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와 한국사회 - 이주노동자, 화교, 혼혈인, 민주주의총서 07
박경태 지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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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수자는 사회의 주류에 해당하는 다수자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억압받아 본 사람의 시각, 불편함을 겪어 본 사람의 시각, 아픔을 느껴 본 사람의 시각이다. (8면)


2. 또한, 소수자들 스스로도 억압적인 구조에 대항해서 끊임없이 싸워 왔는데, 최근 들어 소수자들은 자기가 속한 개별 집단뿐만 아니라 소수자 전체의 문제와 소수자라는 집단 정체성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 행동을 하기도 한다. (12면)


3.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소수자로 분류되려면 다음의 네 가지 특성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식별 가능성이다. ... 둘째는 권력의 열세로, 여기서 말하는 권력은 정치권력만이 아니라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의 권력을 모두 포함한다. ... 셋째는 차별적 대우의 존재다. ... 마지막은 집단의식 또는 소속의식이다. 어떤 사람에게 위의 세 특징이 모두 있더라도 소수자 집단의 성원이라는 소속감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냥 차별받는 개인일 뿐이며, 스스로 개인 차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 자신이 차별받는 소수자 집단에 속한다는 것을 느낄 때에야 비로소 개인이 아닌 소수자가 된다. (14, 15면)


4. ... 이때 ‘성공한 PD’라는 캐머런의 사회적 지위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16면)


5.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사람 중에는 비슷한 사람들과 공감대를 가지며 ‘가난한 집단’에 속한다는 집단의식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고 대부분은 그냥 살아갈 뿐이다. 반면에 소수자는 집단으로서 차별받기 때문에 성원들이 집단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18면)


6. ‘피 한 방울의 법칙’one drop rule (23면)


7. 그러나 범주화는 고정관념을 낳게 되고 어느 범주에 속하는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속성을 갖는 것으로 과도하게 일반화하게 된다. (25면)


8. 그러나 고정관념은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수반하는 편견이 되기 쉽고, 편견은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인구 집단에 대한 배제와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더 나아가 그러한 배제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 (25면)


9. 이때 힘없는 소수자는 화풀이해도 괜찮은 매우 안전한 표적이며 적당한 희생양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화풀이를 하는 사람은 자신의 적개심, 공격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그들은 원래 나쁜 사람들이다,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편견을 퍼뜨리게 된다(한규석 1995, 402). (26면)


10. 미국에서 초중 고등학교 교사 대부분은 중산층 백인이고 학교 교육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 역시 중산층 지향적이기 때문에 소수 인종 학생들이 종종 무시당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윤인진 2000). (29면)


11. 서구 중심의 세계화가 민족·인종차별을 낳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착취의 정당화 때문이었다. (31면)


12. 지배를 합리화할 때에는 언제나 지배당하는 사람들이 열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론이 등장하는데, 18세기 프랑스 철학자들은 그런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 볼테르는 “흑인종은 사냥개와 똥개가 다른 것처럼 우리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라고 주장했고, 몽테스키외는 “어느 누구도 지극히 지혜로운 존재인 신께서 영혼을, 그것도 선량한 영혼을 완전히 새까만 그들의 몸뚱이에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폰타나 1999, 171-172). (31면)


13. 문제는 인종적·민족적 소수자를 바라보는 서구의 시각이 보편적인 시각이 되었다는 점이다. (32면)


14. 국가에 대한 애정과 이에 대한 강조가 클수록 배타성도 증대되며 이방인에 대한 배척도 증가할 것이다. (35면)


15. 인종주의는 ‘인종에 따른 생물학적 차이가 인간의 능력을 결정한다는 믿음’이다. 이 정의는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종간의 불평등은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인종주의는 우리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우월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이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다른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합리화한다. (40면)


16. 지금 우리가 보고 겪는 인종주의는 백인을 정점에 둔 서구 중심의 인종주의다. 그런데 이 같은 인종주의는 백인만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도 갖고 있어서, 백인을 정점에, 그리고 흑인을 바닥에 두고 우리를 그 가운데에 놓음으로써 백인에 대한 열등감과 흑인에 대한 우월감으로 나타난다. (41면)


17. 인종을 구별하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열을 가리기 위해 인종이라는 개념을 동원하고, 차이가 있어서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하기 위해 차이를 만들어 낸다. (46면)


18. 예를 들어, 백인들의 미국 정착 초기인 1660 이전의 버지니아에서는 인종 편견과 계급 편견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웠다. 가장 하층의 일을 하면서 멸시받았던 흑인 노예와 백인 계약 하인이 서로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엘리트에 해당하는 백인 지배층은 흑인 노예와 백인 계약 하인이 제휴해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48면)


19. 엘리트는 대중의 담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자기의 방식대로 합의를 유도해 내기에 유리한 자리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언로를 통제하는 엘리트는 이론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49면)


20. 그럼에도, 오늘날의 학문 세계는 여전히 백인 지배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분야다. 권위있는 학술지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출판되고 있으며, 그것들은 바로 그 지역의 학자들에 의해서 심사되고 편집된다. ... 학문의 서구 종속성, 특히 미국 종속성은 심각하다. (51면)


21. 여기에서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구성원을 동질화시키려는 이데올로기와 차별화시키려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그것이다(이종영 2003, 53-55) (56면)


22. 근대를 규정하는 자본주의는 원래부터 경쟁과 적자생존을 원칙으로 하는 불평등한 체제이다. 적자생존과 경쟁의 원리는 우월한 자에게는 축복을, 열등한 자와 경쟁에서 낙오한 자에게는 가차없는 배제를 초래한다. (61면)


23. 현재 일어나는 문제의 본질은 한국인의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 때문이다. 잘못된 구조가 한국인으로 하여금 잘못 행동하도록, 또는 잘못 행동해도 되도록 한다는 말이다. (68면)


24. 한국에 와서 일하고 돌아가는 것은 괜찮지만 계속 사는 것은 안 된다. 한국인이 되는 것은 안 된다. (81면)


25. 실제로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생기는 ‘비백인’ 관련 문제 대부분은 백인들이 만드는 것이고, 문제의 핵심은 백인에 의한 인종차별에서 출발한다. 사회적 갈등의 근본 원인은 그들을 차별하고 빈곤 상태에 묶어 놓고 빈민층 집단 거주 지역에 한정시켜 놓은 데에 있는 셈이다. (82면)


26. 외국인과 어울려 산 경험이 적은 한국 사람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갖는 어색함은 배타성으로 나타났고, 노동력의 도입에만 관심을 둔 정부의 자유방임에 가까운 정책은 그들을 빈 공간에 방치해 버렸다. 바로 이 공간을 시민단체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103면)


27. 기존의 산업연수 제도는 이주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의 자격으로 도입함으로써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으며 여러 측면에서 인권침해를 유발하는 요소가 있다. 꾸준한 입법 노력을 해 온 끝에 2003년 7월 31일에 드디어 고용허가제(외국인근로자고용 등에 관한 법률)가 통과하였지만, 이주노조는 고용허가제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지 않는 악법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대신에 이것을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주장하고 있다. (109면)


28. 이주노조를 제외한 다른 지원 단체들은 과거에는 운동단체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면, 이제는 복지기관의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112면)


