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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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근근이 혼자 먹고 살 만한 돈만 있는 월급쟁이가 될 거라 상상하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다. 그 때에는 공부를 하는 이유를 진리를 찾기 위함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리란 것이 무엇인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국어 공부를 할 때면, 그 과목안에서 진리란 무엇인지, 사회 공부를 할 때면, 그 안의 진리란 무엇인지, 과학 공부를 하면, 그 안의 진리란 무엇인지. 그래서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이전에, 내 앞에 있는 지식을 먼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단순하게 진리란 말을 국어사전에 있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중학교 때에는 철학이란 것을 직접적으로 배우면서 그것들을 진리를 제법 붙잡을 수 있게 됐다. 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의 말이 아닌,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윤리를 배우면서, 단순히 우리나라의 정치구조가 어떻다는 것을 외우는 게 아닌, 정치 철학의 문제를 배우면서부터다. 철학이 진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란 것을 알게 된 때는, 중학교 때였다.

 

서양철학사

 

사실 나는 철학 하면 서양철학밖에 알지 못한다.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보통 어떤 철학의 문제든 윤리 교과서에 나온 것 같은데, 내가 기억하고 또 현재에도 마주하고 있는 것들은 서양철학의 문제들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철학적 고민을 한 적은 많아도,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또 고민을 쌓은적은 없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 어떻게 철학의 문제와 닿아았고, 또 여기에서는 어떤 생각을 통해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고나 할까.

이번에 읽은 <틸리의 서양철학사>는 그런 점에서, 비록 형태는 교과서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 한권이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수없이 소크라테스부터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들이 한 명언에 대한 것만 알뿐, 그들이 삶에대해서 그리고 인간이 모여 사는 집단의 본질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깊이로 그리고 어느 정도 넓이로 고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왜곡을 일으킬 수박에 없는 사고와 직결된다. 특정한 발화를 한 사람들이 해당 발화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과정과 맥락을 알지 못하다면, 어떤 권위있는 철학자가 한 말이든, 무능한 한 개인에 의해 남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그것이다. 과연 악법도 법이다란 것의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공동체를 위해서, 공동체 전반의 신뢰를 위해서, 그리고 법의 안정성을 위해서 소크라테스가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했던 것을, 마치 재판관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르고 다른 말로 볼 수도 있을테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한 쪽이 공화주의 사상의 모토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독재를 합리화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틸리의 서양철학사>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 형식만 보면 교과서 같은 책이다. 800페이지의 분량만 보더라도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이 어렵지 않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근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 책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좋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봐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동양적인 철학이기보다, 서양적인 철학이다. 따라서 이 철학 책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골격이 어떠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뻗어져 왔는지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 사고의 근본 혹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적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에 있어서 참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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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이 부른다 - 해양과학자의 남극 해저 탐사기
박숭현 지음 / 동아시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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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는 때론 편향만을 강화시키며, 진정한 앎 추구에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기존에 갖고 있는 편향을 더욱 강하게 자극할 뿐, 입체적인 정보를 주지 못할 대 이 같은 현상은 일어난다.

남극에 대한 정보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고등학교 때 지구과학1에서 나온 남극을 제외하고는 나는 남극에 대해 잘 모른다. 여러 정보들을 적당히 섞어놓은 공부가 고등학교 과학 공부다. 어느 한 분야에 대한 집요한 탐구 대신, 학생들이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도움닫기를 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든 도구가 고등학교 지구과학1이다. 당시 남극에 대한 이미지는 남극에서 발견된 화석이나, 지구온난화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사용된 퇴적된 눈에 관한 이야기말고는 들은 일이 없었다. ! 물론 지구과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일반 대중들에게 남극은 그저 얼어붙은 대륙이다. 조용한.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역동성을 찾을 수 있는 생물은 대개 펭귄뿐이다. 남극의 펭귄 혹은 빙하 외에는 딱히 사람들이 남극에 대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남근은 드넓지만, 인간의 관심을 끌기에는 한없이 낯선 곳이다.

