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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ㅣ 리라이팅 클래식 7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04년 10월
평점 :
칸트의 철학이 어려운 이유는 칸트가 일반인들을 위해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칸트가 다루는 주제 자체가 난해하고, 그 자신이 새로운 개념과 도식을 많이 만들었다는 데에 있다.
한국에서 '칸트' 를 쉽게 해석한다는 책들도 초보자에게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순수이성비판은 그 주제가 '나는 무엇을 알수 있는가' 라는 점을 볼때 이 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만하다.
표지부터 '엄마가 집나갈까봐 모범생이 되었다.' '노동운동을 좀 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 다는등 낯 간지러운 자기자랑은 '수유연구실' 사람들의 특징이긴 하지만, 진은영의 책은 그나마 쉽고 친근하게 순수이성비판의 문제의식을 풀이해주었다는 점에서 초보자들이 읽을 만하다.
약 200 페이지까지는 순수이성비판을 쉽고 간결하게 풀이해 놓아 관심있는 이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 입문서가 딱히 없다.
그러나 3부 부터는 자신이 숭배하는 니체, 들뢰즈, 베르그손, 푸코등을 마구 버무리고 있다. '위대한 별들의 부딪힘' '철학적 도제' '계몽의 폭력 등 듣기에는 근사하지만 별 내용은 없다.
순수이성비판의 현대적이고 참신한 해석을 기대했더라면, 면밀한 검증 없는 불란서제 구라의 지루한 나열에 질려버리게 될 것이다. 칸트를 설명하기위해 들뢰즈를 운운하고, 기본 개념은 다시 푸코를 통해 설명하는 이런식의 개념널뛰기는 그저 '철학자 우려먹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면에서 '책 장사' 라는 비난을 받기 쉽상이다.
진정한 칸트철학의 이해는 칸트가 살던 시대에 대한 고찰과 철저한 과학적 실증을 요구한다. 특히 순수이성비판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철학과 과학의 경계를 설정하는 작업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이 2가지만 다루어도 입문서의 목적은 달성하고도 남는다.
사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현대 이론물리학자들에게 진지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시공간개념이 다소 모호한데다 현대물리학과는 다소 맞지 않기 때문이다.칸트의 마지막 보루였던 '물자체' 개념마저도 현대 과학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순수이성비판은 철학사상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고전임에 틀림없으며 이 책의 문제의식은 철학의 기본 문제로서 뿐만 아니라 온갖 종교, 미신, 사이비 이론, 폭력이 난무하는 작금의 우리현실에 여전히 유효하다. 칸트 철학의 기본적인 입장이 '계몽'에 있다는 점에서는 특히 그렇다.
무엇보다 철학책을 소개한다면, 왜 이 책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것인지 정당화해야 한다. 이게 철학책 저자의 기본 의무이거늘, 태극기 한장도 찢지 못하는 '탈주 공간'에 함몰된 풋나기 시인의 들뢰즈 타령은 '사유의 즐거움'만 쫓아다닐 뿐 현실에 대한 냉정한 관찰과 통찰은 한치도 보이지 못한다.
진은영은 자신을 철학도가 아닌 시인이라고 불러달란다. 그런데 자신이 대학원에서 전공했던 니체가 그렇게 시대에 순응했던 시인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