29. 운동적 시각과 복지적 시각 사이에 어느 것이 좋고 어느 것이 나쁘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양자의 활동은 상호보완적이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아예 단체 간의 역할 분담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113면)


30. 운동적 시각과 복지적 시각이 반드시 대립적인 것이 아니고, 양자의 결합으로 오히려 새로운 영역이 개척될 수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회복지운동’이다. (113면)


31. 당사자 운동의 좋은 예는 최근에 있었던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 투쟁이다. 기존의 장애인 복지가 국가나 비장애인의 도움에 의존했던 것이라면,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장애인 운동은 장애인이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복지를 쟁취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소수자 운동에서 최근 제기되기 시작한 ‘당사자주의’와 같은 맥락에 있는 개념으로, 도움을 받되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받겠다는 주체적인 의지가 표현된 것이다(윤수종 2005, 22). (114면)


32. 소수자 운동은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 자신들의 존립 공간과 자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려는 운동이다(윤수종 1999). 따라서 이주노동자 운동이 진정한 소수자 운동이 되려면 그들 자신이 스스로의 주변적인 정체성에 대해서 자각해야 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기려는 주체적인 실천 의지가 있어야 한다. (116, 117면)


33. 이러한 차이는 이 단체들의 기본적인 성격을 가르게 되는데, 민중 조직은 다분히 정치적 지향성을, 지원 조직은 경제적 또는 복지 지향적인 성격을 띤다. (134면)


34. 한국의 이주노동 관련 시민단체가 이주노동자에게 더 나은 사회적 자본이 되려면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할 것이다. (135면)


35. 그렇지만, 차이가 자동으로 차별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며 인종주의를 거칠 때 비로소 차별이 된다. (137면)


36. 서양의 시각에서 동양을 미개하고 열등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라면, 열등한 이주노동자의 이미지는 서구를 중심이나 표준, 이상으로 보고 한국이 속해 있는 아시아를 스스로 주변이나 비정상, 이탈로 봄으로써 우리와 그들을 문명-야만의 구도로 보는 ‘역전된 오리엔탈리즘’(김원 2005, 8)에서 나오며, 아시아를 비하하고 타자화하는 서구인의 시각을 그대로 복제한 우리 안의 ‘복제 오리엔탈리즘’(이옥순 2002)에서 나온다. 그들을 비하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서구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게 되며, 그들과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우리의 동질성을 위협하는 이방인들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 (138면)


37. 사회의 주도권을 가진 상층계급은 하층계급을 한 수 아래로 본다. 톰슨E. P. Thompon에 따르면 18세기 말 영국의 유산계급은 하층계급의 상당수가 살인자, 도둑, 주정꾼, 창녀 등이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 노동, 절제, 절약, 종교라고 보았다. (138면)


38. 노동자라고 다 같은 노동자가 아니다. 그레이Kevin Gray는 이런 상태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을 ‘계급 이하의 계급’이라는 점에서 ‘저층계급’Underclass으로 규정한다(그레이 2004). (140면)


39. “한국인에게는 다른 민족의 피가 40퍼센트 정도는 섞여 있다.” 학계에서 존경받는 원로 학자인 재외동포재단의 이광규 당시 이사장이 언론과의 2006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198면)


40. 좀 더 포괄적이고 중립적인 의미의 표현으로는 ‘이중 문화 가정 자녀’ 또는 ‘다문화 가정 자녀’가 있다. 이런 표현은 특히 국제결혼 가정이 이중의 문화 배경을 갖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본인의 정체성이 한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양쪽에 걸쳐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202면)


41. ... 기지촌은 미군을 대상으로 한국 여자들이 술과 몸을 파는 동네였고, 서양 남자들의 남성성이 활개를 치는 곳인 동시에 한국 남자들의 무기력함이 증명되던 곳이었다. 거세당한 한국 남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그 여자들’을 상대화하고 손가락질하는 것밖에 없었다. (212면)


42. 원본에 가까워지려는 복사본의 노력은 결코 극복될 수 없는 열등감을 확인시켜 준다. ‘미8군’에 대한 그런 열등감은 그 주변에 기생하는 기지촌에 대한 멸시로 나타났다. (213면)


43.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정체성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너는 한국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니다. 혼혈인이다. 그러나 (양쪽의) 좋은 점만 가지려고 노력하는 혼혈인이다”는 식의 자신감으로 정체성을 주려고 해요. 그래서 혼혈인 모임에 꼭 아이들을 데리고 가요. 아이들도 미국인 사회나 한국인 사회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편안함을 느낀다고 해요. (251면)


44. 자녀들이 스스로 한국적인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은 각 민족, 인종 집단 간의 ‘정체성의 정치’가 작동하는 미국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252면)


45. 그러다가 ‘소수자를 차별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수준에서 ‘소수자를 얼마나 채용했는가’라는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적극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Farley 2000, 491). 적극적 조치는 교육, 고용, 기업 경영의 세 분야에서 소수자에게 특혜를 주거나 지원을 하는 것이다. (261면)


46.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던 ‘사소한’ 차이가 특정한 상황에서 결정적인 차이로 인식되는 순간, 그 사람은 소수자가 된다. 그 차이가 차별의 정당한 원인으로 여겨질 때, 그 사람이 누리던 인권은 유보된다. 차이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305면)


47. 소수자는 소외당한 객체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지닌 주체이기 때문이다. 운동의 주체로서 소수자는 표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 표준적인 인간상에 대항하는 소수적인 인간상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것은 차이를 강조하는 탈근대에 접어들면서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윤수종) (308면)


48. 사회의 다양성은 이제 사회운동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사회운동이 ‘노동중심의 중심성’과 같은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삭발, 단식, 점거, 투옥 등의 엄숙하고 심각한 운동이었다면 탈근대 시대의 사회운동은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낳고 있다. (308면)


49. 소수자는 하나의 특징을 갖는 사람들이 아니다. 소수자는 단순히 다수자에게 적대적이기 때문에 소수자인 것이 아니라 다수자의 작용 방식과는 다른 작용 방식을 지니기 때문에 소수자다(윤수종). 따라서 소수자운동은 다수자화하지 않는, 즉 지배장치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되어야 하며, 그럴 때에 비로소 거부와 부정이 아니라 긍정과 구성으로 나아가는 운동이 될 수 있다. (30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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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한스 켈젠 지음, 김선복 옮김 / 책과사람들(법서출판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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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라도의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어서 십자가의 보혈로부터 다른 질문, 아주 더 강력한 질문, 인류의 영원한 질문이 제기된다. 즉, “정의란 무엇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다른 질문도 이처럼 열정적으로 논의되지 않았고, 어떤 다른 질문을 위해서도 그렇게 많은 귀중한 피와 통렬한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어떤 다른 질문에 대해서도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이 - 플라톤에서부터 칸트까지 - 그처럼 아주 골똘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는 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아마 인간은 결코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고, 오히려 좀 더 나은 질문을 모색할 수 있을 뿐이라는 체념적인 지혜가 필요한 그러한 질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9면)


