챌린지 블루 창비교육 성장소설 1
이희영 지음 / 창비교육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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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여러가지가 생각나는 책이었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도, 스스로에 대한 진지하고 깊은 고찰도 없이 막연하게 성적에 맞춰 진학을 결정하던 십대 시절의 나, 무리없이 목표한 대학에 진학해 비싼 등록금을 치룬 후에야 이 길은 내가 갈 길이 아니라 깨달았던 이십대의 나, 언젠가 태어날 아이에게 이런 얘기를 해줘야지, 하며 블로그에 이런 저런 것들을 끄적이던 (애인 없는 미혼이었던) 삼십대의 나, 내 눈 앞에서 마냥 웃고 떠드는 아이를 보며 어떤 어른으로 끌어가야 하나 고민하는 사십대의 나.


​돌이켜보면 내 인생은 평탄한 듯 그렇지 않은 듯, 남들 못지 않게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지만 별다른 일 아니란 듯이 그런 고비를 넘기며 그럭저럭 살아왔다. 남들에게는 난 참 복 받았다, 인생에 어려운 일이랄게 없었다 그렇게 얘기하긴 했지만, 정말 그랬던가 생각해보면 그래도 겪어야 할 일은 다 겪었다. 학업에서, 연애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럼에도 큰 문제없는 인생이었다 반추하게 되는건 무슨 이유일까?




​비록 주인공은 진학과 진로를 앞두고 고민하는 십대로 설정됐지만, 연령대나 처한 상황이 다른 독자들이라도 충분히 귀 기울일 만한 메시지가 계속해서 나온다. 


내일로 가기 전에 잠시 쉬세요. 

이유도 모른 채 자신에게 끌려 다니지 마세요. 

적당히 타협해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아요. 

해봐요, 일단 저질러 보면 별 거 아니에요. ​


어떻게 보면 몹시 직접적인 메시지들이 반복해서 나오니 이게 자기계발 책이었나 싶어 헛웃음이 날 지경인데, 그럼에도 끝까지 읽게 된 건 그 메시지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들을 겪고 살아왔음에도 그리 힘들었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그리 실패한 인생은 아니다 생각하게 되는 것도 아마 이 책 ‘챌린지 블루’에서 전하고픈 메시지들을 비록 구체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래저래 내 삶에 받아들여왔기 때문 아닐까.


​나는 이렇게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막상 이게 내 아이의 일이 된다 생각하니 그게 내 일처럼 마음먹어지지 않는다. 이런 상태라면 바림의 엄마처럼 아이가 차마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 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 삼키도록 몰아붙이는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 아닐까? 같은 십대가 읽으면 그저 공감하고 말 일인데 엄마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장르가 성장소설에서 공포물로 바뀌는 듯한 기분도 든다.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사는게 꼭 그렇지 않다는걸 이미 알고 있는데도 왜 내로남불이 되는 걸까. 


이제 내가 가져야할 마음은, 이거다. 버려라. 아이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마음을 버려라. 내가 어떻게든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급함을 버려라. 그리고 또한 기억하자. 태어나버린 이상 선택은 그 삶을 살아가게 될 아이의 몫이라는 걸, 내가 가져야할 것은 응원과 격려, 필요로 할 때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의 현명함, 무엇보다 내가 바라야할 것은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챌린지 블루. 

많은 것들을 떠올리고, 또 많은 것들을 새삼스레 다짐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더불어 훌륭한 책받침이 되어준 설이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유도 모른 채 자신에게 끌려 다니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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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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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이야기꾼이다. 누구는 짧은 토막글 하나 뽑아내려 해도 머리가 안 돌아가는데, 데뷔 후 5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내놓으면서도 소재나 문장이 지겹지 않고 새롭다. 추리물을 워낙 많이 써서 처음엔 추리작가인가 싶었지만, 뮤지컬로도 만들어질 만큼 인기몰이를 한 《나고야 잡화점》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비슷한 치유 계열로 《녹나무의 파수꾼》도 있다. 《녹나무의 여신》의 전작이다. 말하자면, 장르를 막론하고 글을 잘 쓴다. 아인슈타인의 뇌만큼이나 열어보고 싶다. 내 뇌와 아주 다를 것이라는 것만큼은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겠다만.


일단 사람부터 죽이고 시작하는 추리물을 많이 내놓긴 했지만, 사실 돌이켜보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어딘가 따뜻하다. 사람이 몇이고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끝끝내 놓지 못하는 인간성에 대한 희망이 어느 작품에나 묻어났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그런 사람이니 이런 책을 써도 위화감이 없는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앞서 언급한 《녹나무의 파수꾼》을 먼저 읽지 않는다면 녹나무의 존재 자체가 낯설고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기는 했으되 기억이 희미할 정도여서 안 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이야기 진행에 필요한 최소한 정보는 《녹나무의 여신》에서도 알려주니까, 그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다. 녹나무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큼, 딱 그만큼만 마음을 열면 된다. 이 이야기는 판타지,라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그야말로 착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사정이야 있겠다만 기본적으로 선량하다. 범죄가 일어나고 그 일이 주요 인물들과 얽혀들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동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해자가 밝혀질까 봐 조마조마한 그런 정도의 소동이다. 


