의) 저 목적론적 좋음의 개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연관은 처음부터 보존된다. (219면)




76. 내 생각으로는, 이와 같은 도덕의 간접적 기능은 우리가 도덕적 입장과 규범 그리고 상호주관적 인정의 형식들 간의 긴밀한 연관을 직시할 때 분명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연관은 우리가 도덕적 의무들의 수용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 형성의 상호주관적 조건들을 상호적으로 보장하나든 것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219면)




77. 문화다원주의(다문화주의)에 대한 토론과 여성운동의 이론화 과정에서 공통의 이념으로 대두된 것은 개인이나 사회적 집단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규범적 생각이었다(Taylor 1992). (221면)




78. 즉 칸트 이래로 도덕철학에서 상대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갖고 있던 “존중” 개념과 달리 “인정” 개념은 일상언어에서도 그리고 철학에서도 그 의미가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222면)




79. 예를 들어 오늘날 여성주의 윤리를 근거지우는 맥락에서 인정개념은 엄마와 아이의 관계에서 그 경험적 본보기를 찾을 수 있는 애정 어린 관심과 배려의 형태를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Hirschmann 1989). 이와는 달리 담론윤리의 맥락에서 “인정”이 의미하는 것은 다른 모든 개인의 특수성과 동등성을 상호 존중하는 방식이다. 논쟁 참여자가 토론에 임하는 태도는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된다(Habermas 1993, 3장; Wingert 1993). 마지막으로 오늘날 공동체주의를 발전시키는 시도 안에서 인정 범주는 낯선 생활방식의 가치를 존중하는 형식을 규정하는 데 사용되며, 그런 만큼 인정은 사회적 연대의 지평 속에서 전형적으로 형성된다(Taylor 1992). (222면)




80. 이러한 다양한 사용방식 때문에 생기는 두 번째 문제는 그 각각의 의미에 따라 인정개념의 도덕적 내용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의 도덕적 자율성에 대한 인정과 연관하여 보편적 권리와 의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언어의 사용방식은 배려 또는 가치부여와 같은 인정형식에는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우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특별한 방식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때문이다. (223면)




81. 초기 저작들에서 헤겔은 인정이 개인에게 어떠한 유형의 자기관계를 가져다주는가에 따라 세 가지 서로 다른 인정의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23면)




82. 그리고 마침내 피히테는 자신의 자연법의 토대 속에서 이러한 부정주의에 단호하게 맞서면서, 주체들이 서로에게 각자의 자율성을 사용할 것을 요구함과 동시에 서로를 자유로운 존재로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주체는 자유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Fichte 1791). (224면)




83. 어떻게 인정의 경험이 인륜성으로의 진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밝히려면, 자기의식의 상호주관적 획득과 전체 사회의 도덕적 발전 사이의 역동적 상호관계가 추가적으로 해명되어야 했다. (224, 225면)




84. 즉 인륜성으로의 진보는 점차 요구수준이 높아지는 세 단계의 인정유형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 유형들을 매개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을 확인받기 위해 주체들이 감행하는 상호주관적 투쟁이라는 것이다. (225면)




85. 헤겔의 이러한 단초는 피히테를 훨씬 넘어서서 다음과 같은 테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즉 일단 자기의식의 생성을 위한 상호주관적 조건이 밝혀진다면 이제 상호주관적 인정의 세 가지 형식이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피히테가 자연법에 대한 근거제시 과정에서 염두에 두었던 개인적 자유 영역의 상호인정 매커니즘은 실제로 주체의 권리의식 형성을 설명해 주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개인의 긍정적 자기이해를 완전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헤겔은 칸트의 도덕적 존중이 함의의하는 권리의 인정 이외에도 두 가지 형식의 상호인정을 첨가한다. (225면)




86. 이 두 가지 인정형식에는 각각 특수한 단계의 개인적 자기관계가 상응한다. 그 중 하나는 사랑인데, 헤겔은 자신의 초기 저서에서 이를 휠더린의 통일철학적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 즉 사랑을 통해 주체들은 서로의 유일무이한 욕구본능을 상호 인정하게 되며, 이로써 주체들은 자신의 본능적 요구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225면)




87. 끝으로, 국가영역에서의 인륜성도 인정형태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주체들은 사회질서의 재생산에 기여하는 자신들의 능력에 상호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225면)




88. 그러나 ‘법철학’에서 헤겔은 다시 초기의 세 가지 인정형식 구분을 반영하는 가족,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구분을 시도한다. (226면)




89. 약 2백여 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도덕개념을 도입하기 위해 “인정” 개념을 사용할 때 대부분 그 출발점이 되는 것은 도덕적 손상(moralische Verletzung)에 대한 현상학적 분석이다. (227면)




90. 다시 말해서 도덕적 손상이 조건을 이루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이다. (227면)




91. 주체가 자신과의 관계에서 상처받을 수 있는 이유는, 주체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 타인의 동의나 긍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주관적 전제가 고려되지 않는다면 어떤 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자기이해의 특수한 측면들이 특정 행위나 말 또는 상황에 의해 파괴될 때 왜 이 사람이 상처받게 되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228면)




92. 다시 말해 도덕적으로 부당한 것을 경험할 때 항상 해당 당사자는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의 조건이 되는 어떤 기대가 충족되지 못하고 좌절된 데 대해 실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도덕적 손상은 그것이 개인 행위능력의 본질적 전제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인격훼손 행위이다. (228면)