2. 그러면 인간의 어떤 이익들이 이러한 가치를 가지며 이 가치의 서열은 무엇인가? 이는 이익이 충돌하면 제기되는 질문이다. 그러한 이익충돌이 있는 곳에서만 정의는 문제가 된다. 이익이 충돌하지 않는 곳에서는 정의에 대한 욕구는 없다. 그러나 이익충돌은 한 이익이 다른 이익의 희생으로만 충족될 수 있거나, 아니면 같은 결과가 되지만 두 가치가 대립하면, 그리고 하나의 이익은 다른 이익이 등한시되는 정도에 따라서만 실현될 수 있고, 한 이익의 실현을 다른 이익의 실현에 우선시키고, 두 이익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더 높은 가치인가, 결국 무엇이 최고의 가치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불가피할 때 두 이익을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면 발생한다. 가치문제는 무엇보다도 가치충돌의 문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합리적인 인식이라는 수단으로 해결될 수 없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결국 감정적인 요소에 의해 정해지고 그래서 최고의 주관적인 성격을 갖는 판단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판단하는 주체에게만 타당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상대적이다. (15면)


3. 서로 모순되는 견해에 기초하는 두 가치판단 중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를 합리적-학문적인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그것은 우리의 오성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우리의 의지이며 충돌을 해결하는 우리 의식의 감정적 요소이지, 이성적 요소가 아니다. (16면)


4. 다른 예: 탈출이 불가능한 집단 수용시설의 노예나 수용자에게 자살이 도덕적으로 허용되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이러한 질문은 항상 재차 논의되었고 특히 고대의 윤리학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에 대한 대답은 두 가치, 즉 생명과 자유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지에 대한 결정에 달려 있다. 생명이 더 가치가 있다면 자살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가 더 가치가 있고 자유없는 생명은 가치가 없다면, 자살은 허용될 뿐만 아니라 또한 요청되기도 한다. 이는 생명과 자유의 가치서열의 문제이다. 이 질문에 대하여 주관적인 대답만이, 즉 판단하는 주체에게만 타당한 대답이 가능하다. 그것은 금속은 열을 가하면 팽창한다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들에게 타당한 확정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치판단이 아니라 사실판단이다. (17면)


5.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개인적 자유를 택할 것이고, 반면 열등의식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경제적 안정을 택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 자유가 경제적 안정보다 더 가치가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경제적 안정이 개인적 자유보다 더 가치가 있는지 하는 질문에 대하여 주관적 판단만이 가능하다. (18면)


6. 진정한 가치판단이 주관적이어서 매우 상이하고, 서로 상반되는 가치판단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결코 모든 개인이 자기 자신의 가치체계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실 많은 개인들의 가치판단은 서로 일치한다. 적극적 가치체계는 고립된 개인의 자의적인 창조가 아니라 언제나 개인들이 각 집단 내에서 - 가정, 씨족, 부족, 카스트, 직업 - 그리고 특정한 경제적 조건 하에서 서로에게 미치는 상호영향의 결과이다. 각 가치체계, 특히 정의의 중심이념을 지닌 도덕질서는 사회적 현상이고 그리하여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사회의 본성에 따라 다르다. (21면)


7. 많은 개인들의 가치판단이 일치한다는 것은 결코 이 가치판단이 옳다는 것, 즉 객관적 의미에서 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21면)


8. 도대체 무엇이 최고의 가치인가 하는 질문에 합리적으로 답변하는 것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판단은 보통 객관적 가치 또는 - 같은 결과가 되지만 - 절대적으로 타당한 규범의 주장에 의해 설명된다. 자기행동의 정당성에 대한 깊은 욕구와 양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특성이다. 합리화와 정당성에 대한 욕구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 중에 하나일 것이다. (22, 23면)


9. 다시 말하면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정당한 국가형태이다. 개인의 자유 대신에 경제적 안정이 최고의 목적으로 가정되고 민주주의 국가형태 하에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될 수 있다면 더 이상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른 국가형태가 정당한 것으로 간주된다. 다른 목적은 다른 수단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정당한 국가형태로서 정당화될 수 있다. (25면)


10. 절대적 정당성에 대한 욕구는 모든 이성적인 숙고보다 더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인간은 이러한 정당성, 즉 절대적 정의를 찾기 위하여 종교와 형이상학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가 현실세계로부터 다른, 초월적 세계로 이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의는 중요한 특성이 되며 정의의 실현은 그것의 본질에 의하면 특성과 기능이 인간에 의해 인식될 수 없는 초인간적인 권위, 즉 신의 중요한 기능이 된다. 인간은 신의 존재, 즉 절대적 정의의 존재를 믿어야 하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그것을 개념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27면)


11. ...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제시된 수많은 정의이론이 두 개의 기본유형으로 압축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형이상학적-종교적인 것 및 이성적인 것 또는 올바르게 말하자면 외관상 이성적인 것이 그것이다. (27면)


12. 형이상학적 유형의 고전적 주창자는 플라톤이다. 정의는 전체철학의 핵심적 문제이다. 플라톤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의 유명한 이데아론을 고안하였다. ...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이 선한가 또는 무엇이 선한 것인가?”라는 질문과 일치한다. (28면)


13. 그리스의 일곱 현인 중 한 사람은 정의란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이러한 문구는 많은 탁월한 사상가들, 특히 법철학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공허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쉽다. 왜냐하면 도대체 각자가 그의 것으로 간주해도 좋은 것은 무엇인지 하는 결정적인 질문에 여전히 대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자에게 그의 것”을 이라는 원칙은 이 질문이 이미 이전에 결정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만 적용될 수 있다. (32면)


14. 그러면 무엇이 고려되어야 할 차이이고 무엇이 고려되어서는 안 되는 차이인가?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이고, 이 문제에 평등원칙은 대답하지 않고 있다. (34면)


15. 법철학의 형이상학적 유형과 이성적 유형은 17, 18세기에 지배적이었고, 19세기에 거의 완전히 포기되었다가 오늘날 다시 영향력을 얻고 있는 자연법학파에 의해 주장된다. 자연법이론은 자연, 보편적으로 자연 또는 이성이 부여된 존재인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시작하는 인간관계의 완전하고 정당한 규정이 있다고 주장한다. (46면)


16. 인간인식의 역사가 우리에게 그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다면 이성적인 방법으로 절대적으로 타당한 정당한 행위규범을 발견하려는, 즉 그러나 또한 상반된 행위를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시도는 헛된 것이다. 과거의 정신적 경험으로부터 그 무엇을 배울 수 있다면, 인간의 이성은 상대적 가치만을 파악할 수 있는 것, 즉 어떤 것을 정당하다고 선언하는 판단은 결코 상반된 가치판단의 가능성을 배제하라는 요구로 내려질 수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 정의는 비이성적인 이상이다. 이성적인 인식의 관점으로부터 오직 인간의 이익과 그래서 이익충돌만이 있을 뿐이다. (49면)


17. 상대주의적 가치이론의 기초가 되거나 이로부터 도출될 수 있는 도덕원칙은 관용의 원칙이고, 타인의 종교적 또는 정치적 견해에 설령 동의하지 않을지라도, 특히 그것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호의적으로 이해하고 그래서 그들의 평화적인 발언을 제지하지 말라는 요청이다. 상대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절대적 관용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50면)


18. 관용은 사상의 자유를 의미한다.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를 지지하였던 사람들의 비관용에 의해 현저히 손상되었다. (50면)


