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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30대 기자와 60대 연금학자가 주고받은 한국인의 노후 이야기 ㅣ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전혜원.오건호 지음 / 서해문집 / 2024년 3월
평점 :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있다, 지금 현실은 대다수의 보통사람은 그래도 안전할 거란 심리적 마지노선마저 붕괴된 후다. 사회 해체의 단계다. …”
길거리에서 페지 줍는 노인들을 보고 있자면 <비밀의 숲>에서 이창준의 편지의 내용이 머리에서 재생된다. 그리곤 혼잣말로 ‘정말 답이 없는걸까...’를 뱉는다.
올해 신간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은 반복해서 보는 장면과 반복되기만 하는 혼잣말에 대한 무게감 있는 답을 찾고자 빌린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은 노후 빈곤이라는 구조화되고 방치된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성실하게 하는 책이다.
오늘만 살겠다는 진보, 내일을 고민하는 진보
연금을 주제로 한 전혜원 기자와 오건호 박사의 대화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몇 퍼센트로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만 반복되는 국민연금의 문제를, “노후 빈곤 경감을 위해 어떻게 제도를 구성하고 총체적으로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로 확장시키고 그 답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연금을 둘러싸고 우리가 매번 마주하는 정보란 으레 다르지 않다. 지난 9월 4일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발표된 후 상당수 언론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숫자를 바꾸는 안이 발표된 것이니 그렇게 보도하는 것은 일면 당연하다. 그러나 노후 빈곤 완화를 다각적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구조개혁 문제는 이번 발표 이전에도 없었다. 현 정부가 모수가 아니라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얘기할 때도 구조개혁이 무엇인지 언급하는 수준에서 다뤄질 뿐이랄까.
같은 국민연금 문제를 다루지만, 전 기자와 오 박사의 이번 작업이 의미와 차별성을 발생시키는 부분은 여기다. 이들은 넓은 시야에서 해당 문제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상상해야 하고 어떻게 미래에 그려나가야 하는지를 짚는다. 그렇다고 연금 문제의 주전장이 되는 디테일 또한 빗겨나가는 게 아니다. 더 확장된 고민 아래서 디테일한 문제들을 보다 다각적으로 건드린다.
이들은 지속가능한 연금운영을 위해서 다른 연금(공무원·사학·군인)과 국민연금을 통합하자는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그 아이디어 내 우선순위를 따진다. ‘국가가 연급을 지급보장하겠다’는 말의 함정을 짚고 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정년연장의 한계도 지적한다. 국민·퇴직·기초연금을 어떻게 조합해 노후 빈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책은 연금을 둘러싼 온갖 그럴듯한 의견과 주장들을 이런 식으로 찬찬히 논파한다.
그러나 연금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질문 중 전 기자와 오 박사는 가장 얘기하고 싶은 문제는 바로 진보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집착이다. 이 문제는 3장(‘더 내고 더 받자’는 주장이 감춘 것들)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전 기자는 에필로그에서 오 박사는 프롤로그에서 직접 이 문제를 언급했다. 이 책의 컨셉인 ‘대담’이란 연극이 아니라 직접적인 메시지로 말이다. 진보의 소득대체율 인상 집착이란, 보험료는 그대로 두고 소득대체율을 올려서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자는 아이디어다. 또한, 국민연금이 고갈된 뒤에는 세금을 투입하고. 그러나 이에 대해 오 박사는, 보통 보수주의자들이나 내뱉을 주장을 한다. 