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정말 이상하고 신기한 하루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131
크리스틴 나우만빌맹 지음, 그레구아르 마비르 그림, 이세진 옮김 / 길벗어린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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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명이 참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표지에 그려진 선생님 얼굴이 왠지 내 얼굴 같아서(…....) 더 정이 간다. 방금까지 반칙을 일삼는 아들놈과 젠가 한판 뜨느라 진이 빠진 참이다. 왜 우리 집 어린 것들은 날 따라 거실로, 방으로 유영하며 날 혼란스럽게 하는가.

그나저나 왜 애들은 벌레를 좋아할까? 아니, 일부 아이들이라고 해야겠지.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벌레를 좋아한 적이 없다. 그건 내가 여자여서는 아닐 거다. 같은 여자 친구라도 곤충이나 벌레를 귀여워하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귀여워할 것 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소리를 지르며 질색하지 않을 정도인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좀 흔한, 소리를 지르고 부들부들 떨기도 하는 그런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혹시라도 그런 모습을 닮을까 봐 몇 년간은 벌레가 벌레지 뭐, 하는 초연한 태도를 연기했다. 연기하는 동안 조금이라도 변했냐면 그건 아니다. 난 참 일관된 고집쟁이다. 어쨌든 이런 나라서 책을 읽기 전에도, 읽고 난 후에도 페트세크 선생님의 고충에 깊이 공감했다. 불쌍한 선생님, 하필 거미라니!

이제 열한 살 (곧 아홉 살이 될 )이 되는 남자아이에겐 이 책이 좀 시시했을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내가 읽을 생각이었다. 애가 두 살만 어렸어도 같이 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즐거웠을 거란 아쉬움은 있다. 처음 출판사 글을 봤을 때는 신기한 매직 스쿨버스 같은 책이려나 했는데 그런 건 전혀 아니고, 좀 더 어린 아이들과 목이 쉬도록 깔깔거리며 읽기 좋은 그런 책이다. 여담이지만, 줄곧 쿨한 척, 시시한 척하던 내 꼬맹이는 "자, 숨은 거미 찾기!" 했더니 눈을 번쩍이며 책에 몰두했다. 네가 다 큰 척해 봐야 내 손바닥 안이다, 요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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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러시 설산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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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가시노 게이고

2. 추리소설

이 키워드의 조합이면 다 끝난 얘기 아닌가! 믿고 읽는 추리물 작가가 몇 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중 한 명이다. 물론 이분은 추리물에 국한되지 않는 엄청난 이야기꾼인지라,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작품 이름 몇 개 들어보면 어, 그거?라고 할 법 하다.​


화이트 러시 - 낯선 제목이라 으레 신작일 거라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알고 보니 이전에 '질풍론도'라는 제목으로 타 출판사에서 출간됐었지만 그다지 홍보가 되지 않았고, 이번에 소미미디어에서 제목을 바꿔 재출간했다고 한다. 같은 제목이어도 기억할까 말까인 판인데 제목도, 표지 디자인도 완전히 바뀌었으니 이 내가 알아봤을 리가 있나. 읽었던 것 같다고 알아챈 것만도 용하다.


​그럼에도 기뻤던 것은 결말을 알고 읽는데도 여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화이트 파우더를 흩뿌리며 빠른 속도로 설산을 누비는 스노보더처럼 이야기는 제법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만한 속도로 읽어나갔는지 모른다. 원래도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은 아니지만, 이야기가 재미있는 책일 경우에는 특히나 부스터가 달린 것 마냥 읽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빨리 결말을 알고 싶은 거다. 누군가는 결말을 뻔히 다 아는데 왜 자꾸 봤던 걸 또 보냐고 묻지만, 원래 맛있는 음식부터 먹는 게 내 스타일인 걸, 결말을 알고 싶어 내달리느라 놓친 작은 조각들을 반복해 읽으면서 비로소 차분히 수집하는 게 내 독서 스타일인 걸 어쩌리. 이 책 <화이트 러시>는 기꺼이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픈 책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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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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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선하다는 사람도 있고, 최초의 인간의 원죄를 이어받아 악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기에 둘 다라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흔히 말하듯, 빛과 그림자는 일심동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다 사실은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책이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단 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 혹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것 하나 차단했을 뿐인데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성을 바라보며 인간의 본성이란 이토록 얇은 막 뒤에 숨은 것이었나, 속이 쓰렸던 기억이 있다.


