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늘 밤이 되기까지 내가 해왔던 행동에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허공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차례로 백조가 되고, 개가 되고, 악마가 되고, 전갈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 구름은 하염없이 흩날리고 찢겼다. 하늘의 바람에 밀리며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89

하느님, 회사의 이익, 그리고 과부가 조르바의 머릿속에서는 아무 모순도 없는 조화를 이루어 내고 있었다. 나는 오두막을 나서는 그의 경쾌한 발소리를 들었다. 일어났다. 마법이 풀리면서 내 영혼은 다시 육신의 감옥에 감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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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90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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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92

하느님 말씀하시기를, 살림 잘하는 여자는 숟가락으로 바느질도 하거니, 오냐, 내 악마의 뿔로 여자를 만들어 보리라! 그리고 만드셨지! 얘, 알렉시스, 그래서 악마가 우리를 못살게 구는 거란다. 여자의 어디를 만지든, 너는 악마의 뿔을 만지는 셈이란다. 그러니까, 얘야, 여자를 조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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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15

달빛을 받고 있는 조르바를 보고 있으려니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어쩌면 저렇게 쾌활하고도 단순하게 세상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 그의 몸과 영혼은 얼마나 조화로운 하나를 이루고 있는지! 또 여자와 빵과 물과 고기와 잠 등 모든 것은 그의 몸과 너무도 행복하게 결합하여 저 조르바를 이루고 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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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18

말라르메의 시집이었다. 천천히 마음 내키는 대로 읽다가 책을 덮었고, 다시 펼쳤다가 결국은 내려놓고 말았다. 그의 시는 핏기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인간의 본질을 비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의 시가 창백한 진공 속의 공허한 언어로 보였던 것이다. 박테리아 한 마리 없는 완벽한 증류수였지만 영양분 역시 하나 없는 물 같은 것,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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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21

나는 소스라쳤다.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 나는 부르짖었다. 이것이 그의 비밀이며 엄청난 의미다. 붓다는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 영혼이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空)이다.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 그는 외친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에는 더 이상 물이 솟지 않고 풀이 나지 못하며 아기는 태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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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23

자네에겐 시간이 있는데, 내게는 그것이 없네. 행동이 나를 삼키고 말았네만, 나는 이게 좋아. 친구여,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 구원의 길은 그것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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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39

이 원시인은 삶의 껍질 ─ 논리와 도덕과 정직성 ─ 을 간단히 깨고 삶의 본질 속으로 곧장 들어가 버렸다. 우리에게는 그토록 유익한, 그 모든 자잘한 덕성이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만족을 모르고 그를 극한으로, 나락으로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거북하고 위험한 한 가지 덕성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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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65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나는 비겁하게 모든 것을 운명의 탓으로 돌리고서 할 일을 다했다고 믿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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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391

계절의 어김없는 리듬, 무상한 생명의 윤회, 태양 아래서 차례로 변하는 대지의 네 가지 얼굴, 생자필멸(生者必滅), 이 모든 사실이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조여 왔다. 다시 한 번 해오라기의 울음소리와 함께 내 속에서 무시무시한 경고의 소리가 울렸다. 생명이란 모든 사람에게 오직 일회적인 것, 즐기려면 바로 이 세상에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영원히 다른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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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04

존재의 심연에서 나는 소리쳤다. 〈유아독존(唯我獨尊)! 오, 대지여! 나는 그대의 막내, 그대 젖줄을 빠는 나는 그대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대는 다만 한순간의 삶을 내게 베풀지만 그 한순간이 젖이 되고 나는 그 젖을 빠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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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15

그때, 어린 나는 하마터면 우물에 빠질 뻔했다. 자라서는 〈영원〉이라는 단어에 거의 빠질 뻔했다. 또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겨우 단어를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2년 전부터는 〈붓다〉라는 말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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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17

그러나 이제 확실히 느낀다. 조르바 덕분이다. 붓다는 최후의 우물, 마지막 낭떠러지 단어가 될 것이며, 이제 나는 영원히 해방될 것이라고. 영원히? 그거야 우리가 늘 하는 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17

「여자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다. 품질이 좀 떨어질 뿐이지요. 여자란 지갑을 보면 돌아 버립니다. 착 달라붙어 자유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모조리 던져 버리고 그 상태를 더 좋아합니다. 왜? 마음 한구석에서 지갑이 반짝거리니까요. 그러다가 정신이 돌아오면……. 에이, 이따위 이야기는 집어치웁시다, 두목!」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23

