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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세계 - 안티-스트레스 컬러링북 ㅣ 조해너 배스포드 컬러링북
조해너 배스포드 지음 / 클 / 2018년 10월
평점 :
이번이 무려 일곱 번째 컬러링 북이라는데, 나는 '비밀의 정원'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기억하기로 당시 '힐링 취미'라는 타이틀로 굉장한 열풍을 일으켰었는데, 그 분위기에 편승한 동생이 책을 샀다가 꽃잎 하나 건드리지 않은 채 나에게 고스란히 넘겼다는 사실은 비밀 아닌 비밀.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는데, 나 또한 한 페이지를 다 칠하지 못하고 그대로 봉인해버렸다. 원래 반복 작업에 취약하다. 취약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반복되는 작업은 나를 분노하게 한다. 그러니 애석하게도 '비밀의 정원'은 나에게만큼은 힐링이 아니라 킬링이었다. 그런 주제에 왜 또 같은 작가의 컬러링북을 선택했느냐 묻는다면, 과거를 금방 잊어버리는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이어서,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 컬러링 북은 아주 "다르다". 나처럼 '비밀의 정원'에 크게 데어 컬러링 북은 무서운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다.
250×250mm의 시원시원한 크기의 판형은 그대로다. 덕분에 노안이 와버린 내 눈에도 스케치가 아주 잘 보인다. 색연필 채색에 가장 적합한 종이라서 물감이나 펜, 마카를 사용하는 건 좀 어려울 수 있다. 작가 본인이 색연필을 최고의 도구로 생각하는 모양이니 이건 어쩔 수 없다. 뒷면을 포기한다면 마카 채색도 문제 될 건 없겠지만, 그러면 뒷장의 도안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마카를 꼭 사용해야겠거든 책의 가장 뒤쪽에 있는 '채색 테스트 페이지'에 먼저 시도를 해볼 것. 길게 펼쳐지는 종이를 마카처럼 색이 선명한 재료로 가득 채워 벽에 붙여두면 분명 멋지긴 할 테다.
책이 깔끔하게 180도로 펼쳐지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당연히 이래야 하는 게 아닐까 싶지만 여전히 그렇게 펼치다 중간이 쪼개지는 책이 있는 걸 보면 아직 당연할 정도는 아닌 모양이니, 이건 역시 이 컬러링 북의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컬러링 북도 역시 책은 책이니까- 어떤 이유로든 손상되면 가슴이 쓰라리다.
나를 분노케 하는 만다라 계열의 도안이 전혀 없다고는 못 하겠다. 하지만 그 페이지들을 대충 눈을 감고 넘기면 굉장히 멋진- 이건 꼭 칠해 보고 싶다고 생각되는 도안이 글자 그대로 '쏟아진다'. 작가가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작품 활동을 한다는 얘길 읽고나서 보니 도안 하나하나에 느껴지는 감성이 사뭇 다르다.
꽃으로 둘러싸인 집, 낡은 나무 상자 가득 담긴 색색의 꽃다발, 식집사를 꿈꾸게 만드는 온갖 화분이 올려진 선반, 웨딩 스튜디오 앞에서 볼 법한 꽃으로 장식한 클래식카, 남자아이들마저 끌어당길 수 있을 것 같은 풍뎅이, 해골 도안들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실제로 아이에게 너도 하나 칠해 보라고 했더니 대번에 '해골과 꽃' 도안을 골랐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이 연상되는 도안도 있고, 엄마가 키우시는 꽃 화분이 떠오르는 도안도 있다. 온 가족이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도안을 하나씩 골라 채색하다 보면 한 권을 뚝딱 완성시킬 수도 있을 법 하다. 그 모든 도안의 중심에 꽃이 있다. 그야말로 "꽃의 세계"다.
해가 바뀐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느새 3월의 마지막 날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벚꽃이 절정이고, 개나리, 조팝꽃, 매화, 목련, 봄까치꽃, 쇠별꽃, 민들레 등을 비롯해 온갖 종류의 꽃과 들꽃이 피어나 눈이 즐겁다. 출퇴근길에 마주한 꽃들을 마음 가득 담고 돌아와 어느새 저녁, 다시 한번 꽃의 세계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필요한 건 조해너 배스포드의 <꽃의 세계>와 색연필 한 세트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