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리 서양철학사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니체와 러셀까지
프랭크 틸리 지음, 김기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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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근근이 혼자 먹고 살 만한 돈만 있는 월급쟁이가 될 거라 상상하지 못한 시절의 이야기다. 그 때에는 공부를 하는 이유를 진리를 찾기 위함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리란 것이 무엇인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국어 공부를 할 때면, 그 과목안에서 진리란 무엇인지, 사회 공부를 할 때면, 그 안의 진리란 무엇인지, 과학 공부를 하면, 그 안의 진리란 무엇인지. 그래서 어지러웠던 적이 있다.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이전에, 내 앞에 있는 지식을 먼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는 단순하게 진리란 말을 국어사전에 있는 식으로 생각했다면, 중학교 때에는 철학이란 것을 직접적으로 배우면서 그것들을 진리를 제법 붙잡을 수 있게 됐다. 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의 말이 아닌,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윤리를 배우면서, 단순히 우리나라의 정치구조가 어떻다는 것을 외우는 게 아닌, 정치 철학의 문제를 배우면서부터다. 철학이 진리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란 것을 알게 된 때는, 중학교 때였다.

 

서양철학사

 

사실 나는 철학 하면 서양철학밖에 알지 못한다.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해본적이 없었다. 보통 어떤 철학의 문제든 윤리 교과서에 나온 것 같은데, 내가 기억하고 또 현재에도 마주하고 있는 것들은 서양철학의 문제들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철학적 고민을 한 적은 많아도,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또 고민을 쌓은적은 없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 어떻게 철학의 문제와 닿아았고, 또 여기에서는 어떤 생각을 통해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인지 몰랐다고나 할까.

이번에 읽은 <틸리의 서양철학사>는 그런 점에서, 비록 형태는 교과서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 한권이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우리는 수없이 소크라테스부터 니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들이 한 명언에 대한 것만 알뿐, 그들이 삶에대해서 그리고 인간이 모여 사는 집단의 본질에 대해서 어느 정도 깊이로 그리고 어느 정도 넓이로 고민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왜곡을 일으킬 수박에 없는 사고와 직결된다. 특정한 발화를 한 사람들이 해당 발화를 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과정과 맥락을 알지 못하다면, 어떤 권위있는 철학자가 한 말이든, 무능한 한 개인에 의해 남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그것이다. 과연 악법도 법이다란 것의 왜곡이 얼마나 심한지, 나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하고 나서야 알게 됐다. 공동체를 위해서, 공동체 전반의 신뢰를 위해서, 그리고 법의 안정성을 위해서 소크라테스가 도망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죽음을 선택했던 것을, 마치 재판관이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다르고 다른 말로 볼 수도 있을테지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한 쪽이 공화주의 사상의 모토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독재를 합리화하고,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틸리의 서양철학사>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던 것처럼 그 형식만 보면 교과서 같은 책이다. 800페이지의 분량만 보더라도 결코 만만한 책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 너무 두려워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책이 어렵지 않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근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 책은 이야기 해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좋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봐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동양적인 철학이기보다, 서양적인 철학이다. 따라서 이 철학 책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골격이 어떠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뻗어져 왔는지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려운 책이지만, 우리 사고의 근본 혹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적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에 있어서 참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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