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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마음에 이름을 붙인다면 ㅣ 보통날의 그림책 1
마리야 이바시키나 지음,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2년 6월
평점 :
이름을 붙인다는건 뭘까.
태초에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고, 창조물들의 이름을 아담에게 짓게 하셨단다. 말하자면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름'을 부여받고 '이름'을 짓고 '이름'을 사용하며 살게 되어있다는 얘기다.
그래, 이름은 짓는거다.
그만큼 지극한 정성과 관심이 필요하다.
이름 붙이려는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 꼭 맞는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
넓게 관찰하고,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잘못 지은 이름은 두고두고 손가락에 박힌 가시처럼 남아서 속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름이라는건, 말이라는건 참 재미있다.
뭐 얼마나 다르겠냐 싶지만 자주 사용하는 단어라던가 말투 같은 것들은 생각 외로 사람의 많은 부분을 드러내 보이지 않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건 사실 감정의 이름 자체보다 바로 그 부분-각 나라의 이름이 담고 있는 의미들에서 읽혀지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정서, 풍습 같은 것들이었다. (아마 어릴 적 교과서에서 읽었던 '말은 얼의 거울이다'라는 문장이 뇌리에 강하게 남은 탓일 거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는 슈투름프라이(Sturmfrei,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라는 단어가 있단다. 많은 책과 영화 등을 통해, 유럽 사람들이 얼마나 옆집 일에 관심이 많은지 익히 알고 있지 않나. 부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이런 말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그리스어의 볼타(Βολτα, 목적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들려오는 소리와 풍경을 즐기는 일)는 또 어떤가. 이 이름과 뜻을 읽는 것만으로도 그리스의 아름다운 풍광과, 그 땅 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껏 즐기며 살아가는 지중해인들이 떠오르지 않겠나. (그리고 왠지 부럽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책을 읽다 보니-설사 잘못된 추론이라 하더라도- 그저 이름을 나열한 책이 아니라 각 나라들 속으로 좀더 깊이 다가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리야 이바시키나의 아름다운 그림들과 함께 읊어보는 감정들의 이름은, 사실 내가 일상에서 쓸 일은 거의 없을 거다. 하지만 책곰에서 짚어주셨듯, 그림책에게 쓸모를 바라면 안 될 일이다. 쓸모있어야 할 책들은 다 그렇게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그림을 보고, 곁들여진 글들을 읽고, 아 좋은 책이었다, 하면 될 일이다.
아, 좋은 책이었다.
슈투름프라이(Sturmfrei,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집에 혼자 남아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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