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교육이 희망이다 - 교사, 학부모, 학생을 위한 미래 교육 길잡이
류태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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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부 뿐만이 아니라, 현 정부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동안의 산업 혁명들을 한번씩 돌아보도록 하자.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산업 혁명이 있을 때마다 인류는 얼마나 큰 변화를 목격했는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던 것은 분명히 노동분야다. 선업혁명은 사람들의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줄었고, 잉여 노동력을 줄요 회사에게는 더 많은 산업에 진출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노동자 또한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을 덜 들이고 일을 할 수 있게 됐을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산업혁명의 긍정적인 면모만 봤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과거 러다이트 혁멱이 있었다시피, 산업혁명은 시민들이 특정 산업에 진입할 수 있는 울타리 구실도 했다. , 시민들이 그냥 노동만 할 줄 알아서가 아니라, 특정한 노동력을 전문적으로 발휘할 수 있어야 해당 산업에 속할 수 있었다.

어쨌든 산업혁명은 사용자들에게는 더욱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주었고, 노동자에게는 다양한 방향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의 풍경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혁명의 진원지는 어쨌든 산업현장이다.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공급하는 것은 교육기관이다(물론 이는 기업 중심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 나는 대학이 절대 기업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보자). 교육기관은 어쨌든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생산해서 소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는 과연 누구일까. 어떤 노동력을 그들은 필요로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알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이 도대체 어떤 분야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르 알아야 하는게 아닐까.

애가 받은 책. <4차 산업혁명. 교육이 희망이다><성적없는 성적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그리고 변화하는 산업 시스템에 맞춰서 어떤 교육이 교육기관에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혁명에 적응해야 한다면서, 수많은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도들은 유연하지 못했다. 유연하기는커녕 그동안의 방식대로 학생들을 가르쳤을 뿐이다. 컴퓨터 라는 과목을 배울 때에도 이전과 똑같이 주입식 교육이었을 뿐. 크게 다른 것이 아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주입식 교육이 한계에 봉착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책이 그 답을. 혹은 그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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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MD : 쇼룸 편 - 트렌드는 좇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패션 MD 시리즈 3
김정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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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영화 <악마는 프라드를 입는다>를 본 뒤부터다. 솔직히 관심이라고 말할 정도도 아니다. 그냥 그 영화를 본뒤 패션의 본질은 아 저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았을 뿐. 딱히 패션이란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안 것은 아니다.

나는 영화에 나온 미란다를 보고, 패션이 어떤 것인줄 알 수 있었다. 내 생각에 패션이란 것은 극단적인 시각의 직관에 의존하는 분야였다. 디테일은 나중의 일일지 모른다(물론 그 디테일함이 먼저 들어나는 옷 이라면 나중의 일 이라고는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의 옷을 봤을 때, 다른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물론 옷걸이도 중요하겠지만)를 갖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이 패션의 본질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책은 패션 자체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패션 아이템들을 배열하는 쇼룸. 즉 패션 아이템들을 어떻게 배치하느냐를 다루는 책이다. 그래서일까. 패션 아이템을 다루는 공간부터 달라야 한다. 구찌, 헤르메스, 루이비통 같은 명품 아이템들을 구제 매장에 있는 물품들처럼 짱박거나 칙칙한 분위기에서 처박아 놓으면 아무리 좋은 패션 아이템이라고 해도 그것들은 패션 아이템들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눈에 짝퉁 그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뿐만인가. 아마 그렇게 배열된 아이템들은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도 끌지 못한 채, 천천히 먼지만 쌓일게 뻔하지 않은가.

이 책은 어쩌면 패션 아이템보다 더 중요한 쇼룸에 대해서 다룬다. 솔직히 짝퉁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명품 매장의 그것처럼 배치하면, 충분히 소비자들의 소비 욕구를 자극할 수 있다. 그렇데 사람들은 그런 엣지있는 배치를 잘 알지 못하고, 어디서 배우기 또한 만만치 않다. 이 책의 서문에도 나와있듯이 패션 업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 만큼 자유로운 곳이 아니다. 자유로워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엄청나게 폐쇄적이라는 것이 실제다.

이 책은 패션 아이템분야에만 적용될 책 같지는 않다. 솔직히 어떤 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단순히 너저분한 장신구 몇 개 달아놓고 사무실 혹은 식당이나 자신의 공간을 꾸몄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 책이 주는 통찰은 확실하다. 그것들은 너저분한 것이지, 자신의 철학 혹은 외부 환경과의 조우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쇼룸만이 아니라 자신의 공간 또한 꾸미고 싶다면 이 책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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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차별과 혐오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가?
나카노 노부코 지음, 김해용 옮김, 오찬호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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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산파는 사회다. 인간이 무리를 짓고 생활하지 않는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왜 사회는 차별의 산파가 되었나. 생각해보면 딱히 사회가 차별을 낳았다는게 완전히 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사람들이 필요해서 모여설고 있는데, 그 안에서 배제가 일어난다는 게 퍽 설득력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애써 모인 사람들은 왜 차별을 하는 것일까. 일단, 기본적으로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야생이 아닌 사회다. 많은 사람들은 마치 버섯처럼 야상에서 갑자이 빵 하고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사는 것이 거의 시작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있어 어떤 사회에 태어나느냐가 문제이지, 사람이 없는 외로운 상황에서 태어나느냐 아니면 사림이 많은 곳에서 태어나느냐는 선택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건 상식정인 것이고 또한 물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우리는 왜 차별을 하는가 사회에서. 모든 사회가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알짜배기 사회가 있을 것이고, 자신이 저들과 함께 있으면 손해 보는 곳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알짜배기 사회로 가려고 한다. 물론 그 알짜배기 사회라는 것은 그 사람의 이성과 감성에 달려 있다. 경제적인 것 혹은 문화적인 것으로 단칼에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사람들은 언제나 알짜배기 세상으로 가려는 무한의 경쟁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언제나 경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만족하는 사회에 들어오면 그곳에서 나름대로 휴식을 취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할 것이다) 동시에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를 지키려는 모습 또한 보일 것이다. 그게 나는 차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사회에 경쟁적으로 들어가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자신의 사회를 폐쇄적으로 유지함으로서 그 안에서 자신이 불안해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배제하는 것. 그것이 차별이다.