미래세대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현 세대가 소득대체율의 수혜를 받고자한다면 자기 세대에만이라도 보험료율 인상 같은 부담을 져야 하는데, 이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오 박사는 소득대체율을 올린다고 해 모든 노인이 수혜 받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국민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가입 기한을 채워야 하는데 제도의 역사가 길지 않아 이를 충족한 65세 이상 노인은 전체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제도가 바뀌더라도 이미 은퇴한 가입자에겐 소급 적용도 안 된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만 높였을 때 이득을 보는 사람도 65세가 되지 않았으면서 국민연금에 가입했던(대부분 제도권에 있었을)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 진보는 국민연금 수혜가 이들에게 돌아가는데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를 숨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필요하다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한 가지 더. 오 박사는 적립방식의 한계를 수용하고 그해 걷은 보험료로 국민연금을 지급하자는, 부과방식 전환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현재의 적립방식이 애초에 국민연금의 고갈을 염두해 두었고, 서구 선진국들도 부과방식으로 국민연금을 지급하고 있기에, 보험료율 인상 같은 시민들이 부담을 느낄 방안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오 박사는 서구의 경우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이 2차대전 동안 기금을 다 썼고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인구구조는 안정적이었기에 부과방식 전환이 완만했다고 설명한다. 오 박사의 다른 칼럼을 찾아보면 KDI를 비롯해 국가 연구 기관들도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면서 적립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제도 운영의 목표였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제도 내부에서 가입자들이 균형 보험료율을 책임지고, 제도 바깥에서 인구구조 개선에 힘쓰면 지속가능하 재정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재정 안정은 한 번 달성했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국민연금이 존속되는 한 예상 밖의 인구·경제 변수가 언제든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어요. 그때마다 재조정이 요구되겠죠. 필요 이상의 갈등과 실기를 피하기 위해 자동안정화 장치를 고려해 봄 직합니다. 결국 지속가능한 재정을 위한 ‘연속개혁’입니다. 조세에 기반한 기초연금은 ‘세대 간 연대’라는 원칙에 따라 해당 시점의 국가재정이 책임지되, 초고령사회에 맞춰 지급 범위를 좁혀야 합니다. 퇴직연금은 와전 적립식 연금이니 제도 내부에서 재정균형을 추구하고요.”
책의 결론은 명확하다. 구조개혁이란 큰 틀로 봤을 때 (의도치 않게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역진적인 결과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올려선 안되고, 가난한 노인들을 위해 용돈 연금이란 비판을 받는 기초연금을 올리고, 퇴직자들이 안정적으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게 퇴직연금에 가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 연금의 보험료율은 올리고. 그리고 이러한 세 제도를 활용하는 안에 대해 두 사람은 ‘노후 빈곤을 위한 세 개의 지팡이’라고 부른다.
그간 연금은 개혁되지 않아 여러 제안들이 있었다. 부과 방식으로의 전면적 제안, 공론화 위원회의 결론을 따르자는 의견, KDI에서 발표한 신·구연금 분리 제안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제안들은, “개혁이 되지 않으니, 미래 일은 미래세대가 알아서 하도록 생각을 포기했다”거나, “위원회의 상징성에 책임을 방기한 방안” 혹은 “기술적인 대안” 등이라 비판받았다. 차분한 대안이 없기에, 특정 그룹의 사람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의 차력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65세까지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이 책의 이러한 결론은 사람들에게 노인빈곤과 재정이 고갈될 위기에 처한 연금을 어떤 균형 아래에서 지속가능하게 풀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도 오 박사가 내놓는 결론도 상당히 만족하고 납득가능하고.
올드패션한 기자가 한 일
이 작업물은 참으로 소박하다. 올드패션하다. 대담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것이고, 형식도 역동적이지 않다. 기자가 질문하고 학자가 답한다. 화려한 인포그래픽은커녕, 단순한 그래프 몇 개가 전부다. 두 사람 중 어느 한쪽도 유명한 사람은 아니다. ‘억까’라면 이 작업물이 편향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기자는 연금 문제에 대해 중립성을 잃었으며 특정 주장에 대해 프로파간다를 한다며(어그로의 시대에 이런 거라도 있으면...).
