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 개정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영호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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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학자들에게 있어서 기계가 우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우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문제는 항상 성가신 것이었다. 기계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경제를 움직이게 하는 투자의 구현체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경우 기계 한 대가 도입되면 노동자 한 명, 때로는 여러 명의 노동자들이 축출된다. 경제학자들은 기계가 몇 명의 노동자들을 대체하지만 결국에는 이들을 흡수하고, 생산성을 급격하게 증가시키며, 그 결과 국부가 증대된다고 항상 주장해 왔다. 그러나 누가 그 소득을 얻게 되는가? 1819년 저명한 경제학자 리카도(David Ricardo)는 신규 투자의 원천인 지대와 이익이 감소하지 않는 한 고용량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유명한 스위스의 비평가였던 시스몽디(Simonde de Sismondi)는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과연 그런가? 부가 중요하고 인간은 중요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왕 혼자서 로봇을 사용하여 영국 전체의 산출량을 생산해 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로버트 하일브로너) (5면)




2.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모든 산업이 생산능력의 저활용과 소비자 수요의 부족이라는 장벽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13면)




3. 내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던 최고 경영자들 중에서 전통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해 50년 후에도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지적 기술이 미래의 인력이 될 것이라고 모든 이들은 믿고 있었다. (21면)




4.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수입 증대를 위하여 인간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우리는 신규 채용보다는 차라리 자본 투자를 늘릴 것이다. (62, 63면)




5. ‘기계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이다. 노동 계급에게는 해고 통지서가 발부되고 있다.’ (64면)




6. 과거 많은 책과 논문으로 새로운 경제 현실을 촉진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미래학자인 드러커는 상당히 솔직하게 말한다. ‘생산의 핵심요소로서의 노동의 소멸은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적인 미해결 과제가 될 것이다.’ (69면)




7. ...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제조와 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어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69면)




8. ‘그러므로 우리는 특정의 노동 형태가 노동자에서 기계의 형태로 한 자본으로 옮겨지고 이러한 전이 결과 자신의 노동력이 평가절하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기계에 저항하는 투쟁을 한다. 한때 노동자들의 노동 활동이었던 것이 기’계의 활동이 되고 있다.’ (74면)




9. ‘경제 번영의 열쇠는 불만족을 조직적으로 만들어 내는 데 있다’고 케터링은 말한다. (78면)




10. ‘원가에 대단히 예민한 미국의 기업들은 더욱 더 많은 기계나 노동력을 구입하기보다는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려 노력하고 있다.’ (96면)




11. 노동자가 거의 없는 정보 사회로의 이전은 경제적 패러다임의 큰 변화로서 세 번재이며 마지막 단계가 될 것이다. (125면)




12. ... ‘관리 혁명이란, 사람을 관리하던 것을 기계를 관리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136면)




13. 지속적인 향상의 개념은 카이젠(Kaisen, 개선)이라고 불리는데, 일본 생산 방식에서 성공의 열쇠라고 여겨진다. (171면)




14. 정보 시대에 ‘시간’은 중요한 자산이며 구식의 계층 조직 경영 때문에 궁지에 빠진 기업들은 결단을 요구하는 정보의 흐름에 보조를 맞출 만큼 빠르게 의사 결정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176면)




15. 농업, 제조, 서비스 부분의 최근 기술 발전과 경향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상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며, 사회가 그러한 세상에 대해 광범위한 영향을 논의하거나 모든 영향에 대해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갖기도 전에 노동자가 거의 없는 세상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181면)




16. ... 그러나 일자리를 잃거나 일자리를 찾기가 힘든 많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기술의 확산 개념이란 어떠한 위안도 주지 못한다. (255면)




17.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은 고용을 축소하려 하고 21세기 첨단 기술 세계에 있어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본 투자를 늘리고 있다. (257면)




18. 주주들은 신기술과 생산성 향상으로 커다란 이익을 보았지만 그 혜택이 보통의 노동자들에게는 흘러들어 가지 못했다. (257면)




19. 외국 기업의 고도로 자동화된 공장과 보다 값싼 운영비로 인해 미국의 기업들은 업무를 축소하고 노동자를 해고해야만 했다.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가운데 1/3만이 서비스 부문에서 그것도 20퍼센트나 삭감된 임금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257면)




20. 한편으로는 자동화와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상의 노동력과 경쟁해야 하는 미국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가깝게 경제적 생존의 한계 지대로 밀려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258면)




21.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적절한 의료 조치를 거의 받지 못하거나 접근할 수 없다. 1992년의 센서스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의 28.5퍼센트가 어떠한 종류의 의료 보험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한다. 최근에 해고된 사람들은 특히 질병에 취약하다. (272면)




22.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마르쿠제 Herbert Marcuse는 정보화 시대로의 전환이 현재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현상을 컴퓨터 혁명의 여명기인 약 50년 전에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자동화는 자유 시간과 노동 시간을 역전시킬 것이다. 노동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자유 시간은 점점 증가할 것이다. 그 결과 급격한 가치 변화와 전통적인 문화와는 양립 불가능한 생활 양식으로 등장할 것이다. 선진 산업 사회는 이러한 가능성으로 가기 위한 항구적인 준비 상태에 있다.’ (323면)




23. 마수다는 물질적 가치로부터 ‘시간 가치’로의 전환을 인류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본다. ‘인간의 생활에 있어서 시간 가치는 경제 행위의 기본 가치인 물질적 가치보다 더 고차원적이다. 물질적 가치는 생리적 물질적 욕구의 충족과 대응하는 반면에 시간가치는 인간적 지적 욕구의 충족과 대응되기 때문이다.’ (324면)




24. ‘자유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실업이냐 레저이냐가 유일한 선택이다.’ (324면)




25. 일본의 경제학자와 업계의 일각에서는 레저의 증가가 서비스 산업을 촉진시키고 노동자들의 왕성한 소비 활동에 필요한 시간을 제공하는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측에서는 이를 ‘생활의 질’과 연계시킨다. 즉 노동자들은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자녀 교육, 사회 활동 그리고 인생을 즐기기 위한 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329면)




26. 노동 시간 증대로 인한 스트레스는 가사 노동의 부담을 안고 있는 주부 노동자들에게 특히 심하게 다가온다. (337면)




27. 노동력의 시장 가치는 점점 더 하락할 것이다. (339면)




28. 토크빌은 당시 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미국의 자발적 결사의 성향에 경탄했다. ... 나는 미국의 지적, 도덕적 결사가 가장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346면)




29. 인류학자인 미드 Margaret Mead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들에게 실제로 중요한 거의 모든 것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영위되고 보살펴져야 하는가에 대한 우리의 깊은 몰입을 구현하고 있는 모든 것이 자원주의(volunteerism)의 어떤 형태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만 주의하면 알아차릴 수 있다.’ (348면)




