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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까마귀 ㅣ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3
박지안 지음 / 허블 / 2020년 7월
평점 :
<하얀 까마귀>. 참 재미있는 책이다. 책의 도입부를 읽을 때는 내 고등학교 때를 회상케 했다. 만약 야자시간에 이 같은 책을 읽고 있었다면, 지나가던 감독관 선생님이 나를 과연 가만히 놔두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여성BJ가 나오고 VR게임을 하는 게 나온다. 분명히 선생님은 “이 자식이 저급한 게임소설을 읽네!”라고 하면서 머리를 툭 때리며 벌을 세웠을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당시에 친구들이 읽었던 책들은 솔직히 저급하긴 했다. 내가 읽었던 것은 박성호 작가의 <아이리스>라는 작품(?)이었다. 박영웅이라는 아이가 판타지세계로 덜어져 아이언 이그리드인가 하는 마법사에게 마법을 물려받고, 사기캐릭터가 돼, 몰락한 제국을 재건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설 외에 내가 제대로 읽은 소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재미있게 <아이리스>를 읽긴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 게임소설이나 판타지소설들은 선생님이 이야기한데로 실제 저급하긴 했다. 그리고 그 저급성이란, 문학적 기술이 뒷받침되기는커녕, 그냥 사람들의 본능만 자극하는 작품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 만화에서 주로 나오는 벗은 여성들이 나오는 모습이나, 끊임없이 강해지는 주인공과 같이 말이다(물론, 일본 만하라고 해서 다 한심한 축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코노스바(물론 이 만화도 재미있긴 하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인 것일테고, 라이트노벨과 같은 것에 선생님들이 이야기 한 저급한 것으로 분류될 수 있는게 많을 것이다). 별 테크닉 없이 원초적인 방향으로 가는 그런 서사를 가리켜서 선생님들은 “저급하다”라 표현한 것일 테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책 <하얀 까마귀>는 그런 저급한 소설들과 견줄게 되지 못한다. 전체적인 짜임새도 긴장감이 넘쳐 흐른다. 그리고 세계관 또한 나름 적절한 것 같기는 하다. 특별히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메시지는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워낙 스토리가 탄탄해서인지, 읽고 난 후에 “메시지가 과연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얀 까마귀
어떻게 이 작품을 설명해야 할까. 솔직히 다른 작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SF가 우릴 지켜줄 거야’ 시리즈 중에 가장 오락적으로는 재미있었던 작품이 <하얀 까마귀>였다. 세계관이 특별할 것은 없었다. 주인공이 가상 공간으로 덜어져,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특정 사건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 어쩌면 이 설정은 VR이 실제 존재하고, 뇌에 대한 부분적 자극이 가능해진 오늘날에는 가까이 온 미래 같지만, 기본적인 스토리의 구조는 과거부터 타임머신을 탄다거나, 영화 <인셉션>처럼 꿈을 꾼다거나, 아니면 판타지적 요소로서 악마‧천사가 나타나 주인공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자주 나온 스토리였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VR이나 BJ와 같은 것들을 이용하지 않았다. 저자가 게임에 참가하면서 ‘채팅’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도중에 PD가 개입하는 모습들은, 글쓴이가 선택한 형식을 잘 짜임새 있게 썼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어쩌면 스토리와 크게 관계없을 이 같은 채팅이나 PD의 개입과 같은 설정들을, 현재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여 실감나게 분위기를 조성했다(난 특히, “누가 죽었다는 거야? 설명 좀 해줘”나 “이거 진짜 재밌다. 나 팝콘 들고 왔음”과 같은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현웃’이 터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강점은 메인 스토리의 짜임새라고 나는 생각한다. 준오와 아영. 결과론적으로 보면, 대개 우리는 둘 사이의 갈등을 ‘여고괴담’과 같이, 여성들간 갈등하는 스토리를 통해 많이 봤을 것이다. 한 남자를 두고 두 친구간 우정이 금이 가는 일도 있을 것이고, 한 쪽이 다른 한쪽에 경쟁심 혹은 질투심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 같은 경우들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을 소재로 했어도 정말 뻔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글의 배치를 통해서 한꺼번에 해당 문제를 보여주지 않았다. 글의 앞 부분에서는 왕따였던 준오가 학교에서 겪는 어떻게보면 미스테리하면서도 호러같은 일들을 보여주었고, 뒷부분에 가서 준오와 아영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는지 보여주었다. 다시 한 번 돌이켜보면, 이 부분에서도 솔직히 앞에서 준오가 괴물이 된 선생이나 친구들에게 쫓기는 모습은 뒤에 올 내용과 인과관계를 단단하게 맺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해당 부분은 글을 읽는 사람에게 호기심과 김장감이 생기도록 만든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하얀까마귀’의 뜻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쓰여 있다. “까마귀는 원래 아름다운 흰 깃털을 가진 아폴론 신의 심부룸꾼이었지. 그런데 어느 날 까마귀는 심부름 도중 한눈을 팔다 늦어버렸고, 이유를 추궁하는 아폴론에게 그의 아내가 간통을 했다는 거짓말을 해버려. 까마귀의 말만 믿고 자신의 아내를 죽인 신은 나중에 까마귀를 까맣게 태워 죽였지. 그 뒤로 모든 까마귀의 깃털이 검은색으로 변했다는 거야.” 여기에서 하얀 까마귀는 준오를 뜻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아폴론신은 누구일까. 아영일까? 아니면 선생님? 아니면 주노를 보고있는 수많은 사람들? 글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하얀 까마귀>라는 책의 제목은 어찌됐든 ‘양치기 소녀’보다는 훨씬 센스있는 제목처럼 들린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이 글은 참고로 열긴 결말이다. 결말의 바로 전 장에서는 주노가 결정했다는 장면이 나오지만, 결말에서는 “잊어버렸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오락성 높은 소설이기 때문에, 분명 임펙트는 있는 것 같긴 한데... 뭐랄까. <독립의 오단계>처럼 (무리수를 둬서라도) 결말을 내는 게 더 오락의 맛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