그런데 콘텐츠의 형식이 달라지면 사람들은 그 문제의 본질에 더 관심을 가지는가? “대한민국 완전 망했네요” 같은 짤처럼 화려하거나 재밌거나 엉뚱한 파생물에 더 관심을 가지진 않나? 특정 문제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최대한으로 끌어준다는 측면에서 이런 콘텐츠나 짤의 역할은 상당하지만, 어째 문제에 대한 대중과 언론의 관심은 그 형식이란 임계점 너머로는 못 넘어가지 않나?
이 책은 그 제목부터 표지까지 특기할 만한 것이 없지만, 내용을 읽다 보면 대담을 진행한 기자의 용기와 내공, 성실함을 느끼게 된다. 무슨 말인가. 시사 콘텐츠, 특히 복잡한 제도를 다룬 콘텐츠는 시민들이 머릿속으로 그릴만한 차원에서 이야기가 풀리고 또 그 진행이 유지되는 경우는 드물다. 독자들은 흔하지 않은 단어와 그 단어를 중심으로 맥락이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그리는 작업을 포기한다. 아니면 어색하게나마 (외워지지도 않을) 암기를 시도하던가. 연금과 관련해 비슷한 기사들이 쏟아졌어도, 매번 나오는 얘기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서 멈추는 이유도 같을 것이다.
그러나 전 기자는 여기서 다른 선택을 했다. “끝까지 질문한다”, “깊이있게”, “돌직구”로 표현될 수 있는 질문들을, ‘연금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실들’을 향해서도 던졌다. 이런 수식어들은 보통 지사형 기자들에게 붙는 것이나, 이런 식의 질문들이 제도의 문제로 향했을 때, 우리는 그간 감각하지 못했던 불의와 마주하게 된다. 불의란 특정한 사람의 의도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으나, 잘못된 시스템에 대해 모두가 침묵하면서 공공연하게 허용되기도 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전 기자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집요한 질문을 통해 기자가 어떻게 불의와 맞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가령, 전문가의 전문분야를 주제로 기자가 점진적으로 확장하는 대화를 이어나가며 전방위적으로 의심하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가? (유튜브 시대에 몇 군데 있긴 하다) 보통의 시사 프로그램이건 기사에서건 기자들이 하는 일이란 주제 관련 말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그중 뾰족한 주장을 뽑는 데 주력한다. 기자의 낮은 전문성은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100% 뽑는데 실패할 수도 있고, 전문가에게 휘둘리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 기자는 두 문제를 가볍게 피한다. 그는 오 오 박사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돼, 국민연금 운영에 있어서 그의 지식과 지혜를 바닥까지 끌어내려 한다. 몇 개의 날카로운 질문에서 전 기자의 이런 면모가 보이는 게 아니라,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색함 없는 수준 높으면서 긴장감 있는 흐름이 이어진다.
물론, 3번 인터뷰를 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지만, 연극이라 할지라도 이는 필요하다. 이런 좋은 흐름의 텍스트가.
쉴 생각이 없다면 편안하게라도 일하자
나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편하게 쉬는 시간보다, 그 시간에 한푼이라도 더 돈을 벌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마 국민연금을 더 받더라도 폐지를 줍는 사람들은 폐지를 계속 주울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초연금과 퇴직연금. 이 책의 저자들이 얘기하는 3개의 지팡이가 있으면, 조금 더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노후를 보낼 수 있지 않을가 싶다.
Ps. 1
사실, 이 책을 끝낼 즈음 내 SNS에 돌아다녔던 영상 중 하나는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의 언론 옹호 발언이었다. 그의 말 중 귀에 멤돌던 것은 “이야기가 되니까 쓰는 것이다!”라는 말이었다. 이는 언론이 좌우 가리지 않고 권력 비판 기사를 쓰는 이유를 설명하던 도중 나온 것이었다(물론, 어용 지식인의 말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권력을 비판하는 데서야 맞는 말이긴 하나, 저 이야기를 이번에 읽은 책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기자들에게 되는 이야기라는 것은 정치와의 결부라는 너무 한정적인 배경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말한, “모두가 침묵하는 확장해 가는 불의에 대해서는?”에 대해 기자들이 전 기자만큼 성실한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