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논리. 종북 혹은 빨갱이는 그런 무적의 논리를 구현화하는 핵심 단어였다. 쿠데타 집단에 복종하지 않는 집단은 모두 이 무적의 논리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우파 집단이 통일을 이야기하면 우리 민족이 이루어야 하는 업으로 생각됐고, 좌파 집단이 통일을 이야기하면 북한의 사상에 오염된 사람으로 생각됐다. 북한을 추종하지 않은 좌파 집단이라 할지라도 이 무적의 논리 앞에서는 안전하지 않았다. 좌파정책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은 2계단 혹은 3계단의 논리만 건너면 이것들 또한 모두 북한의 그것과 연계된 것이라 생각되고 공경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논리는 논리일 뿐, 그것은 현실이 아니다. 논리가 설명할 수 없는 변화들이 예상했던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발전했고 혹은 예상하지 못했던 수 없이 많은 지점에서 생겨나며 무적의 논리는 봄 햇살을 만난 겨울의 눈과 다를바 없었다. 무적의 논리로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었고, 설명이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혹은 반론의 여지가 많은 것들이 상당했다. 무적의 논리는 마치 우리나라와 관련된 세상의 모든 일을 설명하는 기적의 공식과도 같은 것이었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그것의 아성은 무너져 내렸다.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앞에 선 뉴턴의 중력의 법칙처럼, 새로운 변화들을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도구들이 생겨나자 이 무적의 논리는 따라가지 못했다. 애초부터 비선형적이며, 복합적이고, 특별한 패턴도 있지 않은 정치사의 모든 일을 이 하나의 논리로 정리해 해석하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가 있는 것 이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무적의 논리는 그런 변화를 염두해두고 만들어 진 것 또한 아니었다.

지난 2017427일은 이 무적의 논리가 드디어 역사의 무덤속으로 들어가는 날 이었다. 무적의 논리로 무장한 집단들은 산산이 부서졌고, 그들이 만들어낸 모든 북한에 대한 왜곡들은 마치 부매랑처럼 시민들의 의심이 되어 그들에게 돌아갔다. 한국전쟁이후 무적의 논리는 이제는 이러한 것이 있었다라는 흔적만 남았을 뿐 현실에서의 실질적인 힘은 갑작스레 상실하게 된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고 무조건 무적의 논리만 강조했던 사람들은 정치적 차언에서 산채로 매장된 것이나 다름없게 된 상황이다.

하지만 무적의 논리가 사라진 것이 모든 북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재정립할 수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사상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사슬이 끊어진 것일 뿐, 우리가 북한에 대해. 북한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사슬을 뒤로하고 앞으로 북한이 어떤 곳이고, 그들과 우리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 나갈지에 대한 대안이 필요하다. <남북 관계의 이해>는 그러한 점에서 참 좋은 책이었다. 무적의 논리가 사라진 현재의 시대에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서 북한 내에서는 어떠한 일이 있었고, 그간 북한과 우리의 관계는 어땠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북한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하나하나 심어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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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우리나라는 3면이 배다로 둘러샇여 있다. 그런데 이 3면이 모두 한 바다라고 나는 중학교 때 배웠던 것 같다. 솔직히 실망이었다. 한 면은 인도양, 한 면은 대서양, 한 면은 태평양과 닿아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나는 지울 수 없었다. 3면이 바다인데 그 삼면에 세계의 3바다와 닿아있으면 웬지 모를 조화로움 혹은 뭔가 정리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해와 남해 그리고 동해 바다가 대서양, 태평양 그리고 인도양과 연결 됐으면 좋겠다는 나의 발칙한 생각은 아마 이 지구가 멸망하는 날까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학교 때인가. 나는 동해와 서해에 각각 가본적 있다. 남해도 가본적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당시 목격했던 동해와 남해 그리고 서해의 모습은 분명히 달랐다. 태평양이라는 똑같은 바다에 속해 있으면서도 이 세 바다는 각각의 저마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해에서는 웬지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조그만 걸어도 땅이 푹 꺼지는 듯, 파도는 내 머리위로 몰아쳤고, 서해에서는 무슨 똥물 같은 황색 파도가 나를 덮쳤다. 남해는 이 둘의 중간쯤으로 봐도 좋지 않을까. 한 바다 안에 있지만 세 바다가 보여준 바다의 다양한 모습은 나로 하여금 모든 모습의 바다를 봤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그런데 대서양이란 바다도 있다니.

