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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과학이 발견한 인간 마음의 작동 원리와 진화심리학의 관점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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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써낸 책은 대부분 구조가 비슷하다. 유명한 철학자가 했던 말이나 그리스 신화로 시작한 다음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어설픈 유머를 적절히 섞는 방식이다. 이 책도 물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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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꺼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복덕방 영감이나 동네 미장원 아줌마들이 종종 지껄이는 얼빠진 소리가 알고 보니 과학적인 근거가 있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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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유전학, 생물학, 경제, 정치, 역사 등등을 한 방에 담았다고 하나, 미국인들이 쓴 책이 대게 그렇듯이, 자의든, 타의든 미국의 보수적인 백인 중산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기 때문에(저자들은 대부분 그런 출신이고), 아무래도 정치적인 요소는 미약하다.
달라이라마는 권력 기반이 없음에도 단지 도덕적 권위에 의해 세계적인 정치가로 인정받고 있으며...어떤 인간도 그보다 더 순수하고 고결한 생각을 갖도록 양육되거나 그런 역할을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 p.797
스티븐 핑거는 달라이라마가 미국 CIA에게 연봉 2억씩 받고 돌아다니면서, 최고급 호텔에서 잔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사실 그는 티베트 농민들을 쥐어짜던 라마승들의 지지를 받는 '가진 자'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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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자칫하면 이 세상의 온갖 불평등과 폐악질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오독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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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거가 자식이 없어 이름이라도 날려볼 요량인지, 밥상을 푸짐하게 차렸으나 정작 먹을 게 그리 많지 않다. 한마디로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미국 책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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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애매한 부분도 몇 군데 있는데, 내용 자체가 그런 면도 있고, 본인이 번역을 부업으로 하고 있는 터라, 뭐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번역자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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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과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앞부분은 어려울 것이고, 최소 400페이지부터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뇌 과학이나 인류학, 유전학을 조금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서 후반부만 읽어봐도 충분하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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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자식을 볼 나이가 한참 지났지만 아직까지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고 있으며, 나의 생물학적 자원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연구 학, 친구들과 학생들을 돕고, 운동장을 달리는데 탕진하면서 유전자를 퍼뜨리는 엄숙한 명령을 무시하고 있다.
다윈주의의 기준에서 보면 나는 한심한 실패작이고 불쌍한 패배자이다. 그러나 나는 더없이 행복하며, 나의 유전자들이 내 인생을 싫어해서 호수로 뛰어든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p.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