30.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는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있어서 기계가 점차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는 역사상 새로운 시기로 진입하고 있다. 비록 일정표를 예측하기는 곤란하지만 우리는 자동화된 미래의 확실한 코스에 놓여있고 21세기 초반에는 최소한 제조업에 있어서는 거의 무노동의 시대로 진입할 것이다. 서비스 분야도 비록 자동화가 느리겠지만 21세기의 중반경에는 거의 자동화된 상태로 근접할 것이다. 출현하고 있는 지식 부문은 대체된 노동력의 약간 부분을 흡수할 것이지만 실업 증대의 대세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수억의 노동자들이 자동화와 세계화라는 쌍두마차로 인해서 영구 실업자로 전락할 것이다. (396면)




31. 우리는 지금 세계 시장과 생산 자동화라는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거의 노동자 없는 경제로 향한 길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그 길이 완전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인지 또는 무서운 지옥으로 인도할 것인지의 여부는 문명화가 제3차 산업혁명의 바퀴를 따라갈 후기 시장시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다. 동시에 노동의 종말은 새로운 사회 변혁과 인간 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도 있다. 미래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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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사회 - 동녘신서 101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신성림 옮김 / 동녘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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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년쯤 전 시드니 모겐베서를 공항까지 배웅한 적이 있다. 라운지에서 그가 탈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 두 사람이 모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존 롤스의 정의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떠나기 전에 모겐베서는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가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모겐베서의 말이 계기가 되었다. 사실 철학 연구를 시작하던 시기에 사회에 대한 나의 신념은 모겐베서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7면)




2. 품위 있는 사회의 이념 자체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나는 수년 동안 거기에 살을 붙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점령지역에서의 봉기(인티파다)한 팔레스타인이나 무너진 공산권 국가에서의 이스라엘로 옮겨진 이민자들과 대화를 나눈 덕분에 차츰 사람들의 삶에서 명예와 모욕이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정치적 사유에서 명예와 모욕의 개념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해서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는 품위 있는 사회의 이념이 태어났다. (7, 8면)




3. 품위 있는 사회란 어떤 사회인가? 내가 제안하는 대답은 대략 다음과 같다.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다. 나는 품위 있는 사회와 문명화된 사회를 구분한다. 문명화된 사회가 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면, 품위 있는 사회는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다. (15면)




4. 문명화된 사회의 이념은 개인 간의 관계와 관련된 미시 윤리적인 개념인 반면, 품위 있는 사회의 이념은 전체 사회구조와 관련된 거시 윤리적 개념이다. (16면)




5. 그러나 가장 중요한 비교는 품위 있는 사회와 정의로운 사회의 비교다. 품위 있는 사회의 개념을 명확히 하려면 품위 있는 사회와 품위 없는 사회의 차이를 해명해야 할 뿐 아니라 경쟁적이든 보완적이든 다른 사회적 이념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16면)




6. 1부에서는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를 다룬다. 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주장에서 시작했다. 하나는 통치제도의 존재 자체가 모욕감을 느낄 이유라고 말하는 무정부주의자의 주장이다. 반면 스토아학파는 어떤 통치제도가 모욕감을 느낄 이유를 제공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은 통치제도가 반드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둘 다 제외했다. (16면)




7. 나는 품위 있는 사회의 이념이 반드시 권리의 개념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권리 개념이 없는 사회라도 품위 있는 사회에 적합한 명예와 모욕의 개념을 개발할 수 있다. 명예의 개념으로 적합한 것은 자기 존중의 개념으로, 자부심이나 사회적 명예와 대립된다. (16, 17면)




8. 2부는 인간을 존중해야 할 정당한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루고, 세 가지 유형의 정당화를 제시한다. 첫째는 적극적인 정당화로, 사람들이 존중받을 자격을 갖게 하는 인간의 공통된 특성에 의존한다. 둘째는 그런 특성이 존재할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인간을 존중하는 일반적인 태도가 존중의 원천이라고 제안하는 회의적 정당화다. 마지막 소극적인 정당화는 사람들을 존중할 적극적이거나 회의적인 근거는 없지만 그들을 모욕하는 일을 피해야 할 정당성은 있다고 주장한다. (17면)




9. 결국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 3부까지는 모욕의 개념을 다루고 4부는 모욕이 제도적으로 발현된 것을 다룬다. 맺음말에서는 품위 있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와 비교한다. 정의로운 사회는 모두 품위 있는 사회여야 하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17면)




10. 나는 품위 있는 사회는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는 대략적인 설명으로 출발했다. 왜 품위 있는 사회의 성격을 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적극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소극적으로 규정하는가? 여기에는 각각 도덕적, 논리적, 인지적 이유에 해당하는 세 가지 근거가 있다. 도덕적 이유는 악을 근절하는 일의 무게와 선을 증진하는 일의 무게가 불균형을 이룬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고통을 주는 악을 제거하는 일이 즐거움을 주는 이익을 만드는 일보다 훨씬 더 시급하다. 모욕은 고통을 주는 악인 반면에 존중은 이익이다. 따라서 존중을 표하는 일보다 모욕을 제거하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 (18면)




11. 우리는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존중을 표현할 수 있을 뿐이고, 그렇게 주어진 존중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반대로 어떤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는 일처럼 다른 행위의 부산물 아니면서 모욕을 주는 구체적인 행동이 존재한다. (19면)




12. 인지적 이유는 존중하는 행동보다 모욕하는 행동을 확인하기가 더 쉽다는 데 있다. 건강보다 질병을 확인하기가 더 쉬운 것과 같다. (19면)




13. 오웰은 확실히 품위 있는 사회의 이념을 구상하는 데 중요한 원천이었기에, 오웰이 사회주의자였다는 의미에서 품위 있는 사회는 오웰의 사회주의를 구현한다. (20면)




14. 품위 있는 사회는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다. 따라서 한 사회의 제도가 그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타당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을 때, 그 사회는 품위 있는 사회가 된다. (24면)




15. 인지 영역에 회의론자들이 있다면 정치 영역에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있다. (26면)




16.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모욕은 강압적인 제도로 개인의 자율성을 억누른다는 의미다. 통치제도는 국민의 우선체계를 왜곡함으로써 그 제도의 영향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강압적인 힘을 행사한다. 이처럼 인간의 자율성을 표현하는 통로인 우선체계의 왜곡에서 모욕이 비롯된다. 강압이 모욕을 초래하는 셈이다. 사실 무정부주의자들의 주장은 훨씬 더 강하다. 이들은 강압의 가능성만으로도, 즉 사람들이 권력기관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모욕적이라고 본다. (27면)




17. 이런 무정부주의적 입장의 배후에는, 제도가 있으면 언제나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존재한다고 하는 일종의 ‘과두제의 철칙’에 대한 신념이 있다. (28면)




18. 우리가 무정부주의와 결부시킨 모욕 개념은 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침해다. 현재의 맥락에서 이것은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는 우선체계를 왜곡할 위험이 있는 제도가 개입한다는 의미다. ... 개인의 진정한 이익을 대변한다고 자청하는 온정주의는 사람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특히 모욕적이다. (30면)