93. 도덕적 손상을 통해 훼손되고 파괴되는 자기관계의 방식이 보다 근본적이면 근본적일수록 그 도덕적 손상은 더 심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229면)




94. 여기서 ‘자기관계’(Selbstbeziehung)란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권리와 관련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의식 또는 감정을 말한다. (229면)




95. 지금까지 이야기된 것에 따르면,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손상은 한 개인이 자신의 신체적 안녕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확신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행위에 의해 파괴되는 것은, 모든 타인의 시점에서 자신의 필요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신념이다. (230면)




96. 어떤 점에서 이미 헤겔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듯이, 인정의 도덕을 전개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삶의 형태가 갖는 상호주관성 때문에 도덕적 손상 가능성이 생긴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232면)




97. 다시 말해 도덕적 태도들을 통해 주체들의 불가침성을 보장하는 상호주관적 조건이 확보된다는 것은 곧 도덕적 태도들 역시 도덕적 무시 유형만큼이나 다양한 인정의 형식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233면)




98. 즉 인간은 자신의 특정한 능력과 권리의 가치가 확인되고 인정받고 있음을 보게 될 때에만 손상되지 않은 자기관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234면)




99. 이러한 연관으로부터 얻어지는 역설적 결론에 따르면, 도덕적 관점이란 상호주관적 관계의 방식에 따라 주체에게 각기 다른 도덕적 행위를 의무지우는 관점을 말한다. (235면)




100. 이와 같은 간단한 요약에서 이미 드러나기 시작하듯이 여기서 전개된 도덕이론의 결론에는 종래의 여타 이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나타난다. 즉 세가지 인정양식은 비록 종합적으로 도덕적 관점을 구성하지만, 이들 사이에는 조화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237면)




101. 즉 도덕적 관점은 비록 세 가지의 도덕적 태도를 포괄하지만, 어떤 상위의 관점에서 이들 사이의 우선순위를 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덕의 전체 영역에는 긴장이 흐른다. 그리고 이 긴장은 오직 개별적 숙고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우리는 구체적 상황에서 우리의 사회적 관계 형태에 따라 다르게 요구되는 인정행위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갈등상황의 경우 우리는 다른 관점에서 어떤 관계가 우선시되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237면)




102. 이러한 통찰이 우리에게 인식시켜 주는 것은, 칸트적 사고 이외에 배려윤리의 전통과 공동체주의의 단초들도 인정도덕 속에서 정당하게 자신의 자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전통은 각각 세 가지 인정형식에 해당되는 도덕적 태도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인정형식이 종합적으로 인간으로서 우리가 갖는 인격적 불가침성을 지켜주는 것이다. (238면)




103. 즉 존경과 달리 사랑의 연구에서는 가치부여를 받는 개인의 대체불가능성(Unvertretbarkeit)에 대한 신념이 추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73면)




104. 오늘날 이 주제를 다루는 모든 연구의 출발이 되는 통찰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에게 유일무이한 그리고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갖는 존재로 인지한다. (274면)




105. 아마도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주체가 더 이상 투명하지도 그리고 권능있는 존재도 아니라는 사실로부터 어떤 결과들이 도출되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292면)




106. 첫 번째 대답은 위에서 묘사한 두 가지 사상적 움직임 속에 놓여 있는 해체 경향을 급진화시키는 데 있다. (293면)




107. 두 번째 대답은 전통적 자율성 이념을 단호하게 유지하는 데에 있다. (293면)




108. 끝으로 세 번째 대답은 주체성을 재구성하는 데 있다. (293면)




109. 나는 이렇게 개인의 자율성 이념을 무의식과 언어라는 구속적 조건들에 적응시키는 입장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전망있는 길이 오늘날 주체를 상호주관성이론적으로 이해하려는 작업이라고 본다. (294면)




110. 오늘날 개인의 자율성 개념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 관념은 상호주관주의 전통 속에 있다. (298면)




111. 이 두 이론이 보여주는 입장은 우선적으로, 언어와 무의식 같이 통제될 수 없는 힘을 어떤 한계로서가 아니라 개인적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는 가능조건으로 이해하게 한다. (298면)




112. 미드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는 사실은, 개별적 주체가 상호작용 참여자로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조망할 수 있게 하는 상징적 타인의 상이한 관점으로 자신의 위치를 바꿈으로써 자아정체성에 대한 의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299면)




113. 따라서 의사소통적 행위를 통해 엄격하게 보편적 원칙에 자신을 정향시키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서적 관심과 감각을 통해 개별적인 구체적 상황에 이러한 원칙을 책임감있게 적용할 줄 아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자율적이다. (305면)




114. 그러나 이 세계정치적 변화를 조악한 홉스주의가 상정하는 인간학적 의미에서 자연상태의 뒤늦은 복귀의 결과로 해석하지 않고, 칸트적 역사철학의 가설적 의미에서 인간적 자유를 확립해 가는 힘겨운 과정 속의 한 발걸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316면)




115. 오늘날 인권은 일반적으로 인간주체들이 인간의 “존엄성”이나 존중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에 상응하는 삶을 서로 보장하기 위하여 서로간에 인정해야 하는 요구들로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주된 관점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인간적 실존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사회적 공동생활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필요조건에 속한다는 점이다. (327면)