오직 조르바만이 그들을 이렇게 이끌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인부들을 취하게 했다. 그의 손에서 대지는 생명을 되찾았고 돌과 석탄과 나무와 인부들은 그의 리듬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29

날개까지 달렸던 내 젊은 시절의 꿈은 깃털이 뽑히고 그 순진하고 고상하고 고결했던 충동은……. 지적(知的) 공동 사회를 만들고 음악가, 시인, 화가…… 이렇게 몇몇 친구들이 모여 우리 자신을 거기에다 던져 넣고자 했던 계획……. 낮에는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만 만나 함께 먹고 마시고 읽고 인간의 중요한 관심사를 서로 토론하고 기존의 해답을 뒤집고자 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39

날씨는 물속에 잠긴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했다. 올라갈수록 정신은 맑아지면서 고상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맑은 공기, 부드러운 호흡, 광막한 수평선이 영혼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했다. 영혼 역시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허파와 콧구멍이 있어서 산소가 필요하고, 먼지나 안개 속에서는 호흡에 불편을 느끼겠다 싶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44

나는 지금도 마시고 피우지만 끊고 싶으면 언제든지 끊어 버립니다. 나는 내 정열에 휘둘리지도 않습니다. 조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한때 그걸 너무 좋아하다 그것도 목젖까지 퍼 넣고 토해 버렸지요. 그때부터 그것 때문에 괴로울 일이 없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64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65

「첫 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꽃의 모양은 색깔에 영향을 미치고, 색깔은 속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각각의 꽃은 인간의 몸에, 나아가 인간의 영혼에 저마다 다른 작용을 한다. 꽃이 만발한 들을 지날 때 우리가 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83

「나의 두 번째 이론은 이러하오. 실제적인 영향력을 가진 관념은 실체가 있다. 실제로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대기 속을 떠다니는 게 아니라 진짜 몸이 있다. 눈, 입, 발, 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 몸은 남성이나 여성이 되어 서로를 뒤쫓는다. 그래서 복음서에 이르기를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 하는 것이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84

「이러하오. 우리의 덧없는 삶 속에도 〈영원〉이 있다. 우리로서는 혼자서 그걸 뚫어 볼 수 없을 뿐이다. 우리는 나날의 걱정으로 길을 잃는답니다.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 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나머지는 길을 잃고 헤매니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종교를 내려 주신 것이오. 이렇게 해서 오합지졸도 영원 속에 살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484

「왜 안 쓰느냐,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516

그러나 오입이 지나쳐 글자 그대로 헛껍데기만 남게 되고, 숨이 넘어가면 천당의 문지기 성 베드로 님이 천당 문을 열어 주시면서 이러실 겁니다. 〈어서 오너라, 조르바, 이 불쌍한 것, 어서 오너라. 조르바, 위대한 순교자여, 가서 네 선배 제우스 옆에 누워 쉬어라. 불쌍한 것, 너는 땅에서 네 몫을 했다. 내 너를 축복하지 않고 어쩌겠느냐!〉」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520

해변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지나 있었다. 바람이 일고 있었다. 저 건너 아프리카에서 노토스 ─ 나무를 부풀리고 포도 넝쿨을 부풀리고 크레타 여인의 가슴을 부풀리는 따뜻한 남풍 ─ 가 불어왔다. 물가에 누운 섬 전체가, 수액을 솟게 하는 이 바람의 따뜻한 입김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제우스, 조르바, 그리고 남풍이 하나로 뒤섞이면서 밤의 어둠 속에 거대한 남자 얼굴 하나가 뚜렷이 보였다. 검은 수염, 자르르한 머리카락. 숙인 그 얼굴이 뜨겁고 붉은 입술을 밀착하고 있는 것은 오르탕스 부인, 대지였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521

조르바는 껄껄 웃었다.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526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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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된 그는 캠퍼스에서 친숙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계절과 상관없이 그의 옷차림은 언제나 똑같은 검은색 브로드클로스 양복, 하얀 셔츠, 스트링타이였다. 윗저고리 소매가 짧아서 손목이 불쑥 튀어나와 있고, 바지자락도 어색하게 겉돌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제복을 빌려다 입은 것 같은 몰골이었다. - <스토너>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274372 - P19