아이러니 한가. 하지만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차별의 피해자이며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의 저자와 생각을 공유한다. 솔직히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방식은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뇌과학과 사회적인 차별을 연결시키는 과정이 굉장히 거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통찰중 하나는, 인간은 모두가 단일하게 세팅된 컴퓨터라는 점이다. , 어떤 상황에 몰리게 되면 똑같은 호르몬들이 분출하게 되고, 그것을 분출하는 사람들끼리는 함께 있으려 하지만, 그것을 분출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반대로 베재를 하기도 한다(물론, 이 책의 예시처럼 사이코패스와 같은 예외적인 상황도 있다. 자신과 호환할 수 없는 사람이 자신에게 이득을 주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감정이란 것. 그것은 단순히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다. 감정 또한 이성의 작용을 받는다. 아니 자신의 감정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 이성적인 행독을 하고 이해타산을 따진다. 감성 혹은 감정은 이성과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타산 작용은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필요하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사회를 보호하고 싶어하면서 더 나은 사회로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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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오기 전에 - 죽음 앞에서 더 눈부셨던 한 예술가 이야기
사이먼 피츠모리스 지음, 정성민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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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낭만. 죽음이 낭만의 반대말도 아니고, 낭만이 죽음의 반대말도 아니다. 하지만 이 둘은 왠지 모르게 특정한 상황에서 그 어떤 단어보다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아름다운 죽음은 그 어떤 상황보다도 낭만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죽음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가장 극한의 낭만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그런 극한의 낭만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극한의 낭만을 만난적이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을 보든 혹은 어떤 영화를 보든 다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음을 어떤 상황에 포장하느냐에 따라 낭만이 달라질 수 있음을 나는 이 책 <어둠이 오기 전에>를 읽으면 찬찬히 느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찬란하다는 것. 가장 어두운 공간에서 찰나의 빛을 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찬란한 빛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핵폭탄 몇백 몇십개를 터트려서 만들어진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빛이라고 해도 그것은 검은 밤하늘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별똥별만큼도 밝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밝기의 양의 차이가 아닌 사람들이 어떠한 지점에서, 어떠한 상황속에서 그 빛을 목격하느냐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천천히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가며 보게된 빛의 존재란, 천천히 어둠이 드리워지는 저녁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샛별의 모습을 계속해서 관찰하는 것과 다를게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또 아름다울 것이다.

이 책은 어쩌면 평범한 에세이다. 일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 일기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둠이 오기 전. 자신의 빛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쓴 자신의 이야기. 그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솔직히 이 책의 문장이 좋은지 안 좋은지. 나는 판단할 재간이 없다. 그것은 영어로 책을 읽었을 때. 그리고 그 배경을 아는 사람들만이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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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매혹 사이 -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
이문정 지음 / 동녘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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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문외한이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물감이나 찰흙을 좀 만질줄 알게 된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도 미술은 내게 전혀 익순한 것이 아니었다. 학교 벽을 볼 때마다 보이던 수많은 수채화 혹은 시기한 재료들로 만들어진 미술품을 볼 때마다 나는 학교가 어디에서 사 온거겠지를 상상했지만, 모든 작품들을 가까이에서 보면 아는 선배들의 이름이 조그맞게 붙어 있었다. 나에게 있어 미술 작품을 그린다는 것은 마치 하나의 집을 지으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생전 지어본 적도 없는 집을 지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기본적으로 미술 작품의 시작을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부터 몰랐다. 어디서부터 그림이든 머든간에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모두가 하는 것들을 그저 따라만 할 뿐. 내가 먼저 나서서 창조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작품이라기보다 쓰레기가 돼 버렸다. 그런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높은 점수를 받지 못했고, 미술이 내 대학 진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에... 나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고. 서소를 버린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이 책을 받은 순간. 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역시미술을 하는 사람들은 천재가 맞구나. 그리고 내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

 

혐오와 매혹사이 이전에

 

내가 읽은 책의 이름은 <혐오와 매속 사이>. 그리고 이 책의 부제는 왜 현대미술은 불편함에 끌리는가이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의 부제를 보지 않았다면 이 책이 불편한 책인지도 모를 뻔했다. 나에게 미술은 완전히 지식이 없는 분야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아기에게 그거 위험해” “그거 먹지마” “그거 나쁜거야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고서는 도저히 분별 능력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은 단순히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차원을 넘어 나에게 한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현대미술은이 무엇인지 모르는 나에게 현대미술은 불편하다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정보량이 많아 머리가 터질법도 하지만, 뭐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것 같다.

어쨌든. 이 책은 현대 미술이 불편하다! 혐오스러울 수 있음을 나에게 인식시켜 주었다. 이것도 어쩌면 자그마한 수확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미술책을 요즘 보면서 생각하는 건데, 이 세상의 정말 천제들 중에는 왜 미술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것 같았다. 메시지 그리고 생각을 풀어가는 영역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고 완전히 개방된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특히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작품들처럼 혐오스러운 것까지도 작품의 일부분으로 만든다는 것. 나는 정말 상상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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