19. 무정부주의적 견해는 모욕을 개인의 자율성 축소보다 훨씬 더 강한 의미인 개인의 주권에 대한 침해로 간주한다. ... 윌리엄 고드윈이 ‘적극적 제도’라고 부르던, 영속하는 사회 제도들은 개인의 주권을 구속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모욕적이다. 오직 개인만이 주권을 소유할 자격이 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통치제도는 모두 모욕적이다. 여기에는 대의민주제까지 포함된다. (30, 31면)




20. 개인의 주권이란 자신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서 완전한 권한을 갖고 행동할 최고의 권리를 의미한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다른 개인의 주권을 결코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위해 원칙으로 개인의 권한을 제한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주권이 오직 개인에게만 속하며 그런 권한을 침해하는 제도는 모두 개인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권위주의적인 제도, 특정한 목적에 대한 직접적인 동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 제도들은 개인의 주권을 탈취하거나 적어도 그것을 축소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모욕적이라는 것이다. (31, 32면)




21. ... 따라서 회의적 무정부주의의 도전이 힘을 얻으려면 영속하는 통치제도를 갖지 않으면서도 안정된 사회상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 무정부주의자들에게 유일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통치제도 없는 사회가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달라는 것이다. (32, 33면)




22. 무정부주의의 주요 유형은 공동체 무정부주의와 막스 슈티르너가 ‘이기주의자들의 연합’이라고 표현한 무정부주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유형은 영속하는 통치제도가 없는 품위 있는 사회라는 과제에 서로 다른 대응을 보인다. (33면)




23. 공동체 무정부주의자들은 제도 없는 사회가 가능할 수 있지만 이는 오직 플라톤이 ‘세련된 사회’라고 부른 것을 버리고 대신 ‘건강한 사회’(국가, 372-373)를 취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제도 없는 사회는 기본적인 관계의 틀 안에서, 작고 친밀한 사회를 이루는 자발적인 공동체에서 가능하다. 그런 사회는 규모와 노동 분업, 직업의 전문화 등의 이점을 누리는 현대 선진사회의 생활수준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영속하는 통치제도가 수반하는 모욕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품위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다. (33면)




24. 인간의 존엄성으로 간주되는 품위 있는 생활을 위한 조건은 사회와 역사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이다. 제도 없는 공동체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 경제적 이점을 포기하는 행위가 선진사회에서 불명예스러울 정도로 생활수준을 낮추는 일로 인식될 수 있다. (34면)




25. 이기주의적 무정부주의자들은 거리 조명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방어 병력이나 법제의 문제도 시장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아무런 정치적 틀이 없는, 따라서 어떠한 모욕적인 제도도 없는 순수 시장사회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34면)




26. 통치제도가 없는 시장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라는 생각에 대해서는, 시장사회를 구성하는 경제조직, 특히 독점기업과 카르텔이 사실상 통치제도라는 점에서 반박할 수 있다. 독점기업의 강제력은 정치제도의 권력보다 결코 약하지 않다. 그러니 시장사회에 사람들을 모욕하는 권력을 가진 제도가 없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35면)




27. 시장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라는 생각 자체가 빗나간 점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제도는 시장사회가 초래하는 모욕으로부터 사회 구성원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필요한 비용을 지불할 수 없는 ‘주권을 가진 소비자들’을 빈곤, 무주택, 착취, 열악한 노동조건, 교육과 공공의료 서비스의 부재로부터 지켜줄 보호정책도 포함된다. 선진사회에서 시장사회는 해결책이라기보다 문젯거리다. (35면)




28. 무정부주의적 견해와 반대 극단에 있는 것은 어떤 사회도 모욕감을 느낄 타당한 이유를 제공할 수 없다고 보는 ‘스토아학파’의 견해다. 외적인 이유는 모욕감을 느낄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36면)




29. 스토아학파의 주요 용어 중에서 자율성과 유사한 것이 ‘자족성’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충족할 수 있음을 뜻하는 자족성이 역량의 개념이라면 자율성은 역량뿐 아니라 기회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자족성은 그 만족을 위해 주변 환경 속의 구체적인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36면)




30. 외적인 생활조건은 대개 우리의 통제력 아래에 놓여 있지 않지만, 영혼의 자율성으로 간주되는 자족성은 노예 신분처럼 가장 극단적인 외부 환경 속에서도 획득할 수 있다. ... 그렇다면 모욕은 인간의 자족성에 대한 침해이며, 이것은 오직 그가 자족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때만 발생한다. (36면)




31. 스토아학파의 아파티아는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오직 이성적으로 정당한 감정만 용인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자족성을 잃는 것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 있는 사물들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채택하기 때문이다. (37면)




32. 자부심과 달리 자존감은 인간이 오직 자신이 인간이라는 인식에 근거해서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는 명예다. 그러면 왜 그것이 타인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가? 더구나 자존감은 용어 자체에서도 드러나듯이 자신의 자아에 의존하는 존경이다. 우리는 자존감을 얻기 위해 칭찬이나 인정 같은 형태의 외부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사회도, 그리고 사회의 다른 어떤 구성원도 모욕감을 느낄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38면)




33. 여기에서 니체의 입장을 바탕으로 스토아학파의 주장을 약간 비판하고 넘어가자. “노예의 도덕은 처음부터 ‘외부’에 있는 것, ‘다른’ 것, ‘자신이 아닌’ 것을 부정한다”는 니체의 지적처럼, 자존감을 획득하려면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자기승인에 내재된 숭고한 자유에 기반을 둔다기보다 타자에 대한 분노에 기반을 둔다. 이 말을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외부’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노예의 자족성이 사실상 주변 환경에 복수하고자 하는 분노에 찬 노예들의 방어기제라는 의미다. (38면)




34. 모욕을 가하는 주인이 자신의 내면세계 ‘바깥’에 있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 사회적 지위가 열등한 사람들(‘노예’)이 모욕에서 벗어나는 일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노예의 내면세계 안에 이미 주인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노예 도덕’은 이처럼 원한을 품은 내면화의 결과다. 노예 도덕의 최종 도착점은 모욕을 겸손함을 키워주는 시련으로 보는 기독교적 시각이다. 모욕을 성인을 키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기독교의 입장은 방법만 달리 했을 뿐 스토아학파의 입장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이 역시 니체의 견해로 볼 때 전적으로 잘못된 계승이다. (39면)




35. 실제로 니체는 스토아학파와 기독교 사상이 모욕을 평가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고 믿는다. 자유롭게 사고하는 스토아학파의 현자는 자신이 자유로우며 주인이 자기를 모욕할 수 없다고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지만, 니체가 볼 때 기독교인은 진정으로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그 까닭은 기독교인이 원한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자기 뺨을 때리며 모욕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겠지만, 동시에 그의 마음속에는 가해자가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지옥은 모욕당한 기독교인의 분노에 찬 복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40면)