그는 영문학 개론 강의를 다른 강의들처럼 대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저자들의 이름과 작품, 연대와 영향력 등을 모두 외웠는데도 그는 첫 번째 시험에서 거의 낙제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두 번째 시험결과도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교수가 숙제로 내준 작품들을 읽고 또 읽었다. 어찌나 많이 읽었는지 다른 강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그가 책에서 읽는 단어들은 그냥 단어일 뿐, 자신이 책을 읽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 <스토너>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7274372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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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들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냅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62

이윽고 그는 춤에다 몸을 맡기고, 손뼉을 치는가 하면 공중으로 뛰어올랐고, 발끝으로 도는가 하면 무릎을 꿇었다 다리를 구부리고 다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흡사 고무로 만든 사람 같았다. 그는 갑자기 미친 듯한 도약을 계속했다. 마치 자연의 법칙을 이겨 내고 날아가고 싶은 듯했다. 그의 늙은 몸속에, 육신을 이끌고 올라 어둠 속에 유성(流星)처럼 같이 날아가 버리려 용을 쓰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그 영혼은, 공중에 오래는 머물 수 없어서 도로 땅에 떨어지고 마는 몸을 뒤흔들었다. 다시 사정없이 몸을 뒤흔들어, 이번에는 조금 더 높이 솟구쳤지만, 그 불쌍한 육신은 도로 떨어지며 헐떡거릴 뿐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70

내 영혼을 육신으로 채우리라. 내 육신을 영혼으로 채우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저 영원한 두 적대자가 내 안에서 화해하게 만들리라.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80

조르바가 산투르를 싼 천을 벗길 때의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놀림은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았다. 그는 자줏빛 무화과 껍질이나 여자의 옷을 벗기는 것처럼 곰살맞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86

내 맹세코 말씀올립지요만, 두목, 쓰레기 같은 책만 잔뜩 집어넣어 놓은 당신 머리가 이해할 턱이 없겠소만, 이건 정말 맹세할 수 있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발에는 에나멜 장화가 척 신겨지고, 머리에는 깃털 모자가 씌워지고, 보드라운 수염에서는 파촐리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답니다. 〈Buon giorno! Buona sera! Mangiate macaroni!(좋은 아침! 좋은 저녁! 마카로니 드세요!)〉 나는 진짜 카나바로가 되는 겁니다. 나는 수천 발의 총탄을 맞은 역전의 기함(旗艦)에 척 올라 떠나가는 겁니다……. 보일러에 불을 댕겨! 포격 개시!」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0

할아버지는 백 살 되던 해에도 문 앞에 앉아 우물로 물 길러 가는 처녀 아이들에게 추파를 던지고는 했지요. 그러나 시력이 좋지 않아 똑똑히 볼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처녀 아이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지요. 〈어디 보자, 네가 누구더라?〉 〈마스트란도니 집 딸 크제니오예요.〉 〈가까이 오너라. 어디 좀 만져 보자. 오래두. 겁낼 것 없느니라!〉 처녀 아이는 예의에 맞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다가갑니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육감적으로 얼굴을 쓰다듬지요. 그럴라치면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린답니다. 〈할아버지, 왜 우세요?〉 내가 언제 할아버지께 여쭈어 봤지요. 〈얘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을 남겨 놓고 죽어 가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1

후유……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말씀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아시오? 나는 이따금 이렇게 한탄하지요. 〈아, 제기랄! 참한 계집들은 나 죽을 때 몽땅 죽어 버렸으면!〉 하지만 그 잡것들은 계속 살아 있을 거고,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 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겠죠,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어 있을 텐데!」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1

우리는 둘 다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라기보다는 우리 내부의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인한 것이었다. 우리는 나름의 방식으로, 우리가 이 땅거죽에 꼭 매달려 있는 두 마리 하루살이에 지나지 않음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 하루살이들이 바닷가에 대나무와 판자와 빈 드럼통 몇 개로 둘러친 편안한 구석을 찾아내고 거기에 함께 매달려 있으며, 또한 앞에는 유쾌한 일과 음식이 있고, 가슴엔 평온과 애정과 평화가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3

그런 식으로 나는 치모(恥毛)를 수집했지요. 검은 털, 금빛 털, 붉은 털, 심지어는 흰 털도 더러는 있었지요. 꽤 많이 모아 그걸로 베갯속을 채웠지요. 나는 이걸 베고 잤지요. 하지만 겨울에만……. 여름에 이걸 베고 자려면 너무 더워요. 그런데 좀 지나고 보니까 그 짓도 심드렁해졌는데…… 아시겠지만 냄새도 몹시 나고 해서 그만 태워 버렸지요. 히히히, 두목, 그게 내 장부였던 셈이지요. 장부를 태워 버린 거예요. 나는 그 짓이 심드렁했던 겁니다. 털이 그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이러다간 한도 끝도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나는 가위까지 버리고 말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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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5