19. 모든 무질서의 기원은 관용이 아니라 비관용이다. (51면)


20. 민주주의는 그 내부의 성질에 따라 자유를 의미하고, 자유는 관용을 의미하므로 다른 국가형태는 민주주의만큼 그렇게 학문에 호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학문은 자유로울 때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문은 외적으로 자유로울 때, 즉 정치적인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인 때뿐만 아니라, 또한 내부에서도 자유롭고 논거와 반대논거의 대결에서 완전한 자유가 지배할 때도 자유롭다. 학설은 학문의 이름으로 억압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학문의 정신은 관용이기 때문이다. (52면)


21. 그리고 사실 정의가 무엇인지, 절대적 정의, 이러한 인간의 아름다운 끔을 알지 못하고도 말할 수 없다. 나는 상대적 정의로 만족하여만 하고 내게 있어 정의가 무엇인지만을 말할 수 있다. 학문은 나의 직업이고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학문, 그리고 학문과 함께 진리와 정직이 번창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그 정의를 말한다. 그것은 자유의 정의, 평화의 정의, 민주주의의 정의, 관용의 정의다. (5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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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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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다른 모든 저자들에게도 남의 생활에 대하여 주워들은 이야기만을 하지 말고 자기 인생에 대한 소박하고 성실한 이야기를 해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10면)

 

2. 인류의 이른바 유희나 오락 밑에는 무의식적이나마 판에 박힌 절망감이 숨겨져 있다. 이것들 안에는 진정한 놀이가 없다. 왜냐하면 놀이는 일 다음에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망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지혜의 한 특징이다. (17면)

 

3. "이 길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 하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적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다. (21면)

 

4. 가난한 사람은 세상이 차다고 한탄을 한다. 사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대부분은 신체적 냉기 이상으로 사회적 냉기에 기인한다. (25면)

 

5.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항상 가난한 사람들보다도 더 간소하고 결핍된 생활을 해왔다. (26면)

 

6.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가 되는 것은 인생의 문제들을 그 일부분이나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뜻한다. (26면)

 

7. 사람들이 찬양하고 성공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삶은 단지 한 종류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다른 여러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하나의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일까? (33면)

 

8. 하지만 미개인들은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는 반면에, 문명인들은 자기 집을 소유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세 들어 사는 것 만은 분명하다. 그 빌려 사는 형편마저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47, 48면)

 

9.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51면)

 

10. 한 계급의 호화로운 생활은 다른 계급의 궁핍한 생활로 균형이 맞추어진다. 한편에 궁전이 있다면 다른 편에는 빈민구제시설과 '말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52면)

 

11. 이런 사정을 알기 위해 멀리 찾아볼 필요 없이 이른바 문명 발전의 최신 상징인 철도의 연변에 늘어선 판잣집들을 보면 된다. 나는 매일 그 옆을 지날 때마다 돼지우리 같은 데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데, 그들은 방이 어두워서 겨울 내내 문을 열어놓고 지낸다. 그러나 집 주위에 장작단이라고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추위와 가난으로 늘 움츠리는 버릇이 있어 몸이 아주 오그라들었으며, 사지와 지능의 발달은 거의 멈춘 상태이다. (53면)

 

12.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끝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더 적은 것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않을 것인가? (54면)

 

13. 가령 문이나 창문, 그리고 지하실이나 다락방이 인간성의 어디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생각해 보고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의 일시적인 필요성이라는 이유보다 더 좋은 이유를 발견하기 전에는 건물을 아예 짓지 않기로 한다면 어떨까? (67면)

 

14. 그곳에서는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화학은 공부하되 자기의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배우지 않으며, 기계학은 배우되 빵은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해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또한 자기가 지금 어떤 악당의 위성 노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75면)

 

15.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나는 내가 재학 중에 항해학 과목을 수강한 일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차라리 내가 배 한 척을 직접 몰고 항구 밖으로 단 한 번이라도 나갔더라면 항해술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배웠으리라. (75, 76면)

 

16. 다 지은 건물의 가치는 그것을 짓는데 들어간 돈에 항상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84면)

 

17. 이 효모를 나는 마을에 가서 꼬박꼬박 충실하게 사오곤 했는데, 어느 날 아침 그 사용법을 깜박 잊고 효모를 데워버리고 말았다. 그 사고로 말미암아 나는 효모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90면)

 

18. 나는 어떤 말쑥하고 빈틈없는 사람이 겉보기에는 홀가분하고 자유로운 것 같은데, 자기 가구가 보험에 들어 있으니 안 들어 있으니 하면서 수다를 떨 때는 차라리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96면)

 

19. 나는 또 장사를 해보았다. 그러나 장사가 본궤도에 오르려면 10년 가량 걸리는 데다 그때쯤이면 나는 도덕적으로 파탄의 길을 걷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소위 사업이란 것에 성공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게까지 되었다. (100면)

 

20. 변질된 선행에서 풍기는 악취처럼 고약한 냄새는 없다. (106면)

 

21. 나는 사람의 꽃과 열매를 원한다. 나는 사람에게서 어떤 향기 같은 것이 나에게로 풍겨나오기를 바라며, 우리의 교제가 잘 익은 과일의 풍미를 띠기를 바라는 것이다. (110면)

 

22. 우여곡절 끝에 당신이 어떤 자선 행동을 하게 되었다면,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알지 못하도록 하라. 그것은 알 가치가 없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한 다음에는 묵묵히 구두끈을 매라. 숨을 돌린 다음에는 당신이 하고 싶은 자유로운 일에 착수하라. (112면)

 

23. 그대가 가진 것이 많거든 대추야자나무처럼 아낌없이 주라. 그러나 가진 것이 없거든 삼나무처럼 자유인이 될지어다. (113면)

 

24. "농장을 살 때에는 탐을 내서 바로 달려들지 말고, 먼저 그것을 머릿속에 넣고 이리저리 굴려보라. 그것을 살펴보는 데에 수고를 아끼지 말 것이며,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만약 그것이 좋은 농장이라면 자주 가서 보면 볼수록 더 마음에 들게 될 것이다." (121면)

 

25. 중국 탕왕의 욕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날마다 그대 자신을 완전히 새롭게 하라. 날이면 날마다 새롭게 하고, 영원히 새롭게 하라."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27면)

 

26.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제발 바라건대, 여러분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두지 말라. (132면)

 

27. 우리 뉴잉글랜드 주민들이 현재와 같이 비천한 생활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물의 표면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39면)

 

28. 하루를 자연처럼 의도적으로 보내보자. (140면)

 

29. 시인 미르 가마르웃딘 마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앉아서도 정신세계를 떠돌아다닐 수 있는 이점이 책 속에는 있다. 한 잔의 술로 기분 좋게 취하는 기쁨을 심오한 교리라는 술을 마셨을 때 맛볼 수 있다." (144면)

 

30. 고전이란 인류의 가장 고귀한 생각을 기록한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고전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유일한 신탁이며, 그 안에는 가장 현대적인 질문에 대하여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신의 신탁이나, 도도나에 있는 제우스 신의 신탁도 밝히지 못한 해답들이 들어 있다. (145면)

 

31.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155면)