태평양과 대서양은 거대한 땅 두 개를 잇는 땅의 줄기로 인애 갈라져 있었다. 남미와 북미를 잇는 중미라는 굵고 단단하며 긴 땅줄기. 누군가가 거대한 두 대륙을 잇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것 같은 이 기나긴 땅줄기는 앞에서도 말했듯 거대한 바다 두 개를 가른다. 이것 또한 나의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대. 3개의 가지각색의 이미지를 품고있는 거대한 하나의 바다. 그 바다를 건너 거대한 땅덩어리를 한참 지나면, 거기에 또 거대한 바다가 하나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는 내가 세계 지도를 보지 않았다면 신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나의 상상력이 미치지 않으니 콜롬버스의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쿠바라는 자그마한 섬나라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또한 나는 상상해볼 수 없는 이상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쿠바는 가난하다. 경제적으로 후지다고 볼 수 있다. 쿠바는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다. 정치 체제도 후지다고 볼 수 있다. 정치 경제면에서 후진 이 나라는 극단적이다라고 표현해도 될만큼 평화로운 나라다. 정치와 경제간의 강력한 갈등의 알지 못할 견제에 의해 만들어지는 우리나라의 평화가 아니라, 그 나라는 가난해도 그리고 독재자에 의해 다스려져도 평화로운 나라라는 것이다. 단순히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차원을 넘어서, 쿠바라는 나라는 정말 여러모로 대한민국 사람이 상상이 불가능한 나라가 아닌가 싶다.

<코카-콜라 쿠바:>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나라에 대한 여행 에세이다. 하지만 평범한 여행 에세이와는 다르다. 대부분의 여행 에세이들은 자신이 여행을 하며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볼거리가 있는지를 독자에게 호소한다. 예쁜 풍경, 예쁜 조형물, 예쁜 음식들. 이국적인 것에 대해서 호소할 뿐, 그 나라의 정치 사회적인면 조명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여행 에세이는 그런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코카-콜라 쿠바는 조금 다르다. 여행 에세이 이면서 감시 정치에 대해서 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교묘하게 다룬다. 너무 재미있어서 쿠바의 역사를 배우며, 그것이 여행이라 착각이 들 정도다.

비록 여행 에세이 치고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 있을가 싶다. 그런데 재미있었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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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검찰이 정의를 세운다는 것은 그저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일까그들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아는 것일 뿐현실에서 정의로운 그들의 모습을 보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민주화 이전 경찰과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을 돕는 지팡이였고지켜주는 검 이었다민중에겐 날카로운 지팡이와 검의 끝이 향했을 뿐 그들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도둑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민주화가 관습화 된 악행을 멈추게 했을까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이들이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아보는 것이 이들이 얼마나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지표이지 않을까.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가 맡은 사건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눈에서 한참 벗어난 사건들이었다. “어의없다는 말조차 아까울 정도로 민주화 이전 경찰과 검찰이 조작했던 사건과 같은 냄새를 풍겼다과거엔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박 변과 박 기자가 맡았던 사건들은 그들에 대한 핑계도 찾을 수 없는 분명히 조작된 사건들이었다민주화 이전부터 내려온 관행문화이것은 약자의 인생에 대한 강자의 학살이었고농락 이었다엄중한 조사를 통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사람들의 모습은 책을 읽는 내내 찾아볼 수 없었다. ‘지연된 정의는 검찰과 경찰이 갖고 있는 최소한의 신뢰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는 책이다. “최소한수사는 제대로 할 것이다”, “이 시대에 취조하면서 폭행과 감금이 있겠나?”, “증거 조작이나 회유를 할 리가 있나”, “자료와 증거에 대해 꼼꼼하게 안 따졌겠는가?” 검찰과 경찰에 대한 신뢰를 바닥에서부터 의심해야 할 판이다두 무모한 기자와 변호사가 맡은 재심 사건들은 경찰과 검찰 그리고 재판부가 얼마나 구멍이 많은 수사와 재판을 진행했는지국민의 방어권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검찰과 경찰이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해왔던 증거 조작졸속 수사가 결코 우리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을 뒤로한 채 출세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음을 잊어서도 안 된다. ‘지연된 정의는 재심 사건을 통해 단순히 정의가 지연되었을 뿐만 아니라정의를 실현한다는 사람들이 얼마나 오작동을 하고 있는지 알리고 있는 책이다.

 

Ps. 재심사건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이 승소를 했는데도 누명을 씌운 사람들사건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처벌을 하지 않는다왜일까마치 재판관이 내가 너를 이렇게 봐주었으니 너도 나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마라?!”는 법조계의 공공연한 보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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