116. 그러나 서로 다른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요즘에 와서는 적어도 자유주의적 자유권, 또 정치적 참여에 대한 권리, 마지막으로 이른바 사회적 권리가 그러한 권리에 속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이제 어떤 유형의 인권을 생각하고 있는가에 따라 이에 상응하는 의무이행의 일차적 담당자도 달라진다. 이 모든 권리는 그것의 상호주의적 성격 때문에 다른 모든 인간을 상대로 성립하며 따라서 그에 상응하여 개인적 의무를 야기한다고 할 수 있다. (327, 328면)




117. 공화주의가 거기서 시민적 참여에 대한 고대적 전범을 지향하면서 시민들이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상호주관적 협의를 자신들의 삶의 본질적 목적으로 세우는 것을 강조하는 데 비해, 절차주의는 민주적 의지형성의 과정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덕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정당화된 절차만을 필요로 한다고 고집한다. 따라서 공화주의가 민주적 공론장을 자주관리적 정치공동체의 매개로 자리매김하는 데 비해, 절차주의는 공론장을 사회가 정치적 문제들을 정당한 방식으로 합리적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할 때 도움을 주는 절차로 이해한다. (341면)




118. 정치적 공화주의가 처음부터 법적 규범들을 정치적 공동체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사회적 수단으로 이해하려는 일정한 경향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반해, 절차주의적 신념에 따르면 기본권은 민주적 공론장과 정치행정 사이의 원활한 공동작업을 보장하는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342면)




119. 공화주의나 민주적 절차주의에서와는 달리 듀이는 확대된 민주주의 원리들을 정초하려는 자신의 시도에서 의사소통적 협의라는 모델이 아니라 사회적 협동이라는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344면)




120. 듀이는 민주주의를 공동체적 협동의 반성적 형식으로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에, 오늘날 민주주의이론에서 서로 대립적인 입장으로 나뉘어서 고찰되는 합리적 숙고라는 요소와 민주적 공동체라는 요소를 자신의 모델 안에 통합시켜낼 수 있었다는 것이 나의 핵심 주장이다. (344면)




121. 듀이는, 비록 그도 물론 아렌트나 하버마스처럼 개인주의적 자유이해를 비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의사소통적 대화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개별적인 힘을 협동적으로 투입하는 것을 모든 의사소통적 자유의 전형적인 발현으로 본다. 듀이는, 여기서는 일단 토크빌 보다는 마르크스의 전통을 따르면서, 그와 같은 자발적 협동이라는 이념에서 출발해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이해에 대한 대안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348면)




122. 오늘날 자유주의자들과 공동체주의자들 간의 논쟁을 계속 연구해온 사람이라면 양 진영의 대표적 이론가들이 다음의 주요 논점에서 일치하는 것 같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양 진영의 대표자들은 모두 포괄적 가치의 공유나 우리가 사회적 가치공동체, 혹은 좀 부드럽게 말해 문화적 삶의 양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민주사회는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공통점을 토대로 할 때 양 진영은 이미 다음의 두 번째 논점에서도 어느 정도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즉 양 진영이 모두 민주사회의 문화적 성립조건을 중시하는 한, 그들이 추구하는 공동체개념은 자의적인 것이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규범적 특징을 가져야 gksemss 것이다. 오직 그러한 형식의 사회적 공동체 만이 상호주관적이며 연대적인 결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으며, 공동체의 원리를 문화적, 윤리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자유민주사회의 규범적 조건에 합치될 수 있다. (397면)




123. 이를 하나의 공식에 의해 표현해 보면, 자유주의자들의 견지에서 볼 때 사회적 결합, 공동체화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민주사회를 위한 문화적 조건이기 때문이며, 반대로 공동체주의자의 견지에서 공동체화가 필요한 것은 그것이 개인의 자기실현을 위한 문화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398, 39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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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먹지 마라
키이스 페라지 외 지음, 이종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 진정한 네트워킹은 다른 사람들이 더 잘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다. 받는 것보다 더 많이 주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형식과 짜여진 규칙이 없다고 믿어지는 인간관계에서도 지켜야 하는 철칙이 있었다. (22면)




2.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려 노력하면서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도움을 구해보면, 내가 그랬듯이 그것이 당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27면)




3.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도움을 청하고 도움을 주는,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이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연결되어 자신의 시간과 전문 지식과 정보를 나누면 나눌수록 모든 이가 누릴 수 있는 파이는 점점 더 커진다. (30면)




4. ... 또 어떤 사람은 나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 이 은혜를 꼭 갚겠다고 맹세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몹시 안타깝다. (31면)




5.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계산적인 마음을 버려야 한다. (31면)




6. 인터넷이 그 단적인 예다. 접속하여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인터넷의 가치는 증가한다. (31면)




7.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오늘의 시장경제에서 협력은 경쟁력 그 자체를 의미한다. (32면)




8. 과거에는 직원들이 자기가 소속된 회사에서 충성과 관용을 찾았다고 한다면, 오늘날에는 자신의 대인관계로 얽힌 인맥망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회사에 바쳐왔던 맹목적인 관용과 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료와 팀이나 친구, 고객들에게 주는 좀더 개인적인 충성과 관용을 말한다. (33면)




9.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관계는 줄어드는 파이 한 판이 아니라 쓰면 쓸수록 힘이 세어지는 근육과 같은 것이었다. (35면)




10. 선생님은 “저 사람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가 아니라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일관된 태도로 학교를 새롭게 만드셨다. (36면)




