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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계절 ㅣ 암실문고
페르난다 멜초르 지음, 엄지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평점 :
인간의 본성은 선할까, 악할까? 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선하다는 사람도 있고, 최초의 인간의 원죄를 이어받아 악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렇기에 둘 다라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둘 다라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흔히 말하듯, 빛과 그림자는 일심동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다 사실은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 책이 '눈먼 자들의 도시'였다. 단 하나, 세상을 바라보는 눈, 혹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것 하나 차단했을 뿐인데 속절없이 무너지는 인간성을 바라보며 인간의 본성이란 이토록 얇은 막 뒤에 숨은 것이었나, 속이 쓰렸던 기억이 있다.
<태풍의 계절>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 또 그런 유의 책을 읽게 되는 걸까 살짝 염려되었다. "악의 극단성",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가장 어두운 성취", "어떤 리얼리즘은 악몽보다 깊은 곳에 있다" 등등- 출판사의 홍보 문구들이 그런 기분을 갖게 했다. 그렇다고 외면하거나 회피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기에도 살 날이 짧다고도 말한다. 예전에 일본 지인에게 퓰리처상 사진展을 보러 가자고 권했을 때 '추한 것은 되도록 보고 싶지 않다'라는 대답을 들은 적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의다. 빛과 그림자는, 일심동체니까.
어쨌든 그런 염려를 가슴 한편에 담고 읽어갔는데 의외로 내가 받은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마치 그것만이 인생인 양 살아왔던 데로 살아가는 그네들의 삶이 어쩌면 오늘날 이 한국 땅에서도 이어지는 게 아닌가 하여 안타깝고도 선득했다. 나 자신은 아직까지 살 만 하지만 내 아이가 사회에 나갈 즈음엔 책 속의, 오늘날 가장 위험한 국가 중 하나인 멕시코 지역의 일상과 같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라면 분명 그리되고야 말겠구나 싶어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길은 잘못된 길이라고 이리도 목청껏 외치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 하고 마치 길이 하나뿐인 것 마냥 그리로만 가는 이 세대를 어쩌면 좋을지, 그저 쩔쩔맬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