<태풍의 계절>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또 그런 유의 책을 읽게 되는 걸까 살짝 염려되었다. "악의 극단성",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 "어떤 리얼리즘은 악몽보다 깊은 곳에 있다" 등등- 출판사의 홍보 문구들이 그런 기분을 갖게 했다. 그렇다고 외면하거나 회피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기에도 살 날이 짧다고도 말한다. 예전에 일본 지인에게 퓰리처상 사진展을 보러 가자고 권했을 때 '추한 것은 되도록 보고 싶지 않다'라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의다. 빛과 그림자는, 일심동체니까.


어쨌든 그런 염려를 가슴 한편에 담고 읽어갔는데 의외로 내가 받은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마치 그것만이 인생인 양 살아왔던 데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이 어쩌면 오늘날 이 한국 땅에서도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여 안타깝고도 선득했다. 나 자신은 아직까지 살 만 하지만 내 아이가 사회에 나갈 즈음엔 책 속의, 오늘날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인 멕시코 지역의 일상과 같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라면 분명 그리되고야 말겠구나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이리도 목청껏 외치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 하고 마치 길이 하나뿐인 것 마냥 그리로만 가는 이 세대를 어쩌면 좋을지, 그저 쩔쩔맬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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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식당 -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인칭 6
싱아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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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지만 찬란한 날들,
나누며 채워지는 날들,
저물며 차오르는 날들-

수많은 날들을 살아가다 결국은
웃고 마는 나는야 우주의 먼지.

뚱한 얼굴의 냥사장과,
늘 투닥거리는 찡찡이와 레오.
이 조그만 녀석들이 주는 위로가 이토록 크다.

괜찮아, 잘 살고 있어.
틀린 길을 가는 게 아니야.
그저 내 길을 가는 거지.

어서오세요, 이곳은 냥식당,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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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통통 음악 시간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15
김리라 지음, 신빛 사진 / 한솔수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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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 B612, 장미, 그렇죠, 어린 왕자입니다. 상자별 시리즈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생텍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떠올랐어요.

지구가 아닌 작은 별, 상자별 531. 네모들의 학교별이라고 합니다. 네모들? 아하, 네모난 골판지 상자들이군요! 장미라고 다 같은 장미가 아니듯, 네모들도 각기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도 특징도 다르답니다. 공통점은, 어쨌든 귀엽다는 것?!

이 책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그려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들’이 삽화로 쓰였다는 거에요. 골판지로 만들어진 네모들과 가구들, 종이컵 소리방과 조그마한 미니어처들- 병뚜껑으로 만든 드럼도 무척 인상깊었어요. 어쩜 이리 조그마한 것들을 만들어냈을까요? 금손이니 망손이니 하지만 제 손은 고양이 손도 못 되는 수준이라 작가님의 손재주가 부러울 따름입니다.

어느날의 음악 시간, 네모들은 시들어가는 꽃을 싱싱하게 자라게 할 수 있는 소리를 찾아보기로 하는데요, 꽃에 대해 네모들끼리 토의를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른이 개입하지 않아도 스스로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어요. 대부분의 경우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이들 스스로 얼마든지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어른의 조급함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기 일쑤잖아요. 저도 그런 성질 급한 어른이고요. 지난 뒤에 그러지 말 걸, 후회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 저는 화를 내고, 아이가 미처 생각해보기도 전에 답을 말해 버리곤 합니다. 여유가 없는 건 오히려 나 자신인데 자꾸만 아이에게 시간 없다, 바쁘다, 서둘러라 합니다. 반성, 또 반성!

네모들이 어떤 방법으로 꽃을 활짝 피우는 일에 성공했는지는 스포일러가 될 테니 비밀이지만, 힌트를 살짝 드릴게요. 저는 피아노 독주회도 좋아하지만, 여러 대의 피아노가 함께 연주하는 소리 듣기를 훨씬 좋아한답니다. 오케스트라는 말할 것도 없고요! 제각기 다른 음색과 성격을 가진 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질 때의 감동은 질리지 않아요. 네모들도, 그렇게 저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사실만 밝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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