11.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사람과의 관계는 분명 신뢰를 통해서 강해진다는 것이다. 필요한 시설들은 그런 토대 위에서 건설된다. 신뢰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데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무언가 해줄 때 생긴다. 케네디의 말을 빌자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바라기 전에 당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37면)




12. 다시 말해서, 진정한 네트워킹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탐욕이 아니라 관용이다. (37면)




13. 핵심은 이렇다. 받기 전에 베푸는 편이 낫다. 내가 얼마를 주었고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계산하지 말라. 당신이 관용을 바탕으로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있다면 언젠가 그만한 보상이 따를 것이다. (38면)




14. 세워둔 목표가 있는가? 목표를 기록해 두었는가? 목표 달성을 위해 계획을 세웠는가? (41면)




15. 그러나 중요한 열쇠는 목표 설정의 습관화이다. 이것이 되면 목표 설정이 삶의 일부가 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당신의 목표는 세월 속에서 흐지부지 사라져버린다. (43면)




16. “목표는 마감기한이 있는 꿈이다.” (44면)




17. “자신의 기쁨을 따르라.” (45면)




18.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처음 강의를 했던 그 학교의 교수가 된 것이다. “자신의 기쁨을 따르면 언젠가 당신을 위해 준비된 기쁨의 삶의 궤도에 올라 있을 것이며,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은 당신이 살아야 하는 그 삶이 된다.” 그렇다면 이 기쁨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캠벨은 각 사람의 내면 깊숙이, 자신이 이 생에서 가장 원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분명하게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찾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45면)




19. “성공의 첫째 조건은 꿈을 갖는 것” (47면)




20. “이루지 못할 야망은 없다” (47면)




21.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새로이 하며 성취과정을 모니터하는 작업보다는 그 일을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가 하는 정서적인 결정이 더 중요하다. (48면)




22. 훈련된 몽상가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사명감이다.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사명은 많은 경우에 위험하고 비관습적이며 달성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꿈을 사명으로 바꾸고, 사명을 현실로 바꾸는 이런 훈련은 사실상 목표를 설정하는 과정으로 귀착된다. (48면)




23. 계획을 실천에 옮겨나가면서 그녀의 네트워크는 늘어났고, 네트워크가 커지면서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할 날도 가까워졌다. (50면)




24. 이러한 훈련의 목적은 단지 막연한 노력이 아닌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51면)




25. 일단 계획서가 완성되면 늘 볼 수 있는 곳에 - 여러 군데도 좋다 - 붙여놓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저 말고 이야기하라. (51면)




26. ‘네트워킹’에 대한 가장 잘못된 통념은, 직장을 구해야 하는 등의 시급한 일이 있을 때만 사람들에게 접근하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이다. 실제로는 멘토나 친구들 등의 인맥이 풍부한 사람들은 뭔가가 필요하기 훨씬 전부터 사람들에게 다가서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58면)




27. 중요한 점은 내일 다른 환경에서 일하게 되길 막연히 바라기만 하지 말고 즉 새로운 회사나 새로운 경제 상황에 기대지 말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자신이 원하는 환경과 커뮤니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61면)




28. 최고의 수익은 이미 확보된 고객을 기반으로 발생한다. 조금이라도 당신의 네트워크에 접해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서기가 제일 쉽다. (63면)




29. 지금부터 정원을 가꿔라. 보물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64면)




30. 일단 한번 부딪혀보자는 아버지의 담대한 행동이 아니었다면 나에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 받은 이 교훈은 내 평생의 행동 철칙이 되었다. (66, 67면)




31. “이 자전거가 쓰레기통에 있는데, 내가 가져가도 될까요? 고쳐서 내 아들에게 주면 아주 좋아할 겁니다.” 대단한 배짱이 아닌가! 자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노동자 계급의 남자가 ‘난 가난하니 당신네 쓰레기통에 버려져 있던 것을 가져가겠다.’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른 사람에게 생각도 못한 선물을 주게 된 셈이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그 사람에게도 놀랍고 즐거운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67면)




32. 하지만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앞자리로 달려가 앉았다. 훗날 나는 야야의 첫 번째 우량고객이 되었다. 상황 불문하고 나는 언제나 이런 태도로 임한다. (68면)




33. 모험을 감행하여 위대함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느냐, 실패도 없고 진보도 없는 평범한 삶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다. (70면)




34.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강사의 종류는 2가지다. 떨린다는 사람과 안 떨린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이다.” (70면)




35. 일주일에 한명씩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시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라. ... 무엇보다도 거절에 대한 불안감이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정도가 되면 거절을 당하더라도 한 걸음 전진하는 셈이 된다. 배우는 기회가 될 테니까 말이다. (73, 74면)




36. 관계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75면)




37. 나는 당황했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한 번이라도 일 이외의 일로 부하 직원들에게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한 팀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는가? 나의 상사들에게는 첫날부터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그제야 나의 성공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나를 위해 일하는 만큼 나도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것을! (77면)




38. 이제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피하기가 전보다 쉬워졌다. 진심으로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조만간 상대는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 시대의 문화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호혜적인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78면)




39. 사람 관계는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진짜 관계가 되어야 한다. (81면)




40. 점점 커지는 네트워크는 계산적인 의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뿐이다. (86면)




41. 명심하라. 명단을 작성하고 집중하고 꼼꼼하게 움직이면, 당신이 못 만날 사람은 없다. (102면)




42. 그의 성공비결은 복잡하지는 않으나 열성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는 하루에 최소 50명과 대화를 나눈다. (123면)