그런데 장바닥을 어슬렁거리다 나는 달구지에서 뛰어내리는 농사꾼 여자 하나를 보았지요. 6척의 훤칠한 키에 눈빛이 바다같이 푸르고 허벅지와 엉덩이…… 이건 완전히 씨받이 암말이에요!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지요. 〈우리 불쌍한 조르바, 오, 불쌍한 조르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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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97

두목, 러시아에 가면 뭐든 푸짐해요.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뒹굴며 고르기만 하면 돼요. 참외와 수박뿐만 아닙니다. 고기와 버터, 여자도 흔했지요. 지나가다 수박밭을 만나면 하나 따먹으면 됩니다. 그리스와는 형편이 다르지요. 여기서야 수박 껍질을 핥아 보기도 전에 법정으로 끌려가고, 여자 몸에 손도 대기 전에 오빤가 뭔가가 달려 나와 칼로 소시지를 만들지 않는 게 이상하죠. 지겨워! 이 거지 같은 것들은 무더기로 지옥에다 처박아 버리든지 해야지, 원! 정승같이 사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싶으면 러시아로 가면 되지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03

슬라브 여자는, 한 번에 한 방울씩 쨀끔쨀끔 사랑을 팔아먹고 값어치에 못 미치는 걸 주면서 그나마 저울눈까지 속여 먹는 욕심쟁이에다 말라깽이 그리스 여자들과는 턱도 없이 달라요. 두목, 슬라브 여자들은 안 그래요. 뭐든지 듬뿍 줍니다. 잠잘 때도 그렇고, 사랑할 때도 그렇고, 먹을 때도 그렇습니다. 슬라브 여자들은 들짐승하고 아주 촌수가 가까워요. 이 대지하고도 그렇고. 줄 때는 기분 좋게 줍니다. 따지기 좋아하는 그리스 여자들처럼 깨죽거리는 법이 없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04

「그야 물론 여자지요! 여자가 영원한 사업이란 이야기는 대체 몇 번이나 해야 합니까? 현재의 당신은 양 꼬리가 두 번 까딱거릴 시간에 암탉을 찍어 누르고는 가슴을 턱 펴고 똥 더미 위에 올라가 뻐기며 한바탕 우는 수탉과 다름없어요. 암탉은 보지 않아요. 볏만 봅니다. 그러니 사랑이라는 걸 알 턱이 없지요.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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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1

「있을 턱이 없지 않소! 누가 뭐라 해도 말이오, 여자는 종류가 달라요, 두목…… 종류가 달라. 인간이 아니라고! 그런데 뭣 하러 야속한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도 종교도 여자를 완전히 잘못 보고 있어요. 여자를 그렇게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두목, 그건 너무 가혹하고 너무 부당해요.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남자에겐 열 계명, 백 계명, 천 계명이 있어도 돼요. 결국 남자는 인간이니까, 감당할 수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는 하나의 율법도 안 돼요. 왜냐, 아니 두목, 이놈의 이야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야 하는 겁니까, 여자는 힘이 없는 생물이오. 두목, 누사를 위해 마십시다. 그리고 여자를 위해……!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 남자들에게 분별력을 조금 더 허락하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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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3

떠나면서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그 말이 적잖게 마음에 걸렸던 나는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한동안 ─ 아니면 영원히? ─ 집어치우고 행동하는 삶 속에 뛰어들기로 결심을 했다네. 나는 갈탄이 매장된 산 하나를 빌렸네. 나는 여기에서 인부를 고용하고 직접 곡괭이, 삽, 아세틸렌 램프, 소쿠리, 손수레를 쓰고 다루네. 내 손으로 갱도를 열고 들어가기도 하지. 자네 말을 무색하게 하려고 이러는 것이야. 갱도를 타고 땅속에다 길을 내는 것으로 책벌레는 두더지가 된 셈이지. 자네는 나의 이 변신을 인정해 주었으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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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7

이곳에서 내가 느끼는 기쁨이 대단하다네. 아주 단순한 기쁨들이어서 그렇고, 맑은 공기, 태양, 바다, 밀빵 같은 영원한 요소들에서 나오는 기쁨이어서 그렇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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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7