36. 이제 우리는 스펙트럼 양 끝에서 들려오는 세이렌들의 유혹적인 노랫소리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배의 돛대에 몸을 묶은 채로 무정부주의자 스킬라와 스토아학파라는 카리브디스 사이를 헤치고 나가야 한다. (40면)




37. ... 이런 명백한 분위기는 비트겐슈타인이 ‘하나의 그림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부른 상황과 동일하다. 하나의 그림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란 단순히 우리가 그 모델 이외에 다른 대안을 상상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하나의 모델에 불과한 것을 실재로 인식하는 경우를 이른다. 그린 그림의 지배력을 느슷하게 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한다. (42면)




38. 모욕행위를 금하는 사회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들이 해당 피해자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보다 특별히 더 많은 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죄는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금지 규정을 위반한 데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의무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모욕하는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모욕당할 수 없다. (43면)




39.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은, 의무나 목적, 권리 같은 하나의 핵심 개념만으로 특정 사회의 도덕체계를 기술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회에 다른 개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47면)




40. ... 이와 달리 인권이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이익이라고 정당화한다면, 인권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며, 권리의 도덕이라는 맥락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확인시켜주는 ‘표지’이다. (53면)




41. 인권이 아니면서 시민권에 속하는 권리 중에 투표권이 있다. (스위스에서 아주 최근까지 그랬듯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일은 품위 있는 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따라서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사회가 될 충분조건이라고 볼 수는 없다. 사회가 인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을 모욕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53면)




42. 품위 있는 사회의 토대가 되는 명예는 사회적 명예가 아니다. 한 사회가 품위 있는 사회가 될 자격을 잃게 만드는 모욕은 사회적 명예의 훼손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일 모든 사람이 똑같은 양으로 누릴 자격이 있는 명예의 개념을 품위 있는 사회의 토대로 삼고자 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명예에서 인간의 존엄성으로 옮겨가야 한다. (56면)




43. 존엄성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사회적 명예의 의미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명예는 품위 있는 사회를 논의할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인간의 존엄성 개념이 역사적으로 사회적 명예에 대한 생각에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존엄성(dignity)’이라는 말은 사회적 명예를 의미하는 라틴어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 유래한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 존엄성의 훼손을 의미하는 모욕 개념은 사회적 모욕 개념에서 나왔다. (56면)




44. 결국 품위 있는 사회와 관련이 있는 명예 개념은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의식이며 그것을 침해받을 때 자신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모욕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존감의 손상인가, 자부심의 축소인가, 혹은 일관성의 축소인가, 아니면 그저 인간 존엄성에 대한 훼손인가? (57면)




45. 먼저 검토해야 할 한 쌍의 개념은 자존감과 자부심이다. ... 이 둘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존중이 사람들을 평등하게 대할 근거를 구성하는 반면 평가는 사람들의 등급을 매길 근거가 된다는 데 있다. 많은 돋덕이론이 오직 인간이라는 근거만으로도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덕이론은 없다. (57면)




46. 아첨꾼은 자존감을 대가로 다른 이익, 자기 자부심에 기여할 수 있는 이익을 얻기 위해 자기 자신을 모욕한다. (58면)




47. 일관성이 있는 사람은 타락시킬 수 없다. 모욕적인 사회는 일관성 있는 사람들을 공격해서 그들이 비열하게 타협하도록 강요한다. (61면)




48. 우리는 적극적, 회의적, 소극적 정당화, 세 가지 유형의 정당화를 검토할 것이다. 적극적 정당화는 모든 인간이 가진 특성, 바로 그 덕분에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존중받을 가치를 갖는 그런 특성을 찾아내려고 한다. 회의적 정당화는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에 선행해서 이를 정당화하는 특성 찾기를 포기한다. 그 대신 존중의 태도가 출발점이 되며, 인간이라는 사실이 존중을 불러일으키는 특성이 되는 것은 바로 이런 태도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소극적 정당화는 인간에게 존중받을 가치를 부여하는 특성 찾기를 포기하고, 왜 인간을 모욕하는 것이 나쁜지 묻는 질문에 집중한다. (69면)




49. 적극적 정당화는 창조와 계시를 믿는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왜 인간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그들은 인간이 신의 이미지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예컨대, 모든 인간이 존중받을 자격을 갖는 이유는 신에게서 반사된 영광 덕분이라는 것이다. (70면)




50. ... 그러나 반사된 영광의 개념이 신의 영광이 반사되었다는 의미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종종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것이 아닌, ‘인간’의 성취에서 긍지를 얻는다. ... 인간이란 단어를 종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여러 개인의 이런 업적이 분배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전체의 업적으로 간주됨을 보여준다. (70, 71면)




51.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왜 반사된 영광을 인류 전체가 아니라 더 좁은 범위로 제한하면 안 되는가? 둘째, 왜 반사된 영광을 더 넓은 범위로 확장해서 벼룩처럼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취를 거둘 수 있는 다른 생명체를 포함하면 안 되는가? (72면)




52. 우리가 명예를 인정해야 한다고 느끼는 동물은 우리 문화 속에서 훌륭한 인간적 상징이 된 동물이다. 자유나 정복의 상징인 독수리를 잡아 우리에 가둠으로써 날아다니는 능력을 제약하는 일은 그런 본질에 대한 침해이며 이는 앵무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과 의미가 다르다. (74면)




53. 인간적 존중을 정당화하는 문제에 대한 종교적 대답이 택한 수단은 반사된 영광이다. 이 개념은 신 대 인간, 우월한 사람 대 나머지 인류,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 대 ‘인간에 가까운’ 동물에까지, 자신의 명예를 그 동료들에게 부여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취하며 이따금씩 기이한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74면)




54. 모든 인간을 존중하라는 요구를 정당화하는 특성이 되려면 다음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1.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존중해야 하므로 등급을 매길 수 있는 특성이 아니어야 한다.

2. 그 특성은 악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혐오나 경멸의 이유가 될 수 있는 특성이 아니어야 한다.

3. 인간을 존중하는 일과 도덕적으로 관련이 있는 특성이어야 한다.

4. 존중을 인본주의적으로 정당화하는 특성이어야 한다. 즉 신적인 존재에 호소하지 않고 인간적 용어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74, 75면)




55. 칸트는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준 루소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이것은 동물학자가 흥미로운 동물의 한 종에 관심을 갖게 해준 다른 동물학자에게 보이는 감사와 다르다. 루소는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 만으로 내재적 가치를 지닌 인간의 특성들에 칸트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실제로 칸트는 인간의 특징을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구성요소들로 나누었다.

1. 목적을 결정하는 존재, 즉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존재다.

2. 자기입법 능력이 있는 존재다.

3.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 능력, 즉 점점 더 완벽해질 능력을 가진다.

4. 도덕적 주체가 될 수 있다.