43. 친구와 동료들로 이루어진 네트워크 형성은 대인관계를 넓히고 우정을 쌓아나가는 일이다.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아니라,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 (123면)




44. “네트워크의 가치는 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이들의 수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 (125면)




45.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주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함께 하느냐이다. 제일 좋아하는 활동과 제일 편안한 장소를 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0면)




46. 정말로 어떤 일을 좋아하면 옆으로 밖으로 전염이 된다. 그 열정이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그들은 경계심을 풀고 당신이라는 사람과 당신이 좋아하는 그 일에 다가온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비즈니스를 할 때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131면)




47. 이기는 전쟁은 총의 첫발이 나가기도 전에 어디서 언제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계획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군사 전략가들은 잘 알고 있다. 컨퍼런스에 참가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활동무대로 삼아 미리 목표를 설정해놓으면, 평범한 컨퍼런스를 하나의 사명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무명의 참가자가 되지 말고 특공대원이 되어야 한다! (140면)




48. 그렇다. 컨퍼런스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실제로 있다. 소프트웨어 업체의 중역인 폴 레디는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볼링공이거나 볼링핀이라고 말한다. 볼링공인 사람은 컨퍼런스나 행사 장소에 걸어(또는 굴러서) 들어가 스트라이크를 날린다. 당당함과 독창성을 지닌 그는 가는 곳마다 호감을 일으키고 친구를 만들며,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한다. 볼링핀인 사람은 조용히 앉아 누가 어떻게 해주기만 기다린다. 컴퍼런스를 일과 관련된 휴식처 정도로 여기지 마라. 당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선거운동이라고 생각하라. (142, 143면)




49. 컨퍼런스에서 연사가 되지 않더라도 눈에 띠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컨퍼런스에 가는 이유는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당신에 대한 기억을 심어주려는 목적이 있다. 질문 시간이 되면, 제일 먼저 손을 들어라. 예리하고 잘 정돈된 질문은 청중 전체의 시선을 당신에게 잡아올 수 있다. 이름과 자신이 속한 조직과 직책을 분명하게 알리고 자서 사람들로 하여금 웅성거리게 할 수 있는 멋진 질문을 하라. 가능하면 전문 분야에 관계된 질문이 좋은데, 누군가 다가와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었다.”고 말을 걸 때 이야깃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148, 149면)




50. 힘은 정보를 숨김으로써가 아니라 나눔으로써 생긴다. (181면)




51. 진정한 자신이 가장 매력적이다. (185면)




52. 중요한 점은 대화를 할 때 이야기하는 상대의 각기 다른 스타일을 인식하고 그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0면)




53. 먼저 나서서 인사를 하라. 이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행동임과 동시에 상대에 대한 당신의 관심을 표시해준다. (192면)




54. “대단하십니다. 좀더 말씀해주세요.” (193면)




55. 상대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라.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격려하라.

상대에게 충분히 말할 기회를 주어라.

미소를 지어라.

상대방의 관심사에 맞추어 대화하라.

정직하고 진실한 의견을 밝혀라. (199면)




56.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될 때 진정한 파워가 생긴다는 점이다. (217면)




57.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엮어줄 수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당신의 네트워크가 갖는 힘은 질이나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이 다양성에서도 기인한다. (218면)




58. 데일 카네기의 말을 빌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성공에 관심을 갖게 하려고 노력하는 두 해보다 타인들의 성공에 관심을 쏟아붓는 두 달이 더 큰 성공을 가져다준다.” (221면)




58. 우디 앨렌이 말한 바와 같이, 성공의 80%가 나타나야 할 자리에 나타나는 데서 기인한다면 지속적인 인간관계의 80%는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지 않는 데서 생긴다. (222면)




59.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반복이다. (224면)




60. 컨텐츠를 창조하는 사람들은 독서광이거나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질 줄 알거나 적절한 사람들을 찾아 대화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271면)




61. 마케팅 전문가인 나는 인식이 현실을 유도하며, 어느 면에서 우리 모두가 브랜드라는 사실을 강하게 느낀다. 내가 입는 옷, 나의 대화 스타일, 나의 취미, 이 모두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결정해주는 요소들이다. 오늘의 새로운 경제구조에서는 이미지와 정체성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비슷한 상품이나 수많은 정보들이 넘쳐나는 디지털 세계에서는 상품 자체보다 개인적인 메시지를 바탕으로 하는 강력한 브랜드가 경쟁 우위를 점한다. (274면)




62, 점점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당신에게 그리고 당신이 의도하는 바를 향해 모이게 한다. (275면)




63. “... 자네의 전문성을 개발시키는 주인 정신을 가져야 해. 자신의 브랜드를 무명의 분석가에서 변화를 창조하는 준 유명인사 정도로 바꿔야 하네.” (277면)




64. 가르침이란 다시 배우는 일이다. (337면)




65. 내가 생각하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는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사람이 충분히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윌 밀러와 글렌 스팍크스는 그들의 저서 ‘냉장고 권리: 인간관계를 창조하고 회복하는 방법’에서 이동성의 증가와 개인주의의 강조, 접근가능한 미디어 매체의 폭발적인 팽창으로 인해 현대인들이 상대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게 된다고 주장한다. (342, 343면)




66. 우리는 흔히 삶이 벅차게 느껴질 때 책방에 가서 자립에 관한 서적을 뒤적이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자립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다. 이 불균형의 해독제는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과의 유대관계다. (343면)