내 심장은 베틀의 북처럼 가슴속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네. 이 북이 내가 크레타에서 보내는 요 몇 달의 시간을 직조하는 중이고, 나는 ─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시길! ─ 행복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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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8

자네가 즐겨 입에 올리던 〈국가〉와 〈민족〉 같은 개념, 나를 매혹시키던 〈초국가〉, 〈인간성〉 같은 개념은 여기 파괴의 전능한 입김 아래에서는 매한가지일 뿐이라네. 우리는 수면 위로 떠올라 몇 마디 하거나, 어떨 때는 몇 마디는커녕 〈아!〉, 〈예!〉 따위의 불명확한 외마디 소리를 내뱉고는 파괴되고 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네. 그리고 아무리 고귀한 사상이라 해도 해체해 보면 겨를 잔뜩 채운 꼭두각시 인형에 지나지 않고 그 겨 속에 숨어 있던 용수철이 드러나 버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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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19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밖을 향했다. 바로 그 순간 숱 많은 머리채를 어깨까지 늘어뜨리고 검은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빗속을 달려가는 여자가 보였다. 탄탄하고 둥그스름한 몸매가 비에 젖어 달라붙은 옷 위로 드러나 고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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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31

나는 흠칫했다. 〈웬 맹수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 여자는 나긋나긋하면서도 위험한, 사내를 잡아먹는 동물처럼 느껴졌다.

여자는 잠깐 고개를 돌려 현혹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페 안을 흘긋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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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32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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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44

여자라는 건 목소리에 껌뻑 죽는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기야 여자가 뭐엔들 껌뻑 안 죽겠어요…… 갈보들! 여자 속은 하느님 아니면 아무도 모를 거예요. 더없이 추하고 절름발이에다 곱사등이라도 목소리 하나만 근사하면 노래로 여자를 돌아 버리게 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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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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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은 맛이 기가 막힙니다. 사모님이신 키리아 마룰리아 할머니께서 그 부분만 모아다 선생님을 위해 특별 요리를 만드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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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35

때마침 가을 해까지 따사롭게 비치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우리는 집 앞, 조그만 뜰에 앉았다. 위로는 열매를 잔뜩 맺은 올리브 나무가 있었다. 은빛 잎새 사이로 멀리 평화롭게 잠든 바다가 보였다. 희끗한 구름이 쉴 새 없이 태양 앞을 지나쳐 그럴 때마다 대지는 숨이라도 쉬는 듯이 슬퍼 보이다, 기뻐 보이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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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36

「암요, 필요한 건 하느님이 다 가지고 계시겠지요.」 조르바가 영감의 귀에다 입술을 대고 소리를 질렀다. 「하느님이 가지고 계시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 늙은 자린고비가 글쎄, 우리에겐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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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44

그러나 우리는 식인종처럼 조용히, 그리고 만족스럽게 그 진미를 먹고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석양에 분홍빛으로 변한 바다를 은빛 올리브 가지 사이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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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47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낡은 세계는 구체적이고 견고하다. 우리는 그 세계를 살며 순간순간 그 세계와 싸운다. 실재하는 세계다. 미래의 세계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을 빚는 재료인 빛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광풍 ─ 사랑, 증오, 상상력, 행운, 하느님 ─ 에 휩쓸린 한 조각 구름이다. 지상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표어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표어가 막연할수록 선지자는 더 위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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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50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에 단단히 뿌리 박고 선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뱀은 대지의 모든 비밀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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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52

바다는 죽은 듯이 고요했다. 유성들의 일제 공격을 받았지만 대지는 미동도 신음도 없었다. 개도 짖지 않았고 밤새도 지저귀지 않았다. 은밀하고 위험한, 완전한 정적. 그 정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무수한 절규들이었다. 너무 먼 곳, 우리 내면의 심연에서 흘러나오고 있기에 우리가 듣지 못하는 절규들이었다. 나는 오직 내 관자놀이와 목의 정맥을 흐르는 피의 맥동만을 분간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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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53

내 귀가 제 구실을 하면서 정적이 외침 소리가 되었다. 마치 내 영혼도 그 노래로 이루어져 있어, 그 소리를 들으려고 몸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바닷물을 한 움큼 길어 올려 이마와 관자놀이를 축였다. 정신이 좀 드는 기분이었다. 내 존재의 심연에서 절규들이 험악하게, 혼란에 빠져, 고통을 드러내며 메아리치고 있었다. 호랑이는 내 안에 있고 포효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목소리를 분명하게 들었다. 붓다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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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54