 

32. 나는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 (161면)

 

33. 우리가 항상 최근에 배운 최선의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을 조절해나간다면 우리는 결코 권태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천재성을 바짝 좇아가라. 그리하면 그것은 반드시 시간시간마다 새로운 경관을 보여줄 것이다. (163면)

 

34. 나의 경험에 의하면, 가장 감미롭고 다정한 교제, 가장 순수하고 힘을 북돋아주는 교제는 자연물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하겠다. ... 자연 가운데 살면서 자신의 감각기능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사람에게는 암담한 우울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188면)

 

35. "덕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 (193면)

 

36.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200면)

 

37. 손으로 하는 노동은 아무리 지리한 일이라 하더라도 가장 나쁜 형태의 게으름은 결코 아니다. 노동은 지속적인 불후의 교훈을 담고 있으며 학자에게는 고전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이다. (225면)

 

38. "너도밤나무 그릇으로 만족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으니" (248면)

 

39. 그 당시 나는 정말로 부유했다. 금전상으로가 아니라 양지바른 시간과 여름의 날들을 풍부하게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러했던 것이다. (275면)

 

40. 나는 오늘 밤에도 내가 지난 20여 년 동안 거의 매일같이 이 호수를 보아오지 않은 것처럼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277면)

 

41. 내가 월든 호수에 사는 것보다

신과 천국에 더 가까이 갈 수는 없다. (278면)

 

42. 진정한 부를 즐길 수 있는 가난, 나는 그것을 원한다. (282면)

 

43. 대지를 즐기되 소유하려 들지 마라. (299면)

 

44. 나는 오랫동안 음료수로 물만 마셔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아편 중독자가 느끼는 황홀한 천국보다 자연스러운 하늘이 내게는 더 좋은 이유와 똑같은 것이다. (312면)

 

45.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온다. 나태로부터는 무지와 관능이 온다. (317면)

 

46. 깨끗지 않음과 온갖 죄악을 피하려거든 외양간의 청소라도 좋으니 부지런히 일을 하도록 하라. (318면)

 

47. "평온을 보지 못하는 자는 눈이 멀었나니" (386면)

 

48. 매일 아침마다 나는 '바가바드 기타'의 경이로운 우주 생성 철학에 나의 지성을 목욕시킨다. (425면)

 

49. 숲에 들어와 사는 생활의 한 가지 큰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된 점이었다. (431면)

 

50.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 속에

여지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456면)

 

51.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468면)

 

52.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나는 산해진미와 맛 좋은 술이 넘치고 하인들이 아부하듯 시중드는 잔칫상에 앉아 있었지만, 성실과 진실을 찾아볼 수 없없기에 그 냉랭한 식탁에서 배고픔을 안고 떠났다. 손님 접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472, 4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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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발명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 / 돌베개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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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에서 나는 권리 선언의 불도저 같은 효력 - 한 집단에 이어 다른 집단이 권리를 요구하고 획득하는 -을 재평가하면서, 왜 여성의 권리가 그처럼 골치 아픈 이슈가 되었는지, 왜 여성은 프랑스 백인 유산계층 여성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으로 간주되던 유대인, 무산자, 노예들과 동시에 권리를 획득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하려 한다. (8면)




2. 허구적 매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전부터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 (9면)




3. 공감은 또한 18세기 말, 사법적 고문이 폐지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법률가들은 부당하게 기소된 피해자들의 고통을 다룬 가슴 아픈 이야기를 법정 제출용 적요서나 청원서에 자주 담았으나 고문 철폐는 또다른 무언가를 요구했다. 바로 고통을 이해하는 일에서의 근본적 변화이다. 계몽주의 개혁가들은 고통이 진실을 드러낼 수 없으며 개인의 고통은 범죄로 상처받은 사회를 치유하는 데 도움이 안된다고 확신했다. 고문을 통한 고통의 부과는 죄를 자백받기 위한 것이든, 공범의 이름을 실토하게 하기 위한 것이든 별 효력이 없었다. 왜냐하면 약한 자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하는 반면, 강한 자는 이를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10면)




4. 더욱 곤혹스러운 점은 18세기 말에 인권이 보편적 가치라고 확신에 차서 선언했던 당사자들이 그다지 보편적으로 사고하지 않았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들은 어린이, 광인, 수형자 또는 외국인들이 정치적 과정에 완전히 참여하기에는 무능력하고 무가치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의 우리와 별반 다를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무산자, 노예, 자유 신분의 흑인, 경우에 따라서는 종교적 소수자, 그리고 항상 어디서나 그렇듯이 여성을 배제했다. (23면)




5. 특히 놀라운 것은 노예 소유주읜 제퍼슨 같은 인물, 그리고 귀족이었던 라파예트 같은 인물이 자신들은 전 인류의 자명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3면)




6. 나는 자명성의 요구가 인권의 역사에서 핵심이라고 믿는다. 이 책은 어떻게 그러한 확신이 18세기에 생겨났는지 설명할 것이다. (25면)




7. 인권은 서로 맞물린 세 가지 특성을 요구한다. 그러니까 권리는 자연성(인간이 타고남), 평등성(모든 이에게 동일함), 보편성(모든 곳에 적용 가능함)이 있어야 한다. (25면)




8. 그러나 자연성, 평등성, 보편성마저도 충분치는 않다. 인권은 정치적 내용을 획득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인권은 자연 상태에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인간이 갖는 권리이다. 신의 권리나 동물의 권리에 반대되는 권리가 아니라 인간 서로서로에 대한 권리인 것이다. 따라서 인권은 세속의 정치세계에서 보장되며(비록 “성스럽다”고 표현되긴 하지만) 그것을 확보한 이들의 적극적 참여를 요구한다. (26면)




9. 1789년 이전에, 예를 들어 제퍼슨은 ‘자연권’natural rights에 관해 자주 말했다. 그가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1789년 이후였다. (27면)




10. 아프리카인들이 인권을 향유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제퍼슨은 집에 거느린 미국 흑인 노예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암시도 하지 않았다. 제퍼슨이 정의한 인권이란 아프리카인들이 -미국의 흑인은 더더욱- 자기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아니었다. (28면)




11. ‘인권’이라는 용어가 프랑스에서 1763년에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의미는 ‘자연권’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이나, ... (28면)




12. ‘인간의 권리’는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1762)에 등장한 후 프랑스에서 통용되었다. (29면)




13. 인권이란 무엇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왜냐하면 개념 정의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성만큼이나 감성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명성의 요구는 궁극적으로 감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으며 개인의 내면을 움직여 확신을 갖게 한다. 더욱이 인권 침해로 공포를 느낄 때 비로소 인권이 문제가 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32면)




14. 인권은 단지 문서화된 강령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행위를 판단하는 성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인민들이 어떠한 존재이며, 그들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옳음과 그름을 아는가에 관한 일련의 확신들 말이다. (33면)




15. 그들 ‘평범한 개인들“ 뒤에는 오랜 투쟁의 역사가 놓여 있다. (34면)




16. 공감은 타인이 우리 자신과 다를 바 없이 느끼고 생각한다는 점, 우리의 내적인 감정들이 근본적으로 동질적임을 인정하는 것에 달려 있다. (35, 36면)