그렇다면 온갖 종류의 자극에 노출돼있고 다 큰 성인의 집중력이 10분이 채 안 된다는 현대인이니만큼 이런 착한 이야기는 좀 지루하고 심심해야 마땅한데, 400여 쪽에 달하는 분량을 앉은 자리에서 쉬지 않고 읽어나갈 만큼 흡입력을 가졌다. 아니, 한 번도 쉬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딱 한 번, 50여 페이지 분량을 남긴 상태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책을 덮었다.


"너는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힘들구나. 답답하구나. 막막하구나. 그래도, 지금,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랬던가. 살아있으니 하늘도 볼 수 있고, 땅도 밟아보고, 내일이 보이지 않아도 오늘을 살 수 있다. 작중 인물이 어떤 마음으로 이 문장을 만들어냈을까 생각하니 먹먹함이 더욱 커졌다. 남은 50 페이지는 보기에 따라 비극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결말이었지만, 저 한 문장이 내 가슴에 남아 더이상 슬프지 않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쩌면, 천재다.

지금 살아 있지 않으냐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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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검밖에 팔지 않는 것입니까?
에프(F) 지음, 천선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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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게임 속 NPC-여야 할- 마루는, 용사로 뽑힌 동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슬라임에게나 통할 동검뿐이라는 현실에 의문을 품는다. 왕국의 높으신 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무려 마왕을 쓰러뜨리는 일인데 빵빵한 무기와 방어구 제공은 필수 아닌가? 일개 NPC도 품은 이 의문을 나 자신은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맙소사!

물론 게임이니까 그렇다. 작가가 모티브로 삼은 <드래곤 퀘스트>는 해본 적이 없지만, 자고로 RPG란 캐릭터 육성 게임 아니던가. 시간에 따라 캐릭터를 성장시켜 결말에 이르러야 하는데 처음부터 드래곤 킬러니 버스터드 블레이드니 하는 것을 써버리면 게임이 성립되질 않는다. 그런 짓을 했다간 실격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게이머의 사정이고.

세상에 남은 하나뿐인 혈육을 사지로 보내야 하는 형의 입장에서는 세계가 온통 부조리로 가득 차있다. 원래 그런 것이라 납득하고 살 수는 없다. 동생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그래서 마루는 생명의 은인이자 스승이고, 아버지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사람 좋은 점주의 만류를 뿌리치고 길을 나선다. 부조리한 세상을 쥐고 흔드는 상인 길드의 본부를 찾아 일을 바로잡고, 동생을 살리기 위해서.

이 책은 우선 소재가 좋다. 게임을 좀 해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또한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마치 한편의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몰입할 수 있는 판을 시작부터 깔아준다. 게다가 마루가 제시한 의문은 일견 타당하다. 시작부터 마루의 입장에 빙의한 나는,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는 점주에 대해서도 마루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꼰대!!”

각지를 여행하면서 마루가 겪는 여러 상황들은 제법 날카롭게 우리의 현실과 맞물린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살고 있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모순들이 책 속에 가감없이 드러난다. 나는 사실 여러모로 마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마루가 가지는 충격을 나 또한 고스란히 느꼈다. 아마 그 누구보다 몰입해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만 결말에 이르러서는 이야기가 약간 산으로 간 기분이다. 소설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걸어가다가 갑자기 판타지의 세계로 풍덩 빠져버린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문장에 마음이 달래진다.

“나도 인간을 다시 믿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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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 이 시대를 집어삼킨 ‘나’라는 신에 맞서다
사디어스 윌리엄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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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
이 시대를 집어삼킨 ‘나’라는 신에 맞서다



마음을 따르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 것인가.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든 내면의 소리를 들을 필요는 있다. 다만 여기에 대전제가 필요할 따름이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르고 있는가- 즉, 절대 선을 따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했을 때 분명 이 글을 읽을 누군가는 아, 또 개독 이야기구나, 하고 스크롤을 훅 내리거나 뒤로 돌아갈 테지만, 부디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물론 이 책은 <두란노>라는 한국의 기독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지만, 종교를 떠나 인간의 본성과 세상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한 이정표 역할을 제대로 해줄 것이라 믿는다.

$1. 내가 행복하면 된다
$2. 꼰대는 사절이다
$3. 내 마음을 따른다
$4. 나에게 충실할 뿐이다
$5. 내 인생은 내 것이다
$6. 인생은 한 번뿐이다
$7. 답은 내면에 있다
$8. 진정성이 최고다
$9. 내 꿈은 이루어진다
$10. 사랑은 사랑이다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는 여러 측면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자아 숭배 십계명‘은 얼핏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저자는 위 계명들의 모순점과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왜 지금껏 그런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싶어 아찔해지는 순간이 이 책을 읽는 모두에게 한번은 올 거라 생각한다. (아마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깨어있으라˝라는 명령이 이런 시대를 바라보신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모든 상황과 감정과 가치의 기준이 오롯이 ‘나’에게 있다고 믿는 시대에 살면서, 위의 10가지 명제가 왜 잘못된 것인지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자아의 신격화는 인간의 첫째 가는 가장 근본적인 죄였다. (폴 히버트)” 가장 최신의 가치라 생각한 ‘자아 숭배’가 실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된, 구식의, 꼰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이미 내 마음은 책을 향해 반 이상 열렸다.)