5. 합리적이다.

6. 자연의 인과관계를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75면)




56. 칸트가 열거한 특징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수준으로 소유하고 있다. 인간이 자기입법자로서 갖는 도덕적 역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칸트의 목록에 있는 특징들은 서열을 나누는 것이어서 칸트가 정당화하고자 하는 것, 즉 단지 인간이라는 이유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존중하는 일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75, 76면)




57. 그러나 이 특징들이 서열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보다 더 근심스러운 문제는 그것이 악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칸트가 제시한 특징들을 소유하면서도, 예를 들어 도덕적인 삶을 영위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명백하게 비도덕적인 삶을 산다면, 왜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단 말인가? 그 사람이 도덕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저버렸다는 사실은 그를 존중할 이유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에게 주어진 과업을 모독한 자라고 그를 경멸하고 모욕할 이유가 되어야 한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도덕적이 될 능력이 있는 범죄자들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 그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모독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이 존중받을 근거가 되어줄 바로 그 본성을 더럽힌 셈이다. (76면)




58. 하지만 칸트가 나열한 특성에 입각해서 인간에 대한 존중을 정당화하는 사람은, 칸트의 특성들은 등급을 매길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존중하는 일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맞서는 분명한 방어선이 있다고 여긴다. 설령 어떤 특성이 등급을 매길 수 있다 해도 사람들 안에 그런 특성이 존재하기 위한 기반은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한계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반을 넘어서는 것은 개인의 특수성으로, 그 정도와 강도에 따라 사회적으로 평가할 토대가 된다. 최소한의 한계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누릴 자격이 있는 기본적인 존중을 보장하지만, 그 이상의 것은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으며 이는 정당한 일이다. (77면)




59. 반대로 내재적 가치는 소중한 것은 교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 칸트의 핵심 주장은 모든 사람이 내재적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교체의 관점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상황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는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칸트에 따르면 인간에 대한 존중을 정당화하는 특성은 인간에게 사용가치도 교환가치도 아닌 내재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특성이기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80면)




60. 다양하게 알려진 공리주의 이론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 공리주의적 견해에 따르면 내재적 가치라는 개념에는 도덕적 함축이 없으며, 단지 어떤 것이 우리에게 아주 중요해서 교체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한 수사학적 도구에 불과하다. (80면)




61. 능력 특성은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잠재력이라면, 성취 특성은 인간의 능력이 사용된 결과다. ... 인간에 대한 존중을 정당화하는 특성으로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어떤 역량에 바탕을 둔다. 그것은 주어진 순간에 자기 삶을 재평가하고 그 이후 자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역량이다. ... 자신을 변화시킬 능력이 사람마다 현저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바뀔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 인간은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82면)




62. 근원적 자유를 통해 인간에 대한 존중을 정당화하는 입장의 문제는 인간이 정말로 근원적인 의미에서 자유로운지 질문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B. F. 스키너는 존엄성 개념이 자유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하지만 그는 존엄성 개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유의 개념을 옹호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자유와 자유의 부재는 은밀한 강화와 공공연한 강화라는 차이밖에 없다. 은밀한 강화의 경우 외부 관찰자들이 자극과 반응의 관계를 확인하기가 더욱 어렵긴 하지만, 둘 다 강화를 통해 인간의 반응을 조종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자극에 의한 조종에서 해방되었다는 의미의 존엄성이란 스키너가 볼 때 환상에 불과하다. (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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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 민주주의 총서 04
하승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지 

1.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 담론에서는 지역은 부차적인 존재였다. 그것은 1995년 지방자치 선거가 완전히 부활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에서도 지방정치local politics는 중앙정치에 종속된 변수로 여겨졌다. (7면)




2. 전국에 있는 16개 광역지방자치단체, 230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는 각각 나름대로의 역사적 배경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9면)




3. 무엇보다 1991년의 지방의회 의원선거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미룬 상태에서 치른 불완전한 선거이긴 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최초로 제도화된 지방정치의 공간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기에 누가 제도 정치에 진출했는지는 더욱 중요했다. (20면)




4. 역설적이게도 1987년 민주화운동의 결과로 도입된 지방자치제도가 기존의 정권 아래에서 동원되던 각종 단체 출신들이 제도권으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22면)




5. 지방자치를 풀뿌리민주주의라고 부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방자치는 ‘풀뿌리보수주의의 아성’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43면)




6. 한편 풀뿌리보수주의가 가능한 것은 유권자의 관심과 참여가 낮기 때문이다. 이해관계가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많은 유권자의 무관심과 비참여가 필요하다. (44면)




7.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여성 지방의원 당선자 비율이 13.7%로 2002년의 3.2%에서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이는 주로 기초의원 비례대표제 도입에 따른 것이다. ... 유럽에서 여성 지방의원의 비율은 프랑스가 47%, 스웨덴이 45%, 노르웨이가 43%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큰 차이다. (47면)




8. 우선 지방자치단체장은 인사권(공무원 임용, 승진 등), 제정권(예산편성권)을 거의 독점하여 행사할 수 있다. 특히 공무원 인사권에 대한 권력은 엄청난 것이다. ... 그래서 지방 공무원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중에 따라 업무를 처리할 수 밖에 없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줄서기를 할 수 밖에 없다. (55면)




9. 또한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편성권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 오히려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을 매개로 지방의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 지방자치단체장이 행사할 수 있는 각종 인, 허가권이나 도시계획 관련 권한도 거의 통제받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은 인사권과 예산편성권 등의 각종 권한을 매개로 지역사회에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된다. (56면)




10. 우선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사권을 전혀 견제하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지방의회가 인사에 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56, 57면)




11. 한편 지방의회는 예산 및 결산에 대한 승인권을 가지고 있지만, 역량 부족(자질 부족, 보좌 인력 부족 등)과 제도적 한계(심의시간 부족, 증액 편성 불가 등) 때문에 실제로는 일부 예산에 대해서 액수를 줄이거나 조정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57면)




12. ... 그런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동시선거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소속 정당과 지방의회의 다수 정당은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다 보니 지방의회의 견제 기능은 더욱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57면)




13. ... 현재 한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만 하더라도 인구 규모가 다른 외국에 비해 크다는 점, 광역-기초를 단일화하면 오히려 중앙의 통제권이 더욱 강해져 중앙집권 강화를 초래하리라는 점 등이 비판의 논거가 되었다. (69면)




14. 한편, 중앙정부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추진하면서, 제주도에서 시범으로 행정 계층 개편을 시도했다. 제주도에서는 이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였고, 많은 진통 끝에 기초지방자치단체로서의 시, 군이 폐지되었다. 그러나 기존의 제주시와 북제주군을 통합하여 제주시라는 행정시를 만들고, 기존의 서귀포시와 남제주군을 통합하여 서귀포시라는 행정시를 만듦으로써 실제로는 행정 계층 구조가 완전히 통합되지 않은 기묘한 절충을 낳았다. 제주에서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에도 기초지방자치단체 폐지가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 오히려 제주특별자치도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폐지한 것에 대해서는 주민의 정치적 권리(기초 지방선거 선거권 및 피선거권) 박탈, 광역지방자치단체로 과도한 권한 집중, 제주 안에서 기초지방자치단체 사이의 경쟁 실종, 애매한 위상의 행정시 존립에 따른 비효율성과 혼선 등의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69, 70면)