17. 공감은 찰나의 믿음, 타인이 자신과 같다는 상상이 필요한 만큼,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상상되었다. (39면)




18. 새로운 독서(그리고 관람과 청취)는 새로운 개인적 경험(공감)을 창출했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사회적, 정치적 관념(인권)을 낳았다. (41면)




19. 나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 - 이 경우에는 인권 -가 많은 개인들이 유사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동일한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가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독서 및 감상과 더불어 실제로 새로운 사회적 맥락을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41면)




20. “인권이란 시종들도 인간으로 보일 때에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46면)




21. 공감이 18세기의 발명품이 아님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공감 능력은 보편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뇌의 생물학적 원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들의 주관성을 이해하고 그들의 내면적 경험이 자신의 경험과 같다고 상상할 수 있는 생물학적 능력에 의존한다. (47면)




22. 공감은 오직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발전한다. 따라서 상호작용의 형식은 나름의 방식대로 공감을 형상화한다. 18세기에 소설 독자들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법을 배웠다. 책을 읽으며 전통적인 사회적 경계, 즉 귀족과 평민, 주인과 하인, 남성과 여성, 아마도 성인과 아동 간의 경계마저 넘어 공감했다. 그 결과 타인들 - 그들이 개인적으로는 모르던 사람들 -을 자신처럼, 마치 동일한 내면적 감성을 지닌 존재로 보게 되었다. 이러한 배움의 과정이 없었다면 ‘평등’은 깊은 의미를, 특히 정치적 성과를 전혀 얻지 못했을 것이다. (48면)




23. 사람은 사회적 경계를 넘어 동일시하는 능력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획득했을 것이다. 소설 읽기만이 유일한 방식은 아니었으나 소설 읽기는 특별히 시의적절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특정 소설 - 서한 소설 -의 전성시대가 인권의 탄생 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서한 소설이라는 장르는 1760년대와 1780년대에 성행했으며 상당히 의아하게도 1790년대에 종말을 고했다. (48면)




24. 소설이 상승세를 탄 이유가 무엇이든, 나는 그 심리학적 효과와 그것이 인권의 등장과 연관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49면)




25. “... 그것은 밤새 공상을 펼치게 하네. 책의 모든 장들이 마력을 갖고 있네그려. 열정과 의미라는 마력 말일세.” (54면)




26. 하지만 저자는 현재시제 그리고 일인칭으로 글을 씀으로써 이러한 효과를 얻습니다. 그로 인한 타격은 즉각 심장을 꿰뚫고 우리는 그가 그려낸 모든 비애를 느낍니다. 우리는 ‘클라리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녀와 함께 울지요. 그리고 그녀와 더불어 한 걸음 한 걸음 모든 고난을 겪어나간답니다. (59면)




27. 공감은 동일시에 근거를 둔다. (66면)




28. 그러니까 ‘내면의 감정’이라는 것을 갖게 된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권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디드로는 더욱이 소설이 무의식적 효과를 낳는다는 것을 인식한다. “사람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충동에 의해 선함으로 이끌린다고 느낀다. 불의에 직면할 때, 당신은 자신에게조차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역겨움을 느낀다.” 소설은 명확한 도덕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야기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효과를 낳는다. (67면)




29. 인권은 이 같은 감정들이 부려진 온상에서 자라났다. 인권은 오직 대중들이 타인들을 근본적으로 동등하게 생각하도록 배울 때에만 자랄 수 있었던 것이다. (69면)




30. 나는 ‘공감’empathy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왜냐하면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영어에 편입된 단어이기는 하지만 공감이라는 말이 타인들과 동일시하려는 능동적 의지를 더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동정’은 지금은 대개 연민pity을 뜻한다. 은혜를 베푸는 태도를 암시하는 동정은 진정한 평등의 감정과는 양립하기 어렵다. (77면)




31. ... 그(볼베르)가 전개한 논지의 골자는 불관용은 인간적 권리일 수 없다는 것이다. (86면)




32. 베카리아의 소책자는 모든 민족의 형법체제를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게 된 이 이탈리아인은 고문과 잔혹한 형벌만이 아니라 - 당시로서는 괄목한 만한 진전으로 - 사형제 자체를 거부했다. 베카리아는 지배자의 절대권력, 종교적 독선, 그리고 귀족의 특권에 반대하여 민주주의적인 정의의 기준을 세웠다. (93면)




33. 그는 법을 종교보다는 루소주의적 기반 위에 세우고 싶어 했다. 법이란 “자유 상태에서의 사람들 사이의 관습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처벌의 완화를 주장하기는 했지만 - 처벌은 “가능한 한 최소화해야”하며 “범죄에 걸맞아야” 한다 - 그것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게는 공개와 노출이야말로 법의 투명성을 보증하는 것이었다. (109, 110면)




34. “형법은 ... 여전히 불완전하고, 모든 민족이 불필요하게 잔인한 환경에 놓여 있으므로 그것을 이성의 기준에 맞추어 제한하려는 시도는 전 인류에게 흥미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116, 117면)




35. 18세기에는 두 가지 권리의 언어가 통용되었다. 특수론적 형태(특정한 인민이나 민족적 전통에 고유한 권리들)와 보편적인 형태(인간 일반의 권리)가 그것이다. 미국인들은 이중 하나를 사용하거나 상황에 따라 양자를 결합해서 사용했다. 일례로, 1760년대 인지조례 위기에 미국의 팸블릿 집필자들은 대영제국의 식민주의자로서 권리를 강조했다. 이에 반해 1776년의 ‘독립 선언문’은 모든 사람의 보편적 권리를 분명히 부각시켰다. 미국인들은 그후 1787년의 헌법과 1791년 ‘권리장점’에 자신들 고유의 특수론적인 전통을 입안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프랑스인들은 거의 즉시 보편론적 형태를 받아들였다. (133면)




36. 일찍이 1625년 네델란드의 칼뱅주의 법률가 후고 그로티우스는 한 나라 또는 하나의 법률 전통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적용할 수 있는 권리의 관념을 제시했다. 그는 ‘자연권’을 생래적이거나 신의 의지와는 분리되어 사고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했다. ... 그의 독일인 지지자인 사무엘 푸펜드르프는 하이델베르그대학의 자연법, 강좌 초대 교수였는데, 1678년 출판한 ‘자연법론의 일반사’ 강의에서 그로티우스의 성과를 부각시켰다. 푸펜도르프는 그로티우스를 어떤 부분에서는 비판하기도 했으나, 권리 사상의 보편론적 흐름의 원조로서 그로티우스의 명성을 굳히는 데 일조했다. (134면)




37. 특히 로크는 영국인의 관점에 영향을 미쳤으나 미국의 정치사상을 형성하는 데 더욱더 기여했다. 홉스의 영향은 로크보다는 덜했는데, 이는 그가 자연권이 절대적 권위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홉스는 절대적 권위가 - 그렇지 않았으면 도래했을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로티우스가 자연권을 삶, 신체, 자유, 그리고 명예(특히 노예제를 문제 삼은 듯한)와 동등한 자리에 놓은 반면, 로크는 자연권을 “삶, 자유 그리고 영지”로 정의했다. 그는 재산 - 영지Estate-을 강조한 나머지 노예제에는 도전하지 않았다. 그는 정당한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을 활용한다는 이유로 노예제를 정당화했다. (135, 136면)