두 번째로 내 뼈를 때린 것은,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네 마음을 도덕 가치의 절대 기준으로 생각하느냐’는 일침이었다.

p.89
마음에 복종하라는 말에는 인간의 마음이 타락하지 않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끊으려 애쓰다가 도로 술에 손댄 중독자도 자신의 마음을 따른 것이다. 자신의 간과 사랑하는 이들을 망쳐가면서까지 다시 한잔할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 제국주의자 지휘관, 테러리스트, 사기꾼, 강도, 병적인 거짓말쟁이도 하나같이 자신의 마음을 따른다.

만약 모두의 마음이 옳으며 모두가 각자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일이 좋은 일이라면, 우리는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다른 이가 제 마음대로 살아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그 어떤 불이익에 대해서도 불평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선했다면 지금과 같이 살기 힘든 세상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저마다의 이익만 좇아 살아온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나는 결론을 내렸다. 적어도 내 마음은, 내가 절대적으로 믿고 따를 만큼 절대적으로 선한 것은 못 된다.

이외에도 저자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모든 자아 숭배 명제를 하나하나 쓰러뜨려 가는데, 책을 다 읽을 즈음에는 모두 내 마음이 아니라 지음 받은 대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할 수 있길 기대한다.

ps. 전혀 다른 책이긴 하지만, 하다하다 작가의 <독신주의자와 결혼하기>에 이런 남자의 고백이 나온다. ‘사랑하기로 결단했다’고.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결단이라는 그 말이, 어쩐지 <마음을 따르지 않을 용기>를 읽는 동안 생각이 나서 언급해 본다.

#나를복음으로살게한문장 #마음을따르지않을용기 #dont_flollow_your_heart #사디어스윌리엄스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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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만화 : 마지막은 집에서 - 찾아가는 의사 단포포 선생님의 이야기
나가이 야스노리 지음, 네코마키 그림 / 타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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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이미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그런 만큼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나라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게다가 1인 가구의 수도 무시 못 할 만한 수치여서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도 제때 손을 쓰지 못해 고독사하는 경우도 유의미할 정도로 늘었다. 예전처럼 2세대 이상이 한 집에서 살아가는 시대도 아니어서 가족의 돌봄을 받는 것도 썩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이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으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되도록 집에 머물고자 한다. 아무리 의료 수준이 높아지고 시설에서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하더라도 '환자'가 아니라 그저 '나'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살아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로서, 나답게 살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 나가야 야스노리 선생 본인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단포포 클리닉의 재택 의료가 지향하는 포인트이다. "죽음을 마주한 환자와 어떻게 눈을 감을지 함께 고민하는 일"이 단포포 클리닉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단포포 클리닉은 병원이긴 하지만 환자는 모두 자택에서 지낸다. 직접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는 재택 의료 대상이 아니다.




환자 한 명 한 명의 생활 환경을 모두 파악하고 그에 맞게 의료진을 파견해 숨이 멎는 때까지 책임을 진다는 일은 얼핏 듣기에 유토피아에 가깝다. 클리닉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이 대도시 규모여서는 직원이 몇이어도 부족할 테고, 설사 규모가 작다 해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임종 직전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다. 아무리 시스템과 인력을 갖춘다 해도 별별 변수가 다 생겨나는 현장이다. 어지간한 희생과 각오 없이 뛰어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이다.


책은 단포포 클리닉을 운영하며 만나게 된 여러 환자의 사례를 소개하며 어떻게 그들이 '꽃잎이 시들어가듯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그러한 죽음을 위해 의료진과 환자,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 함께 고민하고 풀어갔는지 그 과정들을 보여준다. <고양이와 할아버지>로 많이들 알고 있을 네코마키 작가 특유의 편안한 그림체 덕분에 책은 쉬이 읽힌다. 만화 사이사이에는 야스노리 선생의 코멘트 페이지와 재택 의료에 대한 줄글 페이지가 삽입되어 있어서 재택 의료에 대해 보다 자세한 정보와 작가 본인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음식을 자력으로 섭취하기 어렵다는 건 죽음을 앞둔 몸에는 당연한 일이란다. 살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치료란다. 이것을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내 부모가, 내 자녀가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어떻게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저 목숨 하나 붙여놓자고 단행하는 연명 치료에 회의적이긴 하지만, 역시 직접 겪게 된다면 쉬이 선택하기 어려운 문제다. 책을 읽는 내내 이성과 감성이 끊임없이 부딪쳤다.


이 책 한 권만 읽고서 재택 의료 만세!를 외칠 수는 없다. 그런 것이 책의 목적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나 닥치기 마련인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저 살기 위해 생명을 연장하는 일에 매달릴 것인가, 이쯤 하면 되었으니 마무리까지 내 힘으로 해보고 홀가분하게 떠날 것인가, 내 가족이 그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응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다시금 단단하게 다지자고, 다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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