15. 지방자치가 부활할 당시에 광역지방자치단체를 시, 도로 하고 기초자치단체를 시, 군, 자치구로 하였다. 5.16 군사 쿠데타 이전에 기초지방자치를 시, 읍, 면 단위에서 실시했던 것에 비하면, 지역 면적과 인구 면에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광대한 기초 단위였다. (71면)




16. 실제로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기초자치단체인 시, 군을 폐지한 이후에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조례에 따라 다른 지역보다는 주민자치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이 강화되기도 했다. 특히 지역 개발, 주민 이해 조정, 복지 관련 사항, 환경, 예산, 교통 등 광범위한 사항에 대해 심의 기능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주민자치위원회가 읍, 면, 동장에게 심의 사항 이행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73면)




17. 피터슨은 도시 정부는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개발 정책에는 적극적이나 재분배 정책에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도시한계론을 주장한다. 피터슨에 따르면, 중앙정부와는 달리 자본과 노동의 흐름을 통제할 수 없는 지방정부는 고용 증대, 세수 확대, 정부 서비스 향상을 위해 경제 성장에 최고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정부는 개발 정책 추구에는 열성이지만, 재분배 정책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83면)




18. ... 또한 토착 경제인이 지역 언론을 장악하고 있어서, 지역의 정치, 행정 엘리트, 지역 경제인, 지역 언론이 하나의 거대한 “지역 정-경-언 지배연합”을 형성한다고 본다. (86, 87면)




19. ... 이 연구 결과를 따르면 한국의 지역에는 공식 정부에 대항하거나 연합할 수 있는 조직화된 사적 이익이 거의 없어, 현재로서는 사적 교환 관계에 입각한 후견주의가 지방정치를 가장 잘 기술할 수 있는 이론이다. (89면)




20. ... 그래서 임도빈 교수(충남대학교 행정학)는 이러한 지식인(전문가)들과 지방자치단체장-지방 언론 사이의 암묵적인 연합으로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것은 ‘신 철의 삼각관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즉 단체장이 소수 지식인(전문가)를 이용하여 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발표하는 발표회나 공청회를 청중을 동원해 성대하게 치르면, 지역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과정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 추진하는 정책을 합리화하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101면)




21. ... 또한 중앙 정치는 지역 토호와 “후원-충성” 관계로 유착되어 있다고 본다. 즉 지역의 지배연합을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지배연합이 중앙정치와 “후원-충성” 관계를 맺고 “지배연합은 각종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중앙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구실을 하고, 그 대가로 중앙정당은 각종 이권을 제공하거나 특혜를 주어 후원-충성 관계를 맺고 있다.”라는 것이다. (114면)




22. 시민사회에서는 주민소환, 주민소송, 주민투표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주민투표제도(2004년 7월), 주민소송제도(2006년 1월), 주민소환제도(2007년 5월)가 잇따라 도입, 시행되었다. (124면)




23. 중요한 것은 지역발전의 문제를 ‘계속 거주할 지역 주민(정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198면)




24. 이슈, 성과 중심의 시민운동은 운동의 의제를 이슈 중심으로 설정한다. 예를 들어서 “...법제정운동” 또는 “...제도도입운동” 등의 형태로 운동의 의제를 설정한다. 이렇게 운동의 의제를 설정하고, 그 법, 제도가 도입되면 운동의 동력도 소멸하게 된다. 풀뿌리운동은 운동의 의제를 이슈 중심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중심으로 설정한다. 예를 들어 ‘모든 아동들이 행복하게 성장하고 그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것“을 운동의 의제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의 문제(운동의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다양한 실천과 노력을 이어 나간다. 특정한 이슈의 해소 여부에 운동이 좌우되지 않는다. (219면)




25. 한국에서는 ‘시민운동=시민단체’로 등치시키는 인식이 펴져 있다. 즉 시민운동의 주체로서 개인의 의미와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 한국 시민운동의 독특한 점이다. (2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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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 -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
안경환 지음 / 강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1. ‘전태일 평전’을 써서 한 시대의 경전을 만들었지만 영래가 사랑한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였다. 영래는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졌던, 평등과 박애적 사랑의 소유자였을 뿐이다. 그는 노동자를 동지로 삼아 정치적 세력을 양성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다. 그는 전태일의 투쟁을 높이 평가했지만 그 투쟁을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정치적 후원 세력을 만들 생각 역시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결코 전태일을 예수와 같은 성인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 점이 장기표와 차이라면 차이다. 전태일을 예수로 여긴 장기표의 입장에서 본다면 조영래는 전태일의 복음을 전한 바오로일 수도 있다. (32, 33면)




2. “새는 알을 까고 나온다. 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사람은 그에 앞서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데미안) (50면)




3.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토마스 제퍼슨) (68면)




4. “허명이 실명을 능가하는 사람은 단명한다.” (86면)




5. 조영래는 오로지 육법전서를 성전으로 삼다시피 하면서 지극히 추상적인 법리의 해석에 과대한 비중을 두는 법학 교육에 전혀 지적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교과 과정의 법학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사회 현상의 원인을 진단하거나 평가하려는 지적 노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현상에 대한 도식적 판단만을 암기하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모임에서 거론되는 주제는 대체로 법학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들이었다. (88, 89면)




6. 이들 ‘비 법학’ 담당 교수들은 법학의 기초가 되는 지적 소양을 배양하는 데 조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일찍 법 규범의 세계에 갇혀 사고가 경직되는 위험을 다소나마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97면)




7. 제도의 운영을 위해 나라에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을 품은 법학도라면 응당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의식과 안목을 키워야 하며, 적절한 시기에는 적절한 행동으로 소신을 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기도 했다. (98면)




8. 1953년에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하는 기준을 옮겨 적은 버젓한 최저 기준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법 따로 현실 따로’의 괴리 현상을 너무 지나친 것이었다. (103면)




9. 이듬해인 1971년 5월, 대법원이 국가배상법의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언하자 정부는 사법부의 탄압에 나선다. ... 어쨌든 문제의 판결에서 위헌의 입장에 섰던 판사들이 줄줄이 법복을 벗게 되었다. (113, 114면)




10.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던 황산덕 교수는 1962년 말, ‘국민투표는 능사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을 쓴다. ... 이 일로 인해 황산덕 교수는 ‘정치교수’로 낙인찍혔고 1964년 이례적으로 파면 처분을 받고 서울법대를 떠나게 된다. (144면)