67.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유대를 형성하기에 가장 적당한 시간은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우리가 처한 경제구조에서 상호의존과 상호연결의 중요성은 날로 더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우리가 연결된 것이나 사람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지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지배한 것이 개인주의라면, 21세기를 지배하는 것은 커뮤니티와 협력관계가 될 것이다. 인터넷이 지리적인 경계를 허물고 세계 각국의 수억 명의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디지털 시데에, 혼자 고립되어 일하고 살아갈 이유는 없다. 이제는 새로운 기술이나 벤처 캐피털이 아닌, 당신이 아는 사람들과 그들과의 작업 효율성에 따라 성공이 좌우될 수 있는 시대이다. 수익의 열쇠 또한 타인과의 조화로운 협력관계가 쥐고 있다. (344, 3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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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지식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권영숙 옮김 / 청하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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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속 좀더 원한다면 내가 과거에 했던 모든 일들, 그 일들에 완전히 새로운 영감을 주리라. (43면)




2. 네가 서있는 곳을 깊이 파라! 아래쪽에는 샘이 있다. 몽매한 인간들은 외치게 두라. 밑으로 가면 오직 - 지옥뿐이다!라고. (43면)




3. 이 세계의 가장 좋은 경치는 중간쯤의 높이에서부터이다. (44면)




4. 눈과 마음이 시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너는 태양을 쫓아도 그림자 가운데를 걸어라! (44면)




5. 해석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이기에 나는 스스로 자기의 해석자는 되지 않는다. (48면)




6. 자신을 두려워하는 자만이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또,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자만이 타인을 지도할 수 있다. (51면)




7. 네가 나의 책을 소화하려면 우선 나와 사이가 좋아야만 한다. (57면)




8. 인간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든 악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든 내가 늘 발견하는 것은 한결같이 인간은 하나의 사명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63면)




9. 요즈음의 우리는 근시안인 까닭에 이웃을 유익한 인간과 유해한 인간, 선한 자와 악한 자 따위의 방식으로 가늠하기 좋게 분류해 버리지만, 널리 일반을 보고 긴 안목으로 전체를 본다면, 우리는 이러한 구별방식에 곧 회의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는 그것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가장 유해한 인간조차도 종의 보존에 있어서는 가장 유익한 인간일런지도 모른다. (63면)




10. ... 이 삶에는 의미가 있다. 삶은 그 배후에, 아니면 그 밑에 뭔가를 감추고 있다.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65면)




11. 고귀․관용스런 인간은 지성을 침묵하게 만들 만큼 강한 쾌감이나 불쾌감을 지니고 있다. 그때, 그의 심장은 머리 위에 있게 된다. 사람들이 ‘정열’에 대해 말할 때가 바로 이 때이다. (68면)




12. 니체 철학의 중심 테마 중 하나는 선과 악에 대한 어떤 단순한 대비도 거부하는 점이다. (역자 주, 70면)




13. 소유물은 소유함으로써 시시해진다. (80면)




14. 어떤 소유에 권태를 느끼는 것은, 즉 우리들 자신에게 권태를 느낀다는 것이다. (80면)




15. 많은 위대함은, 많은 선과 아름다움처럼 단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여지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절대로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라는 것을 -, 그래야만이 ‘이것들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81면)




16. 미덕에 대한 찬미는 대부분 개인에게 유해한 것에 대한 찬미이다 (85면)




17. 아마 아시아인이 유럽인보다 우수한 점은 전자가 후자보다도 훨씬 오래, 훨씬 깊은 안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103면)




18. 법률이 말하고 있는 것 - 우리들이 어느 민족의 형법을, 마치 그것이 그 민족성의 표현인 것처럼 연구한다면, 우리들은 큰 착오를 저지르게 된다. 법률은, 민족의 본질을 말하지 않고, 차라리 그 민족에 있어서 소원하고, 기이하며 놀랄 만한, 이국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고 있다. (103면)




19. 에피쿠로스 - 그렇다. 나는 에피쿠로스라는 인물을 아마도 누구보다도 달리 느끼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104면)




20. 오로지 창조자로서! - 내가 가장 노력했고 지금도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물이 무엇인가에 관한 것보다 사물이 무엇이라고 불리우고 있는가라는 점이 무한히 중요하다는 사실의 이해이다. (118면)




21. 오직 창조자만이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다! (118면)




22. 여성들의 매력과 그 가장 강력한 작용은, 철학자의 말을 빌려 말하면 ‘원격작용’인 것이다. 그것에는 그러나, 만사 제쳐놓고 우선 필요한 것이 있다 - 거리라는 것이! (121면)




23. 사랑 -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정욕조차도 허락한다. (121면)




24. 규칙에 관해서는 니체는 예외를 찬양한다. (역자주, 129면)




25. 무엇보다도 우선 인간은 자신이 음악을 들을 때 경험하는 근원적 압도감의 이익을 소망했다. (137면)




26. 호머가 말하는 것처럼 ‘시인은 참으로 숱하게 거짓말을 한다.’ (139면)




27. 사상가에게 있어 어떤 종류의 견해나 증명 그리고 음미의 방법이라는 것은 그들이 그때 그때 그것의 포로가 된 부끄럽게 여길 만한 경솔한 행위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 (143면)




28. 어떤 사상가는 책 속에서 빛을 모은다. (144면)




