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은 대단히 불쾌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인정받지 못하던 두 개의 원칙이 막강한 힘을 얻으며 자신들이 예전부터 누려온 특권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왕권신수설의 원칙이었고, 다른 하나는 세습의 원칙이었다. - P261
단순왕 피핀은 살아생전에 미리 왕국을 나누어 카를로만 1세에게 네우스트리아를, 샤를마뉴에게 아우스트라시아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최근에 정복한 아키텐 공작령을 둘로 쪼개 물려주었다. 하지만 왕위 세습에는 감히 반박조차 못하던 귀족들이 왕국 분할 방식에는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샤를마뉴를 네우스트리아의 왕으로, 카를로만 1세를 아우스트라시아의 왕으로 선언했다. 피핀의 임명을 정반대로 뒤집은 것이다. 하지만 젊은 두 왕은 뒤바뀐 임명을 받아들였고, 샤를마뉴는 누아용에서, 카를로만 1세는 수아송에서 동시에 왕위에 올랐다. - P266
샤를마뉴의 칼날을 피한 민족은 노르만족이 유일했다. 이들이 훗날 갈리아 지역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민족들과 결합하여 프랑스 민족의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조상이 되었다. - P272
샤를마뉴가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만든 강력한 제국은 존경을 받았고, 그 영토는 독일에서는 발트해까지, 이탈리아에서는 볼투르노강까지, 스페인에서는 에브로강(스페인 피레네 산맥 남쪽을 따라 흐르는 강_옮긴이)까지, 갈리아 지역에서는 대양까지 뻗어나갔다. 아홉 개의 큰 민족이 제국의 광대한 경계선 안으로 들어와 같은 법률, 같은 종교를 따랐다. 군주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성취한 이 화합은 대제국 건설 계획을 세운 인물의 천재성뿐 아니라 대제국을 완성한 무기의 힘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다. - P284
샤를마뉴는 일 년 열두 달의 명칭도 바꾸려 했다.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1000년 후 프랑스 국민공회도 같은 일을 추진하다 같은 결과를 얻은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 P287
정통 신앙을 지킨 위대한 황제, 샤를마뉴가 이 돌 아래 누워있다. 황제는 당당한 프랑크족의 왕국을 확장하고, 47년간 평화롭게 치세한 후, 인딕티오indictio(15년 간격의 징세 주기_옮긴이) 7년, 구세주가 이 땅에 오신 지 814년째 되던 해 1월 28일 70대에 운명했다. - P297
이처럼 일부는 프랑크 왕국에서 받고 또 일부는 독일 왕국에서 받은, 서로 다른 4개의 언어를 사용하는 4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긴 띠 모양의 영토가 샤를 2세와 독일왕 루트비히 2세가 합의하여 로테르의 황제 망토 끝에 꼬리처럼 달아준 땅이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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