 

남극, 그 미스테리한 대륙

 

이 책 <남극이 부른다>를 읽으면서, 펭귄 혹은 빙하만 알고 있는 것이 반대로 내가 남극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 <남극이 부른다>의 저자 박승현 씨는 과학자다. 지질을 연구하는 사람이며, 남극 또한 탐구목적으로 갔다 온 것이다. 단순히 한번 갔다온 남극의 이모저모를 이 책에 실은 게 아니라, 수 십번 남극을 왕래하며, 남극에 대한 자신의 다체롭고 입체적인 이해를 이 책 한 권에 담고 있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기행문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면 다 알게 되는 곳을 저가가 방문한 것이기에, 뻔한 기행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저자가 향한 곳인 우리 지구에서 개발이 되지 않은 외계의 땅과 같은 남극이기에, 그 특별함은 더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남극이란 대륙에는 한 국가의 것이 아니다. 유일하게 사람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지 않은 곳이다. 그곳을 점령한들 실용적인 지배(?) 또한 아직은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일단 저자가 탐험을 한 곳 남극은, 우리가 모두 아는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갈 수 없는 곳이다. 누군가는 자신의 탐험기 혹은 여행기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특정 목적지에 어떻게 도착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분량을 할애할 수 없을 것이다. ? 자신은 가만히 있돼, 움직이는 것은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남극이란 곳에 가기 위한 여정은 좀 다른 것 같다. 크루즈 선도 아닌, 특수한 목적을 띠고 있는 배라는 곳에 오랫동안 갇혀(?) 지내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의 삶 자체가 여행이고 탐사다. 남극에 가기 위한 저자의 발걸음 하나하나 그리고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시간들이 모두 여행의 한 조각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남극이 부른다>의 백미는 저자가 남극에서 무엇을 탐험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앞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일반인들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은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빙하고 녹고 있다는 사실, 펭귄 무리의 일거수 일투족과 같은 것들이다. 그 외에는 북극과 다른 오로라와 같은 것들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곳에서 보여주는 남극의 모습들은 다양하다. 남극에 서식하는 다양한 조류의 모습과, 그 안에서는 어떠한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는지 알려준다. 또한, 어름으로 뒤덮인 땅 아래에는 어떠한 환경이 있는지, 저자는 책을 통해 보여준다. 남극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생태계 그리고 지질의 세계들을, 다체롭게 보여주면서, 남극이 단순히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은 폐쇄적인 공간이 아닌, 어떻게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일부분이란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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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 - 위기의 시대,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향한 새로운 시선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남효창 감수 / 더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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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터 볼레렌의 전작을 읽어 본 기억이 있다. 이전 책의 읽은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뭔가 의미심장한 제목의 책이고, 책의 표지 또한 아름다워서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저자의 전작인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는 보이지 않는 자연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땅속의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그 미생물을 보지도 못할 하늘을 나는 새까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존재들간에는 어떠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는지, 또 이런 네트워크 안에서는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결과론적으로 공생을 하는 환경이 만들어 지는지. 알려준 책이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였다.

이번 책 <인간과 자연의 비밀 연대>는 독특한 책이다. 그런데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책의 제목을 한번 보도록 하자. 책의 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는 아직 자연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문장에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잡을 단어는 아마 아직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연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공으로 만든 자연을 통해, 자연을 사유화의 대상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이 같은 현 상황 때문이다. 인공으로 만든 자연이 아닌, 과연 온전하 자연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을지. ‘라는 존재는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 이 책 <인간과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를 통해 알고 싶었다.

 

인간과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

 

인간과 숲의 밀접한 관계는 언어에서 또 메아리친다. 첫 번째 연관성은 우리 손에 들린 책에서 나타난다. 여기서 나는 책이라는 제품이 아니라, 독일어로 책을 의미하는 Buch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다. 이 단어의 스펠링에서 어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그림 형제가 퍼뜩 떠오르기 때문이다.” - 163pp

 

