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깃털 ㅣ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1
김혜진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평점 :
담백했다. 그리고 산뜻했다. 물론 나는 <깃털>을 읽으면서도 앞에 읽었던 두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과 <독립의 오단계>와 비교하며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메시지의 담백함과 산뜻함으로 봤을 때, 이 소석 <깃털>만한게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깃털 X TRS가 돌보고 있다 X 백화
이 세 작품에는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다. ‘깃털’에는 “왜 그 사나이는 세영을 불렀을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긴장감이 소설 전반에 흐르고 마지막에 해소됐다. 또한 소설 전반에 흐르고 있던 긴장감이 해소되고, 자신의 로봇 새를 통해 장래를 할 때 소설이 주었던 메시지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조에를 단순히 장례를 이용할 때 쓰는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고. 마지막 순간에 소설의 세계관과 잘 버무려서 적절히 이용했던 것 같다. 단백하게 산뜻했다. 책 전면에 배치되는 글이어서 그런지, 뭐 하나 딱히 군더더기를 짚을 만한 게 없었다. 솔직히 다소 아쉬운게 있었더면, 조류독감 때문에 전세계가 초토화된 게 다소 아이러니 했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소설 내용적으로는 비극적이었으나, 참으로 귀여운 설정이고 실용적인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TRS가 돌보고 있다’에는 “TRS가 정말 자신이 돌보고 있는 할머니를 죽일 것인지”, “성한은 정말 자신의 엄마를 죽인 TRS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인지”, “TRS의 운명은?”이란 긴장감이 단계적으로 흘렀다. 솔직히 만약에 TRS가 자신이 요양하고 있던 할머니를 죽은 뒤에, 그것은 엄청나게 진보적인 행동으로 미화했다면, 난 솔직히 이 전에 읽었던 <독립의 오단계>와 같은 평가를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TRS가 돌보고 있다’의 서사는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았고, 메시지에만 충실하지도 않았다. 살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TRS가 성한에게 자유를 준 것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엄청난 일을 벌인 것에 대한 적절한 수습을 스토리로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백화’는 다른 두 작품에 비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던 작품이긴 하다. 아마 이는 해인이 진주에게서 아가미가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도 혹평할 만큼 그렇게 나쁜 작품은 아니었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다 스펙타클한 점이 있었고, 섬세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고나 할까. 단순히 세계관과 기술의 변화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설정이 신박했던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에 해인이 죽는 것은 다소 아쉽긴 했다. 뭔가 진주가 그녀를 도와줄만한 게 없었을까?(아마 이루카에게 맡겼다면 어떤 말도 안되는 설정을 붙여서라도 살렸을지 싶긴 하다)
한국 SF?
아마 내가 처음으로 접한 SF작품은 <스타쉽 트루피스>일 것이다. 아니다 <쥬라기 공룡>일지 모르겠다. 아닌가. <로보캅>이 먼저라고 해야 하나. <로보캅>은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 접한 SF가 아니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뭔가.. SF에 한국과 관련된 게 있는 작품을 나는 거의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왠지 한국적SF 아니 한국SF를 보고 있으니 감흥이 상당히 새롭다. 단순히 외국SF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한국 배경이 아닌, 우리의 정서를 관통하는 세계관과 이야기로 만들어진 SF가 존재한다는 게, 뭐랄까. 새롭고 신기하다라는 말 이상으로 나는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찌보면 앞에서 많이 비판하긴 했어도, 우리나라에서만 유난스러운 페미니즘의 모습을 보여준데 있어서 <독립의 오단계> 또한 참으로 한국적SF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깃털>을 재밌게 읽어서 그런지 다음으로 읽을 책 <하얀 까마귀> 또한 정말 기대된다.
Ps. 책의 표지와 관련해 한 가지 아쉬운점이 있다. 나는 작가들의 작품들이 작품 그 자체로 홍보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의 뒤편에는 ‘민규동 감독, MBC SF 앤솔러지 드라마 <간호중> 원작소설수록’이라는 홍보 문구가 있는데, 나는 민규동의 권위가 아닌 작가가 만든 세계 그 자체의 권위로 작가가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