38. 홉스와 로크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18세기 전반의 자연권에 관한 영국, 미국의 논의는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자유민으로 태어난 영국 남성의 권리라는 특수한 역사적 근거에 초점을 맞추었다. ... 이 고명한 법률가의 주장에 따르면, 비록 권리가 한때는 보편적이었으나 오로지 우월한 영국인들만이 그것을 보존해올 수 있었다. (136면)




39. “권리 이념, 그리고 더욱이 자연법 이념은 인간의 본성과 분명히 관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 그 자체에서, 인간의 정체constitution와 조건에서 이러한 학문의 원리를 추론해야 한다.” (137면)




40. 1774-76년의 사건은 저항하는 식민지들에서 권리에 관한 특수론적 사고와 보편론적 사고를 잠정 융합시켰다. 대영제국에 대한 반응으로, 식민지인들은 대영제국 신민으로서의 기존 권리를 인용하는 동시에, 평등한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보장해 줄 정부를 구성할 보편적 권리를 주장한 것이다. (138면)




41. 장기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오로지 실정법만이 중요하다고 본 제레미 벤담의 시각이었다. 공리주의의 아버지로 명성을 떨치기 오래전인 1775년에 벤덤은 블랙스톤의 ‘영국법 주해’를 비평했는데, 거기서 자연법 개념을 거부하는 논지를 폈다. “어디에도 ‘계율’ 같은 것은 없다. 소위 자연법의 요청을 받은 듯한 행위들을 하도록 ‘명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무엇인가 안다면 그에게 그것들을 만들도록 하라. 계율들을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발견하는’ 과업을 이성의 도움으로 수행해야 할 필요는 없다. (142면)




42. 벤덤은 자연법이 원래 주어진 것이어서 이성으로 이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그래서 자연법 전통과 이에 결부된 자연권을 본질적으로 거부했다. 유용성의 원리(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가 베카리아에게서 빌려온 생각)는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가리는 최상의 기준으로 작동했다. 이성에 기초한 판단이 아닌 사실에 기초한 계산만이 법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고려한다면, 그가 나중에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거부한 일은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프랑스에서의 선언 각 조항을 논평한 소책자에서 그는 자연권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했다. “자연권이란 그저 난센스일 뿐이다.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권리란 수사학적 난센스, 호언장담식 난센스인 것이다.” (142, 143면)




43. 1760년대 초 ‘인간의 권리’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촉발된 후, 정작 루소 자신은 환멸감에 빠져들었다. 1769년 1월에 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다룬 장문의 서신에서 루소는 “인간성이라는 이 아름다운 단어”의 과용에 대해 투덜거렸다. (144면)




44. ... 그중 가장 지배적인 것은 ‘인간의 권리’였다. 권리의 언어는 이제 고조되는 위기감 속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146면)




45. 제퍼슨이 모든 사람이 권리들을 “창조주에 의해 부여받았다”고 단언할 필요성을 느낀 반면, 프랑스인들은 권리들을 자연, 이성, 사회라는 전적으로 세속적인 원천에서 도출해냈다. 논쟁이 지속되는 동안 마티유 드 몽모랑시는 “사회에서 인간의 권리들은 영원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인정하기 위해 어떠한 재가도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 구질서에 대한 도전이 이보다 더 솔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151면)




46. 선언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사실상 몇몇 문제들 - 예컨대 무산자나 종교적 소수자의 권리 -을 더 첨예하게 만들었고, 이전에는 정치적 지위를 전혀 갖지 못했던 노예나 여성을 둘러싼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152면)




47.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이의 언어를 바꿔놓았다. (152면)




48. ... 페인의 ‘인간의 권리’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는 부분적으로 그가 영국 왕실을 포함한 모든 세습왕정에 반대할 기회를 잡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출간된 그 해에 여러 영어 판본이 나왔다. 그 결과 권리와 관련된 용어의 사용은 1789년 이후 급증했다. 이는 ‘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영어책 제목의 수에서 잘 드러난다. 그것은 1790년대에는, 1780년대(95개)나 18세기의 이전 10년들과 비교할 때 4배(418개)나 증가했다. 유사한 경향을 네델란드에서는 찾을 수 있는데, ‘인간의 권리rechten van den mensch라는 용어는 1791년 페인의 저작을 번역하면서 처음 사용되었고, 1790년대에 많이 사용되었다. '인간의 권리’Rechten des Menschen는 곧 독일어권에서도 많이 쓰였다. (154면) 




49. 브뤼네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여성 권리의 문제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175면)




50. 그러나 여성의 권리는 미국혁명이나 프랑스혁명에 이르는 수년 동안 지속된 토론의 초점은 아니었다. ... 이는 여성이 박해받는 소수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우리의 기준에 의해, 그들은 성 때문에 박해받았거나 소수가 아니었고, 개신교도나 유대인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도록 그들을 고무하려 애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3면)




51. 권리에 대한 로빈슨의 염려(권리에 대한 이 같은 강박적 집착은 ‘삶의 가장 해로운 독’이었다)는 대륙의 반혁명적 왕당파들이 발사한 공격 미사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선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의무를 소홀히 하고 오로지 자신의 개인적 욕구만을 생각하도록 부추겼다. 게다가 그러한 격정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프랑스를 무정부 상태, 테러, 그리고 사회적 분열로 몰아갔다. (206면)




52.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는 주장은 인간성이 문화와 계급을 넘어 동질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했다. ... 남성이 여성에 대해, 백인이 흑인에 대해, 또는 기독교인이 유대인에 대해 우월성을 주장하려면 차이들의 토대가 더욱 굳건해야 했다. 간단히 말해 권리가 보편적이거나 평등하지 않고 자연적이지도 않다고 주장하려면 그럴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했다. 그 결과 19세기는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이 폭발적인 힘을 보여준 시기였다. (215면)




53. 존 스튜어트 밀은 영향력있는 논저 ‘여성의 종속’(1869)에서 바로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를 의문시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남성과 여성을 현재의 사회적 역할에서 볼 뿐이므로, 그들의 본성에 차이가 있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217면)




54.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헌법적 차원의 개인의 권리라는 개념의 한계를 깨닫고 이에 반대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226면)




55. 이들 초기 사회주의자 상당수는 ‘인간의 권리’를 불신했다. 1820-30년대 프랑스의 선도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는 헌법, 그리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논의가 기만적이라고 설명했다. 가난한 사람이 “일할 자유도 없고” 고용을 청원할 당국도 없다면 “시민의 소멸될 수 없는 권리”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227면)




56. ‘도덕 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수억 명의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중국에서의 지진 소식을 들은 “유럽의 한 인도주의자”의 반응을 가정한다. 스미스의 예상에 따르면, 그 사람은 올바른 것을 죄다 말하고 나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기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만약 다음 날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잃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면 밤새 뒤척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대가로 수억 명의 중국인을 기꺼이 희생시키려 할 것인가? 아니, 그러지는 않을 거라고 스미스는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한 인격체를 이러한 흥정에 저항하도록 만드는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그것은 인간성이라는 연성 권력이 아니다”라고 스미스는 주장한다. 그것은 더 강한 힘, 즉 양심의 힘이다. “그것은 이성, 원리, 가슴속의 거주자, 내면의 인간, 위대한 재판관 그리고 우리 행위의 조정자이다.” (241면)