이 책 <인간과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는 솔직히 읽는 내내 약간 과장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책이다. 저자의 이전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것은, 환상적인 네트워크의 모양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 인식하지 못하는곳, 보지 못하는 곳,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은밀히 이뤄지는 상호작용이 어떻게, ‘라는 숲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풍성하게 만드는지 보여준 책 이었다. 하지만 이 책 <인간과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는 솔직히 이전 책만큼의 강력한 상호작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 현재 인간과 자연이 어떠한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 과거의 이야기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 일상에서 자연과 관련된 것들이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책은 알려준다. 또한 불과 같이, 인간이 불을 통해서 자연과 상호작용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는지 이 책은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현재의 이야기이기보다, 과거의 이야기에 가깝다. 과거에는 우리 인간이 자연과 얼마나 진득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는 어떻나 형태로 우리의 일상에 남아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과거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고 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을 뻔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인간이 자연에서 의식주를 구한 것처럼, 원시시대에 자연속에서 인간의 삶만을 조명했다고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야기한다면,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지만, 그런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 한 조각이었다. <자연의 비밀 네트워크>에서, 그 수많은 동물들이 자연과 상호작용 하고, 자연을 더욱 번영하게 만든 것처럼, 우리 인간 또한 그런 기여를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재미있는 지점은 바로 이것이다. 과거 우리 인류는 단순히 자연을 경외의 대상으로만, 혹은 지금처럼 지배의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그러한 방향으로만 가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은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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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까마귀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3
박지안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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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까마귀>. 참 재미있는 책이다. 책의 도입부를 읽을 때는 내 고등학교 때를 회상케 했다. 만약 야자시간에 이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면, 지나가던 감독관 선생님이 나를 과연 가만히 놔두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성BJ가 나오고 VR게임을 하는 게 나온다. 분명히 선생님은 이 자식이 저급한 게임소설을 읽네!”라고 하면서 머리를 툭 때리며 벌을 세웠을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당시에 친구들이 읽었던 책들은 솔직히 저급하긴 했다. 내가 읽었던 것은 박성호 작가의 <아이리스>라는 작품(?)이었다. 박영웅이라는 아이가 판타지세계로 덜어져 아이언 이그리드인가 하는 마법사에게 마법을 물려받고, 사기캐릭터가 돼, 몰락한 제국을 재건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 외에 내가 제대로 읽은 소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재미있게 <아이리스>를 읽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게임소설이나 판타지소설들은 선생님이 이야기한데로 실제 저급하긴 했다. 그리고 그 저급성이란, 문학적 기술이 뒷받침되기는커녕, 그냥 사람들의 본능만 자극하는 작품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 만화에서 주로 나오는 벗은 여성들이 나오는 모습이나, 끊임없이 강해지는 주인공과 같이 말이다(물론, 일본 만하라고 해서 다 한심한 축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코노스바(물론 이 만화도 재미있긴 하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일테고, 라이트노벨과 같은 것에 선생님들이 이야기 한 저급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게 많을 것이다). 별 테크닉 없이 원초적인 방향으로 가는 그런 서사를 가리켜서 선생님들은 저급하다라 표현한 것일 테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 <하얀 까마귀>는 그런 저급한 소설들과 견줄게 되지 못한다. 전체적인 짜임새도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그리고 세계관 또한 나름 적절한 것 같기는 하다. 특별히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메시지는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워낙 스토리가 탄탄해서인지, 읽고 난 후에 메시지가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얀 까마귀

 

어떻게 이 작품을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다른 작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시리즈 중에 가장 오락적으로는 재미있었던 작품이 <하얀 까마귀>였다. 세계관이 특별할 것은 없었다. 주인공이 가상 공간으로 덜어져,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특정 사건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 어쩌면 이 설정은 VR이 실제 존재하고, 뇌에 대한 부분적 자극이 가능해진 오늘날에는 가까이 온 미래 같지만, 기본적인 스토리의 구조는 과거부터 타임머신을 탄다거나, 영화 <인셉션>처럼 꿈을 꾼다거나, 아니면 판타지적 요소로서 악마천사가 나타나 주인공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자주 나온 스토리였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VR이나 BJ와 같은 것들을 이용하지 않았다. 저자가 게임에 참가하면서 채팅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도중에 PD가 개입하는 모습들은, 글쓴이가 선택한 형식을 잘 짜임새 있게 썼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어쩌면 스토리와 크게 관계없을 이 같은 채팅이나 PD의 개입과 같은 설정들을, 현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실감나게 분위기를 조성했다(난 특히, “누가 죽었다는 거야? 설명 좀 해줘이거 진짜 재밌다. 나 팝콘 들고 왔음과 같은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현웃이 터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강점은 메인 스토리의 짜임새라고 나는 생각한다. 준오와 아영. 결과론적으로 보면, 대개 우리는 둘 사이의 갈등을 여고괴담과 같이, 여성들간 갈등하는 스토리를 통해 많이 봤을 것이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친구간 우정이 금이 가는 일도 있을 것이고, 한 쪽이 다른 한쪽에 경쟁심 혹은 질투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 같은 경우들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을 소재로 했어도 정말 뻔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글의 배치를 통해서 한꺼번에 해당 문제를 보여주지 않았다. 글의 앞 부분에서는 왕따였던 준오가 학교에서 겪는 어떻게보면 미스테리하면서도 호러같은 일들을 보여주었고, 뒷부분에 가서 준오와 아영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는지 보여주었다.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 이 부분에서도 솔직히 앞에서 준오가 괴물이 된 선생이나 친구들에게 쫓기는 모습은 뒤에 올 내용과 인과관계를 단단하게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부분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호기심과 김장감이 생기도록 만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하얀까마귀의 뜻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까마귀는 원래 아름다운 흰 깃털을 가진 아폴론 신의 심부룸꾼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까마귀는 심부름 도중 한눈을 팔다 늦어버렸고, 이유를 추궁하는 아폴론에게 그의 아내가 간통을 했다는 거짓말을 해버려. 까마귀의 말만 믿고 자신의 아내를 죽인 신은 나중에 까마귀를 까맣게 태워 죽였지. 그 뒤로 모든 까마귀의 깃털이 검은색으로 변했다는 거야.” 여기에서 하얀 까마귀는 준오를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아폴론신은 누구일까. 아영일까? 아니면 선생님? 아니면 주노를 보고있는 수많은 사람들?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얀 까마귀>라는 책의 제목은 어찌됐든 양치기 소녀보다는 훨씬 센스있는 제목처럼 들린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이 글은 참고로 열긴 결말이다. 결말의 바로 전 장에서는 주노가 결정했다는 장면이 나오지만, 결말에서는 잊어버렸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락성 높은 소설이기 때문에, 분명 임펙트는 있는 것 같긴 한데... 뭐랄까. <독립의 오단계>처럼 (무리수를 둬서라도) 결말을 내는 게 더 오락의 맛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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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1
김혜진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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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했다. 그리고 산뜻했다. 물론 나는 <깃털>을 읽으면서도 앞에 읽었던 두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독립의 오단계>와 비교하며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메시지의 담백함과 산뜻함으로 봤을 때, 이 소석 <깃털>만한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깃털 X TRS가 돌보고 있다 X 백화