29. 실제로 사람들은 좋은 시를 마주 대했을 때 좋은 산문을 쓰는 것이다! (145면)




30.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 인간은 경멸을 배우는 것 못지않게 경의를 표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 (157면)




31. 중재자로서의 음악 - 한 개혁자가 ‘나는 작곡가를 끊임없이 구하고 있다’라고 그의 제자에게 말했다. ‘그가 나의 사상을 배운 후 그것을 장래에 그의 언어로 말할 것이니, 그러한 방식으로 나는 인간의 귀와 가슴에 훨씬 더 낫게 닿아야만 한다. (163면)




32. 영속적인 실체는 없다. (171면)




33. 사색가는 이제 진리에 대한 충동과 생의 보존을 위한 오류들이 그 첫 번째 투쟁 동안 충돌하는 존재이다. (173면)




34. 기쁨과 욕망이라는 것은 어떤 존재를 한 기능으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강자에게 있어서는 기쁨과 욕망이 함께 나타난다. (179면)




35. 신의 조건 - 신 그 자신은 현명한 인간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고 합리적 이성을 가진 루터는 말하였다. (189면)




36. 곤란한 특성 - 모든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 그것은 곤란한 특성이다. 그것은 내내 사람들의 눈을 크게 뜨도록 만들고 있으며, 결국 인간은 그가 바랐던 것처럼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어 버린다. (203면)




37. 심각하다는 것과 심각하게 보인다는 것 - 자기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명석함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대중에게 심각한 것처럼 보이기를 원하는 사람은 모호함을 위해 노력한다. (207면)




38. 사상가 - 그는 사상가이다. 이것은 사물이 존재하는 상태보다 더욱 그것을 단순화시키는 법을 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10면)




39. 책 - 모든 책들을 넘어설 수 있는 것조차 전달해 주지 못하는 책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221면)




40. 너의 양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 너는 너 자체가 되어라. (226면)




41.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모랄은, 어떤 일이든 행하도록 촉진시키고, 반복해서 행하도록 촉진시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행하고 밤은 밤대로 그것을 꿈꿀 수 있도록 재촉하며 그리고 이것을 잘 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도록 나를 선동하는 그러한 모랄이다. (252면)




42. ‘돛을 걷어라!’ 대담하게 승선하고 있는 ‘인간’은 온갖 종류의 돛을 조정하는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즉시 죽음을 당할 것이며 바다는 그를 삼킬 것이다. 우리는 감소된 에너르기로 사는 것 역시 배워야만 한다. 고통이 안전신호를 주자마자 시간은 그 에너르기를 감소시켜 버린다. 어떤 커다란 위험, 폭풍이 다가오고 있으면 우리는 가능한 한 ‘가장 작게 몸을 부풀리도록’ 충고받는다. (262면)




43. 실제로, 고통 자체는 그들에게 그들의 가장 위대한 순간들을 부여한다! 이들은 영웅적 인간들이며 인간의 위대한 고통의 초래자이다. 또한 고통 자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그 똑같은 변명을 필요로 하는 극히 드문 소수의 인간들이다. (262면)




44. 그러나 우리는, 이성을 갈망하는 다른 우리들은 과학적 실험처럼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면밀히 조사할 것을 결심하고 있다. 우리들은 스스로가 실험이 되고 실험용 동물이 되고자 원한다. (263면)




45. 새로운 인간, 일회적인 인간, 비교할 수 없는 인간, 자율적인 인간, 자기창조적인 인간! 이를 위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법칙적인 것, 필연적인 것에 대한 최상의 가르치는 자, 발견자가 되어야 하며 바로 이런 의미에서 창조자가 될 수 있기 위하여 물리학자가 되어야만 한다. (277면)




46. 학자의 책은 또한 으레 일그러진 영혼을 반영하고 있다. 모든 기술은 일그러졌음으로 하는 것이다. (335면)




47. 여기 창조되어 있는 것은 기아가 원인이냐 과잉이 원인이냐? (3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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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김영두 옮김 / 소나무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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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덕을 높이고 생각을 깊게 하여 학업을 추구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17면)




2. 사단칠정론, 제가 평생 동안 깊이 의심했던 것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견해가 오히려 분명하지 못한데 어찌 감히 거짓된 주장을 펴겠습니까? 게다가 선생님께서 고치신 설을 연구해 보면 미심쩍은 것이 확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먼저 이기에 대해서 분명하게 안 뒤에야 마음․성․정의 뜻이 모두 자리를 잡게 되고 사단칠정을 쉽게 분별할 수 있을 듯합니다. (고봉이 퇴계에게, 22면)




3.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고봉이 퇴계에게, 29면)




4. ... 그러나 어리석은 제가 헤아려 보건대, 그대의 높은 학문은 크고 넓은 점에서는 볼 만한 것이 있으나 세밀하고 오묘한 정수를 꿰뚫지는 못했으며, 마음을 두고 행동을 다스림에 있어서 사방으로 터져 자유로운 면에서는 얻은 것이 많으나 오히려 몸과 마음을 거두어 들여 굳히는 공부는 부족합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33면)




5. ... 그러므로 그대를 위한 오늘의 방도는 스스로를 너무 높이거나 세상을 일구는 데에 너무 용감하지 않는 것이며, 모든 일에 자신의 주장을 너무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34면)




6. ... 따라서 공부를 시작하는 요점을 어찌 다른 데서 구하겠습니까? 역시 하나를 오로지 하여 떠남이 없음과 삼가고 두려워함일 뿐입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36면)