11. 전국적으로 전개된 대학생들의 반대투쟁 중에 특히 제주대학교의 경우는 특기할 가치가 있다. 1965년 3월 당시 학생 총수가 600명 정도에 불과했던 제주대학교에서는 한일협정 반대투쟁은 계속되었다. ... (162면)




12. 가장 똑똑한 학생은 교수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곽교수는 영래에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장차 교수가 될 것을 권유한다. ... (192, 193면)




13. 흔히 사회문제에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는 법학도는 기질적으로 민법이라는 기본법 과목을 소홀히 하기 쉽다. 근대 자유주의와 사적 자치의 원칙을 대전제로 하는 민법의 기본 정신과 세부적 법리는 가능한 한 국가의 개입을 꺼린다. 공익, 형평, 배분적 정의 등의 이념을 근거로 하여 국가의 사적 거래에 개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민법이 지나치게 현상 유지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 방어적 무기로 보인다. 때문에 역동적인 사회에서 법을 통해 사회 변혁을 꿈꾸는 법학도들에게 민법이라는 과목은 매력을 주지 못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민법이야말로 모든 법 이론의 출발점이고 법학 수련의 기초이다. 예컨대 노동법도 노사간의 계약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193면)




14. 당시 조영래가 준비했던 석사논문의 제목은 ‘노동계약의 효력에 관한 연구’였다. ... 10년 만에 다시 석사논문을 준비한다. 이번에는 ‘공해 소송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입증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이었다. ... 이 환경법의 단계에서는 종래에 자유재로 인정되어온 대기, 물, 일광 등에 대하여 개인의 환경권을 인정함으로써 전통적인 사법 원리에 일대 수정을 기도하게 된다. (196, 197면)




15. 이렇게 논문의 도입부를 제시한 그는 일본, 미국, 독일의 이론과 판례를 검토한 후 한국 법원의 “다분히 보수적인 자세”를 비판하면서 입법적 해결을 통해 공해 소송에서 인과관계의 입증 부담을 감경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통적인 민법 이론에 수정을 가할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논문을 마감한다. (197면)




16. 모든 법학도의 가슴속에는 ‘사회 정의’라는 가치가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 정의가 현실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들은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다. (218면)




17. 이따금씩 익명으로 노동자의 투쟁을 촉구하는 시를 쓰고 전태일 정신의 확대 계승에 깊은 감명을 쏟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못 배우고 힘없는 노동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적 상식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의 명령에 따랐던 것뿐이다. (219면)




18. 카프카는 일기장에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배양하는, 법학의 성취도를 가늠하는 시험에 대한 냉소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조영래는 카프카와 달랐다. 그는 사법시험 준비에 필요한 것은 하루 두 갑의 담배와 세상일에 대한 일시적인 무관심이라고 요약한 적이 있다. (222면)




19. 극도로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5월 20일 10시, 대법원은 김재규 등 다섯 사람의 사형을 확정한다. ... 판결에 참가한 14명의 대법관 중 6명이 소수 의견을 집필했다. 다수 의견의 집필자 유태홍은 이듬해 대법원장이 된다. 반면에 소수 의견을 집필한 판사들은 각오한 대로 고초를 겪는다. 소수 의견의 대표자 격인 양병호는 보안사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그를 포함한 다섯 사람은 8월 9일 법복을 벗는다. 나머지 한 사람도 이듬해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274면)




20. 일견 허황하리만치 거대하고 추상적인 이성에 찬 ‘운동권’ 영래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구체성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284면)




21. 친절은 법률가 조영래의 업무수칙 제1조였다. (284면)




22. 가인 김병로, 긍인 허헌, 그리고 애산 이인 등 후세 법조인들에 의해 흔히 ‘3인 변호사’로 지칭되는 이들은 활동 당시에는 ‘무료변호사’, ‘항일변호사’, ‘사상변호사’로 불렸다. (288면)




23. ... 그러나 변호사협회라는 단체의 차원에서 인권변론을 전개한 사람은 이병린 변호사가 최초였다. ... 이돈명, 조준희, 홍성우, 황인철 등 이른바 ‘4인방’ 인권변호사는 전국을 무대로 인권변론의 전선을 구축한다. (289면)




24. “client들이 변호사를 불러서 일을 시키는 관행 ... 정말 정신을 번쩍 나게 한다.” (301면)




25. 조영래의 변론을 일러 ‘창조적 변론’이라고 평가들을 한다. 그는 소송에 임하면서 종래에 관행적으로 답습하던 변론 방법에 더하여 언제나 새로운 변론 방법을 개발하는 데 정력을 쏟았다. 헌법 조항뿐만 아니라 실체법과 소송법 전체를 망라하는 법조문을 샅샅이 뒤졌다. (360면)




26. 조영래가 새로이 눈을 돌린 영역은 국제적 차원에서의 인권운동이었다. ... “요컨대 오늘날의 세계에서 인권 문제는 더 이상 어느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390면)




27. “이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법적 투쟁의 양상을 띤다. ... 법률가는 법정에서 진실을 말하고, 그 진실을 기초로 여론에 호소함으로써 인권 침해에 대한 사회적 구제책을 강구할 수 있다.” (391면)




28. 박원순은 특히 세밀한 부분에서 정교한 법리를 발견해내는 조영래의 능력에 특별한 경의를 표했다. 김근태 고문사건에서 신체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 한겨레신문사 압수수색 영장에 대한 항고의 제기, 민사소송의 소송구제 제도의 활용, 형사소송에서의 석명권의 발동 등. 이 모든 ‘창조적 변론’의 예는 문제의 제기와 해결을 동시에 유념하는 통합적 포섭력에서 산출된 것이다. (401면)




29.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 속에서 발전한다고 한다. (45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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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즐거움 - 우리시대 공부달인 30인이 공부의 즐거움을 말하다
김열규.김태길.윤구병.장영희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1. ... 병이 걸리고 나서부터 나는 내가 몰랐던 사실을 열심히 공부한다. 내 몸이 얼마나 소중하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좀더 의미있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아픔을 통해 남의 아픔을 이해하는 마음을 배운 것이다. (22면)




2. 오! 정녕 놀라운지고. 내가 장작을 패네. 내가 샘물을 긷네. ... 장작을 패고 샘물을 긷는 일은 그 선사가 매일 반복하는 일상이었지만, 득도를 하고 나서야 그 일의 소중함을,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다. (24면)




3. 온정신을 집중하여 논문을 썼던 그때의 경험은, 훗날 내가 다시 공부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30면)




4.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맞은 듯 나는 공부에 빠져들면서 새로운 열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직 공부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한 것이다. 그야말로 또 하나의 인생역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교수가 되었다. 교수가 되어보니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임을 느꼈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부터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1면)




5. 언젠가 한 제자는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겨울이면 아직도 어두운 새벽, 학교 주차장에는 교수님의 차가 언제나 어김없이 주차해 있습니다. 불이 커진 교수님의 연구실을 보면서 저는 다시 한번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39면)