 

이 세 작품에는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다. ‘깃털에는 왜 그 사나이는 세영을 불렀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긴장감이 소설 전반에 흐르고 마지막에 해소됐다. 또한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던 긴장감이 해소되고, 자신의 로봇 새를 통해 장래를 할 때 소설이 주었던 메시지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조에를 단순히 장례를 이용할 때 쓰는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소설의 세계관과 잘 버무려서 적절히 이용했던 것 같다. 단백하게 산뜻했다. 책 전면에 배치되는 글이어서 그런지, 뭐 하나 딱히 군더더기를 짚을 만한 게 없었다. 솔직히 다소 아쉬운게 있었더면, 조류독감 때문에 전세계가 초토화된 게 다소 아이러니 했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소설 내용적으로는 비극적이었으나, 참으로 귀여운 설정이고 실용적인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TRS가 돌보고 있다에는 “TRS가 정말 자신이 돌보고 있는 할머니를 죽일 것인지”, “성한은 정말 자신의 엄마를 죽인 TRS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인지”, “TRS의 운명은?”이란 긴장감이 단계적으로 흘렀다. 솔직히 만약에 TRS가 자신이 요양하고 있던 할머니를 죽은 뒤에, 그것은 엄청나게 진보적인 행동으로 미화했다면, 난 솔직히 이 전에 읽었던 <독립의 오단계>와 같은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TRS가 돌보고 있다의 서사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았고, 메시지에만 충실하지도 않았다. 살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TRS가 성한에게 자유를 준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난 일을 벌인 것에 대한 적절한 수습을 스토리로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백화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던 작품이긴 하다. 아마 이는 해인이 진주에게서 아가미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도 혹평할 만큼 그렇게 나쁜 작품은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다 스펙타클한 점이 있었고, 섬세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고나 할까. 단순히 세계관과 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설정이 신박했던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에 해인이 죽는 것은 다소 아쉽긴 했다. 뭔가 진주가 그녀를 도와줄만한 게 없었을까?(아마 이루카에게 맡겼다면 어떤 말도 안되는 설정을 붙여서라도 살렸을지 싶긴 하다)

 

한국 SF?

 

아마 내가 처음으로 접한 SF작품은 <스타쉽 트루피스>일 것이다. 아니다 <쥬라기 공룡>일지 모르겠다. 아닌가. <로보캅>이 먼저라고 해야 하나. <로보캅>은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접한 SF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뭔가.. SF에 한국과 관련된 게 있는 작품을 나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왠지 한국적SF 아니 한국SF를 보고 있으니 감흥이 상당히 새롭다. 단순히 외국SF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한국 배경이 아닌, 우리의 정서를 관통하는 세계관과 이야기로 만들어진 SF가 존재한다는 게, 뭐랄까. 새롭고 신기하다라는 말 이상으로 나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찌보면 앞에서 많이 비판하긴 했어도, 우리나라에서만 유난스러운 페미니즘의 모습을 보여준데 있어서 <독립의 오단계> 또한 참으로 한국적SF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깃털>을 재밌게 읽어서 그런지 다음으로 읽을 책 <하얀 까마귀> 또한 정말 기대된다.

 

Ps. 책의 표지와 관련해 한 가지 아쉬운점이 있다. 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작품 그 자체로 홍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의 뒤편에는 민규동 감독, MBC SF 앤솔러지 드라마 <간호중> 원작소설수록이라는 홍보 문구가 있는데, 나는 민규동의 권위가 아닌 작가가 만든 세계 그 자체의 권위로 작가가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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