7. 그러나 훌륭한 스승과 부지런한 벗이 날마다 서로 격려하는 도움이 없고, 다만 해진 책 가운데 나아가 얼마간의 깨달음이 있지만, 얻은 것이 온전하지 못해 조금 쌓은 것마저 곧 흩어져 버립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56면)




8. 일찍이 주자의 말에 “자기의 병을 알고서 고치고자 한다면, 그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이 된다.”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58면)




9. “학문이 지극하면, 처세에 어려움이 없다.” (58면)




10. “일찍 죽거나 오래 사는 것에 개의치 않고, 덕을 닦아 죽음을 기다린다.” (퇴계가 고봉에게, 60면)




11. 게다가 무릇 남을 가르치려면 반드시 나에게 쌓인 것이 많은 다음에야 그 말에 힘이 생겨서 남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자기도 남과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말로 남을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퇴계가 고봉에게, 65면)




12. 욕심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일러 주신 것은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반복해 주시면서도 엄격하고 용단 있는 것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분발해서 다시는 기세가 꺾여 세파에 빠지는 무리가 되지 말고 작은 일에서부터 삼가라는 가르침에 따르고자 하는 뜻을 갖게 했습니다. (고봉이 퇴계에게, 72면)




13. 또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색을 멀리하고 삶을 버린 뒤에야 도를 배울 수 있다.” 했으니, 나는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무릇 색을 좋아하여 덕을 잃고 생을 탐하여 의를 해치는 것은 진실로 학자들의 공통된 근심이다. 그러나 색을 멀리하고 생을 버릴 수 있는 것은 학문이 이루어진 뒤의 일이지, 처음 배우는 이들의 일은 아닌 듯하다. 만약 먼저 이 근심을 없앤 뒤에 학문을 하게 된다면, 나는 평생 학문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을까 두렵다. (고봉이 퇴계에게, 74면)




14. 나이는 세월과 함께 쏜살같이 빨리 가고 병은 늙어감에 따라 더욱 심해져서, 지기와 정력이 사그라져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이 학문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93면)




15. “우리들의 잘못은 바로 진실한 공부는 하지 않고 한갓 말로만 서로 경쟁하는 데 있으니, 이 병의 원인을 알고 돌이켜 노력한다면,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고봉이 퇴계에게, 98면)




16. 말재주만으로 경쟁하다시피 하는 것은 참으로 무익하고, 진실한 공부는 매번 하다가 말다가 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102면)




17. ... 이야말로 이른바 “군자는 사람을 덕으로 사랑하되, 형편에 따라 자기가 편한 대로 대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이고, 또한 증자는 “남을 위해 일을 꾀할 때 충성스럽게 한다.”라는 뜻이니, 깊이 감명받았습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109면)




18. 평소 일을 대하고 사물을 접할 때에 반드시 안과 밖 또는 이것과 저것을 자세히 헤아려, 서로 부합하여 막힘이 없게 된 뒤에야 순서를 따라 행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감히 멋대로 생각하거나 분수를 넘어 억지로 행하지 않습니다. (고봉이 퇴계에게, 114면)




19. 구석지고 적막한 시골에 있으면서 하는 일이 없으므로, 때때로 전에 배운 학문을 익히고 연구하다 보니 자못 한두 가지 터득한 것이 있어서 스스로 즐기기에 넉넉합니다. 그래도 스승과 벗이 함께 갈고 닦는 도움이 없으니,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멀리 계시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괴로워질 뿐입니다. (고봉이 퇴계에게, 153면)




20. 학문을 닦지 못하는 근심이 오죽하겠습니까? (퇴계가 고봉에게, 163면)




21. 지난번 바쁜 일들을 다 떨쳐 버리고 저를 찾아 주어, 하룻밤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 십 년 동안 책을 읽는 것보다 더욱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191면)




22. 큰 어리석음, 심한 병, 헛된 명성, 그리고 과분한 은혜의 네 가지 번거로움이 제 몸에 모두 모여있으니 그것들이 간섭하고 모순되어 함께 저를 방해합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199면)




23. 제가 이토록 낭패하여 구차히 여러 가지 일에 묶여 있으면서,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고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된 까닭은 오로지 헛된 이름이란 두 글자 때문입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240면)




24. 간절히 바라건대 지금부터 온갖 잡다한 일들을 끊어 버리십시오. 문을 닫고 마당을 쓸고 나서 옛 학문을 익히고 다스리십시오. 생각은 매우 깊게 하고 몸가짐은 애써 바로 잡으십시오. “말은 충실하고 믿음있게 하고 행동은 돈독하고 공경스럽게 해야 하니, 서있을 때는 바로 앞에 같이 있는 듯, 수레를 탈 때는 채 끝 횡목에 기대고 있는 듯, 그런 행실을 몸에서 떼지 말아야 합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305면)




25. 무릇 의리의 학문이란 지극히 정밀하고 미묘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마음을 크게 먹고 눈을 높게 둔 다음 절대로 먼저 한 가지 이론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편안한 기분으로 속깊은 뜻을 차근차근 살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점이 있음을 알아야 하고, 다른 것을 보더라도 같은 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둘로 나누더라도 나누기 전의 본래 뜻을 해치지 않아야 하며, 하나로 합치더라도 서로 제멋대로 섞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치우침 없이 두루 알게 되는 것입니다. (퇴계가 고봉에게, 36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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