57. 권리의 폭포수는 그것이 어디로 흘러야 하는지를 두고 항상 큰 갈등을 겪게 마련이지만 쉼 없이 계속 흘러간다. 여성의 선거권 대 태아의 생존권, 안락사의 권리 대 절대적 생존권, 장애인의 권리, 동성애자의 권리, 아동의 권리, 동물의 권리 등에 관한 논쟁은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244면)




58.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걸쳐 아주 잘 알려진 노골적 억압을 법이 더 이상은 용인할 수 없는 때가.” (24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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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 “어린 시절의 천재성은 어른이 된 후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성공은 무서운 집중력과 반복적 학습의 산물이다.” ... 자기 분야에서 최소한 1만 시간 동안 노력한다면, 누구나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만 시간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3시간씩 연습한다고 가정했을 때, 10년을 투자해야 하는 엄청난 시간이다. 1만 시간의 노력을 다할 때 비로소 우리 뇌는 최적의 상태가 된다. 글래드웰은 우리가 성공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 얽매여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로 가장 똑똑하고 영리한 사람이 정상에 오른다는 신화이다. (6면, 7면)




2. 어느 누구도 건강을 공동체라는 개념과 더불어 생각하지 않았다. ... 이 책을 통해 나는 스튜어트 울프가 건강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것과 마찬가지로, 성공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자 한다. (18, 19면)




3.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는다. 우리는 부모와 후견인에게 뭔가를 빚진다. 왕 앞에 서는 이들은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숨겨진 이점과 특별한 기회, 그리고 문화적 유산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요소들이 그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과 달리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세상을 바라보도록 해준다. (32, 33면)




4. 그게 전부다. 덧붙이자면 최고 중의 최고는 그냥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훨씬, 훨씬 더 열심히 한다. (56면)




5. 연습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1만 시간이 엄청난 시간이라는 점이다. (58면)




6. “... 리버플에서는 고작 한 시간만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잘하는 곡만 반복해서 연주했죠. 하지만 함부르크에서는 어덟 시간씩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곡들과 새로운 연주방법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67면)




7. ... 그 전까지는 그들은 무대 위에서 숙달되어 있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함부르크에서 돌아오자 그들은 차별화된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비틀스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68면)




8. 좀 심하게 몰입했죠. (71면)




9. 하지만 그들의 역사를 구분 짓는 진정한 요소는 그들이 지닌 탁월한 재능이 아니라 그들이 누린 특별한 기회이다. 만약 비틀스가 함부르크에 초대받지 않았다면 그들은 다른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74면)




10. 관건은 폴의 생각은 폭력적 상상에서 섹스로, 불타는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으로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플로렌스의 생각은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두 학생 중 누가 창의적이고 기발한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가? (108면)




11. 스턴버그에 따르면 실용 지능은 ‘뭔가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언제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등을 아는 것’을 포함한다. (124면)




12. 우리는 분석 지능이 어디서 오는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자로부터 온다. 크리스 링컨은 6개월부터 말하기 시작했고 세 살 때 읽는 법을 스스로 깨우쳤다. 한마디로 그는 똑똑하게 태어났다. 어떤 면에서 IQ는 선천적인 능력의 척도이다. 하지만 실용 지능은 후천적으로 습득해야 하는 지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지식을 대부분 가족에게서 배운다. (124, 125면)




13.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을 익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31면)




14. 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성공은 특정한 장소와 환경의 산물이다. (144면)




15. ... 그러나 아웃라이어들에게는 그늘에 매장되는 것이 오히려 황금 같은 기회로 이어지곤 한다. (149면)




16. “그 친구들이 다른 사람보다 똑똑한 변호사이여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수년간 일해 오던 중 갑자기 세상이 변했고 그 친구들의 기술 가치가 대단히 높아진 겁니다.” (155면)




17. 성공은 반드시 필요한 기회가 늘 우리 자신이나 부모에게서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온다.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의 특별한 기회에서 오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955년에 태어나는 것이나 기업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1835년에 태어나는 것처럼,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에게 1930년대에 태어나는 것은 마법의 시간대를 등에 업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165면)




18. 그 날 이후 루이스는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과 팔고 있는 것을 모두 기록했다.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 등을 꼼꼼히 체크하며 그는 사람들이 입을 것 같지만 아직 가게에서 팔지 않고 있는 특별한 물건을 찾고자 했다. (169면)




19.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이어지는 근무시간에 행복한가 아닌가는 궁극적으로 얼마나 많은 돈을 버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관건은 일 자체가 만족스러운가아닌가에 있다. ...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것은 바로 ‘가치 있는 일’이다. 가르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의사가 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 (179면)




20.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성공이 다양한 기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부모의 직업이 무엇인가, 양육되는 과정에서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등의 요인에 따라 누군가는 세상 속에서 얼마나 잘 해나갈 수 있는가가 결정된다. (188면)




21. ... 나아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결정함으로써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한다. (206면)




22. ... 하지만 그들이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고 또 하나, 또 하나,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의 실수를 저지르면 이 모든 실수의 조합이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212면)




23. 라트와트에게 필요했던 것은 의사소통 능력이었고, 그것은 명령을 내리는 차원을 넘어 가장 분명하고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채근하고 달래고 협상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것을 포함한다. (221면)




24. ... 그러나 다른 상황, 가령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조종석 안에서라면 완곡어법을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224면)




25. 대부분의 대형 항공사는 ‘승무원 자원관리’라는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이는 연차가 낮은 승무원이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훈련이다. (227면)




26. “저는 제 자신의 권위를 낮추고자 무척 애씁니다. 함께 조종하는 승무원에게 늘 이렇게 말하죠. ‘나는 그리 자주 비행하지 않네. 한 달에 두세 번이 고작이야. 나보다 자네가 훨씬 많이 비행하고 있지. 내가 뭔가 멍청한 짓을 한다면 그것은 내 최근 비행 빈도가 낮아서 그런 걸세. 그러니 제때에 정확하게 말해주게. 도와달라는 말일세.’ 희망적인 것은 이렇게 말하면 입을 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228면)




27. 헬름라이히와 그의 동료인 애슐리히 메리트는 전 세계 조종사들의 PDI(권력 간격 지수)를 측정한 일이 있다. 그 결과가 궁금한가? 1위는 브라질이었고 2위는 한국이었다. (241면)




28. 서구인의 의사소통은 언어학자들이 ‘화자 중심’이라고 부르는 원칙, 즉 의사소통이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부정확하게 말한 화자에게 책임을 묻는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 그러나 한국은 다른 많은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청자 중심이다. 대화 내용을 알아듣는 것은 듣는 사람의 문제인 것이다. (250면)




29. 서양의 아이들이 산수를 늦게 깨우친다는 것은 자주 지적되어온 사실로, 푸손은 그 원인 중 일부를 언어에서 찾고 있다. (266면)




30. “논에 물을 대서 벼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노동량이 많은 동시에 그 일을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마디로 관리를 잘해야 하죠. ...” (2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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