6. “인간은 천길 절벽에 외줄을 잡고 있더라도 그 외줄을 놓을 줄 아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47면)




7. 내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선택한 문제들이기에 나는 항상 능동적 자세와 즐거운 마음으로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 (56면)




8. 무엇보다 나를 ‘잠 못 이루게’ 한 건 그들의 문체였다. 고도의 난해한 이론과 경제학적 분석이 그토록 눈부신 수사학을 동반할 수 있다니. .... 글쓰기가 아카데미의 경직된 성채를 박차고 나오면 낯설고 역동적인 경계를 획득한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61면)




9. 그렇게 삐딱하게 공부하기 시작한 성서는 내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주었다. 성서를 통해 내가 발견한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분이시자 땀흘리며 일한 노동자였다. (71면)




10. 지난해부터는 노숙인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벌써 20년 넘게 노동자, 빈민계층, 노숙인을 만나오고 있다. 사실 내게 있어 공부는 학교의 틀 안에서 교과서를 배우는 것이 아니다. 삶과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서 배우는 것이다. 그것으로 나는 세상을 보고 해석하며 행복을 찾는 길을 알게 되었다. (72면)




11. ... 그러나 생명체의 몸 안에 간직된 시간은 비어 있는 시간, 똑같이 쪼개져 있어 그 안에 아무것이나 채워 넣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아니다. 갯지렁이의 시간이 불가사리의 시간과 다르고, 또 질경이의 시간, 곰밤부리의 시간, 고슴도치의 시간, 다람쥐의 시간도 저마다 다르다. (80면)




12. ... 그런데 이 조그만 화석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고 예뻤다. 나는 암석을 보고 그 시대에 살던 생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지층의 나이를 알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또한 내가 만지고 있는 화석이 과거 4억 7천만 년 전 얕은 바다 속에 살던 생물의 잔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89면)




13. “기초 없는 학문은 거짓말을 하게 할 뿐”이라는 제이콥스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91면)




14. 엘리어트의 번트 노튼Burnt Norton을 읽으며 box circle의 의미가 의아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작품의 무대가 된 고가를 방문해 보고서야 그것이 회양목box가 있는 반원형 연못임을 알았을 때 그 기쁨이라니! (99면)




15.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머리가 총명하지도 기억력이 탁월하지도 않다. 다행이 나에게는 이것을 만회할 수 있는 메모하는 버릇이 있다. 햄리트나 엘리자베스 시대 젊은이들도 수첩을 갖고 다니며 좋은 착상이 떠오르면 바로 메모하는 버릇이 있었다. 가장 좋은 공부방법은 메모해두는 것이다. 그리고 매순간 배운다는 마음으로 탐구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나를 학자scholar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지적 호기심이 많은 공부하는 사람student이라고 여겨왔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메모한다. (100면)




16. “시각디자인이란, 결국 대중에게 시각이미지를 전달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공감하느냐에 따라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 (116면)




17. “그래! 생각을 바꾸자.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는 다른 길을 가야 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야를 건드려보는 거야.” (128면)




18. 따지면서 읽는다는 것은 저자와 토론을 한다는 말이다. 토론을 하면서 내 생각을 가다듬는다. 따지면서 읽기를 하다가 다음 단계인 쓰면서 읽기로 나아간다. (154면)




19. 많이 알면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연구할 만한 것을 남들이 이미 다 찾아내 해결한 탓에 새로운 과제는 없다고 하게 된다. 적당하게 무식한 덕분에 아무 말이나 겁 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하다고 한다. ... 공부가 즐겁다는 위선을 경계한다. (156면)




20. 첨단 과학일수록 축적된 학문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상상력을 가지고 새로운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다. ... 자기만의 엉뚱한 생각, 즉 독창적인 사고가 축적된 이론과 만났을 때 비로소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런 독창적인 사고는 다양한 분야를 접하면서 자기 전공과는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가운데 자연스레 싹트게 된다. (170, 171면)




21. 그리고 축적된 학문을 다 익힌 상태에서 공부(혹은 연구)는 두 가지 경로를 거쳐 비약한다. 하나는 혼자서 생각하는 것이다. 흔히 공부나 연구라고 하면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쓰는 것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공부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혼자서 끈질기게 생각하는 것이 과학에서는 가장 중요한 공부다. 가령 지하철이나 연구실에서 혼자 꼴똘히 생각할 수도 있고, 칠판에 수식을 써보면서 혼자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진정한 공부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오늘날 미국이 세계 물리학의 중심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여건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 몰려온 다양한 연구자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풍부한 학문적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이 연구자들은 이러한 만남을 계기로 자기 연구 분야에서 뜻밖의 획기적인 해답을 얻곤 한다. (171면)




22.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과학기술을 단기간에 따라갈 수 없는 것도 사실은 시설이나 자금의 부족보다는, 바로 이런 수준 높은 연구진들의 수가 많지 않고, 또 그들과 풍부한 상호작용의 효과를 누리지 못한 원인이 크다. 물론 그렇다고 축적된 학문을 익히는 체계적인 공부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직관적인 아이디어도 실은 체계적인 학문이 바탕이 되어 나온 것이다. (172면)




23. 미국인들과 공부하면서 또 감탄한 것은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다. 이들은 생각과 의사표현이 매우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현상을 설명할 때 그것과 별로 관련없는 이론과도 쉽게 연관짓는다. (172면)




24. 학문은 예술과 같아서 독창성이 가장 중요한 분야이다.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기존의 것을 따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가 매우 중요하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과학자나 대학생들은 이런 면에서 대담한 독창성이 매우 부족함을 절감하곤 한다. (173면)




25. 인간의 가치가 이처럼 황폐하게 된 이 순간보다 인문학이 절실한 적이 없지만, 대학의 인문학은 이미 제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우수한 학생이 인문학을 떠난 것은 이미 옛일이 되었다. 대학의 인문학은 국가가 하사하는 연구비에 의해 관리되면서 잔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자본이 대학의 인문학까지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190면)




26. 정년 퇴직 후에는 해외 여행이나 다니고 역사와 그리스 미술에 관한 책과 영웅전이나 읽으면서 만년을 즐겨보려고 했으나, 다시 번역작업을 시작해 요즘은 하루 6시간 정도 번역에 몰두하고 있다. 내게는 어떤 여행도 독서를 통한 지적 작업만큼 즐겁지 않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과 아름다운 경치라도 책 속의 깊은 사상과 멋있는 표현을 곱씹어보는 것만큼 감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226면)




27. 솔직히 나는 아직도 공부하는 학생이고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240면)




28. 교육제도는 공부와 직결된다. 그러나 교육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방식이다. 교수나 교사가 교육방식을 바꾸면 공부도 바뀐다. (241면)




29. 공부는 나를 비우지 않고는 이룰 수 없다. 법운법사는 진리를 구하고자 하면 반드시 자신을 버려야 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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