때가 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떨었다. 붓다의 윤회 바퀴가 나를 싣고 떠난다. 이제 초자연적인 짐에서 나 자신을 해방시킬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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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급히 갈겨썼다. 바빴다. 붓다는 내 안에서 모든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나는 붓다가 상징으로 뒤덮힌 푸른 띠처럼 나의 뇌에서 풀려 나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띠는 빠른 속도로 풀려 나왔다. 나는 따라잡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나는 썼다. 모든 것은 간단, 극히 간단했다. 쓰는 게 아니라 받아 적는 것이었다. 자비와 체념과 공(空)으로 이루어진 전 세계가 내 앞에 나타났다. 붓다의 궁전들, 후궁의 여인들, 황금 마차, 세 번의 숙명적인 만남(늙은 자와 병든 자와 죽은 자), 출가, 고행, 해탈, 중생 제도의 선포. 땅은 노란 꽃으로 뒤덮였다. 거지들과 왕들은 황색 가사를 입었다. 돌과 나무와 육신은 가벼워졌다. 영혼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정신이 되었으며, 정신은 무(無)가 되었다……. 손가락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도 멈추고 싶지도 않았다. 환상은 살같이 지나가며 사라지려 했다. 나는 그 환상을 따라잡아야 했다.

아침에 조르바는, 원고에다 머리를 처박고 자는 나를 깨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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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56

일어났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펜을 너무 오래 잡고 있었던 탓에 오른손 마디가 뻣뻣했다. 손가락을 오므릴 수가 없었다. 붓다의 폭풍이 나를 엄습하여 내 육신을 지치고 텅 비게 만들어 놓고 떠난 것이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흩어진 원고를 주웠다. 그러나 그 원고를 읽을 힘도, 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돌연한 영감의 돌풍은 한갓 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언어에 감금되고 언어에 의해 타락해 있는 그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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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목, 믿으시려나? 정말 신비스러운 일이에요! 여자한테는 절대 아물지 않는 상처가 하나 있단 말이에요. 다른 상처는 다 아물어도 그 상처만은(책에서 하는 말은 무시해요) 절대 아물지 않습니다. 여자가 여든 살이면 뭣합니까. 그 상처만은 벌어져 있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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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13

한 여자가 다가와 내 옆에 섰다. 여자 역시 이 작품을 보았는데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는 남자와 여자의 영원한 포옹에 감동한 것 같았다. 날씬하고 차림새가 단정했다. 머리카락은 숱이 많았고 턱은 견고했고 입술은 가냘팠다. 성격이 단호하면서도 정열적일 듯한 여자였다. 나는 평소에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싫어했지만 무엇 때문에 그랬던지 내 쪽에서 먼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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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세요, 조르바. 뭐든 이야기해요!」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케도니아 전체가, 산이, 숲이, 냇물이, 코미타지 게릴라가, 부지런한 여자들과 건강한 사내들이 그와 나 사이의 좁은 공간 가득히 펼쳐지는 것이다. 스물한 개의 수도원과 더불어 아토스 산이 나타나고, 무기 창고가 나타나고, 엉덩이가 펑퍼짐한 그 지방 게으름뱅이도 나타난다. 조르바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수도승 이야기를 끝내고는 큰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두목, 노새 뒷다리와 수도승 앞다리를 조심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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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23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물, 여자, 별, 빵이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25

「두목,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럼 온통 그것밖에 없어요. 두목,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골치 아픈 문제가 무더기로 나한테 닥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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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34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단장으로 자갈을 후려치며 그가 말을 이었다.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두목같이 고매하신 양반은 이걸 모르시겠지. 짐승한테는 모든 게 너무 쉬워요.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아니라고요? 짐승이라니까요! 짐승은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을 거예요.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내버려 둘 거요. 정말이지 두목을 위해서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31

나는 해변에 엎드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오래지 않아 나는 밤과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내 마음은 꼬마 등불을 켜고 축축하고 어두운 대지에 숨어 기다리는 반딧불 같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33

붓다에서 벗어나고, 나의 모든 형이상학적인 근심을 언어로써 털어내 버리고, 헛된 번뇌에서 내 마음을 해방시킬 것.


지금 이 순간부터 인간과 직접적이고도 확실한 접촉을 가질 것.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 그렇게 늦은 건 아닐 거야.」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저

리디북스에서 자세히 보기: https://ridibooks.com/books/1242000564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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